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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43화 (43/224)

00043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 =========================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18)

치유의 교단 사제들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후유증을 치료하고 싶어서 왔다.”

“으아아, 저주가 도지셨나요? 큰일인가요? 분명 그렇겠죠!? 당장 알라인 사제님을 불러올게요!”

“…….”

이건 또 왠지 모르게 익숙한 패턴인데.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부리나케 회백색 머리칼을 지닌 중년남자가 튀어나왔다.

일전에도 마주쳤었던 중급사제 알라인이었다.

“그 상처는! 혹시 저주의 영향으로 인해 신체가 자연적으로 터지기라도 한 겁니까?”

“암습을 당했다.”

그딴 저주가 있겠냐.

만일 걸린다면 살아남을 자신도 없다.

거의 무조건 죽잖아.

“포션을 복용하고 생기는 후유증을 없애고 치유효과를 온전히 일으키고자 한다.”

알라인은 리나에게 다가가 진중한 어조로 감사를 표했다.

“장한 일을 해주었소.”

“응??”

“그런 여린 체구로 발버둥 칠 보스를 제압하다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텐데.”

리나는 겸양이나 가식을 모르는 성격이다.

“리나는 아무것도 안했어.”

“뭣...!? 그, 그럼!”

“보스는 처음부터 혼자 참았어. 그게 걱정되어서 온 거야.”

어딘지 모르게 침울하게까지 느껴지는 말이었다.

내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일까.

미안하니까 다음부터는 조금 긁는 척이라도 하면서 리나가 보스를 구했어!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다.

“당장 치유실로!”

그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로 아프지는 않은데.

애초에 아프다는 감각도 아니고.

말해봤자 믿지도 않을 테니 얌전히 따라갔다.

“고통 억제! 원기 활성화! 질병저항 부여!”

알라인의 손이 신속하게 복잡한 수인을 완성할 때마다 빛이 번뜩이며 내 몸에 스며들었다.

[중급사제 알라인의 치유에 의해 부상의 후유증이 완벽하게 사라집니다.]

[건강상태가 정상이 되었습니다.]

손을 꼼지락거려도 미미하게 걸리는 느낌은 안 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치유가 잘 되었군.”

“맙소사... 암흑조직의 보스들은 다 이렇소?”

“뭐가 말이냐.”

“아프지도 않느냐는 말이오. 치유의 힘은 필수적으로 고통을 동반하기에 어지간한 고통내성으로도 온전히 견뎌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터이건만...”

“딱히 이 정도는 고통의 축에도 속하지 못한다.”

중급 체력회복 포션이 아파봤자 얼마나 아프다고. 상급이나 되어야 이거 좀 쑤시는군, 하고 느끼고 최상급은 마셔줘야 욕이 튀어나온다.

그런 내 말을 들은 중급사제 알라인과 리나의 얼굴에 경악의 감정이 뚜렷하게 어렸다.

“허세가 아니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역시 보스는 대단해! 입만 산 다른 머저리들과는 달라!”

[중급사제 알라인의 호감도가 3 상승합니다.]

[리나의 충성도가 1 상승합니다.]

“…….”

이놈들은 정말로 사람 말을 안 들어 먹는다.

그냥 너네 멋대로 생각해라.

“그것도 그 저주 때문이오?”

“응? 무슨 저주?”

“보스. 뭐든지 숨기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오.”

알라인은 웃음기 하나 없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팔 한쪽이 모조리 갈라질 정도의 혈흔이라니. 이 정도의 부상을 입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 보통은 불가능하오.”

“보스는 보통이 아니야!”

“그게 바로 문제이지. 이런 고통에 조금의 내색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평소에 이보다 더한 고통을 수도 없이 경험했기 때문이오.”

리나는 두 눈을 깜빡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의 보스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강력한 저주에 의해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을 거라는 말이오. 그것도 팔이 갈라지는 건 아무렇지도 않을 고통을.”

“!?”

리나는 믿을 수 없다며 내 팔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보스. 저런 거 거짓말이지?”

“물론 거짓말이다. 저 사제는 상상력이 풍부한 모양이군.”

“...정말로?”

저 망할 사제가 시나리오 쓰고 있다고 말해줘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빌헬름 마이어. 저 남자는 부하들이 자신의 고통에 신경 쓰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오. 허나 부하된 자로서 보스의 고초를 깨닫지 조차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괴로운 일일 터.”

“전적으로 동감이야. 어떻게 보스는...!”

무어라 따지려던 입이 멈칫거리기를 몇 차례.

목끝까지 치밀던 말들이 모두 사라졌다.

리나는 그저 울적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보스는 비밀이 너무 많아. 리나가 못미더운 건 알지만 아픈 건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잖아…….”

“고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표정 짓지 마라.”

“우윽...”

리나의 맑은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보다가 홱 고개를 돌렸다.

“바보. 누가 누굴 신경 쓰는 거야? 보스를 지켜주는 게 리나의 역할이라고.”

“괜한 말을 한 건가?”

“당연하지. 다시는 리나한테 약한 소리 하지 마. 보스가 그렇게 강하게 있고 싶다면... 리나도 약해지지 않을 거니까.”

어떻게든 차오른 눈물을 의지만으로 참아낸다.

내심 그녀를 인정했다.

감정조차도 죽이는 암살자는 흔치 않다.

수십 년을 살업에 몸을 맡긴 전문암살자들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리나에게는 그만한 세월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치열함과 절박함만이 그녀를 북돋아주었겠지.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엿한 암살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 그녀가 아이취급은 하지 말라고 말한다.

“어쩔 수 없군.”

내가 손을 들자 리나가 움찔했다.

뭐. 내가 너 때리기라도 하는 줄 알았냐.

한대만 쳐도 손모가지가 잘릴 텐데.

“으읏... 으?”

“뭘 겁먹는 거냐. 리나.”

“지금 뭐 하는 거야?”

뭘 하냐니.

평소처럼 턱 아래를 손끝으로 살살 쓸어주고 있는데.

“기특한 소리를 한 것에 대한 포상이다. 기쁘게 받아들여도 좋다.”

“이런 걸 포상이라고 하는 건 보스밖에 없을 거야...”

그런 것 치고는 할 때마다 순순히 받아주는데.

아마 한 시간 정도는 순순히 몸을 맡기겠지.

“제길. 치유의 교단의 중급사제로서 이대로 당신이 고통을 겪는 걸 방관할 수만은 없소. 직접 따르는 게 안 된다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도움을 주어야 마땅할 터.”

알라인은 흰색 십자가가 새겨진 로브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일전에도 보았던 물방울 모양의 목걸이였다.

“부디 이 목걸이를 받아주시오.”

“이건?”

“확인해보면 알 것이오.”

나는 떨떠름한 기분을 숨긴 채 목걸이를 넘겨받았다. 이거라도 받지 않으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날 귀찮게 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치유의 목걸이][등급 : 마법][분류 : 목걸이]

[기본 : 치유의 교단에서 사제들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목걸이. 소지하는 자의 건강상태를 지속적으로 회복시킨다.]

[마법 : 중급사제 전용 특전으로 인해 목걸이를 착용한 자는 ‘고통내성’ 특성을 적용받는다.]

말도 안 되게 좋은 목걸이를 받아버렸다.

“이런 걸 외인에게 줘도 되는가?”

“물론 교단의 어르신들에게 들켜서 득이 될 건 없지만... 분실신청을 마치고 막대한 벌금을 지불하면 감당하지 못할 것도 없소. 앞으로 1년만 괴로운 일을 잔뜩 맡으면 되니.”

“날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뭐지?”

진심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놈이랑 내가 대체 무슨 관계라고 이렇게까지 해주는가.

알라인은 성호를 그으며 기도하듯 말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위해 고통을 참는 사람은 결코 흔치 않소. 하물며 그 고통의 원인이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강대한 저주라면 더욱 그러하겠지.”

“…….”

“빌헬름 마이어. 당신 같은 보스는 당신 말고는 이 세상에 없으리라 확신하오. 그렇기에 암흑가에 종사하는 자일지라도 그 숭고한 의지가 꺾이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오.”

쉽게 말하자면 부하를 아끼는 마음씨가 좋았다는 건가.

전직 보육원장 출신이었던 보람이 있군.

“이 건에 대해서는 이걸로 마무리 짓고... 다음으로 묻고 싶은 게 있소.”

“음.”

“정 목걸이를 받은 게 마음에 걸린다면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걸로 마음의 빚을 청산하여도 좋소.”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일단은 들어볼 수밖에 없겠군.

“말하라.”

“당신을 암살하려는 자는 대체 누구이오?”

조금 곤란한 질문이다.

“교단은 세외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게 방침이었을 텐데.”

“개인으로서의 의문이라 여겨주시오.”

“암살의 배후를 알게 된다면 무얼 하려는 거냐.”

알라인의 두 눈이 형형하게 번뜩였다.

“신전기사단에 알릴 생각입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신전기사단이 출동해서 사채업자 바르돈을 제거한다.

얼핏 듣기에는 아주 괜찮은 제안으로 들린다.

다만 그 다음부터가 문제가 된다.

신전기사단이 협력한 범죄조직.

이런 말이 언젠가 적대세력의 입에서 나오게 된다면?

신전기사단은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흑산회를 제거해서 잘못된 평판을 없애자.

그때는 바르돈을 박살낸 신전기사단이 우리를 적대하는 막강한 적성세력으로 돌변한다.

그것도 신전기사단을 적으로 돌릴 만큼 머리가 돌아가는 강적이 있는 상황에서.

진다면 파멸이지만 이겨도 치유의 교단의 신전기사단을 격파했다는 악명으로 인해 온갖 교단의 적이 될 거다.

“양지의 조직과 음지의 조직이 어떤 형태로든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면 반드시 양자 모두에게 해가 될 수밖에 없다.”

“그건...”

“알라인 사제. 그대의 뜻은 충분히 이해했다. 허나 선을 넘어서는 모두가 불행해질 뿐이다. 선의는 마음속에 간직해둘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 틀렸는가?”

사제의 고개가 처량하게 숙여졌다.

“중급사제가 된 이후로 이토록 무력함을 실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소. 보스. 당신이라는 남자는 번번이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군.”

“사제의 긍지는 마음의 긍지로 결정된다. 그런 점에서 당신은 훌륭한 사제라고 할 수 있겠군.”

“허허.”

마른 웃음은 어쩐지 처연하게 느껴졌다.

[중급사제 알라인의 호감도가 15 상승합니다.]

[현재 호감도 : 25]

[알라인의 호감도가 일정수치(25)를 돌파했습니다. 알라인이 당신에게 품는 한 가지 감정에 보정이 주어집니다.]

[보정감정 : 동정심]

[알라인은 당신에게 보통 이상의 동정심을 품습니다.]

호감도 단계에 따른 감정 보정이라.

이런 기능은 전작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과연 어느 정도의 보정이 주어질까.

“그리고... 이것도 받으시오.”

알라인은 품에서 주머니를 하나 건네주었다.

뭐지. 돈인가.

일단 주는 건 받아두고 생각하자.

“뭔지는 모르겠지만 고맙게 받도록 하지.”

“건빵주머니이오.”

시발 그딴 걸 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데.

고마운 마음이 싹 사라졌다.

“몸이 안 좋을 때에는 속을 든든하게 채워야만 하오.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잊지 말고 챙겨 드시오.”

“알겠다.”

“나머지는 나중을 기약하겠소.”

보통 이상의 동정심은 이런 거였군.

확실하게 알았다.

겁나 애매한 수준의 보정이네.

“보스. 사제는 의외로 좋은 사람도 있네?”

“의외로 라는 건?”

“얼마 전에 본 종말교단의 사제도 있잖아.”

아. 이건 딱 잘라서 말할 수 있다.

그 녀석이 예외다.

그런 희귀교단의 사제는 원래 찾고 싶어도 못 찾는다고.

“보통은 그렇게까지 썩지는 않는다.”

“그렇구나.”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주변 경계는 철저히 했다.

경계가 투철해서인지 인간사냥꾼의 습격은 없었다.

일단은 안전을 위해 여관에서 나와 백보도장으로 거처도 옮겼다.

우물우물

입이 심심해서 건빵도 먹어봤다.

이거 의외로 맛있네.

빈둥거리는 내게 교관후보생 한스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보스! 교단에서 선물이 왔습니다!”

“뭐?”

“치유의 교단에서 보내는 구호물자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구호물자는 왜 받습니까?”

몰라.

그딴 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용물은?”

“건빵입니다.”

“수량은?”

“다섯 박스입니다. 공짜로 받으니 좋기는 하네요. 하하.”

“…….”

나중을 기약한다는 건 이런 의미였냐.

무식할 정도로 많이도 주네.

어느 정도의 동정심이면 이런 걸 덤으로 주는 거냐.

건빵 한 주머니가 다섯 상자로 늘어날 정도라면 나중에는 신전에서의 의뢰보상도 불쌍하다면서 막 몇 십 배 늘어나는 거 아닐까.

뭐, 역시 그렇게까지 터무니없지는 않겠지만.

…….

…….

…….

혹시 모르니까 다음에 신전에 갈 땐 의뢰 하나를 물어와야겠다.

============================ 작품 후기 ============================

연속폭참! (6/8)

잠깐! 다음 화로 넘어가기 전에 추천을 잊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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