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8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 =========================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13)
수 시간에 걸친 치열한 고민 끝에 나는 찾아냈다.
방법이 없다는 걸.
“무조건 얼버무린다. 세세한 걸 따져가며 생각해도 무의미해. 일단 청학도장으로 쳐들어간다.”
“알겠습니다.”
“일단 수련생들을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아라.”
갑작스러운 소집에 응한 수련생들은 10명이 전부였다.
기껏해야 이 정도 뿐이었다.
가토가 지키고자 했던 백보도장의 수련생은 이게 전부다.
“가토님은 어디에 계시죠?”
“녀석은 떠났다.”
“!!”
“대신 우리에게, 그리고 너희에게 마지막 전언을 남겼다.”
“그런. 이렇게 갑자기…….”
나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카이사르와의 결투로 재능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꿈을 접고 고향에 내려가겠다. 남은 수련생들을 잘 부탁한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말했었지.”
“제길, 그 바보처럼 열혈인 양반이 그딴 소릴 하다니...”
“믿기지 않아...”
“이거 농담... 일 리는 없겠지. 크윽...”
“저희에게 남긴 전언은 무엇입니까?”
갑작스러운 이별에 혼란스러움이나 슬픔 따위를 느끼는 수련생들의 사이로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 남자의 두 눈에 실린 감정은 분노였다.
“모험가의 길은 길고도 험난한 고도를 헤매는 수도자의 길과도 같다. 기나긴 고행 속에서 자신이 걷는 길에 어떤 확신도 품지 못한 채 헤맬 날이 반드시 찾아온다.”
“…….”
“그때 흔들리는 자신을 다잡아줄 수 있는 건 무수한 땀을 흘리며 쌓은 실력뿐이다. 나는 그게 부족해서 떠나지만 너희는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그게 녀석의 마지막 말이었지.”
일개 도장의 주인과 수련생들의 관계라고 해봤자 뭐 그리 대단하겠나.
사실 대부분의 놈들은 별 특별한 관계는 없었을 거다.
그래도 어디에나 인연을 쌓고 사는 별종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어이, 펠베. 어디 가는 거야!”
“가토가 없는 도장에는 남을 이유 따윈 없어.”
나는 떠나는 그의 등에 대고 물었다.
“보지 않아도 괜찮겠나? 가토의 한을 갚는 모습을.”
“한?”
“청학도장. 우리는 지금부터 그곳에 쳐들어갈 예정이다. 가토의 앞을 가로막고 그를 절망하게 만든 청학과 마주해서 부순다. 그것만이 떠난 가토를 기릴 수 있는 유일한 복수다.”
펠베는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보더니 그대로 떠났다.
“멍청한 녀석. 땀내 나는 양반을 유독 잘 따른다 싶더라니, 가토의 죽음에 실성하기라도 한 건가.”
“글쎄. 녀석의 기분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보다 중요한 건... 일단은 우리 수련을 방해했던 청학 도장주인과 저 흑산회 보스가 한판 붙는다는 거지.”
“그래. 저 사람이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
무책임한 기대와 희망 속에서 나는 조용히 만족했다.
열 명 중에 아홉 명.
이탈율은 고작 10%에 불과하다. 나쁘지 않았다.
[화술스킬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간다. 잠깐 저 앞까지 복수를 마치러. 따라올 놈들만 따라와라.”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가장 앞서 걸어갔다.
그런 내 양 옆으로 따라붙는 카이사르와 리나.
우리들의 입가에는 분명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늘었다.
대열을 갖추며 아홉 명의 수련생들이 뒤따랐다.
이런 이벤트, NPC와 게이머를 막론하고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우왓, 저 사람들 뭐야? 기세가 장난 아닌데.”
“백보도장의 수련생들 아니야? 가토는 어디에 있지?”
“잠깐. 저 방향은 청학도장으로 향하는.. 도장전쟁인가! 따라가자!”
눈치 빠른 도시주민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내게는 좋은 일이다.
이 결전을 보는 눈은 하나라도 많은 편이 좋다.
‘대결을 회피한다면 청학의 인망은 바닥에 떨어진다.’
내 화술은 그 효과를 더욱 극대화시킬 수 있다.
싸우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바라는 바다.
청학은 검 한 번 휘두르지 못한 채 모든 걸 잃을 테니까.
“정지! 당신들 뭔데 대로변에서 이 숫자로 움직이는..”
앞을 가로막는 놈들을 떨쳐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경비대조차도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든 모습에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고자 나섰지만 나는 짧게 말할 뿐이었다.
“꺼져.”
“헉”
경비대원은 크게 움찔하며 물러났다.
이윽고 그런 스스로에게 반발하듯 이를 악물고 덤벼들려 했지만, 그 시도가 이행되는 일은 없었다.
내 뒤를 따라붙는 카이사르가 녀석에게 눈길을 한 번 주는 것만으로 경비대원이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마침내 도착했다.
청학도장의 굳게 닫힌 문을 보며 나는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도중에 시민 몇이 앞으로 뛰어간다 싶더라니 청학도장의 수련생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보스. 제 힘이라면 이 정도 문은 부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여기서 카이사르의 힘을 드러내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연출이 되지 않는다.
지금 내세워야 할 명분과 소재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청학! 문을 걸어 잠그고 꼬리를 만다고 피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
“네놈이 가토의 백보도장 수련생을 빼돌리기 위해 저지른 죄를 정정당당한 대결로 갚지 않는다면! 청일에게 네놈에 대한 모든 정보를 넘기겠다!”
도장문 너머로 확실하게 소란이 일었다.
이건 피할 수 없다.
청학이 청일을 원수로 둔 건 확실하다.
쿠궁.
끼기기기긱.
굳게 걸어 잠근 문이 열렸다.
잔뜩 모여든 청학도장 수련생들은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의 중심에 검을 들고 선 청학 또한 표정이 굳었다.
“가토의 수련생들인가. 이 늦은 시각에 남의 도장에 쳐들어와서 대체 이 무슨 무례한 짓이냐!”
“개소리 마라! 네놈이 저지른 무도한 짓으로 백보도장과 청학도장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음을 어느 누가 모르겠는가! 검만이 모든 걸 말한다!”
스르릉!
매서운 브로드 소드를 뽑아들자 청학의 안색이 한층 더 싸늘해졌다.
“정녕.. 죽고 죽이는 살육을 저질러보자 이거냐?”
“물론! 허나 이쪽도 수련생들의 무의미한 희생은 원하지 않는다. 양 도장의 대장전을 요구한다!”
“하! 대장전? 풋내기 가토 따위가 잘도 용기를 내었군. 나와라, 가토! 이 대결에 응해주지! 네놈의 목을 쳐주겠다!”
살기등등하게 외치며 장검을 뽑아드는 청학.
오롯이 선 그의 자세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 녀석은 강하다!
정밀한 검술을 바탕으로 간격을 재고 검합을 겨룬다.
투지만으로 막무가내로 덤비면 피를 흘릴 뿐이다.
‘비급서는 없을지라도 청학의 무술 하나만큼은 대단하군.’
설령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이쪽에서 내세울 카드는 대장전을 빙자한 대리전.
청학 역시 대리인을 세울 수 있다면...
“내가 가토다!”
“!?”
“가, 가토!? 아니, 달라!!”
살벌한 표정의 청학마저 당황하며 표정이 무너졌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소리치며 앞으로 나선 자는 카이사르니까.
“장난치지 마라! 네가 어딜 봐서 가토냐! 가토의 근육은 너처럼 정교하지도 않고, 놈의 인상은 너처럼 살벌하지도 않다! 그런 유약한 녀석이 이렇게 될까보냐!”
“그런가.”
“그렇다. 장난은 그만두고 얌전히 네놈의 정체나 밝혀라.”
카이사르는 두 눈으로 무지막지한 투지를 불태우며 가슴을 쾅, 내리쳤다.
“분명 과거의 나는 보잘 것 없었지. 허나 지금은 다르다!”
“하?”
“나는 나약한 가토이기를 포기했다! 비록 몬스터에 맞서기 위한 무술일지라도 필요하다면 몬스터가 아닌 사람이라도 죽인다! 지금의 나는 각성한 진·가토다!”
그딴 개소리에 속을 사람이 있겠냐!
“오오. 저 사람이 백보도장의 가토라고? 대단한 기백이네.”
“나 저 사람 도장 다녔는데. 몰라보게 달라졌네.”
“그만큼 각오가 남다른 거겠지. 이 대결의 승패는 정말로 모르겠는걸. 어쩌면 가토가 이길지도 몰라.”
전부 다 속았다!?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를 않잖아.
그보다 딱히 가토가 아니어도 싸움구경만 할 수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분위기다.
가토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백보도장의 수련생들도 굳게 입을 다물었다.
카이사르가 가토의 복수를 한다.
그들의 눈에는 그런 방식으로 눈앞의 광경이 비추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걸로 간다.
이런 유형의 설전은 분위기를 주도하는 자가 이긴다.
“억지도 정도껏 부려라! 내가 겨루고자 했던 건 백보도장의 가토지, 누군지도 모를 너 따위가 아니다! 가토의 이름을 빌미로 청학도장을 노리는 속셈을 모르는 줄 아는가!”
“가토는 백보도장의 최강자! 백보권을 상징하는 자! 그의 의지를 물려받았다면 나야말로 가토임을 자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무슨 터무니없는 폭론(暴論)을...!”
엉망진창인 논리다. 조금만 들춰내면 찌를 구석이 산적한 약점투성이 논검(論劍)이다. 그러나 기세가 달랐다.
내가 나설 차례조차도 없었다.
카이사르는 기백 하나만으로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남자의 의지를 이어받았다. 거기에 무슨 말이 달리 필요하단 말인가.
“네놈이 무인이기를 자처한다면 이 도전을 피하지 마라!”
“이 형편 좋은 타이밍... 그런가. 네놈들인가.”
청학의 눈이 심유하게 가라앉았다.
“네놈들이 나를 노리고 일련의 흉계를 꾸민 장본인이었는가. 확실히 가토에게는 불가능한 모략이었군. 흐흐. 흐하하! 설마 이런 난적이 끼어들었을 줄이야. 예상치도 못했어.”
포기한 기색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청학의 입가에는 비틀린 조소마저 어렸다.
“네놈들의 목적은 여기서 나를 꺾고 청학도장을 접수하는 것이겠지. 허나 마무리가 어설펐다.”
“뭐라?”
“그 계획이 성립하기 위한 최종요소는 바로 나, 청학을 일대 일 대결로 쓰러뜨리는 것! 대장전에서 내가 승리한다면 너희는 어떻게 내 사형을 알고 있는지 말해줘야겠다!”
위를 향해 치켜세운 검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오오오오오! 대결이 성립했다!”
“횃불을 가져와!”
“곧 있으면 해가 저문다. 빛이 없어서 대결할 수 없다는 변명은 인정 못해!”
연병장 주변을 수많은 횃불과 관중들이 둘러쌌다.
마치 포위라도 할 기세로 횃불들이 장렬하게 불타올랐다.
일렁이는 불꽃 너머로 두 남자는 묵묵히 대치했다.
“전사 치고는 말을 잘하더군.”
“내 검도 마찬가지일거다. 버러지.”
“흐흐흐. 그렇다면 보여주도록 하지. 네놈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모략이라는 게 어떤 건지.”
청학은 치켜 올린 입매를 억누르며 진중한 목소리로 소리쳐 말했다.
“좋다. 네놈을 가토의 대리인으로 인정한다. 허나 가토의 대리인이 된 이상, 네놈은 백보도장의 최고실력자로 나선 것일 터. 이 대결을 성립하고자 한다면 너는 반드시...”
“반드시?”
“백보도장의 무술, 백보권으로 나와 싸워야 한다! 백보도장의 무술이 아닌 다른 무술에 패배한다면 이건 두 도장의 대결이 아닌 네놈의 사적인 개입일 뿐이다!”
청학은 관중들을 돌아보며 소리 높여 물었다.
“도장을 대표하는 자가 도장의 무술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그대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관중들은 청학의 적극적인 태도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옳소! 도장의 대표라면 도장무술을 사용해야지!”
“이거 불타오르는 걸!”
“좋다! 드디어 청학이 나섰다! 이 정도는 응해주라고!”
환호성의 사이로 우려의 목소리 또한 커졌다.
“저 남자가 정말로 백보권을 사용할 수 있을까?”
“분명 강해보이기는 해도... 무술은 별개잖아.”
“백보권을 쓸 수 없다면 아무리 강해도 의미 없어.”
수련생들은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거의 다 몰아세웠건만 마지막 단계에서 명분을 잃었다.
이대로는 가토의 복수는 해내지 못한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그런 수련생들의 동요에 휘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카이사르 님은 백보권을...”
“익혔다.”
“네!? 고작해야 일주일도 안 되는 사이에 가능한 겁니까!?”
아무리 삼류무술이라고 해도 자세인 형(形)과 동작인 초(招)를 익히고 기술인 초식(招式)을 전개해 무술(武術)에 도달하는 과정은 많은 시간과 숙련도를 요구한다.
일주일? 일반인이라면 당연히 불가능하다.
허나 카이사르는 일반인이 아니다. 전투의 천재 특성을 지닌, 전 인류를 통틀어서도 독보적인 재능을 지닌 인재다. 그는 백보권의 핵심을 일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꿰뚫었다.
“좋다! 버러지 따위는 백보권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신의를 등지고 칼을 고쳐 잡은, 가토를 버리고 청학도장에 넘어간 쓰레기들이 증명해줄 거다.”
“네놈... 진심으로 이 나와 백보권으로 겨루겠다고? 그런 한계가 뚜렷한 삼류무공으로 이 내게?”
“그렇다! 네놈은 그 삼류무공에 의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다!”
광오한 선언.
관중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하였다.
이제 대결은 피할 수 없다.
가토의 복수를 건 생사전의 시작이다.
뭐, 죽인 건 이쪽이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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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폭참!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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