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4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 =========================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9)
전신이 모자이크 처리 된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도장에서 목검을 휘두르고 있다.
내 눈에만 이상하게 보이는 건 아닌지 리나도 심우주거대햄스터를 보는 고양이처럼 화들짝 놀라 내 뒤에 숨었다.
응?
“리나. 넌 내 호위라는 녀석이 어디에 숨는 거냐.”
“무리, 무리! 저건 생리적으로 무리야!”
“...네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건 좀 깨지 않냐.”
“인간인지 뭔지도 모를 괴생물체인걸! 몬스터라면 괜찮아도 저건 무리야!”
“아마도 인간일 것 같은데. 검 휘두르고 있고.”
그보다 저건 어떻게 여기에 들어와 있는 거야.
“가토! 카이사르!”
소리 높여 두 사람을 부르자 뒤뜰에서 카이사르가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보스.”
“가토는?”
“정수리를 맞고 기절했습니다. 보스의 부름을 듣고 의식을 되찾지 못하다니, 형편없는 녀석입니다. 찬물을 끼얹어서 깨웁니까?”
그만 둬.
그 놈을 기절시킨 건 너잖아.
네 괴력에 맞고 기절할 정도면 그건 못 일어나는 거라고.
“그 녀석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것보다 저걸 설명해라.”
늦은 시각에도 간간히 보이던 수련생은 거짓말처럼 싹 다 사라졌다.
모자이크 괴생물체 때문이다.
나라도 저딴 게 옆에서 목검을 휘두르고 있으면 섬뜩해서라도 도망치겠다.
누가 알겠나.
저놈이 갑자기 드디어 방심했구나, 인간! 하면서 촉수를 뻗어 기생체라도 주입시키고 판타지 세계에서 에일리언의 대침공이라도 선보일지.
미궁 안과 밖을 막론하고 괴이하거나 수상쩍은 것들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수련생입니다.”
“뭐? 저딴 수련생이 있었다고?”
“오늘 받았습니다.”
시발.
넌 눈깔이 없거나 장식품인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으면 저걸 받을 리가 없다.
“저걸 왜 받았냐.”
“뭔가 기분 나쁘게 생겼지만 돈을 두 배로 준대서 받았습니다.”
“안 무섭냐?”
“한 번 겨뤄봤지만 제가 더 강합니다.”
“…….”
잘도 저딴 거랑 검을 섞을 마음이 드는구나.
축하한다, 카이사르.
네 싸이코력은 세계제일 이란다.
“…….”
왠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들어 괴생명체를 돌아보았다.
이쪽을 보고 있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아서 소름이 와르르 돋았다.
“꺄아아! 어, 어떡해! 이쪽으로 오고 있어, 보스!”
“침착해라. 공격하면 폭발할지도 모르니까 일단 거리를 벌리자.”
나는 차분하게 괴생명체가 접근하는 속도만큼 물러났다.
내 반응을 본 괴생명체가 멈칫했다.
치직 거리는 모자이크의 팔 부위가 수상쩍은 손짓을 했다.
“Jeogiyo!”
나는 안색을 굳혔다.
“수상한 언어에 수인...! 마법을 시전하려는 건가!!”
“히끅!”
“도망치자, 리나!”
리나는 놀란 나머지 딸꾹질까지 했다.
나는 그런 리나를 어깨에 얹고 달리려고 다급히 그녀를 양손으로 들어올렸다.
내 의도를 깨달은 리나는 다람쥐처럼 팔을 타고 올라가 순식간에 등 뒤에 매달렸다. 아무리 가벼운 리나라도 무게가 있어서 팔이 욱씬거렸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보스! 빨리, 빨리! 살인광이 고기방패가 되는 동안에 조금이라도 더 멀리 도망쳐야 해!”
패닉을 일으키는 리나의 외침에 역으로 정신이 들었다.
그래, 카이사르가 있잖아.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카이사르는 저거랑 겨뤘다고 했다.
“카이사르. 저 놈이 마법도 썼었냐?”
“안 썼습니다.”
휴. 그럼 무언가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감히 나와 겨루면서 실력을 숨기다니, 대단한 배짱이군.”
그만 둬!
겨우 진정하려는데 이상한 플래그 세우지 마!
“jebal domangchiji mal-ajuseyo”
“잠깐. 저건... 대륙공용어잖아?”
비틀리고 왜곡된 음성 때문에 눈치 채지 못했지만, 모자이크 괴생물체는 분명히 인간의 언어를 쓰고 있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공포심을 떨치지 못했다면 미처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녀석의 목소리는 심하게 비틀리고 왜곡되어서, 듣기만 해도 공포심이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카이사르가 내킬 때마다 마구 터지는 불완전한 폭탄이라고 생각한다면 저것도 어떤 의미로는 카이사르랑 비슷한 폭탄이라고 할 수 있다.
대신 카이사르가 폭발하면 또라이 짓을 남기지만, 저게 터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일단 두려움과 경계의 의미를 담아서 미지의 카이사르 상태라고 부르자.
“네놈. 도장에는 무슨 목적으로 쳐들어온 거냐.”
“Jeon geunyang sulyeon-eul halyeogo wass-eoyo”
“확실히 목검을 휘두르는 걸 보면 수련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대체 정체가 뭐냐.”
갑자기 미지의 카이사르 상태가 두 팔로 마구 머리를 부여잡으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행동이 거칠어지자 신체를 구성하는 모자이크 조각들이 하얀색과 검은색에서 불길한 적색과 보라색으로 변했다.
마치 몬스터의 공격패턴 같은 극명한 변화에 나는 바짝 얼어붙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aaa! nalago wonlaebuteo ileohjineun anh-ass-eo! bil-eomeog-eul miui yeosin!”
흥분해서 말하는 속도까지 빨라지며 음성이 증폭되자 이제는 분명 한국어로 말을 하는데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뭔가 자기 사정을 하소연하는 것 같은데.
그냥 저 새끼가 빨리 내 앞에서 꺼졌으면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정체 따윈 상관없어. 네가 여기에 있으면 영업이 안 된다. 돈은 돌려줄 테니 여기서 나가라. 그리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말고 네놈의 고향으로 사라져라, 괴물.”
“silh-eo! dangsin-ilang dangsin buhaneun geulaedo nalang mal-eun seokk-eojujanh-a. daleun salamdeul-eun maldo an seokk-eojundago!”
“이런 미친... 괴물이 발광한다! 카이사르, 베라!”
카이사르는 띠꺼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저걸 꼭 검으로 베어야 합니까?”
“뭐?”
“베면 저주 같은 걸 받아서 죽을 것처럼 생기지 않았습니까. 목검을 들고 겨루기는 어떻게든 했지만 저 몸체는 도저히 베고 싶지가 않습니다. 너무 불길한 기분이 듭니다.”
와. 평소엔 길 가는 행인도 기분이 나쁘다고 벨 것처럼 굴던 녀석이 이런 중요한 순간에 내빼기냐.
마구 따지고 항의하고 갈구고 욕하고 싶지만 심정적으로는 카이사르의 기분도 납득이 갔다.
저딴 걸 검으로 베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128인치 LED 벽걸이 TV에서 갑자기 흉측한 에어리언이 튀어나오면 무슨 생각이 들까.
살려줘, 시발, 오지 마, 여긴 틀렸어, 튀자.
이딴 생각밖에 안 들지 굳이 그걸 검으로 찔러보겠다는 미친 생각은 아무도 안 한다.
어떤 의미로는 카이사르보다도 무서운 녀석이군.
원본마저도 거리낌을 느끼게 하다니.
저놈은 미지의 카이사르 상태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i mom-i bogi bulpyeonhangeoji? geuleom lobeulado sseul tenikka jebal naejjochji mal-ajwo!”
괴생물체가 로브를 꺼내더니 느릿하게 뒤집어썼다.
마치 자신이 무해함을 증명하려는 행동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나는 곧 그게 착각임을 알 수 있었다.
로브에 덮인 부분에서는 모자이크가 덜 보이는 것도 아니고 로브가 모자이크에 뒤덮였다.
왜 입은 거야 로브.
그보다 그거 입는다고 의미가 있기나 했을까.
로브의 후드 아래로 드리운 어둠 속에서 적색과 자색의 조각들이 기묘하게 번뜩인다고 상상하면...
이건 틀렸어.
뭘 어떻게 상상해도 점점 더 공포심만 자극받는다.
‘미친. 이건 리치 클래스 이상이야!’
미궁의 심층지대에서 마주한 온갖 괴기스러운 것들을 볼 때에나 느꼈던 공포감이 지금 눈앞에 있는 이걸 보면서 느껴진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공포심에 로그아웃이라도 해버릴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도중이었다.
괴생물체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힘없이 한 손을 내민다.
뭐지, 저건.
신종몬스터의 공격패턴인가.
“don"
그냥 돈이라도 달라는 것 같다.
휴, 이걸로 겨우 살았군.
나는 한결 안도하며 카이사르에게 명령했다.
“저놈에게 받은 돈을 돌려줘라.”
카이사르는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상하기는 해도 딱히 저희를 공격하려는 건 아닙니다. 테이밍은 어떻습니까? 저런 흉악한 생물체를 길들인다면 보스의 악명도 미궁도시 브람에서 제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딴 걸 부려먹으면 경비대가 아니라 온갖 교단의 이단심문관이 들이닥쳐도 할 말이 없을 거다.”
“어차피 교단은 저희의 적 아닙니까. 이단심문관이 얼마나 와도 이 괴물이 숨겨진 저력을 발휘하면 전부 죽일 수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이 미친 새끼가 갑자기 왜 이래.
저게 무슨 길고양이나 똥깨라도 되는 줄 아냐.
키우고 싶다고 냉큼 잡아다 키우게.
개나 고양이는 도둑이 들어오면 짖거나 울기라도 하지.
이단심문관을 잡는 애완동물을 어디다 써먹어.
당장 악마의 추종자로 몰려서 화형당해도 할 말이 없다.
“안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저건 기를 수 없다.”
“그럼 제가 저걸 이겨서 무해한 존재임을 증명하면 기를 수 있는 겁니까?”
“너한테 지는 놈이 이단심문관은 어떻게 이긴다는 거냐.”
카이사르는 무척이나 깔보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단심문관보다 제가 더 강한 게 당연하잖습니까. 보스, 괴생명체를 보고 머리가 어떻게 되신 거 아닙니까?”
“…….”
머리가 어떻게 된 건 네 쪽이다!
하아.
정말로 도저히 내키지 않지만 카이사르가 저걸 원한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저걸 받아들일지, 내쫓고 카이사르의 호감도가 수직하락하는 걸 감수하든지.
말은 더럽게 안 듣는 애들도 애완동물을 기르지 못하면 발광을 한다.
문제는 애가 하는 발광이랑 카이사르가 하는 발광은 위력부터가 다르다는 거지.
악력으로 사람 손을 압착시키고 신경을 파괴해서 쇼크사시키는 카이사르가 미쳐 날뛰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조건이 있다.”
결국 나는 엄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을 길들이는 건 전적으로 네 몫이다. 밥 주기, 용변가리기, 옷 입히기 같은 것들은 전부 네가 해야 한다. 절대로 나중에 정이 떨어졌다고 버리려고 들면 안 된다.”
“잠깐, 보스! 저건 애완동물이 아니라고! 애가 떼쓰는 걸 들어줘도 버릇이 나빠지는데 저 살인광이 떼쓰는 걸 받아주면 폭탄이 두 개로 늘어나는 거잖아!”
“리나. 그럼 이거 하나만 묻도록 하겠다.”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물음을 던졌다.
“최악의 사태가 닥쳐서 저 괴물이 경비대나 이단심문관도 처리할 수 없는 존재라서 밤마다 우리 아지트나 수련장 근처를 어슬렁거린다면. 그거 매일같이 외면하고 살 자신 있냐.”
“아니…….”
“분위기로 봐서 저놈은 아직 인간의 맛을 모르는 괴물이다. 길들일 수 있을 때 길들이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내가 하는 건 싫고, 너도 싫겠지. 그럼 카이사르밖에 없다.”
여관에 처박혀있을 레이브?
거품 물고 기절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
“으으.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 어쩔 수 없지…….”
결국 나와 리나의 합의하에 모자이크 괴생물체는 카이사르에게 떠넘기기로 결정됐다.
카이사르는 당당하게 모자이크를 향해 원반을 들어보였다.
“이게 뭔지 알겠냐.”
“wonban”
“놀아주지. 그럼 물어와라.”
휙! 핑그르르.
카이사르가 괴력을 실어 있는 힘껏 집어던진 원반이 시야 저 멀리 사라졌다.
모자이크 괴물은 멍청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다시금 카이사르를 내려다보고, 이쪽을 쳐다보았다.
뭐. 어쩌라고.
“nan gaega aniya. wonban-eul wae juwoya haneunde.”
“원반을 주워야 하는 이유? 네가 내 명령에 복종하고 보스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는 안전한 생물체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먹고 살고 싶으면 얌전히 주워 와라.”
“meoggo salgo!? jaewojuneun geoya?”
“가토 녀석은 약해빠졌으니까 너처럼 괴이한 존재와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살면 담력이 강해지겠지. 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동귀어진을 수련하는 데 좋은 교본이 될 거다.”
“dangjang juuleo galge!”
모자이크 괴생물체는 정말로 원반을 주우러 나갔다.
뭐야, 이놈들.
어째서 대화가 성립되고 테이밍까지 이루어지는 건데.
그보다 가토는 무슨 죄냐.
지 집도 아닌데 멋대로 괴물이랑 같이 살게 만드네.
‘가만. 여관에서도 숙박거부를 할 외관이니 저게 여기서 안 살면 머무를 곳이 흑산회 아지트밖에…….’
좋아, 결정이다.
기절한 가토가 깨어나거든 듬직한 모자이크 괴생명체를 녀석의 동거인으로 소개시켜주자.
물론 선택권은 없다. 내가 맡긴 싫으니까 니가 떠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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