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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32화 (3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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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7)

정보상인의 아지트는 무척이나 협소한 구조를 지녔다.

다수의 침입자가 발생해도 한 번에 한 명씩밖에 지나갈 수 없는 비좁은 통로.

칼날이나 독침 따위의 트랩이 발동하면 당할 수밖에 없는 길이 복잡하게 얽히며 5분가량이나 이어졌다.

‘함정이 발동하면 실제로는 30분도 넘게 버티겠어.’

최악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적의 습격을 피해 달아날 시간은 충분하다.

시험 같은 발칙한 짓을 저지른 것만큼이나 준비성이 철저한 정보상인이었다.

당연히 내 기대감은 갈수록 점점 더 올라갔다.

정보상인에도 급수는 있다.

최하급 정보상인은 길거리의 소문 따위나 줍고 가공해서 판매한다.

정보상인을 꿈꾸는 미숙한 것들이 최하급에 속해있다.

정보의 가치는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정보를 원하는 때에 간편하게 얻는 정도에 그친다.

하급 정보상인은 접하기 힘든 소문이나 비밀스러운 정보에 접근해서 이를 판매한다.

정보상인의 대다수는 하급에 속해있다.

정보의 가치는 본격적인 퀘스트나 미궁탐사에 도움이 될 만한 수준이다.

중급 정보상인은 정보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간파하고 고급정보를 판매하거나, 자신의 의도대로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며 한탕장사나 장기 영업을 유도할 수 있다.

하급 정보상인 스무 명 중에 한 명만이 중급 정보상인의 수준에 올라설 수 있다.

정보의 가치는 한 지역에 유행을 일으키거나 특정 이벤트를 발동시킬 정도로 뛰어난 수준이다.

‘그리고 이놈은 상급 정보상인이거나 그만한 수준에 올라설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

상급 정보상인은 정보의 ‘흐름’을 가공해서 무수한 스토리라인을 만들고 정보로 정보를 양산해내어 팔아먹는다. 이쯤되면 세상에 못 팔 것이 없는 수준이 된다.

중급 정보상인 스무 명 중에 한 명만이 상급 정보상인의 수준에 올라설 수 있다.

정보의 가치는 한 지역의 정보를 완벽하게 조율하거나 일국에 파장을 미칠 사건을 유도하고, 작정하고 나서면 전 세계에 파급력을 일으킬 수도 있다.

“기뻐해도 좋다. 당신은 엄청난 복권에 당첨된 거니까. 이 내가 진심으로 고객이라고 인정한 건 당신이 처음이다. 리나, 그 아이조차도 내 고객은 되지 못했으니까.”

계단의 끝, 철문을 앞두자 노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만큼은 내쪽에서 놀랐다.

설마 암살자인 리나의 잠복이 들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지간한 대형조직의 정보원이나 국가의 첩보원에 비교해도 앞설 정도로 경계심이 높고 뛰어나군.’

상급 정보상인이라면 그럴 만도 했다.

최하급 정보상인이라면 어느 골목에든 널려있으며 실버만 찔러주면 술술 정보를 불어대는 싸구려들이다. 떠들길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슬쩍 정보에 재미 들린 정도일까.

하급 정보상인부터는 수가 대폭 줄어든다. 본격적으로 신변의 안전을 걱정하고 정보매매에 신중을 기울인다. 한 도시에 많아봤자 사백 명을 넘지 않는다.

중급 정보상인은 한 도시에 스무 명도 안 되며, 대부분이 특정 조직이나 영주에게 소속되어 있다. 당연히 일반인은 접선하는 것조차도 힘겹다.

상급 정보상인은 한 도시에 기껏해야 한명이 있을까 말까한 수준이다.

어떤 집단도 물리력을 동원해서 압박할 수 없으며, 그런 행위는 도전으로 간주되어 적대세력에 유익한 정보가 마구 흘러들어가 엄청난 소동이 벌어진다.

그런 대단한 상급 정보상인이 상대를 정보이용자가 아닌 고객으로 받아들이고 본 모습을 보여 서비스를 한다. 이건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거대조직의 수장이나 영웅급 강자, 일국의 최고수뇌부 정도에게만 허락된 기회.’

나는 그런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라고 인식된 것이다.

전작의 경험을 고스란히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통찰력을 발휘했다.

대단한 평가를 받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냥 당연한 거다.

쿠궁.

끼기기기긱.

마법에 맞고도 멀쩡할 것 같은 두터운 강철문이 열렸다.

“들어오도록.”

고급스러운 촛대에 꽂힌 초들이 바람을 따라 일렁거렸다. 무척이나 정적이고 묵직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촛대였다.

춤추듯 움직이는 촛불을 따라 그림자가 움직이는 광경은 미궁도시의 문물에 익숙해진 내게도 적잖이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고급스럽고도 신비한 분위기의 너머,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상방된 인상을 주는 로브를 입은 자가 앉아있었다.

“인상적인 분위기로군.”

“연출에는 나름 공을 들였지. 오래도록 나 이외의 사람은 보지 못해서 헛수고가 되었나 싶었지만, 덕분에 헛수고는 아니게 되었네.”

“이왕이면 그 로브 너머의 얼굴도 보고 싶은데.”

정보상인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이 늙고 추레한 노파의 목소리를 듣고도 얼굴을 알고 싶은가? 그만 둬라. 네 눈이 즐거울 일은 없을 거다. 오히려 이마에 주름이 생기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귀중한 상급 정보상인의 얼굴을 볼 기회다. 인간이 아닌 드래곤이 아니냐는 소문마저 있는 존재를 직접 볼 수 있는데 미색을 원할까보냐.”

“끌끌. 역시 너는 특별하다. 다른 놈들과는 아주 달라. 그 나이대의 남자라면 본능적으로 지닐법한 자만심과 탐욕, 분수를 넘어선 허세와 객기도 보이지 않다니.”

정보상인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좋다. 너에게만은 특별히 보여주도록 하지.”

스르륵.

로브가 걷히며 상급 정보상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나는 순간 헛것을 본 건지 의심하였다.

젊다.

그것도 곱고 예쁜 미모를 갖추었다.

거칠게 갈라진 노파의 음성과는 지극히 이질적인 외모.

그러나 웃음소리는 눈앞에서 나고 있다.

이건 이 여자가 내는 목소리임이 틀림없었다.

“이상해.”

정보상인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모습을 보고도 표정변화조차도 없다니, 조금은 실망스럽기까지 한데. 놀라지 않은 건가?”

“설마. 마법에라도 홀린 기분이다.”

“끌끌. 단지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라? 대단한 평정심이군. 점점 더 마음에 드는구나.”

정보상인은 리나의 미모가 꽃피울 나이가 되면 저런 외모가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미인이다.

단발머리에 매력적인 이목구비, 섹시한 입술을 지닌 여자가 노파의 목소리로 말한다.

그 이질감 때문에라도 성욕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여성으로서의 매력?

오히려 기괴하게 뒤틀린 몬스터가 사람 가죽을 뒤집어 쓴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

“정보상인. 네가 내게서 무언가를 원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우선은 서로의 얼굴을 보게 된 것으로 만족하고 정보를 건네줬으면 한다.”

“좋아. 대신 나와의 정보거래에는 특수한 규칙이 있어. 거래는 언제나 선불. 원하는 정보보다 지불한 값이 작으면 정보는 전해주지 않아.”

스스로 원하는 정보의 가치조차 알지 못한다면 거래를 할 생각조차도 없다.

고객을 골라 받는 사치스러운 행태는 돈에 어지간한 자신감이 없으면 보일 수 없는 태도다.

그 이전에 그녀가 지닌 정보를 모조리 풀기만 해도 이곳 알폰스 왕국은 대 혼돈에 빠져 붕괴할 정도이니 정보를 제공하는 대상 자체를 골라잡을 만도 했다.

“30실버. 고리대금업자 바르돈의 현재 위치.”

“가격산정의 기준은?”

“특정인 수색 10실버. 암흑가 종사자 추가수당 10실버. 실시간 위치 10실버.”

정보상인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30분 뒤, 이쪽에서 적당한 방법으로 위치정보를 전해주지. 다음에도 거래를 원하면 날 찾아오도록 해. 당신 같은 남자를 감당할 수 있는 정보상인은 나 외에는 없을 테니까.”

“알겠다. 필요한 때가 온다면 잊지 않고 찾아오지.”

“끌끌. 역시 재미있는 남자야.”

네년의 웃음소리가 더 재밌다, 인마.

참 희한하게도 웃네.

‘슬슬 때가 됐는데... 왔군.’

정보상인의 아지트를 벗어나자마자 알림이 빗발치듯이 쏟아졌다.

[C급 업적 엘리트 고객 달성!]

[당신은 상급 정보상인의 시험을 최초로, 그리고 완벽하게 통과했습니다. 이 놀라운 활약에 큰 감명을 받은 상급 정보상인이 당신을 고객으로 인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상급 정보상인의 아지트의 출입을 허가받았습니다.]

[상급 정보상인이 직접대면을 허락했습니다.]

[통찰이 2 상승합니다.]

[지능이 1 상승합니다.]

[매력이 1 상승합니다.]

[화술스킬을 습득합니다.]

[화술스킬의 레벨이 업적달성에 의해 급격히 상승합니다.]

[화술스킬의 숙련도가 상급 숙련이 되었습니다.]

상급 정보상인과의 관계성립 및 신뢰표시.

능력치의 상승과 스킬 습득.

이런 건 전부 부수적인 이득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시스템의 지원을 받지 않고 중요인물에게서 신뢰를 이끌어내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유능함을 적극적으로 증명하기까지 했습니다.]

[일련의 행동과정에 따른 정산으로 특별한 칭호가 부여됩니다.]

[칭호 ‘암흑가의 유망주’를 습득했습니다.]

유망주. 이는 강력한 무력이나 권력, 어떤 방면에서든 뛰어난 영향력을 지닌 인물에게 인정을 받음으로써 부여되는 칭호이다.

당연히 습득 난이도는 미친 듯이 높고, 초기에 습득하지 않으면 유망주라는 말을 듣기에는 어울리지 않으니 칭호습득 자격을 상실한다.

까놓고 말해서 첫 플레이 이후로 게임시간 1년 내에 습득하지 못하면 습득기회가 소멸하는 타이틀이다.

‘첫 단추는 제대로 꿰맸군.’

현 시점에서 유망주 타이틀을 얻은 건 극소수의 최상위 랭커뿐이라고 확신한다.

나 역시 리나가 상급 정보상인을 소개시켜주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대단한 기회였다.

“보스! 괜찮아? 갑자기 사라져서 놀랐잖아!”

“염려할 필요는 없다. 잠깐 상급 정보상인의 인정을 받고 왔을 뿐이다.”

“헉! 보스, 대단해! 빅마마의 얼굴을 본 거야? 응?”

아. 그 녀석 일단은 목소리가 할머니였지.

빅마마라고 불리는 건가.

얼굴을 떠올리면 웃음도 안 나올 별칭이지만 분명 스스로가 원해서 사용하고 있겠지.

위장이 목적이라면 대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로 꼬부랑 할머니가 될 나이까지 남자들이 치근덕거리는 일은 없겠다.

치근덕거림을 못 받는 게 아니라 안 받으려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더욱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성의 매력에 유혹되어서 쓸데없는 정보를 흘리는 일을 피하려는 의식적인 행동이다.

저만한 실력을 지닌 인간이 그런 금욕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건 순전히 정신력 하나만으로 모든 욕망을 찍어누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원한다면 절세미남도 발아래에 조아리게 만들 수 있는 입장의 인간임을 감안하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정정하더군.”

“정말? 다행이다. 빅마마는 좋은 분이니까 걱정했었어.”

“앞으로 60년은 더 살 정도로.”

“그렇게나 많이!?”

“근심걱정 없이 잘 먹고 잘 살면 100년은 더 살 수 있을지도.”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다.

미궁 어딘가에는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영약도 있다.

상급 정보상인이라면 구하지 못할 것도 없다.

“빅마마는 아인종이야? 엄청 오래 사네!”

“그런 건 됐고, 잠시 배나 채우지.”

우리는 적당한 식당을 골라잡았다.

리나는 우중충한 회색로브를 뒤집어쓰고 있기에 쓸데없이 이목을 끄는 일도 없었다.

오죽 답답한 꼴이었으면 식당주인이 넌지시 물었다.

“저 인간은 한 여름에 실내에서 왜 저런 꼴로 있어?”

“얼굴을 보면 사람이 죽거든.”

범죄길드 길드원들이.

대로변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혈전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얼굴을 감추지 않을 리가 없잖아.

근데 어째 가게주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빌헬름 마이어의 악명이 1 상승합니다.]

“아니, 딱히 널 죽인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네가 뭐 대단한 녀석이라고 이 녀석의 사냥감이 되겠나.”

“히이익!”

[빌헬름 마이어의 악명이 1 상승합니다.]

“안 죽인다고. 밥상머리 앞에서 얼굴 구기지 마라.”

“으아아”

[빌헬름 마이어의 악명이 1 상승합니다.]

나는 미간을 구겼다.

그래.

이 새낀 지금 날 놀리고 있는 게 틀림없다.

“꺼져. 확 쳐 죽여 버리기 전에.”

가게주인은 비명을 지르며 가게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아니, 이럴 땐 주방으로 꺼져야지.

가게 버리고 도망치면 우린 뭐 먹으라고.

============================ 작품 후기 ============================

폭참 카운트 D-Day!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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