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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25화 (2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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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25)

“너에게 맡기겠다.”

나는 카이사르를 선택했다.

“말도 안 돼! 이거 완벽한 암살찬스라고 생각하는데! 보스, 정말로 저 바보한테 강적담당을 시킬 거야? 절대로 사고 쳐버린다고!”

“훗. 네년이 못미더웠기에 보스는 내게 일을 맡기신 거다. 계집 주제에 기어오르지 마라.”

이놈들은 개와 고양이인가.

정말로 시도 때도 없이 싸워대네.

“그리 열 내지 마라. 토마는 폐쇄생활에 익숙해졌고 병약하다. 허나 그 원인은 미궁공포증에 있다. 이게 있는 한, 암살을 위해 내부로 널 침투시킬 수는 없다.”

“보스. 미궁공포증이 뭔데?”

“B7층까지 진출할 정도의 동료들을 단번에 잃어버릴만한 사태는 돌발사태밖에 없지. 갑작스레 닥치는 치명적인 위험. 이런 위험에 대해 비정상적인 공포를 느끼는 거다.”

“잘 모르겠어.”

“미궁도시 동쪽지구에 있는 자신의 집에 느닷없이 무장한 오크전사 수십 마리가 들이닥치는 사태를 언제나 대비하고 있는 정신병이다.”

리나는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그건 좀 곤란하네. 암살가능성이 너무 낮아지겠어.”

“그런 점에서 이번 강적담당은 카이사르가 적임이다.”

“납득했어. 보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쓸데없는 내부분열로 시간 끌릴 걱정은 사라졌다.

“가라, 카이사르.”

“제 방식대로 처리해도 됩니까?”

“그래.”

카이사르는 간만에 띠꺼운 썩소를 지으며 걸어 나갔다.

콰지직!

울타리를 걷어차고 들어가는 그에게 나는 말했다.

“부순 건 나중에 니가 고쳐라.”

“...알겠습니다.”

카이사르는 조심조심 잔디를 밟고 정문까지 접근했다.

그리고는 쾅, 정문을 걷어차 열었다.

조심조심 걸어간 건 대체 뭘 위해서였냐!?

“토마!! 네놈의 목을 칠 저승사자가 왔다!!”

게다가 완전 크게 소리치고 있어.

만취 상태여도 정신이 번뜩 들 만한 성량이다.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저택 안에서 괴성이 들렸다.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미궁이여, 마침내 날 죽일 추적자를 보냈구나!”

다음 순간, 나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근접전에서는 종말의 사제 루블릭과도 교전이 성립되었던 카이사르가 볼썽사납게 튕겨 나오는 광경이었다.

콰가가가각!

어찌나 강렬한 힘에 밀렸는지 바닥을 구르며 두 발로 지면을 쓸다시피 밀려나간 길이가 4m를 넘었다.

[돌발 이벤트! 폭주하는 전사!]

[미궁공포증에 의해 극도의 공포에 시달려온 토마. 그는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강적 카이사르의 존재를 인지한 순간, 미궁이 자신을 제거하고자 보낸 암살자라 판단했습니다.]

[토마는 카이사르를 죽임으로써 그를 피폐하게 만드는 미궁공포증을 벗어날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는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엄청난 전투력을 발휘합니다.]

[체력이 부족하다면 정신력을, 정신력이 부족하다면 생명력을 써서라도 교전에 돌입하는 토마. 그가 모든 생명력을 소진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버텨내십시오.]

맙소사.

흉흉하기 그지없는 이벤트 문구는 애초부터 승리가능성이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생존에 전념하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시스템의 분석 실패라고 여겼지만 카이사르를 뒤쫓아 나온 토마를 보자마자 확신했다.

시스템은 옳았다.

토마는 한 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비정상적으로 팽창한 전신근육과 팽팽하게 솟구친 혈관, 새빨갛게 충혈 된 눈동자까지.

마치 몬스터와 같은 몰골을 한 체구 1m 90cm에 육박하는 거인이 무기 대신 웬 기둥을 하나 들고 있다.

“크아아아아!!”

토마가 기둥을 휘두르자 풍압을 견디지 못한 정원의 잔디가 일제히 짓눌렸다.

또렷이 번져나가는 힘의 잔재를 보며 나는 확신했다.

지금의 토마는 근력20의 괴력을 지닌 카이사르를 능가하는 근력 25가량의 대형몬스터 수준이라고.

“리나. 가세할 수 있겠나?”

“보스!”

내 말을 들은 카이사르가 흉흉하게 안광을 번뜩였다.

“이 녀석은 제 상대입니다. 양보는 할 수 없습니다.”

“자신 있는가?”

“이 정도로 피가 끓어오르는 상대는 처음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확신합니다. 이 녀석을 해치우면 저는 한층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카이사르의 사나운 외침에 힘입어 시스템 알림이 떴다.

[분기점 발생!]

[카이사르는 토마와의 일기토를 희망합니다. 만일 일기토가 성립할 경우, 카이사르는 단신으로 대형몬스터 급의 거력을 지닌 토마와 결전을 치러야만 합니다.]

[만일 일기토의 끝에 살아남을 경우, 카이사르의 거력 급에 달한 근력이 한층 더 상승합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시스템 문구는 ‘살아남을 경우’만을 언급하고 있다.

이길 가능성 따윈 한없이 희박하다는 증거다.

승리가 아닌 생존만이 유일한 희망인 전투.

극한의 난이도를 지닌 사투.

그야말로 강적 그 자체인 토마를 상대로 카이사르는 희열을 드러내었다.

리나는 들을 가치도 없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보스! 이대로는 저 멍청이가 틀림없이 살해당해!”

“죽지 않을 수도 있다.”

“아직도 모르겠어? 저 놈은 피할 생각 따윈 조금도 없어! 전사로서의 모든 잠력을 폭발시키는 괴물을 상대로 정면에서 전력으로 맞부딪히려고 하고 있다고!”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리나의 판단을 따라 그녀를 가세하게 한다면 카이사르는 살아남을 수 있다.

대신 카이사르의 호감도와 충성도는 급격히 하락하고 무려 20에 도달한 근력의 성장기회까지 사라진다. 그러나 저울에 올려야 할 건 이런 이득 따위가 아니다.

‘믿을 수 있는가. 믿을 수 없는가.’

단지 그것만이 전부인 상황이다.

치열하게 고민할 여유는 없다. 미궁세계는 1만 명의 게이머들과 함께 하는 게임. 선택지가 나온다고 세계의 흐름이 멈춰주는 일 따위는 없다.

엄청난 속도로 줄어드는 타임게이지(Time Guage)를 앞두고 나는 게이머의 본능만으로 판단을 내렸다.

“카이사르. 이 전투는 너만의 것이다.”

“보스!”

“싸워라. 그리고 이겨라.”

말도 안 된다며 경악하는 리나와 달리, 카이사르는 거칠게 이를 드러내며 흉소를 지었다.

“보스의 뜻대로.”

토마의 공격을 흘리며 물러나던 카이사르가 전신의 균형을 전면으로 고쳤다.

묵직하게 날아오는 기둥을 피해 품으로 파고든 주먹이 토마의 복부를 강타하였다.

빠아악!

둔중한 타격음에도 아랑곳 않고 토마는 기둥을 휘둘렀다.

부우웅! 쾅!

기둥은 바닥을 찍고 산산조각 났다.

비산하는 파편.

자욱한 먼지 너머로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꽉 잡았다.

무지막지한 악력이 서로를 짓뭉개고자 가해졌다.

꽈드득!

꽈드드드득!

근섬유가 뻑뻑하게 비명을 지르며 서로의 손아귀가 악착같이 상대를 몰아붙였다.

밀리기 시작하는 건 카이사르였다.

아무리 그가 괴력을 지녔다고 해도 토마의 괴력은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근력대결이라면 반드시 질 수밖에 없다.’

시스템도 그렇게 판단했고, 나 역시 이에 동의했다.

실제로도 카이사르는 빠르게 밀리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카이사르의 승산이 있음을 확신했다.

내게는 통찰력이 있다.

통찰이 없는 자는 알 수 없는 것을 깨닫고, 볼 수 없는 것을 직시한다.

나는 시스템 알림에 드러나지 않은 교묘한 진실을 간파하였다.

카이사르는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빠듯하다.

그가 힘 대결만을 추구한다면 말이다.

카이사르가 힘에 전념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건 리나의 추측뿐이었지.’

분명 시스템 알림은 그 상황을 이용해서 판단력을 흐릴만한 표현을 사용한 거다.

부하를 향한 신뢰를 흩트리고자 교묘한 함정을 팠다.

그러나 내 믿음과 냉정, 통찰력은 이 정도로 간단히 무너지지는 않는다.

“토마아아아! 들리지 않는가! 네놈의 동료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무, 무슨 소리를!”

“너는 도망쳤구나! 네 동료들을 버린 채 홀로! 한 번 전사이기를 포기한 네놈이 죽을 때가 되어서야 전사로서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그런 게 가능할거라 생각하느냐!!”

정보수집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

카이사르는 그것을 활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것은 정정당당한 대결 따위가 아니다.

전투다. 생사투다. 목숨을 건 일기토다.

검이란 손에 들린 것이 전부가 아니다. 마음속의 검을 오롯이 겨누어 상대의 마음을 박살내는 것 또한 엄연한 진검승부에 해당한다.

전사의 신념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설령 상대의 신념을 뒤흔드는 행위일지라도!

“너는 이미 실패했다. 전사의 위치는 동료들의 앞이다! 너는 누구보다도 먼저 죽었어야만 했다!!”

“아니야!!”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수치스러운 겁쟁이 따위가 전사를 논하지 마라! 네놈의 안에 남은 전사의 혼은 먼 옛날에 빛을 바랬다! 잿더미 주제에 전사의 흉내를 내지 말란 말이다!!”

주르륵.

토마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비대화한 근육 위로 혈관이 터졌다.

압도적인 공포에 저항하기 위해 발휘하는 초인적인 괴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공포에 맞서는 전사가 아니다.

겁에 질려 시련에 맞서기를 포기하고 달아나던 7년 전의 겁쟁이가 되었다.

“똑똑히 보아라! 네 앞에 선 나를! 네가 포기한 시련을! 네놈이 스스로 외면한 전사의 혼을!”

“검은 괴물! 안 돼, 이럴 순 없어!”

“그렇다! 내가 바로 괴물. 네놈의 마지막 남은 전사의 혼, 비참한 최후의 자존심마저 집어삼킬 절망이다!!”

언제부터인가 팽팽하게 대치하던 힘의 균형이 카이사르에게 기울기 시작했다.

거력과 맞서며 삐걱거리는 몸으로 피를 흘려내면서도 카이사르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주 조금씩, 이윽고 서서히, 나아가 확고하게 균형이 기울어졌다.

토마는 끊임없이 절규하며 피를 터트리고, 팽창한 근육이 줄어들며, 쥐어짜낸 생명력의 영향으로 쇠약해졌다.

그에 비례하여 카이사르는 점점 더 뚜렷한 살광을 번뜩이며 경이로운 투지를 발산하였다.

마치 토마의 생명력을 산 채로 흡수하여 강해지는 것만 같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모습이었다.

“마, 말도 안 돼.”

급기야 곁에서 지켜보던 리나는 전율에 사로잡혔다.

카이사르는 토마를 집어삼키는 것처럼 짓뭉갰다.

한없이 커다란 거인처럼 여겨지던 그가 점차 작아졌다.

자긍심을 잃은 토마는 그저 겁에 질린 패배자일 뿐.

그는 오래도록 외면해왔던 자신의 운명과 마주했다.

전사는 죽었다.

그는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은 전사가 아닌 몽상가임을.

“아아아으아아..”

순식간에 미라처럼 쪼그라든 토마.

카이사르는 말라붙은 두 팔을 짓뭉개며 쇠약한 몸을 들어올렸다.

초라한 토마의 몸을 전력을 다해 지면에 내리쳤다.

파가각!

토마는 뼈와 살점이 모두 박살나며 처참하게 짓뭉개졌다.

그 최후를 보며 누가 떠올릴 수나 있겠는가.

그가 한때나마 카이사르를 압도하던 거력의 소유자였음을.

[카이사르가 토마를 산산이 분쇄시켰습니다!]

[카이사르의 근력이 1 상승합니다.]

[카이사르가 확장능력치 투지를 습득합니다.]

카이사르는 토마의 자긍심을 근본부터 부정하며 짓밟아 붕괴시켰다.

오래도록 외면해온 공포와 마주한 순간, 토마는 모든 체력과 정신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체력과 정신력이라는 자원을 잃어버린 토마에게 남은 힘은 생명력뿐이었고, 카이사르는 자신의 거력으로 토마의 생명력을 소진시켜 상대를 볼품없는 미라로 만들어 분쇄한 것이다.

‘그야말로 학살자 그 자체로군.’

맞서 싸울 용기조차 없는 자는 한 순간에 살해당한다.

죽을 자리를 놓친 패배자 따윈 적수가 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카이사르는 거력에 맞서고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아아아아!!”

끓어오르는 투지, 승리의 기쁨이 포효로 이어졌다.

마치 거대한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포효였다.

시스템의 현혹 따위에 흔들리지 않고 승리를 확신한 이유.

그런 게 달리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폭참 카운트 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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