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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31화 (31/224)

00031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 =========================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6)

게이머가 정보상인과 접촉하기 시작하는 건 못해도 게임플레이 시간이 최소 1년은 경과한 다음부터이다. 험난한 미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돈이 들어갈 구석이 오죽 많던가.

여분의 목숨이나 다름없는 방어구부터 적을 이기기 위한 강력한 무기, 실력증진을 위한 훈련비, 기타 공략도구와 생필품, 미궁도시에서의 유흥비 등등.

그 많은 지출을 이루다가 정보의 중요성을 깨닫고 술집에서 귓 동냥을 하고, 따로 돈을 모으고 모아서 찾아가는 게 바로 정보상인이다.

물론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전작에서 랭커의 반열에 들 정도로 경험은 쌓았다.

돈을 낼 걸 주저하지도 않고, 돈도 엄청 쌓였다.

“정보의 질은 틀림없겠지.”

“물론이지! 정보를 쪼개서 파는 양아치는 아니야. 리나가 보스한테 그런 반푼이를 소개시키겠어? 만약 그렇게 싸가지 없이 굴면 몸도 반쪽으로 쪼갤 테니까 걱정 마!”

“...그거 참 든든하군.”

정보의 질은 당연히 길거리의 소문 따위보다는 훨씬 더 정확하다.

알고자 하는 정보가 우연히 누군가의 입에서 거론되기를 바라거나, 오랜 시간에 걸쳐서 술을 먹이고 대화를 나눠 친교를 다져가며 얻을 필요도 없다.

돈을 내고 정보를 산다. 지극히 간단한 일이 이루어진다.

“여기서부터는 보스 혼자 가야해.”

“알겠다.”

“조심해. 첫 거래대상을 상대로는 신중한 놈이니까.”

붉은 페인트가 잔뜩 엎질러진 새빨간 골목.

불길하게 느껴지는 길을 따라 걷자, 대뜸 골목 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길을 잘못 들어왔다면 당장 꺼져.”

“아니. 제대로 찾아왔다.”

“넌 누구냐.”

내가 카이사르도 아니고 저 질문에 대뜸 네놈을 쳐 죽일 저승사자다, 라면서 벽을 부수고 정보상인을 끄집어낼 이유는 없다.

나는 무뚝뚝한 어조로 대답했다.

“빌헬름 마이어. 이 도시에서 작은 조직을 새로이 꾸리고 있는 보스다.”

“보스? 범죄조직인가……. 일단 시험해볼 가치는 있겠군.”

“시험? 재미있군. 요즘 상인은 고객을 시험하기도 하는가.”

정보상인은 내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큭큭 웃었다.

“우선 정보상인은 서비스를 팔지 않는다. 고객 따위는 만들지 않아. 다음으로 네가 정보이용자인지 진상 부리러 온 개자식인지, 그도 아니면 경비대에서 왔는지 확인해야하지.”

“좋다. 확인 방법은?”

“지금부터 1시간 안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10골드 가량의 손해를 입어라. 이제 막 생긴 신흥조직의 보스에게 10골드의 지출은 결코 쉽지 않겠지.”

과연 리나의 말대로 보통 녀석은 아니다.

나는 꽤나 재밌는 정보상인과 만났음을 깨달았다.

상대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다.

바로 판단력.

정보상인에게 10골드 어치의 정보를 팔라는 거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고객으로 받아준다.

아니라도 상관없다.

무슨 방법으로든 단기간에 10골드를 융통할 수 있다면 경제력과 수완을 인정해준다.

돈을 떼어먹힐 걱정은 없으니 고객으로 받아준다는 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보상인이 제시한 금액이 10골드라는 사실이다.

한화 기준으로는 천만 원.

그 밑으로 정보를 제공하면 추가정보를 계속해서 내놓아야만 하고, 자연스레 신입이 팔 정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밖에 없다.

모든 신상정보를 털리고 정보상인이 만족한다면 10골드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10골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의 신상정보만 잃은 채로 고객조차 되지 못한다.

‘먹잇감과 사냥꾼을 선별하는군.’

정확히 10골드 어치의 정보를 판매할 수 있다면 정보판단력을 높이 평가해 인정한다. 남에게서 10골드를 강탈할 수 있다면 그 능력을 높이 평가해 인정해준다.

판매할 정보가 부족하거나 강탈할 능력이 부족하다면 사냥꾼이 아닌 먹잇감으로 여기고 저급한 정보만 넘기며 제 좋을 대로 이용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보부족을 역이용해서 다른 우수한 정보이용자에게 먹잇감의 장비, 비밀, 심지어는 목숨마저도 가차 없이 판매한다.

“좋다. 정보를 판매해주지.”

과거에는 정보상인들의 이와 같은 생리를 알지 못했다.

허나 지금은 다르다.

나는 그 어떤 게이머들보다도 전투력은 약하다.

대신 미궁이 아닌 미궁도시에서 보낸 시간은 가장 길었다.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대신, 지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위험요소와 마주하며 그들이 온전히 미궁을 공략할 수 있도록 지원을 했다.

그런 과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시련의 축에도 못 낀다.

정확히 10골드 어치의 정보를 판매한다.

그걸로 이 정보 상인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아보겠다.

“청학도장의 교관 셋이 암살당한 사건에 대해서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

“물론.”

“나는 청학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다.”

정보상인은 침묵을 유지했다.

구미가 당긴다는 신호다.

관심이 없다면 듣고자 하지도 않았을 거다.

“청학도장의 주인 청학은 자기류 무술을 전수하는 척 행세해왔지만 그의 무술은 그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형 청일에게서 훔친 무공이지.”

“호오.”

“그는 자신의 스승을 죽이고 유언을 날조했다. 재산은 자신이, 비급서는 사형이 갖는다는 내용이었지. 청일은 이를 받아들였지만 진품 비급서는 청학이 빼돌렸다.”

청학과 경비대의 대화에서 그런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건 전부 추측이다.

그러나 정보상인도 진위유무를 파악할 수 없다.

‘이건 아마도 청학의 치부와 관련된 이야기.’

청학 본인이 경비대 외의 인간에게 관련 정보를 흘리거나 단서를 남겼을 리가 없다.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형인 청일을 찾아내어 그에게서 진상을 들어야 한다.

허나 소재불명의 그를 찾아내는 일이 그리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다만 청학이 스승과 함께 거주하던 지역에서 이곳까지 오는 과정에서의 여비가 그의 예상을 웃돌았다. 미궁도시 브람에서 도장을 열고 살려던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되었지.”

“그래서?”

“그는 고리대금업자 바르돈과 만나 한 가지 물건을 담보로 맡긴 뒤에 돈을 빌릴 수 있었다. 바로 진품 비급서다.”

여기서 부터가 이번 정보 거래의 핵심이다.

“청학도장은 기존에 세워진 건물을 헐고 신축되었다. 건축에 들어간 시공비를 역산하면 대략 20골드 상당의 금액임을 추정할 수 있지. 또한 그쪽의 땅값은 300골드에 육박한다.”

“놀랍군.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정보를 가공하고 있어.”

“추가로 시청에 도장을 등록하고 운영허가를 받는데 필요한 금액. 도장 내부에 들여야 할 수련도구. 교관들의 고용비. 기타 잡비를 포함하면 수익이 없는 첫 달의 지출은 20골드.”

합계 340골드.

“담보의 가치를 후려치는 고리대금업자의 눈에도 진품 비급서는 최소 10골드부터 최대 340골드의 가치가 있다. 물건의 진가를 알고 바르돈에게서 그걸 구매한다면.”

“그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흥미롭군. 아주 흥미로워. 시험에서 이만한 정보를 판매한 사람은 없었지.”

정보상인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불쑥 물었다.

“내친김에 묻겠어. 비급서의 정보에 대한 가격은 얼마라고 생각하지?”

“1골드다.”

정보상인은 적잖이 감탄한 기색이었다.

“방금 네 입으로 말했을 텐데? 그 비급서는 고리대금업자의 눈에도 최소 10골드부터 최대 340골드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었다고. 평균값만 따져도 175골드일 텐데?”

“정확하지 않은 정보의 가치는 10분의 1로 취급한다. 신뢰성이 없는 정보의 가치는 다시 10분의 1로 취급한다. 필요하지 않은 정보의 가치는 다시 10분의 1로 취급한다.”

“!!”

“비급서의 가치는 본래의 천분의 일인 1실버 75쿠퍼에 불과하다.”

“그래서는 네가 말한 1골드에도 미치지 못할 텐데?”

당연히 그렇다.

“비급서의 가치라면 그렇겠지. 내가 가격을 책정한 기준은 비급서의 정보에 대한 가격이다.”

“과연. 그렇다면 가격의 산정방법에 대해서 듣고 싶다만.”

“직접 정보의 진위유무를 판단하는 건 시간과 자원의 소모가 지나치게 크지. 그러니 넌 내게 얻은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판매할 거다.”

“나쁘지 않은 통찰력이다.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어.”

“이 정도로 보물 냄새가 나는 정보라면 암흑가에 판매하기는 적절하지. 미확보 매물의 상세정보에 대한 건당 판매금액은 약 30실버. 세 번만 판매해도 90실버가 된다.”

정보상인은 몹시 유쾌해하였다.

“남은 8실버 15쿠퍼는?”

“세 곳의 정보이용자들이 서로 경쟁을 벌이며 추가적으로 구매할 정보에 대한 비용이다. 보물쟁탈전을 치르고자 한다면 그 정도 지출은 감수하겠지.”

“좋아. 당신의 논리는 제법 마음에 들었어. 비급서의 정보에 대한 가격이 1골드라는 주장을 인정해주지.”

그렇지만 목표금액에는 현저히 못 미친다.

“이제 남은 9골드는 어떻게 메울 거지?”

당연히 연계정보를 판매한다.

“앞서 자잘한 경쟁을 유도하는 것만으로 8실버 15쿠퍼를 벌어들일 수 있는 너라면, 더욱 고급정보를 지니면 비싼 값에 판매할 수도 있겠지.”

“그건... 연계정보를 판매하겠다는 건가?”

“물론이다. 세 경쟁자들에게 판매할 고급정보도 만들어서 넘겨주지.”

나는 경비대와 청학의 대화를 떠올리며 다시금 정보를 재가공하였다.

“바르돈과 청학은 불법적인 이자수급을 인정할지의 유무를 판가름하고자 결투를 벌였고 이에 청학이 승리했다. 당연히 그 이자는 바르돈이 비급서를 빼앗고자 건 것이다.”

“그리고 패배했다? 그럼 비급서는 청학의 손에 넘어갔겠군. 열심히 바르돈을 쪼아대던 정보이용자들에게 이 정보를 슬쩍 판매하면 기꺼이 돈 주머니를 풀 테고.”

“건당 가격은 1골드. 도합 판매금액은 5골드다.”

정보상인은 웃음보가 빵 터졌다.

“끌끌끌. 갑자기 머리가 꼬이기라도 했나? 1골드가 세 개 모여서 5골드가 되다니, 너는 연금술사라도 되는 건가?”

“안될 것도 없지.”

“뭐?”

“세 번의 판매에 정보보호비로 1골드를 유도하면 두 번째와 세 번째로 정보를 구매하는 놈들은 같은 정보를 2골드에 구매한다.”

“그건...!!”

정보상인은 진심으로 깜짝 놀란 기색이었다.

호흡이 떨렸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정보상인을 이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가?”

“물론이다. 이제까지는 그럴만한 이유가 없었으니까.”

“돈이 아닌 이유가 없었다, 라.”

정보보호비에 대한 정보는 판매할 수 없다.

정보상인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다.

“정보보호비의 존재에 대한 가격은 얼마라고 생각하지?”

“제로다.”

“어째서? 단숨에 3골드의 수익을 5골드로 뻥튀기 시킨 유익한 정보인데? 앞으로도 수많은 거래에 정보보호비를 걸도록 유도하고 막대한 소득도 올릴 수 있는데.”

“정보매매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간단히 생각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런 걸 돈 주고 사야하는 하찮은 녀석이라면 이렇게 직접 찾아오지도 않았다.”

“좋아. 아주 좋아. 함정을 팠는데도 능숙하게 간파했군. 단번에 10골드를 모두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함정임을 간파해낼 줄이야.”

새끼, 짓궂기는.

네가 머리 좀 굴려서 함정을 파봤자 얼마나 위험하겠냐.

예측 불가능한 내 부하들, 폭탄덩어리들에 비하면 예측 가능한 네 함정 따위는 귀여운 장난질에 불과하다고.

“남은 4골드의 가격은 뭘로 충당할 거지?”

“슬슬 귀찮은데. 나머지는 현찰로 때우자고.”

쩔그럭.

돈주머니 소리가 들리자 정보상인은 폭소하였다.

“훌륭해! 당신 같은 정보이용자는 처음이다. 어쩌면 처음으로 고객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온 걸지도 모르겠어. 당신정도라면 기꺼이 서비스를 제공할 의향이 있지.”

“그럼 시험은 합격인가.”

“당연히 합격이야. 굳이 4골드를 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당신은 몰라서 못 파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귀찮아서 시간을 아끼고자 했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즐거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내게 말했다.

“뭐, 당신이 지출한 비용이 10골드를 훌쩍 넘기도 했고.”

“그건 무슨 의미지?”

“즉석에서 정보를 가공하고 판매방식을 측정, 제시하는 능력. 조직의 보스다운 놀라운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어. 빌헬름 마이어. 당신이라는 인간을 알게 된 가격은 100골드야.”

1억 원의 사나이라는 건가.

거참, 명색이 랭커인 나를 너무 저평가하는군.

보여준 건 딱 그 정도니 어쩔 수 없지만.

“그건 틀렸다. 내가 입은 손해는 정확히 10골드 어치다.”

“응?”

“내 유능함을 발각당하며 입은 손실은 정보상인의 호의를 얻게 된 것으로 모두 충원되었다. 등가교환이다.”

내가 1억 원짜리 남자면 너도 1억 원짜리 정보상인이다.

그리 금칠을 해주자 아주 기뻐 죽으려고 한다.

정보상인의 웃음이 그칠 기미가 보이지를 않았다.

“이거 한 방 먹었네. 좋아. 당신의 말대로야. 비급서에 대한 일련의 정보는 대략 10골드의 수익을 올릴 수 있겠어. 시험은 완벽하게 통과했어.”

“그럼 정보를 판매하는가.”

“물론. 덤으로 당신에게는 특별 서비스로 얼굴을 맞대고 진짜 거래라는 걸 해주지.”

드르륵.

골목의 벽이 열리며 안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 작품 후기 ============================

폭참 카운트 D-Day!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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