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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29화 (29/224)

00029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 =========================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4)

카이사르의 동귀어진 전수는 실로 무시무시하게 진행됐다.

“와라!”

가토는 두 눈에 살기를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매서운 일격이 목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카이사르는 몸을 틀어 그대로 가토의 복부를 후려쳤다.

쿵!

전차에 치인 것처럼 들썩거리는 가토. 신물이 왈칵 솟구치려는 걸 참아내며 가토의 손이 카이사르의 턱을 후려쳤다.

빠악!

뇌진탕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강한 타격이다.

카이사르가 전투의 천재 특성을 지니지 않았다면 말이다.

“조금은 매서워졌군.”

“이익...!”

“허나 아직 멀었다. 네놈의 주먹은 너무나도 가볍다!”

교묘하게 비튼 두 손이 단숨에 가토의 팔을 휘어감아 봉쇄하고, 잇달아 가토의 목젖을 찔러 무력화시켰다.

“컥, 컥!”

“말했을 텐데. 일격필살을 노리는 동귀어진에 두 번의 기회는 없다고!”

가토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목을 부여잡았다.

“제길. 당신이 괴물 같은 겁니다. 턱을 후려쳐서 뇌를 흔드는 공격을 이상한 움직임으로 전부 흘려 내다니. 그냥 그걸 가르쳐주면 안 됩니까?”

“안 된다. 네놈의 미천한 재능으로는 8년이 지나야 간신히 습득할 수 있다.”

“...묘하게 구체적인 기간이라 더 마음에 안 드네.”

투덜거리면서도 가토는 순순히 자세를 고쳐 잡았다.

“보스! 저 약골 보기보다 끈기는 있네. 그치?”

“그렇군. 제법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헤. 보스는 노력가가 좋은 거야?”

“아니. 좋은 건 재능 있는 놈들이다. 저건 재능이 부족해.”

“...가토가 들으면 울지 않을까.”

사내자식이 울던 말던 내 알 바냐.

정말로 조금도 관심 없다.

카이사르가 운다면 그건 관심이 마구 폭발할 것 같지만.

“어때? 보스가 보기에는. 가토라는 남자. 가망은 있어?”

“그건 적의 수준을 확인하면 알 수 있겠지.”

“역시 보스는 대단해! 겉멋을 재면서 그럴싸하게 말하지 않고 치밀하게 적의 전력을 분석하다니. 너무 멋져!”

가끔씩 드는 생각인데 리나는 그냥 날 놀리고 있는 거 아닐까.

뭐만 하면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네. 뭐, 기분은 좋지만.

남자는 원래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상사의 인정, 동료의 인정, 친구의 인정, 가족의 인정, 수많은 인정을 받을 때마다 벅차오르는 감각이 좋은 거잖아.

“알았어! 그럼 잠깐 청학무관에 잠입하고 올게!”

“뭐? 잠깐,”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담을 타고 넘어가 사라졌다.

이거 괜찮은 건가.

카이사르 못지않게 리나도 은근한 똘기가 있는데.

점점 불안해진다.

제발 사고만 치지 않으면 좋겠다.

* * *

야심한 밤.

잠자리에 들던 나는 묘한 감각을 느끼고 일어났다.

“보스!”

귓가를 간질이는 숨소리에 소름이 확 돋았다.

“아하핳. 보스가 놀라는 거 처음 봤어.”

“...리나. 지금이 몇 시냐.”

“새벽 1시.”

미친.

이딴 시간에 침실에 와서 귓가에 대고 장난질을 치다니.

머리꼭대기까지 열이 확 올라왔다.

“리나. 너는 새벽 1시에 도장 숙소에 들어와서 보고를 하는 부하가 있으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리나가 눈을 깜빡거리더니 두 팔로 제 가슴을 감싸 안았다.

“보스는 변태! 여태까지 날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어!?”

이 년을 확 때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래서 손을 뻗었다.

가볍게 머리에 꿀밤이라도 먹이려는 생각이었다.

휙!

‘어어?’

쿵!

손을 붙잡혔다고 느낀 순간, 내 몸은 침대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고개를 들려고 하는데 섬뜩한 예기가 느껴졌다.

곧이어 나는 목에 날카로운 날붙이가 밀접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발.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지.

어안이 벙벙한 내게 리나가 불퉁하게 말했다.

“아이, 참. 보스도 조심해야지. 말도 없이 몸에 손을 데려고 하면 무심결에 죽일 수도 있잖아.”

“…….”

이거 내 잘못이냐. 내 잘못인 거냐.

겁나 억울해서 환장하겠네.

이게 보스에 대한 취급이 맞는 거냐.

“미안하다. 암살자의 예리한 감수성을 이해하지 못했군.”

맞겠지 뭐.

이년도 은근히 제정신이 아닌데.

이걸로 확실해졌다.

리나는 암기를 다룰 수 있는 여자 카이사르라고 생각하자.

귀여운 외관에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응! 보스도 조심해줘!”

생긴 건 귀엽고 장래가 기대되는 미인상이라지만, 일단은 도적계열 상위클래스인 암살자(Assassin)다.

암살자로서의 본능이 발동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다.

뻗은 손에 암기를 들이대고는 손목을 가볍게 야채 썰 듯이 툭 잘라버리거나 지금처럼 순식간에 목이 베일수도 있다. 다음부터는 리나에게 손을 대는 건 무조건 기피해야겠다.

“다음부터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먼저 말로 해줘. 보스라면 가슴까지는 허락할 수 있으니까!”

이 녀석의 안에서 나는 대체 어떤 이미지일까. 가슴 만지게 해줘 따위의 병신 같은 소리를 하는 이미지인 가. 그거 진짜 장난 아니게 멍청해 보이는 이미지네.

“으음.”

나는 문득 이 상황을 의식하게 되었다.

목에 단검을 들이미느라 바닥에 쓰러진 내 몸 위로 올라탄 리나.

달빛에 비치는 금발의 머리카락과 하얀 피부, 이쁘장한 얼굴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래서 내 침실에 들어온 이유는 뭐냐.”

리나의 얼굴이 구겨졌다.

[리나의 호감도가 1 하락합니다.]

뭐지.

변태가 말을 걸어서 기분이 나빠졌다 이건가.

그래도 이내 평소처럼 씩 웃어 보인다.

“리나는 보스의 지령을 마치고 왔어!”

“...지령?”

“뭐야. 설마 잊어버린 거야?”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

그제야 나는 잠들기 전의 기억을 되짚어내었다.

“아니. 잠결이라 잠시 기억나지 않았을 뿐이다. 분명 청학도장의 염탐을 지시했었지.”

정확히는 적의 수준을 알면 가토의 승산을 점칠 수 있다고 말한 걸, 네년이 멋대로 지령이라고 착각해서 염탐하러 가버린 거지만 말야.

그걸 그대로 말했다간 리나의 호감도와 충성도가 미친 듯이 하락할 게 뻔했던지라 굳게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부하들이 자발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 건 나니까 가끔은 이런 엉뚱한 일이 벌어져도 그러려니 하고 만다.

일일이 명령을 내리는 것보다 알아서 해주는 게 편하기도 하고,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짚어주니까 더 좋기도 하잖아.

한 번씩 사고를 치는 게 문제여서 그렇지.

이것만큼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다. 원래 초기에는 숙련도도 낮고 이해도도 떨어져서 엉뚱한 사고를 많이 치고 이래저래 이벤트를 발동시키는 게 부하들이니까.

“맞아 맞아! 역시 제대로 기억해줬구나? 보스는 착해!”

“그래서. 정찰의 성과는?”

“청학도장의 수련생은 50명! 교관은 셋! 도장주인 하나!”

그거 참 나쁜 소식이군.

백보도장의 수련생은 기껏해야 15명에 교관은 없고 도장주인인 가토가 혼자서 일하고 있다.

남은 15명도 도장비가 더 싸다는 이유로 남아있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전부 다 떨어져나갈 쭉정이들이란 말이지.

“실력은 어떤가.”

“교관 셋 중에 두 명은 가토랑 비슷한 실력을 지녔고 한 명은 가토보다 미세하게 강해. 도장주인은 가토보다 확실하게 강하고.”

“가토 녀석이 이기려면 고생 꽤나 하겠군.”

벌써부터 미래가 그려진다.

“청학도장의 도장주인은 어떤 녀석이지?”

“도장주인의 이름은 청학! 자기 이름을 본 따서 만든 자기류 무술을 교관들에게 전수하고, 교관들이 수련생들에게 재차 전수하고 있어. 청학은 자기 수련에 매진하는 중이야.”

“시간을 주지 않은 게 정답이었군.”

교육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는 가토와 달리, 청학은 교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자신의 수련시간을 대폭 만들어둔 무인이다.

같은 무인이라도 어느 쪽이 보다 발전할 수 있는지는 불 보듯 뻔한 노릇.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벌어질 게 당연했다.

“그래서 쓱싹 하고 처리하고 왔어!”

응?

“리나 잘했지? 보스를 위해서 힘냈어! 대견하지? 응?”

“처리하다니, 뭘 말이냐.”

“보스도 참! 대결상대인 청학을 죽일 수는 없으니까 밑에 있는 교관 세 명을 암살하는 게 당연하잖아~”

갑자기 현기증이 몰려와서 의식이 흐릿해진다.

시발 그걸 왜 암살해.

기가 막혀서 말도 못하고 있는데 시야 구석에 박혀있는 노란색 우편함 모양 아이콘이 눈에 띄었다.

미확인 알림들을 메시지 형식으로 차곡차곡 담은 거다.

내용은 이미 짐작되지만 혹시 몰라서 확인해보았다.

[리나가 청학도장의 교관 셋을 암살했습니다.]

[리나의 지능이 1 상승합니다.]

[보스경험치로 대량의 경험치를 습득했습니다.]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스킬 포인트가 1 제공되었습니다.]

[E급 업적 은밀한 지령 달성!]

[당신의 부하 리나는 백보도장의 관계자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전해진 암살지령을 인지, 세 건의 암살을 거의 동시에, 그것도 완벽하게 성공하였습니다.]

[직업스킬 ‘암살지령’을 습득합니다.]

[암살지령의 레벨이 업적달성에 의해 급격히 상승합니다.]

[암살지령의 숙련도가 하급 숙련이 되었습니다.]

뭘 멋대로 지능적인 암살을 하고 있는 거야.

게다가 암살 시킨 적 없다고.

당사자도 모르는 출제자의 의도를 읽어 내다니, 이거 무슨 수능암살이냐.

“...훌륭하다.”

“역시 리나의 고생을 알아주는 건 보스뿐이야!”

내 고생을 알아주는 건 아무도 없지.

아무튼 리나가 시키지도 않은 암살을 하느라 수고한 건 사실이다.

칭찬의 의미로 손을 얼굴로 뻗으려다가 멈칫했다.

“칭찬해주지. 가까이 와라.”

“이렇게?”

리나는 내 위에 올라탄 자세 그대로 엎드렸다.

흥분 따위는 되지도 않았다.

암살을 마친 증거로 은은하게 풍기는 피비린내에 섬뜩한 마음만 들었다.

얼굴이 예쁘장하고 미래가 기대되는 외모이고,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냥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무섭다.

가슴에 한쪽 귀를 대고 히죽 웃는 모양새를 보면 전신에 막 소름이 돋으려고 한다.

‘저 새끼가 지금 내 심장박동 수를 세고 있는 건가?’

어쩌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

부하인 날 두려워하다니, 정말 무능한 보스로군.

심장박동수가 150을 넘으면 그냥 죽여 버리겠어, 라고.

“히힛”

하얀 이까지 드러내며 웃는 꼴을 보니 진짜 무서워졌다.

일단 저 고개부터 내 가슴에서 떼어내야겠다.

“고개를 들어라.”

“이렇게?”

리나는 내 가슴위로 손을 짚으며 은근슬쩍 얼굴 앞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저 기분 좋다는 표정이 어떤 의미의 기분 좋음인지는 도저히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평소에 포상을 대신해서 내리던 칭찬을 해주었다.

슥슥

“...또 이거야?”

“내 나름의 펫에게 내리는 극상의 포상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어… 보스가 좋다면 이걸로도 상관없지만. 하아…….”

한 손으로 턱 아래를 살살 쓰다듬어주자 리나는 무척이나 심란한 표정이 되었다.

다행히도 건방지게 내 몸에 손을 대다니, 죽어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내 말을 듣고는 마지못해 순응하였다.

다른 짓은 할 엄두도 나지 않았기에 나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쓰다듬만 계속했고, 리나는 얌전히 한 시간 동안 펫 전용 쓰다듬을 당하고 제 방으로 돌아갔다.

============================ 작품 후기 ============================

폭참 카운트 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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