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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30화 (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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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5)

청학도장은 하룻밤 사이에 교관 셋이 모두 암살당하며 발칵 뒤집어졌다.

교관들은 자신들이 암살당했다는 사실 자체도 인지하지 못한 채 죽음을 당했다는 모양이다.

청학도장의 수련생들은 저들끼리 술렁거리며 수많은 소문을 양산해내었고, 갈수록 흉흉해지는 소문에 자기들이 놀라서 겁먹고 도장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아하핳. 쟤네들 진짜 바보 아니야?”

리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네가 저지른 짓이 원인이잖아.

대담하다 못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네.

“너무 소리 내서 웃지 마라. 이목을 끈다.”

“응, 알았어.”

지금 우리는 간밤의 암살에 청학도장이 어찌 대처하는지 염탐중이다.

리나의 돌발행동을 막고자 이번에는 나 역시 동행했다.

“보스. 저기 봐.”

“경비대!”

나는 재빨리 골목 안으로 몸을 숨겼다. 경비대에는 이미 한 차례 연행된 전적이 있으니 이런 불순한 시기에 모습을 보여 좋을 게 없다.

이후에 모험가길드의 도움을 얻어 무사히 풀려나기는 했지만 흑산회라는 어엿한 조직까지 만든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카이사르가 저지른 수많은 싸이코 짓이 있으니 체포된다면 전처럼 그리 간단히 풀려나기는 힘들 거다.

“보스. 리나가 가서 무슨 얘기 하는지 엿듣고 올까?”

“음.”

나는 왠지 모르게 꺼림칙한 마음이 들었다.

리나 역시 암살자.

경비대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는 직업이다.

당장은 리나의 얼굴이 안 팔렸어도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불안하다.

혹여나 머리카락 하나라도 떨어져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현행범으로 잡혀갈지도 모른다.

범죄길드의 이목은 경비대가 있으니 오히려 걱정되지 않지만, 역시 경비대의 위험성이 워낙에 크기에 여기서는 자중하기로 결심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지켜보고 돌아가겠다.”

“알았어, 보스.”

경비대에서 파견된 인원은 다섯 명. 정확히는 푸른 제복이 네 명에 녹색 제복이 한 명이었다.

푸른 제복은 경비대의 말단인 경비대원을 의미하는 복장이고, 녹색 제복은 현장지휘와 수사권한을 지니기 시작하는 최하계급 지휘관인 경비대장을 의미한다.

이전에 경비대에 연행되며 미궁도시와 미궁세계의 경비대 지휘계급이 동일하게 존재하며 유니폼과 표식도 변함이 없음은 이미 확인해두었기에 알고 있는 정보였다.

“경비대에서는 이 사건에 수사의지를 보이고 있군.”

워낙에 힘쓰는 놈들이 많아서 하루가 머다 하고 일어나는 게 살인사건이라서, 평범한 살인이라면 신고접수만 받고 가벼운 조사 끝에 손을 털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살인사건은 암살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동시에 세 명의 교관이 암살당했다.

경비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이놈들을 부리는 건 결국 시장이니까.’

덤으로 미궁도시 브람의 시장은 당연히 귀족이다.

미궁세계의 국가는 전부 왕정 신분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귀족이 아닌 자가 시장이 되려면 특정 교단의 고위성직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미궁도시 브람은 특별히 어느 한 종교가 강세를 지닌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시장은 귀족인 게 당연했다.

대신 알폰소 왕국 수도의 중앙정계에 속해있는 귀족들과는 대립각을 지닌 귀족일 거다.

‘수도와는 별개의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이 집적되는 곳.’

게임을 시작할 무렵, 브람 시에 대한 소개문구에서는 미궁공략에 귀족들의 간섭이 끼어든다고 했다.

사병을 동원한 직접적인 공략이 아닌 간섭에 그친다는 건 브람 시의 시장이 모험가를 우대함을 나타내는 증거다.

모험가를 우대하는 이유는 외부에 적이 있기 때문이고, 그 적은 중앙정계의 귀족들인 게 당연했다.

그럼 적이 동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공격수단은 과연 무엇일까.

중앙정계의 힘을 이용하는 정치적인 압박도 있고, 사병을 동원한 군사적 압박도 있겠지.

허나 가장 확실한 수단은 상대의 목숨을 앗아가는 [암살]이다.

‘전작에서도 암살자는 엄청난 견제를 받는 직업이었지.’

특히나 실력이 뛰어난 암살자의 범죄가 발견된다면 경비대에서는 더욱 민감하게 반응을 보인다.

리나의 실수다.

그녀는 너무 완벽하게 암살을 성공했기에 도리어 경비대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탓할 생각은 없지만.’

이제 와서 지적해봤자 리나의 기분만 시무룩해질 뿐이다.

결과는 이미 같이 보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녀가 스스로 깨우치리라 믿고 침묵을 유지했다.

“어어. 보스, 저 사람들 이쪽으로 오는데?”

“어딘가 숨을 곳을...”

“잠깐. 여기 적당한 잠복도구가 보여!”

잠복이 가능하다면 단순히 경비대의 이목으로부터 숨는 걸 넘어서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 나는 반색하며 리나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그리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뇌에 빠졌다.

‘또 쓰레기통이냐…….’

편안한 도주냐, 불편한 잠복이냐의 기로에서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내 선택은 후자였다.

우리는 각각 하나의 쓰레기통을 골라잡아 몸을 숨겼다.

경비대도 청학도장 바로 옆 골목의 냄새나는 쓰레기통에 누군가 숨어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거다.

“이쯤이면 도장의 수련생들에게 대화가 들리지는 않겠군요. 이걸로 만족하셨습니까, 청학 씨?”

“배려 감사드립니다.”

“그럼 바로 질문입니다만, 청학도장에 암살자를 보낼 정도로 원한이 깊은 사람은 있습니까?”

청학으로 추정되는 자가 격분하였다.

“그건... 있습니다! 정확히 세 명이 있어요!”

모략을 구사하는 놈답게 가토 외에도 다른 사람들과 원한관계를 쌓았나보다.

“첫 번째 용의자는 제 사형 청일입니다. 스승의 유산을 두고 분배를 하는 과정에서 크게 다툰 적이 있습니다. 사형은 스승의 무기를, 저는 스승의 집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때의 유산분배가 암살자를 보낼 정도로 원한이 깊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제가 미궁도시 브람에 진입하여 도장을 열고자 스승의 집을 팔아 돈을 마련했습니다. 사형은 불같이 화를 내며 다음에 볼 때는 적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청학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

가토의 말로는 청학도장은 자기류 무술을 전수하는 도장이라고 했었다. 청학 자신이 그리 주장했다면 가토는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그의 무술이 스승에게서 전수받은 것이라면 청학이 홀로 수련하며 쌓은 경지가 예상보다 높을지도 모른다.

‘동귀어진을 결행하더라도 아슬아슬하겠어.’

실력차이가 클수록 동귀어진은 효과를 잃는다. 자신보다 현격한 고수를 상대로 살을 주고 뼈를 취하려고 들면 자신의 살과 뼈만 모조리 잃고 죽는다.

청학이 가토의 과감함에 움츠러들어도 본연의 실력이 뛰어나면 순식간에 가토의 목을 칠 수도 있다.

나는 이 정보가 무척이나 중요하게 활용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지금 사형이라는 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모릅니다. 사형이 범인이라면 도시에 있을 게 당연합니다만. 분명 저를 절망에 빠뜨려 서서히 말려죽이고자 교관들만 암살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깃펜을 놀려 무언가를 기록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각거림이 끝나고 재차 대화가 이루어졌다.

“두 번째 용의자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사체업자 바르돈. 그가 의심스럽습니다. 사형을 피해 미궁도시 브람까지 향하면서 예상보다 많은 돈을 잃어 도장을 세울 돈이 부족했습니다. 그때 바르돈에게 돈을 빌렸죠.”

“돈을 제때에 갚지 않아서 암살위협을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릅니다. 돈은 갚았지만 바르돈은 부당한 계산법을 제시하며 더 많은 이자를 낼 것을 강요했습니다. 결국 이자의 청산은 결투로 끝을 내기로 했고 간신히 제가 이겼습니다.”

사채업자의 부하와 결투를 했다?

놀랍군.

이건 또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닌가.

“바르돈은 약속대로 이자는 받지 않았지만 자신의 부하가 패배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 자라면 암살자를 고용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비대는 이번에도 청학의 진술을 기록하였다.

이윽고 마지막 용의자의 차례가 되었다.

“마지막은 청학도장의 수련생을 모으는 과정에서 마찰이 발생한 동업자인 백보도장의 가토입니다. 가토는 수련생을 뺏긴 것에 앙심을 품었을 겁니다. 별 상관은 없지만.”

“상관이 없다고요?”

“그 녀석은 약한데다가 돈도 없습니다. 제가 모르는 무언가를 이용해 돈을 마련했다면 암살자를 고용할 가능성은 있겠습니다만, 그럴 자산이 있어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우와.

가토 엄청나게 얕보이고 있네.

대놓고 허접 취급이잖아.

“수련생을 뺏었다는 부분을 묻고 싶습니다만.”

“별건 아닙니다. 저희 도장의 무술이 더 뛰어났기에 자연스레 수련생들이 이쪽으로 넘어오게 된 겁니다. 실력도 없으면서 돈까지 없는 백보도장보단 제 도장이 낫습니다.”

“아, 네.”

경비대 측의 목소리가 굉장히 건성이 되었다.

청학을 향해서 뭐 이런 개새끼가 다 있지, 라는 대답일수도 있고, 마지막 녀석은 용의선상에서 배제해도 되겠군, 이라는 대답일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청학에게 득이 될 일은 없기에 만족스러운 반응이었다.

“…….”

“…….”

“푸하.”

옆쪽 쓰레기통이 열리며 리나의 숨소리가 들렸다.

경비대와 청학은 모두 떠난 모양이다.

밖으로 나오자 로브에 묻은 찌꺼기를 터는 리나가 보였다.

“으으. 일단 돌아가면 샤워부터 할 거야. 이 쓰레기가 된 로브는 갖다 버리고.”

전적으로 동감이다. 이거 코가 썩는다고.

다음부턴 위장용 쾌적한 쓰레기통이라도 준비해야겠다.

[잠복을 통해서 귀중한 정보를 습득했습니다. 습득한 정보는 활용하기에 따라 퀘스트 해결의 커다란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리나의 호감도가 1 상승합니다.]

호감도는 왜 오르는 건데.

쓰레기통에서 피어난 호감이라도 되냐.

* * *

여관에 돌아와 악취를 말끔히 걷어낸 뒤, 우리는 습득한 정보를 정리하였다.

“사형 청일. 사체업자 바르돈. 청악에게는 두 명의 원수가 존재한다.”

“이용한다면 바르돈 쪽이겠네!”

“그렇다. 우리는 앞으로 6일 안에 청학과의 대결을 성립시킨다. 소재지도 모르는 청일을 이용하기는 힘들겠지. 바르돈과는 한 번 만나볼 가치가 있다.”

“멍청한 살인광이 괜한 짓을 한다고 화내지 않을까?”

“먼저 모략을 구사한 건 청학이다. 더군다나 청학의 경지가 우리의 예상보다 높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흑산회의 이름이 걸린 내기이니 만전을 기해 전력을 깎아야 한다.”

리나는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기뻐하였다.

“와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보스가 너무 멋져!”

“매달리지 마라. 냄새난다.”

“윽. 거짓말. 얼마나 열심히 씻었는데!”

“농담이다.”

“이익! 보스는 바보! 멍청이! 카이사르!”

카이사르의 이름은 바보 멍청이와 동격의 욕이 된 거냐.

심하게 활용도가 저조하군.

나라면 상또라이, 싸이코, 성격파탄자와 동격으로 쓸 텐데.

“리나. 사채업자 바르돈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겠나?”

“못 구해!”

못 구하는 거냐!?

“범죄길드는 이제 이용할 수 없는 걸. 뒷골목의 정보상인과 접선하더라도 걔들은 내 정보를 곧장 범죄길드에 팔아넘기고 범죄길드의 추적이 더 심해질 거야.”

“알겠다. 그럼 정보상인과 만나는 건 내가 맡겠다. 너는 들키지 않도록 따라오면서 암중에서의 호위를 부탁한다.”

“좋았어! 호위는 리나에게 맡겨도 좋아! 보스에게 찝쩍대는 사람은 소매치기부터 강도, 살인자까지 눈에 띄는 족족 전부 다 죽일 게!”

안심하라고 하는 말일 텐데 조금도 안심이 되질 않는다.

오히려 무서워.

시체더미 만들지 말고 평범하게 호위만 하면 안 되냐.

============================ 작품 후기 ============================

폭참 카운트 D-Day!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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