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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23화 (2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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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23)

소매치기 소년은 우리를 보자마자 비명부터 질렀다.

“아아아, 으아아아아!”

리나는 떨떠름해하며 물었다.

“보스. 저 애랑은 대체 무슨 관계야?”

“카이사르가 팔을 자른 관계다.”

“그럼 그렇지.”

카이사르는 인상을 쓰며 첨언했다.

“저 소년은 소매치기다. 보스의 돈을 훔쳤지. 그런 건방진 짓을 저지르고도 살아있는 이유는 오직 보스에게 상납금을 지불하기 위해서이다.”

“뭐야, 그걸 먼저 말해줬어야지. 보스도 참.”

리나의 눈에 어린 미미한 동정심은 말끔히 가셨다.

뭐, 소매치기니까.

녀석의 인생사가 얼마나 불쌍한지는 관심 없다.

중요한 건 우리에게 해가 되느냐, 득이 되느냐다.

전에는 해가 돼서 팔을 잘랐다.

지금은 득이 되니까 수금도 하고 관리를 하는 거다.

“소년. 이름은?”

“없어요...”

“그럼 네 이름은 레이브다.”

리나가 호기심을 보였다.

“그거 무슨 특별한 뜻이라도 있어?”

“슬레이브의 줄임말이다.”

“굉장한 작명실력이네... 역시 보스는 대단해.”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지?

“저... 이게 제가 모은 돈이에요. 팔이 하나밖에 없어서 힘들게 일했어요. 제발 죽이지 말아주세요...”

[레이브가 상납금 300골드를 지불했다.]

3일간 300골드면 하루에 100골드씩 번건가.

기본자금이 1골드임을 감안하면 무려 300명을 턴 거네.

참 기가 막히는 녀석이다.

‘뭐, 대부분은 게이머가 아니라 NPC겠지만.’

모든 미궁도시들은 시작할 때마다 게이머와 같은 처지의 신입들을 대거 생성한다.

원활한 퀘스트와 변수창출을 위한 시스템이다.

일정주기마다 도시에 1골드의 초기자금을 지닌 모험가들을 대거 유입시키는데, 이는 국가차원에서 미궁도시의 모험가를 양성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지원 사업이다.

아니면 뭔 재주로 사람들이 형편 좋게 1골드를 딱 맞춰서 가지고 오겠어?

국책사업 쯤 되니까 가능한 일이지.

그런 배경과는 별개로 아무리 무능력한 애송이들이 돈을 들고 다닌다고 해도, 팔도 하나 없는 상태로 300명을 털고도 안 잡힌 이 녀석도 참 대단하다.

“너. 잘린 팔 갖고 있지?”

“네...”

“돈도 많이 있으니까 신전에 보관신청도 했겠네?”

흠칫 하고 놀라는 걸 보니 정답인가보다.

실제로는 300명보다 더 털었겠네.

뭐, 따로 빼돌린 돈까지는 관심 없다.

상납금이랍시고 지가 턴 돈의 대부분을 들고 오는 게 이상한 거지.

오히려 나는 다른 부분에 관심이 생겼다.

“리나. 레이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죽일 놈?”

“도적으로서 말이다.”

너무 단호하게 대답하잖아.

벌벌 떨고 있다고.

“꽤 소질 있지 않아? 소매치기의 재능으로 그칠지, 도적의 재능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키운다면 어디까지 성장할 것 같은가.”

“민첩함과 손재주, 이목숨기기와 빈틈노리기, 거리지식, 적대대상 감지. 대충 이 정도를 할 수 있을 테니까... 무기술과 함정해체, 미궁지식만 익히면 한계를 가늠 못하겠어.”

상급직인 리나가 판단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건 레이브의 최대 성장가능성이 최소한 지금의 리나와 동등함을 의미한다.

마침 내 파티에는 도적이 간절히 필요하던 참이었다.

언제까지고 이 소년을 소매치기나 하고 살도록 시킬 수도 없으니, 이건 서로에게 좋은 기회가 될 거다.

레이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 알 바냐?

선택권은 안 준다.

“레이브. 그 팔의 완치에 필요한 비용은 얼마냐.”

“10골드요...”

“치료하지 않고 참은 이유는?”

“저 아저씨가 다시 자를까봐... 무서워서요.”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지?”

카이사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감히 보스의 허락도 없이 팔을 도로 붙였으면 다시 잘랐을 겁니다.”

“의도한건지 아닌 건지는 모르겠지만 판단력도 나쁘지 않군. 이 녀석의 유일한 실수는 내 주머니를 털려고 들었다는 것 하나뿐이고.”

“보스. 저 건방진 애송이를 도적으로 키울 생각이라면 무모하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모험가 길드에서 도적 클래스의 모험가를 소개받는 게 어떻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된다.”

“어째서입니까?”

“너와 리나의 위험성을 감당할만한 도적은 모험가 길드에는 없다. 단기고용으로 매번 도적을 갈아 끼울 생각이 아니라면 착실하게 처음부터 육성하는 편이 경제적이다.”

카이사르는 내 표현이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다.

“동의합니다. 저 정도 되는 위험한 남자를 감당할만한 도적 따위는 없습니다. 저 풋내기도 그런 점에서 보자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군요.”

“아하하. 뭘 그리 기뻐하는 거야. 간만에 보스에게 칭찬받은 게 그렇게 기쁜 거야?”

“누가 기뻐했다는 거냐. 암살계집년.”

칭찬한 거 아니다.

“레이브. 팔을 붙이고 소매치기 직업은 그만 청산해라.”

“그, 그건...”

“유감이지만 네게 선택권은 없다.”

레이브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저, 저... 소매치기를 그만두면 돈을 벌 수 없어요.”

“돈을 벌어서 뭘 하려고 했지?”

“그냥.. 번듯한 집에서 굶지 않고 살고 싶었어요.”

그거 참 건실한 꿈이군.

저 나이에 내 집 마련의 꿈을 거의 실현직전까지 이뤄냈다는 사실은 사뭇 놀랍다.

내가 없었으면 분명 그 꿈을 이룰 수 있었겠지.

“그 소원. 이루어주지.”

“!!”

“단, 집을 사주는 건 미궁공략이 이루어진 다음이다.”

나는 레이브를 내려다보았다.

“남의 피땀 묻은 돈을 뜯는 것보단 보람찬 일이다. 네 힘으로 도적이 되어 직접 벌어들인 돈으로 사는 집. 그거야말로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훔치지 않고 버는 돈...”

“그걸 이루기 위한 기술을 알려주겠다. 범죄자가 아닌 한 사람의 어엿한 도적으로서 살아라.”

레이브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업도 주고, 기술도 주고, 돈도 벌게 해주고.

급기야 나중에는 성과급으로 집까지 사준다고 했다.

이건 감격 받아서 우는 게 당연하네.

나도 참 양심적인 보스가 아닌가 싶다.

[소매치기 레이브가 새로운 부하가 되었습니다.]

이걸로 조직정비는 마쳤다.

난잡했던 조직관리창도 한결 깔끔해졌다.

꼭 방청소를 끝낸 기분이 든다.

나는 한결 깔끔해진 조직관리창을 열람하였다.

[조직관리창]

<조직정보>

[조직명 : 흑산회(黑傘會)]

[조직평판 : 악명 10(아는 사람만 두려워하는 조직)]

[조직규모 : 초소형(4인)]

<조직 구성원>

[보스 : 빌헬름 마이어]

[주요 조직원 : 카이사르, 리나, 레이브]

[산하조직 : 뒤팽의 패거리]

[산하 조직원 : 뒤팽 외 7인]

<보유자산>

[보호세 : 월 1골드(왕돈까스 레스토랑)]

[공용자금 : 300골드]

아직은 개방되지 않은 기능이 많아서 꽤 얄팍하다. 내가 아는 기능만 해도 <아지트>, <조직스킬>, <조직특성>, <조직칭호> 따위가 있다.

조직의 힘이 본격적으로 조직원에게 보탬이 되는 수준이 되려면 아직은 한참 먼 것 같다.

일단 공용자금은 조직을 위해 사용하는 자금으로, 레이브에게 수금한 300골드를 고스란히 채워 넣었다.

‘간만에 내 상태창도 확인해볼까.’

재확인을 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간 일어난 일도 그에 못지않게 많았다.

특히나 첫날부터 골드 수입은 유독 많았다.

스킬습득이나 조직결성, 장비변화 등의 세세한 변화도 한 번쯤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캐릭터 시트지]

<신상정보>

[이름 : 빌헬름 마이어][직업 : 보스][레벨 : 2(47%)]

[성별 : 남성][연령 : 20세][신장 : 170cm][체중 : 60kg]

[소속 : 흑산회 보스][신분 : 평민]

[개인평판]

-명성 35(부하를 위하는 의로운 보스)

-악명 554(가까이해서는 안 될 위험인물)

<건강상태>

[HP : 100/100][MP : 100/100][SP : 77/100]

<기본 능력치>

[근력 10][체질 10][민첩 10][통찰 10]

[지능 10][내성 10][매력 10]

<확장 능력치>

[카리스마 5]

<보유스킬(스킬 포인트 1)>

[직업스킬] [보스의 기백]

[공통스킬] [흥정] [회계]

<보유특성>

<보유칭호>

[악인]

<장비>

[무기] 매서운 브로드 소드(+3)

[방어구] 기능성 천 옷 세트

[허리] 다용도 벨트(아공간주머니, 튼튼한 금화주머니)

<보유자산>

-1152골드 13실버 5쿠퍼(튼튼한 금화주머니)

-모험가 신분증(상의), 범죄길드 은배지(상의)

초라했던 과거와는 이미 안녕이다.

두툼한 상태창을 보라.

이미 3일차 게이머라고는 믿기지 않을 수준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보유자산이다.

1152골드 13실버 5쿠퍼.

한화로 환산하자면 11억 5213만 500원이다.

정직하게 미궁 노가다를 돌아봤자 한 번에 벌었던 수입은 1실버가 조금 넘었다.

한화 기준으로는 고작 1만원이다.

경험이 쌓이면 미궁탐사로 버는 돈은 점점 늘어나겠지만 당장은 불로소득에 가까운 소득이 훨씬 더 많았다.

‘말이 좋아 불로소득이지.’

거의 다 카이사르가 깽판을 치면서 만든 돈이다.

현찰로 바꿔도 좋을 거금.

팔려고 하면 살 게이머들이야 널려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만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게임은 이제 막 시작했다.

귀한 초기자본이 천 배를 넘게 늘어났다고.

이걸 내다 팔아서 얻는 이익이 절박하게 필요하지도 않다.

그럼 게임에서 다 써먹어야지.

마침 조직관리창에서는 아지트가 없는 게 아쉬웠었지.

길드가 길드본부라는 전용건물을 지니고 있듯이 조직도 아지트라는 전용건물을 지니고 있다. 아지트가 있어서 생기는 손해는 적고, 없어서 생기는 아쉬움은 많다.

그럼 지금 해야 할 일은 뭐다?

부동산을 찾아가서 아지트로 쓸 건물을 찾는 거다.

“어서오세...요.”

부동산이라고는 해도 문자 그대로의 부동산은 아니다.

미궁도시 브람의 시청이다.

브람시장은 땅의 권리를 중계업체가 판매하도록 허가하지 않고, 시청을 거쳐야 한다고 못박아두었다.

시장은 브람 내에서는 왕처럼 군림할 수 있는 자.

다른 도시라면 모를까, 적어도 브람에서는 시장의 뜻을 따라서 시청에서만 정식으로 땅을 매매할 수 있다.

“저기,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걱정마라. 우리는 땅과 건물을 사러 왔다.”

“순순히 매물을 내놓으면 목숨을 해치지는 않겠다.”

꼭 카이사르 녀석은 한 마디가 많다니깐.

창백하게 질린 시청직원이 경비병을 부르려는 걸 겨우 말릴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카이사르는 입 닥쳐 상태가 되었고.

“어떤 건물 부지를 찾으시나요?”

“넓고 쾌적한 환경.”

“구체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넓이를 희망하시나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부속건물을 열 개쯤 올려도 될 만한 규모의 부지.”

“저... 실례지만 돈은 있으세요?”

“적지는 않다고 해두지.”

절그럭.

묵직한 주머니를 들어보였다.

그제야 시청직원이 접대용 미소를 지었다.

“좋은 매물을 많이 보실 수 있겠네요.”

매물은 많았고, 소개받은 모든 매물이 마음에 들었다.

상류층이 선호하는 북쪽지구에는 세련되고 치안이 안정된 곳에서 조금 아쉬운 규모의 1000골드짜리 매물이 있다.

허름한 동쪽지구에서는 엄청나게 넓은 땅에 수많은 건물을 떨이처럼 구매할 수 있는 500골드짜리 매물이 있다.

일반인이 거주하는 서쪽지구에는 적당한 치안이 보장된 곳에 적당한 규모의 750골드짜리 매물이 있다.

중앙과 남쪽에는 매물이 없었다.

중앙지구는 미궁과 관련된 시설이나 상점, 공방 따위가 대거 들어섰다.

도저히 넓은 규모의 매물은 찾을 수 없고, 만일 존재하더라도 그 가격은 천 골드로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보스. 그거 굳이 돈 주고 사야 돼?”

한참 고민하고 있자니 리나가 불쑥 질문을 건넸다.

“음?”

“땅과 건물을 시청에서 사는 건 브람 시의 시장이 정한 영지법 때문이잖아?”

“그렇지.”

“그럼 시장을 암살하면 땅주인들을 협박하거나 암살해서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거 아니야?”

“…….”

귀여운 생김새랑 다르게 일단은 이 녀석도 암살자였지.

참으로 얼간이같은 발상이다.

문제는 그걸 진짜로 실행할 저력이 있다는 거지.

“리나.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오. 뭐야, 뭐야?”

“입 닥쳐.”

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 없이 경악했다.

설마 카이사르와 같은 취급을 받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걸 지켜보는 시청직원의 심사는 꽤나 복잡해보였다.

“걱정 마라. 성주가 암살당할 일은 없을 거다.”

“아, 네...”

반응이 떨떠름한 게 영 섬뜩하다.

나중에 성주가 밥 먹다가 체해서 죽어도 리나가 암살한 거 아니냐고 의혹 받지 않을까.

충분히 설득력이 넘친다는 사실이 정말로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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