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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33화 (3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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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8)

“보스. 방금 전에는 카이사르를 보는 것 같았어!”

나는 놀란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수저를 떨어뜨렸다.

미친. 난데없이 이게 뭔 개소리야.

지금 내 뇌리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패닉을 일으켰다.

“주의해야겠군. 그 녀석의 행동이 옮는 건 좋지 않아.”

“왜? 멍청해 보이기는 해도 재밌잖아.”

이참에 아예 개그맨으로 전직하라고 하지 그러냐.

울화통이 터지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카이사르가 무법자가 되는 건 괜찮다. 하지만 내가 무법자가 되는 건 안 된다.”

“어째서?”

“보스는 조직의 중심. 보스의 성향은 곧 조직 전체의 성향으로 이어진다. 언제나 적을 늘리고 강적의 뺨을 치고 다니는 짓을 조직 단위로 하게 되지.”

“화끈하네! 역시 보스는 대단해! 스케일부터 달라!”

“언젠가 그런 짓이 필요한 때가 온다면 할 수도 있겠지. 허나 지금은 아니다. 우리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더 강해진 뒤에 나서도 늦지 않는다.”

리나는 동그란 눈을 깜빡거렸다.

“지금도 우리는 강한데 이보다 더 강해질 수가 있어?”

“물론이다.”

카이사르는 15살, 리나는 16살, 나는 20살.

평소 행실을 보면 하도 싸이코 같아서 엄청나게 안 믿겨지기는 하는데, 셋 다 잠재력이 한참 쌓여있고 개화할 수도 있는 연령이다.

레벨이 오름으로써 얻을 수 있는 능력치도 잔뜩 남아있다.

어린 나이에 높은 경지에 올라선 자는 뒤늦게 올라선 자보다 전체적인 능력치가 준수하다.

물론 재능만 믿고 노력을 안 하면 더 이상의 발전도 없다.

능력치는 타고난 잠재력에 좌우되지만 고행에 가까운 극한의 노력으로 올릴 수도 있고, 스킬 숙련도를 올리는 등의 방식으로 강해질 수도 있으니까.

“흐응. 보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열심히 노력해야겠네.”

“노력이라. 스킬이라도 연습하려는 건가.”

“응! 일일 십인 암살로 암살스킬 숙련도를 팍팍 올리겠어!”

그만 둬.

그딴 짓을 벌이면 미궁도시 브람에 피바람이 불거라고.

“암살행동은 당분간 접어라. 경비대의 암살자를 향한 적개심이 늘어나면 미궁에 진입하는 모든 암살자를 체포하려 들지도 모른다.”

“칫. 보스의 명령이라면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충성도가 조금 올랐다고 순순히 따라주기는 한다.

생각해보면 카이사르도 시키는 건 잘했지.

안 시키는 것도 멋대로 하고 대형사고도 겁나 잘 치지만.

“그보다 보스. 너무 연약한 거 아니야?”

“뭐?”

“아무리 손에 힘이 없어도 그렇지, 수저를 떨어뜨리다니.”

왜 니가 날 불쌍한 병신 보는 것처럼 쳐다보고 있냐.

나보고 카이사르 닮았다고 놀라게 했잖아.

그런 욕을 들으면 수저 정도는 보통 떨어뜨린다고.

“새 수저를 드리겠습니다.”

다른 음식점에 와서는 주문만 하고 묵묵히 식사를 해서 그런지, 가게주인이 겁먹고 달아나는 일은 없었다.

주인장은 얌전히 새 수저를 전해주고 바닥에 떨어진 수저를 주웠다.

덤으로 뭔지 모를 종이쪼가리도 내게 들이밀었다.

“이거, 떨어뜨리신 물건인가요? 수저 옆에 떨어져 있던데.”

“그렇소.”

종이를 넘겨받아 확인해보니 작은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어느 틈에 이런 걸 여기에 가져다 둔거지?

옆 테이블을 돌아보았지만 그쪽의 손님은 사라졌다.

“이 분은 어디 가신거지. 테이블을 치워야하나...”

주인장이 중얼거리는 소릴 들어보면 언제 나갔는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처음부터 관심도 주지 않았기에 어떤 사람이 빅마마의 하위 정보원인지 파악하지도 못했다.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 들었지만 구태여 빅마마의 정보원의 정체를 캐낼 이유는 없다. 우리는 식사를 마친 뒤, 약도를 따라서 사채업자 바르돈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돈 빌리러 오셨습니까?”

“그렇다.”

“어이쿠. 큰 돈 빌리러 오셨나보네.”

정문을 지키는 덩치 큰 떡대가 실실거리며 문 앞에서 비켜섰다.

“말이 짧은 분들은 다 손이 크시더라고.”

“…….”

“쯧. 들어가쇼.”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로 일관하자 떡대는 김이 샜다는 투로 말했다. 우리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손님도 없고 한가했는지 바르돈을 만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응접실 같은 곳에서 대기하는 일도 없이 그대로 바르돈과 대면할 수 있었다.

바르돈은 마치 욕망의 항아리처럼 육중하고 거대한 체구를 지닌 초고도비만 환자였다.

“어서 오시게. 오늘은 꽤 험해 보이는 손님이 왔군.”

“빌헬름 마이어. 흑산회의 보스다.”

“흑산회? 뭐, 돈만 된다면 이름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 신흥조직의 보스께서는 어쩐 일로 돈이 필요하신지?”

생긴 거랑 똑같이 돈에 대한 열망이 아주 노골적이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자제심도 있다.

빌려준 돈을 회수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사용처부터 확인하는군.

“청학도장의 청학. 그놈과 원한관계가 있다고 들었다.”

둥글둥글하게 웃던 얼굴이 대번에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그 찢어죽일 녀석과는 무슨 관계냐.”

“곧 그놈 도장 박살내려는 관계.”

“크하하! 골 때리는 녀석이군.”

사납던 기세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러나 가느다란 눈매는 여전히 싸늘하게 보였다.

어쩌면 그냥 살이 너무 쪄서 그래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놈을 뭐 어찌 하려고 날 찾아왔나. 몸뚱이를 반으로 잘라서 왼쪽 오른쪽 나눠 갖자고?”

“그렇다.”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왠지 모르게 바르돈의 목소리가 떨렸다.

뭐지 이놈.

하도 살이 뒤룩뒤룩 쪄서 말도 제대로 못하나.

“물론 청학의 재산을 반으로 찢어갖자는 말이다.”

“아아, 난 또...”

이 녀석 바보 아냐?

카이사르보다 더 멍청할 것 같은데.

“놈이 스승에게서 갈취했다는 비급서에는 관심 없다.”

“비급서?”

“가토 녀석은 그걸 절실히 원했지만 그까짓 비급서가 없어도 흑산회는 강하지. 협력을 약속하고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내면 비급서는 양보할 수 있다.”

바르돈의 실눈 아래로 자그마한 눈이 데굴데굴 굴렀다.

꼭 큼지막한 떡두꺼비가 파리를 쫓는 모양새였다.

“뭐지, 그 반응은. 청학이 네게 무언가를 담보로 맡기고 빚을 지고 악연을 쌓았다고 했으니 그때 한 번은 비급서가 네 손에 들어왔었을 텐데. 모르는 척 시치미 떼는 건가?”

“아, 아아아~ 그 비급서! 하하, 알지, 아무렴 알고말고. 그간 상대한 고객들이 하도 많아서 잠깐 기억하는데 애를 먹었을 뿐일세.”

우와.

진짜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로 처절하게 어색한 연기다.

저딴 연기를 마치고 입 꾹 다물고 눈치 보는 거 봐.

내가 방금 연기를 했는데 들켰는지 안 들켰는지 신호를 보내줘라, 라고 말해주는 건가.

이런 멍청한 놈을 이용해도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가 걱정될 지경이었다.

“내 휘하의 부하가 무예에는 일가견이 있지. 비급서의 가격은 대략 300골드로 추정했다.”

“300골드!”

“다만 이쪽은 그걸 얻어도 팔아먹어야 하는 상황인데 장물 커넥션이 존재하지 않는다. 첫 거래부터 큰 놈 들고 여러 곳에 이목을 끌고 싶지는 않아.”

“암암, 눈에 띄어서 좋을 거 없지. 날 찾아온 건 정말로 잘 생각한 걸세. 비급서는 이쪽에서 책임지고 맡아주지.”

“그럼 나머지는 이쪽에서 가지겠다. 도장에서 정기적으로 나오는 수익금을 챙기는 쪽이 실리라고 생각하니까. 청학도장 정도면 한 30년쯤 굴리면 300골드는 벌겠지.”

내가 이득을 보는 게 아니라 니가 이득을 보는 거다.

그런 뉘앙스의 암시를 은근슬쩍 심어주었다.

바르돈은 헤벌레 웃으며 뭐 이런 착한 호구가 다 있지, 하는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이쪽도 손해 보는 건 아니니까.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겠지?”

“우하하. 장기투자, 거 좋지. 도장은 손도 안 댈 테니 걱정 말라고. 그까짓 건 다 가져도 좋네. 대신 그쪽도 비급서에 욕심은 내지 말도록.”

“물론이다.”

진짜 속내가 그대로 나오는 양반이네.

배신당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그럼 그쪽에서 도움을 줘야할 일이 뭔지 알려주지.”

“뭘 도와드릴까? 약점을 캐서 소문을 퍼뜨려? 사람을 고용해 질 나쁜 수련생으로 들여보내서 도장운영이 피곤하게 꼬이도록 만들어?”

덩치는 곰만 한 놈이 하는 짓은 무슨 초등학생이냐.

필요 없어 그딴 거.

카이사르의 반이라도 닮아라, 이 얼간아.

“녀석에게 티 나지 않는 부위에 부상을 입혀라. 가토와 일대 일로 겨뤄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부상으로. 개시시간은 이틀 뒤. 여유시간은 하루를 주지.”

“어이쿠. 벌써 바지사장까지 세우셨구먼? 수완이 좋으시구려, 빌헬름 보스.”

“할 수 있겠는가.”

바르돈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거래는 성사되었다.

달리 용무는 없기에 바르돈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E급 업적 비열한 거래 달성!]

[당신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뒷세계의 일원인 바르돈과 거래를 했습니다. 이는 목표대상인 청학뿐만 아니라 바르돈까지 동시에 기만하는 아주 비열한 거래입니다.]

[기만스킬을 습득합니다.]

[기만스킬의 레벨이 업적달성에 의해 급격히 상승합니다.]

[기만스킬의 숙련도가 하급 숙련이 되었습니다.]

뭐만 하면 스킬이 하나씩 굴러 들어오네.

이런 스킬을 얻겠다고 귀한 CP를 들여서 구매했을 초보자들이 불쌍하게 여겨진다.

물론 내 랭커 자리를 위협하는 재야의 은둔고수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허세를 부리며 게이머들에게 정보를 푸는 미친 짓은 하지 않는다.

“보스. 너무 부주의했어.”

“음?”

“바르돈의 비밀호위. 제법 실력이 있던데?”

리나가 깜짝 놀랄 사실을 알려주었다.

“역시 눈치 채지 못했구나. 리나가 침 발랐으니 건들지 말라고 열심히 어필해서 산거야. 아니면 보스는 거기서 죽을 수도 있었어.”

“그 정도의 실력자가 있었다니... 놀랍군. 덕분에 살았다.”

“헤헹. 이 정도야 당연하지. 리나는 보스의 호위를 위해서 부하가 된 거잖아? 적의를 품는 놈은 금방 찾을 수 있어. 사람도 잔뜩 죽일 수 있는데 이 정도야 당연히 해주지.”

마구 감동받으려다가 멈칫했다.

방금 뭐라고 했냐.

“기대하고 있다고? 보스가 거물이 되어서 벌레 같은 인간을 쓰레기처럼 치워버리는 미래를!”

제대로 미친년이다.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더니 그런 망상을 하고 있었냐.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

그러려고 부하가 됐다는데 뭐 어떡해.

아닌데? 나 완전 박애주의자고 사람 안 죽일 건데?

이런 소릴 했다간 곧바로 데드 엔딩이다.

‘실망이야 보스. 그럼 죽어.’하고 목을 푹 찌르겠지.

싸이코 부하들을 거느리려면 조금쯤은 싸이코 행세를 해줘야 한다.

“그 비밀호위라는 녀석도 암살자인가?”

“아니. 전문사냥꾼인 것 같아. 맹수 같은 기세에 피 냄새도 물씬 풍겼거든. 원래 인간 많이 잡는 애들은 다 그렇지만.”

인간사냥꾼이냐…….

거 장난 아닌 녀석을 호위로 부리고 있네.

뭐, 리나보다 강할 것 같지는 않지만.

…….

…….

…….

아니, 그건 또 모르지.

“녀석과 겨룬다면 승산은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지?”

“정면승부라면 5할. 기습을 건다면 7할.”

역으로 기습을 당하면 높은 확률로 진다는 건가.

“걱정하지 마, 보스. 리나는 정면승부 따위는 하지 않아. 암살자잖아?”

냉혹한 웃음을 보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녀석에게 암살을 시도한다면?”

“무조건 리나의 승리.”

“그럼 되었다. 내 선에서 신경 쓸 필요는 없겠군.”

자신감 하나는 좋네.

이내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저녁을 사달라고 졸라대는 아이의 모습이 된다.

이런 꼴을 보고 있으면 이놈의 알맹이가 냉혹한 암살자라는 사실을 가끔씩 잊어버리게 된단 말이지.

까악까악

몇 마리 까마귀가 주홍빛으로 곱게 물든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저녁 무렵.

우리는 백보도장에 돌아왔다.

그리고 엄청나게 괴이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저게 뭐지. 렉 걸렸나.”

“보, 보스. 신형몬스터 아니야?”

전신에 모자이크를 두른, 이 이상 수상할 수 없는 무언가가 도장 한 편에서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폭참 카운트 D-Day!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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