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6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 =========================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1)
[카이사르의 충성심이 5 상승합니다.]
카이사르는 대량의 출혈을 일으키고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내 앞에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보스라면 알아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소리는 하지 마라.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빌헬름 마이어. 흑산회의 보스. 카이사르의 검에 수호 받을 자격을 지닌 자!”
뭐, 큰소리 친 거랑 별개로 알 리가 없지. 카이사르가 투지만으로 저 괴물을 집어삼켜버릴 줄 낸들 어찌 알았겠는가.
커뮤니티에 전투로그를 올리면 백이면 백 이게 무슨 반전드라마냐며 소름이 돋아할 거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확신하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나의 모든 것을 건 최고의 역작.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최후의 보루.
고작해야 B7층에서 무너진 전사 따위에게 굴복할 스펙이 아니었다.
폭주란 영혼을 불사르며 기백을 드러내는 행위.
혼신의 힘을 다하는 최후의 저항이다.
그렇다면 내게는 아주 간단한 산술적인 문제였다.
B7층의 시련에 꺾인 전사의 모든 힘을, 토마의 혼신을 불살라 도달한 거력의 괴물.
심층지대의 시련에 꺾인 나의 모든 CP를, 로드리어스 엘드리고의 혼신을 불살라 빚어낸 카이사르.
그 둘이 붙는다면 승자는 카이사르인 게 당연했다.
[빌헬름 마이어의 통찰이 5 상승합니다.]
[직업스킬 보스의 기백의 숙련도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보스의 기백의 숙련도가 하급 숙련이 되었습니다.]
전투는 승리했다.
이제는 전리품을 쟁취할 차례였다.
“보스. 이거 보여?”
“쇠꼬챙이 아닌가.”
“독 묻었어. 이런 게 저택 사방에 설치되어 있는데.”
“…….”
“아하하. 이거 사람 살기는 글렀네.”
그리고 우리는 깨달았다.
미궁공포증 환자가 7년간 틀어박힌 소굴이다.
사방이 살인트랩으로 가득했다.
의뢰를 완수하고 넓은 땅덩어리를 손에 넣은 건 좋다.
다만 가장 중요한 저택을 써먹을 수가 없었다.
* * *
클레드는 충격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부숴버리면 되잖아요.”
“정말로?”
“안될 거 뭐 있겠어요? 어차피 관리도 못하는 저택인데.”
듣고 보니 정말로 그렇다.
나는 클레드의 과감한 해결책에 적잖이 감탄했다.
역시 이 여자는 시청에 어울리지 않는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흑산회에 영입하고 싶다.
물론 진짜로 영입하면 곤란하다.
나중이라면 모를까 현 시점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흑산회는 이제 막 설립된 조직.
내실을 굳건하게 다지고 기틀을 잡아 세울 때다.
아직은 클레드 같은 인재를 수용할 틀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클레드의 의뢰를 완벽하게 완료했습니다.]
[클레드의 호감도가 10 상승합니다.]
[추가보상으로 ‘마음의 빚’ 지급됩니다.]
[마음의 빚 : 클레드는 자신이 빚을 졌다고 생각한 정도만큼은 흑산회의 뒤를 봐줄 것입니다.]
[정보판정 통찰체크]
[목표 값 12 < 현재 값 10]
[통찰체크 실패]
[강행판정 간파체크]
[목표 값 5 = 현재 값 5]
[추가분석 정보가 제한적으로 제공됩니다.]
[마음의 빚을 과신하여 선을 넘어서는 안 됩니다. 클레드는 마음만 먹으면 흑산회마저도 자신의 공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높은 야심을 지닌 인물입니다.]
[무리한 요구로 클레드가 자신의 일상이 흔들리거나 위협을 받는다고 인지할 경우, 그녀는 이제까지의 호감을 전량 상실하고 적대적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클레드의 출세를 추구하는 성향과 빚을 갚고자 하는 정직한 성품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내십시오.]
시스템의 충고는 나름 고마운 것이기는 한데.
이거 이미 알고 있었다.
요구 능력치 값이 저조한 정보라서 그런지 완전 쓸모없네.
‘이거 카이사르보다 쓸모없는 거 아니야?’
시스템에 인격이 달려있으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궁금하기는 해도 실없는 상상이다.
바쁜 몸인 내가 망상이나 하며 히죽거릴 여유는 없다.
“괜찮은 인력 좀 소개받을 수 있을까.”
“건축가?”
“이해력이 높아서 좋군.”
클레드는 기꺼이 신용할 수 있는 건축가를 소개시켜줬다.
그가 짓는 집은 튼튼하다.
고객이 원한다면 복잡한 설계도 만들어낼 수 있다.
“원하시는 저택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철거는 안합니다.”
“주머니가 넉넉해지면 어떨 것 같은가.”
“독 꼬챙이 같은 살인트랩이 즐비한 저택을 철거하라고요? 얼마를 주신다고 해도 의뢰를 포기할 겁니다. 죽으면 돈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합리적인 이유였다. 나는 그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죽기 싫어서 돈 덜 벌겠다는데 뭘 어째.
우리가 알아서 철거해야지.
“철거는 우리가 하게 되었다.”
“보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산하조직 아니야?”
리나는 잽싸게 골치 아픈 짐을 뒤팽 패거리에게 떠넘겼다.
듣고 보니 그 편이 낫다고 여겨졌다.
고급인력인 카이사르나 리나가 중독이라도 되면 곤란하다.
반면 뒤팽 패거리는 버림패나 다름없다.
귀찮고 성가신 일이 생기면 곧장 써줘도 무방하다.
스스로 직업을 구할 능력도 없는 녀석들인지라 값싼 노동비를 지불하고 편리하게 부려먹을 수 있었다.
[철거가 완료되었습니다.]
건물이 무너진 다음은 건축가의 차례였다.
“특별옵션으로 전용설계를 희망하는데.”
“가능합니다. 중요한 건 돈이지만요.”
“그거 다행이군. 남는 게 돈이라서.”
이전 게임의 기억을 토대로 설계주문을 시작했다.
현실의 건물처럼 입맛대로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아지트 건물은 길드원 전체에게 건물특성과 아지트 내에서의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혜택을 제공하는 기능을 유도할 수는 없다.
그런 건 재료비부터 입이 쩍 벌어진다.
대신 동급대비 고효율의 기능을 유도하는 건 가능하다.
[고속회복] [유대강화] [평정부여]
유도하는 기능은 이 세가지로도 차고도 넘쳤다.
보통의 아지트는 최하급 기능인 [휴식] 하나밖에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건강상태가 회복되는 수치를 미세폭 증가시켜주는 기능이다.
허나 고속회복은 다르다.
소모된 건강상태를 빠르게 수복시키며 심지어는 작은 부상마저 자연적으로 치료시킨다.
유대강화는 NPC들 간의 상호 호감도를 상승시킨다.
내부의 결속력을 강화시켜주는 기능이다.
평정부여는 미궁이나 도시에서 입은 정신적인 피해나 상태이상 등으로부터 정신을 지켜주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트라우마 급의 강력한 상태이상도 충분한 시간만 들이면 자연치유가 가능하지.’
자연히 미궁에서 보다 격렬한 전투를 벌여도 뒷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 육체적, 정신적인 치유가 모두 자연적으로 가능하니 치료비가 수익보다 많이 나올 일도 없다.
땅. 땅.
건축 작업이 완공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일주일.
일단은 가상현실게임이니만큼 현실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다.
허나 본래는 나처럼 아지트를 처음부터 지으면, 심지어 설계주문까지 했으면 시간소요가 한 달은 훌쩍 넘는다.
기간을 단축한 비결?
별 거 아니다.
골드 좀 더 내서 고속건축 기능을 사용했다.
‘그래도 일주일간은 일정이 비는데.’
카이사르는 좀이 쑤시는지 바위를 들거나, 내던지거나, 그런 괴력으로 지나가는 폭력배들을 쥐어 패며 다니고 있다.
그러면서 내 이름을 팔고 다니기라도 하는지 아무것도 안하는데도 악명이 마구 오른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마냥 말리기도 뭣했다.
‘악명이 오르면 이득도 생기니까.’
뒷세계에서 악명은 곧 실력보증과도 같다.
악명이 일정수치 이하면 상대도 안하는 암상인도 있고, 퀘스트를 줘야 할 NPC가 개무시를 하거나 먹잇감 취급하며 덤벼들기도 한다.
악명이 높으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고, 강한 놈들이 괜히 찝쩍대거나 경비대의 주목을 받는 것만 제외하면 성가신 일도 별로 없다.
‘덕분에 악명작업은 안 해도 되겠어.’
뒷세계에서는 악명이 필요하기에 싫어도 범죄를 저지르는 속칭 악명작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범죄에 거리낌이 없고 오히려 그걸 즐기기까지 하는 게이머들이라면 악명작업도 초기에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필요로 하는 악명수치가 높아지고 요구되는 범죄강도가 높아지면 아무리 범죄를 즐기는 게이머라도 당황한다.
생각해보라.
미궁이나 탐험하려고 게임 켰는데 대뜸 눈에 띄는 가게에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돈을 강탈하고 경비대에 불을 질러야 된다.
이쯤 되면 미궁게임이 아니라 판타지 버전 GTA다.
다른 게이머들은 고생고생하며 범죄를 저지르겠지만 다행히도 나는 그럴 걱정이 없다.
싸이코 기질 하나는 제대로 타고난 카이사르가 날마다 악명수치를 최소 30씩 상승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른데.”
어찌나 사고를 쳐대는지 악명 오르는 속도가 가파르다.
지나치게 높은 악명수치는 해가 된다.
강적들이 관심을 지니는 시기가 앞당겨지고 지금의 흑산회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닥칠수도 있다.
‘그건 곤란해.’
그렇다고 아무 핑계나 대면서 카이사르의 목에 목줄을 채워버릴 수는 없다.
이 녀석은 싸이코다.
밖으로 돌아다니며 깽판치지 않으면 엄청난 속도로 충성도가 감소하면서 나한테 깽판치려고 들 수도 있다.
그럼 해결책은 간단했다.
내가 아닌 다른 놈들한테 깽판을 치면 된다.
동시에 악명도 안 오를만한 놈들한테.
폭력배들도 쥐어 패는 녀석이니 어중강한 놈들은 안 된다.
마침 나는 적절한 컨텐츠를 한 가지 알고 있다.
바로 도장이다.
게이머나 NPC, 하수인들의 실력이 부족할 때.
미궁에 가서 밑도 끝도 없이 부딪히고 보는 것도 방법이지만 좀 더 영리한 공략방법도 있다.
바로 미궁도시에서 기존의 실력자들에게 훈련을 받는 것이다.
도장은 초짜들에게 무기술과 생존술 따위를 알려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일종의 훈련장이다.
물론 기초적인 수준(허수아비 때리기)은 신입훈련장에서 따로 받고 도장을 찾아가는 게 순서다.
그렇다고 카이사르 씩이나 되는 녀석이 훈련장에서 허수아비를 두들겨 패고 있는 건 너무 이상하잖아.
고로 도장부터 찾아간다.
“도장깨기입니까?”
음... 달라.
비슷하지만 달라.
“가볍게 땀이나 빼고 오라는 거다.”
악명 좀 그만 쳐올리고 느긋하게 쉬라고.
휴가라도 줄까 했지만 그 동안에도 착실하게 악명을 올리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
넌 그냥 할 일 없으면 앞으로는 계속 도장만 보낼 거다.
“앗, 보스! 리나도 갈래, 리나도!”
“상관없다.”
한 번쯤은 좋은 경험이 되겠지.
도장에서는 적절한 훈련만 거치면 일정 확률로 능력치가 상승할 확률이 증가한다.
카이사르와 달리 리나는 내가 제작한 하수인이 아니라서 능력치를 볼 수 없지만, 대충 모습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저런 어리고 가냘픈 체구라면 근력과 체질 좀 올려야 된다.
“...아니. 관두자. 넌 도장에 가면 안 된다.”
“에엑! 어째서!”
예전에는 툭 하면 각혈을 해대는 병약한 미소녀가 있어서 열심히 근력운동을 시킨 경험이 있었다.
그 아이는 정말로 열심히 훈련을 했고 1년 만에 몰라보도록 건강해졌다.
40kg에서 근육만 40kg을 더 붙였거든.
겁나 무서웠다.
병약 속성은 사라졌지만 미소녀라고 불릴만한 외모는 완전히 사라졌으니까.
그런 끔찍한 일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다.
“너는... 그냥 이대로만 자라다오.”
“응? 잘은 모르겠지만 알았어. 보스는 리나가 좋은 거지?”
리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슬쩍 턱을 치켜들었다.
이런 귀여운 애교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나는 기꺼이 리나의 턱 아래를 어루만져주었다.
“...또 이거야?”
리나가 최고로 좋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감각으로라면 말이다.
============================ 작품 후기 ============================
잠깐! 넘어가기 전에 추천을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