00021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 =========================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21)
카이사르가 레스토랑에서 병신짓 하는 걸 구경하려고 들어왔는데, 영문도 모르게 레스토랑을 접수했다.
[왕돈까스 레스토랑의 지배무리를 궤멸시켰습니다. 이제 왕돈까스 레스토랑은 당신의 영역입니다.]
[레스토랑에서 주기적으로 보호세와 상납금을 징수할 수 있습니다.]
[카리스마가 1 상승합니다.]
이득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전속하수인과 부하, 영역을 모두 지녔습니다. 조직 결성을 위한 조건을 대다수 충족한 결과, 남은 조건이 자동적으로 공개됩니다.]
[조직이름을 지을 시, 곧바로 조직결성이 가능합니다.]
툭 까놓고 말해서 범죄조직을 결성하라고 시스템 적으로 등을 떠밀리고 있다.
직업 보스를 선택할 때 이미 결심하기는 했지만, 뭔가 너무하지 않아?
예전의 직업인 보육원장보다는 낫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범죄조직의 보스라는 게 거부감이 좀 든다.
[Tip> 조직을 결성할 시, 대량의 경험치와 스킬포인트가 보너스로 주어집니다. 조직결성은 보스 플레이의 핵심요소입니다. 최선을 다해 강대한 조직을 운영해보십시오!]
아주 대놓고 밀어대는구먼.
“너희들.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있냐?”
“고기입니다.”
“나도 닭고기는 좋아해! 특히 껍질!”
뭔가 이름 짓기 귀찮고.
적당히 음식이름으로 조직결성 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닭고기파는 뭔가 아닌 것 같다.
돼지고기랑 닭고기 중에 뭐가 맛있냐고 싸우는 녀석들 같잖아.
“그럼 보석 중에서 좋아하는 건?”
“보석에는 금도 포함됩니까?”
“루비! 빨갛고 이뻐!”
금파, 루비파, 금루비파.
영 팟, 하고 꽂히는 느낌이 들지를 않는다.
고민 좀 하고 있자니 리나가 관심을 보였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봐? 사주려고?”
“느닷없이 부하에게 루비를 사주는 보스가 있겠냐.”
“아하하, 그건 그렇지. 오히려 받으면 무서워! 분명 무슨 일을 시키려고 이러는 건지 꺼림칙해질걸.”
머리를 굴리는 인원이 늘어나면 뭐라도 좀 나오겠지.
나는 조직 이름을 고민하고 있음을 밝혔다.
두 사람은 제법 관심을 보이며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피보라파는 어떻습니까. 건방지게 보스의 뜻을 거역하는 놈들은 모조리 한줌의 핏물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안 돼! 너무 무식하게 보이잖아. 일단은 암살자인 나도 있다고? 좀 더 깔끔하고 피비린내가 안 나는 이름이 좋아.”
“무슨 나약한 소리냐. 보스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덤비면 박살난다는 강한 인상의 조직이름이 필요하다.”
“권위라는 게 꼭 그렇게 추잡한 이름으로 드러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이 야만인아!”
“이 계집이... 야만인에게 맞아 죽고 싶으냐?”
금방 살기 풀풀 흘려대며 요 모양이 되었지만.
“그만.”
그래도 이름 짓기의 요령은 습득했다.
“권위와 세련됨. 두 가지를 갖추면 되겠군.”
“그렇습니다.”
“바로 그거야, 보스!”
나는 카이사르에게 간단하게 질문을 던졌다.
“권위가 느껴지는 색은 무슨 색이냐. 빨간 색은 제외하고.”
빨간 색이라고 대답하려던 카이사르가 멈칫했다.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얼마간.
그는 확신어린 어조로 대답하였다.
“검은 색입니다.”
“좋다. 참고해두도록 하지.”
다음은 리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세련된 도구는 무엇인가. 귀엽고 깜찍한 걸 제외하고.”
뭔가 귀엽고 깜찍한 걸 말하려던 리나가 흠칫했다.
마찬가지로 고민하기를 얼마간.
리나도 카이사르처럼 자신 있게 대답했다.
“우산! 보통 모험가들은 걸친 옷도 두껍고 몸도 튼튼해서 비가 내리면 맞고 다니지만, 상류층 사람들은 고급스럽고 얇은 옷이나 병약한 몸이 젖는 걸 싫어서 우산을 든대!”
우산 주제에 출세했네.
그렇게 권위 있는 아이템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뭐, 그럼 결정 났네.
“우리 조직의 이름은 검은 우산. 흑산회(黑傘會)다.”
“음. 멋진 이름입니다.”
“와! 우리 의견을 반영해준 거야? 고마워, 보스!”
두 사람은 몹시 만족해하였다.
[흑산회(黑傘會)가 결성되었습니다.]
[조직관리창에서 관련정보를 확인하거나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조직 이름이 정해졌다면 다음은 행동방침이다.
솔직히 여태까지는 별 목적이 없었다.
미궁도시에서의 랭커특전을 활용해 강한 하수인을 만들었으니, 이놈의 힘으로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있는 그대로 그게 목적이라고 밝혀도 된다.
하지만 권위를 중시하는 카이사르는 내 발언에 실망할 게 뻔했던지라 그럴싸하게 포장할 필요가 있었다.
“흑산회의 방침은 미궁공략이다.”
“미궁 따위를 공략해봤자 득이 될 건 없지 않습니까? 강한 힘으로 남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건 지상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맞아! 냄새나고 구린데다가 길도 어려운걸! 사람을 죽여서 돈을 버는 건 지상에서도 잔뜩 벌 수 있잖아?”
이놈들의 목적이 뭔지 알아버렸다.
강한 힘으로 남을 지배하고 억압하거나 사람을 죽여서 돈을 벌고 싶었던 거냐.
누가 학살자와 암살자 콤비 아니랄까봐 참으로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었네.
“권력과 돈. 물론 중요한 것들이다. 허나 내가 추구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것들에 불과하다.”
난 그냥 미궁을 돌고 싶다. 애초에 게임 이름부터 미궁세계라고. 미궁을 도는 게 당연하잖아.
그것도 가급적이면 사람을 죽이거나 권력집단과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그러기 위해서는 그럴싸한 말로 설득할 필요가 있었다.
“미궁에는 강력한 몬스터들이 있다. 지상의 강자들 따위와는 격을 달리하는 진정한 강자들이지. 하찮은 것들을 지배하는 것보다는 그런 존재를 복종시키고 싶지 않은가?”
“보스의 말대로입니다. 지상의 인간들은 작고 연약하며 법과 도덕이라는 귀찮은 규제까지 따릅니다.”
“미궁에서라면 지상의 규칙은 통용되지 않는다. 오직 강자의 뜻만이 새로운 법이 된다. 상상할 수 있겠는가? 네 의지가 법이 되어 지하세계를 쥐어 잡는 미래를.”
카이사르의 두 눈에 강한 열망이 비추었다.
“사람을 죽여서 돈을 얻는다. 편리하고 간단한 일이지. 허나 암살대금이란 암살목표의 위험성에 비례하는 법. 지상의 인간이 아무리 위험해도 미궁의 강적들에 비할 수는 없다.”
“그건 맞아. 보스의 말대로 진짜 돈이 되는 건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 쪽이지.”
“지상의 모든 인간들이 두려워마지 않을 강력한 몬스터. 도시의 존속을 위험토록 할 강대한 위협. 상상할 수 있겠는가? 도시단위의 강적을 제거함으로써 얻을 암살비용을.”
리나의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 담겼다.
“보스의 말이 옳습니다. 미궁탐사는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동감이야. 얼른 강적들을 팍팍 암살하고 싶어!”
“하지만 그건 저희들의 목표일뿐입니다. 보스는 미궁을 공략해서 뭘 얻고 싶으십니까?”
카이사르의 질문은 제법 날카로웠다.
목표.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리하자면 이렇다.
우선 미궁세계답게 미궁 구경이라도 하면서 게임의 컨텐츠를 즐기고 싶다.
다음으로 편하게 버스 타면서 강적들도 쓰러뜨리며 다른 게이머들보다 앞서 나가는 우월감을 만끽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미치광이 살인광과 피 맛 들린 암살자가 지상에서 대형 사고를 치지 않게 힘을 빼두며 안락한 미래생활을 설계하고 싶다.
“미궁의 심층지대, 가장 깊은 절망마저도 정복하여 그 힘을 손에 넣는다.”
“!!”
“미궁을 손에 넣는다면, 그때야말로 나를 앞서나간 자들을 넘어서며 온 세상에 흑산회의 이름을, 이 빌헬름 마이어의 이름을 떨칠 시간이다.”
카이사르와 리나가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뭐지.
저런 넋 빠진 표정이나 짓고는.
“미궁도시의 지배자. 일국의 국왕. 그딴 자리는 전부 필요 없다. 최고가 되고자 한다면 미궁 그 자체를 손에 넣는다.”
이 정도의 변명이라면 어떻게든 납득해주겠지.
[빌헬름 마이어는 흑산회의 목표를 설정함과 동시에 자신의 숙원(宿願)을 결정지었습니다. 범인은 상상조차 불가능할 거대한 숙원에 부하들이 압도됩니다.]
[카이사르의 충성도가 10 상승합니다.]
[리나의 충성도가 10 상승합니다.]
[카이사르의 호감도가 10 상승합니다.]
[리나의 호감도가 10 상승합니다.]
[빌헬름 마이어의 선언을 레스토랑의 직원들과 폭력배 잔당들이 들었습니다. 이들에게 자유가 주어지면 흑산회의 설립과 목표에 대해 무수한 소문을 퍼뜨릴 것입니다.]
[카이사르의 악명이 50 상승합니다.]
[리나의 악명이 50 상승합니다.]
[빌헬름 마이어의 악명이 500 상승합니다.]
[악명이 일정 수치(500)를 돌파했습니다.]
[칭호 ‘악인’을 습득합니다.]
[당신이 행하는 모든 악한 행동에 긍정적인 보정과 추가혜택이 부여됩니다. 당신의 범죄가 처벌을 받을 시, 감수해야 하는 페널티도 그에 비례하여 커집니다.]
[조직원들의 악명 합계가 일정 수치(1000)를 돌파했습니다.]
[흑산회의 조직평판(악명)이 생성됩니다. 향후 조직원들이 조직의 이름을 대고 하는 활동은 모두 조직평판에 영향을 미칩니다.]
[조직평판이 일정 수치를 넘어설 때마다 암흑가에서의 입지와 권한이 상승합니다. 또한 양지의 권력집단에게서 경계와 습격을 받을 확률이 상승합니다.]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뭐야.
그냥 납득한 수준을 넘어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음. 그러니까...”
급하게 수습에 나서려는데 카이사르가 대뜸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으며 고개 숙여 예를 표했다.
언제나 카이사르를 바보 취급 하거나 놀리고 틱틱거리기만 하던 리나도 그와 마찬가지로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저, 카이사르는 보스의 포부에 마음 속 깊이 감명 받았습니다. 보스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이라도 무릅쓸 것을 맹세합니다.”
“보스는 역시 내가 생각하던 대로의 사람이었어. 지상에서의 시시한 항쟁 따위보다 훨씬 대단하잖아? 이런 사람을 따르지 않으면 평생 뒷골목에서 썩겠지. 나도 따르겠어.”
이 새끼들이 왜 갑자기 오바 하는 거야.
너희가 의욕이 넘치면 무섭다고.
이럴 때마다 100%의 확률로 사고 쳤단 말야.
“내 숙원은 너희의 그릇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언젠가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고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절망을 느낄 때가 올 것이다.”
“!!”
“너희의 앞길은 지옥으로 향하는 편도티켓이다. 한 번 들어간다면 염라대왕의 목을 따서라도 정점에 군림하지 않는 한 미래는 없다.”
미궁의 심층지대는 후퇴가 불가능하다.
한 번 진입하면 미궁을 클리어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밖에 없다.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미래.
나는 그 기억을 바탕으로 엄중하게 경고를 하였다.
“시간은 잔혹하다. 감정은 메마르고, 의지는 마모된다. 가혹한 세월의 흐름에는 거대한 산처럼 굳건한 영혼조차도 한 줌의 모래로 풍화된다.”
영웅의 반열에 접어든 수많은 게이머들의 캐릭터도, 한 시대의 최고수의 반열에 접어들거나 심지어는 절대강자라 불렸던 존재들마저도 심층지대의 클리어에는 실패했다.
나 또한 최고의 업적점수를 기록한 ‘로드리어스 엘드리고’의 캐릭터로 영웅급 하수인들로 이루어진 파티를 이끌고 심층지대에 도전했으나, 결과는 참혹한 죽음으로 끝났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너희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 정도는 알려주지 않으면 공평하지 않다.
한 시대를 풍미할 힘을 지니더라도 나는 이놈들을 데리고 언젠가 심층지대에 내려갈 테니까.
그렇기에 묻는다.
“기적을 일으킬 각오는 되었는가.”
카이사르와 리나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없습니다.”
“없어.”
……없는 거냐!? 아니, 없기를 바라고 한 말이지만.
솔직히 나라도 이 따위로 말하면 싫다고 말할 거지만.
너무 단호하게 대답해서 기분이 나빠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