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4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 =========================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19)
바르돈은 이미 손을 쓰기 시작했다.
인간사냥꾼의 암살행동 개시.
방치한다면 언제 어디서 호된 꼴을 당할지 모른다.
‘기계석궁에 쇠꼬챙이라.’
괴악한 조합이지만 파괴력 하나는 발군이다.
직격당하면 몸이 박살난다.
녀석이 행동할 기회를 많이 주어서는 안 된다.
“카이사르. 리나.”
“무엇이든 명령하십시오, 보스.”
“뭘 해줄까? 보스.”
암살이 시작됐다면 이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사채업자 바르돈은 감히 내게 자객을 보냈다. 놈을 죽이고 재산을 강탈한다.”
역할분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카이사르. 너는 바르돈의 본거지로 쳐들어가서 녀석의 목숨과 녀석과 관련된 모든 자들의 목숨을 끊어라.”
“알겠습니다.”
“리나. 너는 암살을 진행 중인 인간사냥꾼을 찾아내어 역으로 녀석을 암살해라.”
“문제없어!”
“나는 백보도장에 머무르며 바르돈의 본대가 침략해올 시, 교관후보생들을 동원해 막아내겠다.”
말이야 번드르르 하게 했다만 실은 혼자 안전한 곳에서 안전하게 머무르겠다는 거다.
그래도 명분이 있으니까 ‘나 도장에서 그냥 꿀 빨래’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듣기 좋잖아?
[조직원 카이사르가 행동지령을 이행합니다.]
[조직원 리나가 행동지령을 이행합니다.]
이걸로 전쟁은 끝났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저 녀석들이 또라이 같은 면모가 강하기는 해도.’
그런 면모는 전쟁에 한해서 최강의 장점이 된다.
적을 죽인다.
목적이 무엇이든, 어떤 방식을 취하든 확실하게 죽인다.
그것 하나만 수행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적을 죽이고 자신은 살아남는다.
전쟁에 있어 그보다 필요한 덕목은 없다.
‘나머지는 느긋하게 대기하기만 하면 될 일이지.’
푸딩이나 퍼먹고 있을까.
주방 선반을 뒤적거리고 있자니 알림이 떴다.
[카이사르가 적대조직과의 교전을 개시합니다.]
나가고 5분도 안 지나서 신속하게도 초전인가.
[First Blood!]
[카이사르가 적대조직원을 죽였습니다.]
[카이사르의 사기가 20 상승합니다.]
[카이사르의 사기가 일정수치(80)를 돌파했습니다. 한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부여됩니다.]
[부여효과 : 무자비]
[카이사르는 눈에 띄는 모든 적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며, 적은 카이사르를 발견할 시 일정 확률로 공포에 빠집니다.]
[카이사르의 공포유발 스킬의 숙련도가 가파르게 상승합니다.]
양떼 사이에서 날뛰는 늑대가 따로 없다.
완전 신났네, 이놈.
역시 카이사르가 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의외로 듬직하군.’
확실하게 이기는 필승카드라고 해야 하나.
카이사르를 보낸 전선은 절대 질 거라는 생각이 안 든다.
[카이사르가 적대조직과의 연전을 개시합니다.]
[Tripple Kill!]
[카이사르가 적대조직원 3명을 죽였습니다.]
[적대조직원 5명이 상태이상 공포에 빠졌습니다.]
[적들이 전의를 상실합니다.]
[카이사르가 저항하지 않는 5명의 적을 학살합니다.]
이딴 걸 보고 있다고.
저게 어디 가서 맞고 다닐 놈이라고 생각되는가.
저 정도면 칼로 찔러도 안 죽겠다.
“음.”
초코푸딩은 맛이 괜찮군.
따로 시럽을 뿌리지 않아도 달달한 맛이야.
아니, 이미 초코가 시럽인가?
[카이사르가 중립세력과 교전을 개시합니다.]
[Penta Kill!!]
[카이사르가 중립세력의 전투원 5명을 죽였습니다.]
야들야들한 푸딩을 유린하던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졌다.
너 이 자식.
지금 어디서 뭘 죽이고 다니는 거냐.
[중립세력 알프라도의 황금잔이 적대세력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발.”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자, 주방에 막 들어오려던 교관후보생이 움찔거렸다.
“죄, 죄송합니다.”
“너한테 한 말 아니다.”
알프라도의 황금잔이 어디서 뭘 하는 조직인지는 간략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교전 중에 시비가 붙어서 살해했다.
바르돈의 사무실 가는 길에 있는 범죄조직이 재수 없게 카이사르의 눈에 띄어서 죽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카이사르.
넌 무슨 자연재해 같은 거냐.
[카이사르가 적대조직과 전면전을 개시합니다.]
[Hepta Kill!!]
[카이사르가 적대조직원 7명을 난도질했습니다!]
[D급 업적 전장의 공포 달성!]
[카이사르의 경악스러운 학살극에 알프라도의 황금잔 조직원들이 공황상태에 빠집니다.]
[카이사르의 공포부여 스킬 숙련도가 미친 듯이 상승합니다!]
[카이사르의 레벨이 4가 되었습니다.]
[카이사르의 공포부여 스킬 등급이 상급 숙련이 되었습니다.]
[공포부여] [등급 : 일반] [분류 : 공통스킬]
[숙련도 : 상급 숙련 - 레벨 1(0.01%)]
[기본 : 당신의 무자비한 심성은 타인을 억압하고 짓누르며 공포에 빠뜨리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행동은 언제나 타인의 공포를 유발합니다.]
[중급숙련특전 : 잔혹한 행동을 통해 발생시키는 공포의 양이 증가합니다.]
[상급숙련특전 : 유혈을 일으켜 발생시키는 공포의 양이 증가합니다.]
이 녀석이 미쳤나.
죽이라는 적은 안 죽이고 엄한 놈들 패면서 강해지네.
이 새끼 완전 잘못된 방향으로만 유능하잖아.
[카이사르가 길을 잃었습니다!]
심지어 진짜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어!
잠깐.
길을 잃었다는 건 이제부터 저 녀석은…….
사채업자 바르돈과는 완전히 무관계한 범죄조직이 우글거리는 뒷골목에서 닥치는 대로 범죄조직들과 전쟁을 벌이며 학살을 시작한다는 건가?
에이, 설마.
내심 바보 같은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막 나가지는 않을 거다.
[카이사르가 다수의 중립세력과 교전을 개시합니다.]
[Dodeca kill!!!]
[카이사르가 다수의 중립세력의 조직원 12명을 모조리 토막 내었습니다!]
[경고. 경고.]
[다수의 범죄조직이 흑산회를 적대세력으로 인식합니다.]
[현재 게이머의 실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중립조직 붉은도끼파가 적대조직이 되었습니다.]
[중립조직 샤갈의 이빨이 적대조직이 되었습니다.]
[중립조직 잔혹한 패거리가 적대조직이 되었습니다.]
조금도 바보 같은 걱정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잖아.
[돌발 이벤트! 즉각 탈출!]
[다수의 적대조직이 흑산회와의 전면전을 치르고자 병력을 집결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살고자 한다면 지금 즉시 달아나야 합니다.]
[도주에 성공할 시, 도시에 남겨둔 재산은 모두 상실하지만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습니다.]
그야 보통은 도망치겠지. 지금 내 스펙을 생각하면 도망치는 게 당연한 거다.
레벨 2밖에 안 되고. 전투능력은 없다시피 하며, 조직원 한 명도 잡으려면 무조건 부상을 입어야 한다.
목숨과 맞바꾸며 싸워야 겨우 몇 명을 죽일 수 있는데, 그렇게 죽여도 모여든 적대조직원은 수십 명에 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도시 밖은 불가능하겠지.’
놈들이 내가 도망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당장 백보도장 주변으로 병력을 포진시킬 거다.
포위망을 뚫고 성문을 나가는 건 지극히 힘겨운 일이다.
그래도 살 길이 없는 건 아니다.
미궁.
인간의 발길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위험지대가 있다.
‘일단 안에 들어간다면 잠깐의 생존은 보장된다.’
범죄조직의 조직원들도 그리 간단히 쫓을 수는 없다.
장기수색을 위해 이런 저런 준비를 해야 한다.
반면 이쪽은 얼마 전부터 미궁에 들어가려고 벼르고 벼르며 모든 준비를 마친 상황.
시스템은 지금 권하고 있다.
미궁으로 도망치라고.
[자체통찰력에 의한 추가정보 습득!]
[통찰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흑산회는 현 시점에서 성문으로 갈 여력이 없습니다. 지금 즉시 미궁으로 도망치십시오!]
그게 당연하다.
보통은 여기서 도망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가 않다.
‘미친놈들이랑 어울려서 그런가.’
갑자기 내 머리까지 어떻게 되어버린 것 같다.
도망치고 싶지가 않다.
시스템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며 즉시도주를 권장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의견에 동의할 수가 없다.
다른 게이머라면 모를까.
나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재미있군.”
그래, 이런 스릴을 원했다.
시스템이 절대 불가라 외치는 일을 해낸다.
이를 통해 얻는 보상은 과연 뭘까.
분명한 건 시스템의 보상체계가 몹시 합리적이라는 거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
도주를 넘어서 쳐들어온 조직원들을 전부 격퇴시킨다.
그런 기적을 일으킨다면.
시스템은 일으킨 기적에 합당한 보상을 지불한다.
냉정하게 고민하고 검토한 끝에 확신했다.
내게는 존재한다.
그 기적을 일으킬만한 능력이.
“거기 너.”
“넵!”
“...숟가락은 왜 줍고 있지?”
교관후보생이 머쓱해하며 말했다.
“그게.. 떨어뜨리신 것 같아서...”
기특한 짓을 다 하네.
“어차피 버리실 테니 집에 가져가려고요.”
“!?”
“카이사르 형님에게 들었습니다. 보스는 돈이 필요하다면 남의 것을 강탈해서 얻는다고요. 그러니 쓸모를 잃은 도구는 두 번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 실로 감명 깊었습니다!”
이 새끼가 내 숟가락을 갖고 싶어서 이런 황당무계한 말을 할 리는 없으니 정말로 카이사르가 수련 중에 그렇게 말했던 모양이다.
아니, 지금 숟가락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오늘 도장영업은 종료다. 수련생들은 전부 내보내라.”
“예? 어째서입니까?”
이 새끼 말 진짜 많네.
“네놈. 이름은 뭐냐.”
“그란도입니다.”
“그란도. 내 앞에서는 ‘알겠습니다.’라고만 말해라.”
“아, 알겠습니다.”
“수련생들을 돌려보낸 뒤에는 교관후보생들을 집결시켜라. 전원 전투무장을 갖춘 상태로.”
그란도는 헐레벌떡 달려 나갔다.
그래도 시키는 건 잘하네.
카이사르보다는 싸가지가 있구나.
“교관후보생 도합 15명! 전원 집결 완료했습니다!”
교관후보생들의 대표인 한스가 앞에 나서서 외쳤다.
촤라락.
14명의 교관후보생들이 뒤따라 7명씩 나란히 도열했다.
뭐지.
얘네들 왜 이리 군기가 잡혀있지.
“어디서 보고 배운 거냐.”
“카이사르 형님께서 예절교육을 해주셨습니다!”
“쓸데없는 데에서만 유능하기는.”
한숨이 푹 나오는 광경이다.
그래도 지금 상황에는 군기가 잡힌 편이 한결 낫겠네.
“너희는 전부 카이사르의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
“!?”
“전사로서 완성된 그릇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군.”
느닷없는 내 신랄한 평가에 교관후보생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뭔가 심한 꼴이라도 당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건 맞기는 한데 이놈들에게 심한 짓을 할 예정인 건 내가 아니다.
“허나 내게 필요한 건 전사가 아니다. 흑산회 산하의 백보도장을 지킬 교관이다.”
“휴...”
“백보도장의 교관에게 필요한 덕목은 오직 두 가지. 하나는 카이사르에게 배운 백보권이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다른 하나는 흑산회나 백보도장을 적대하는 자들로부터 도장을 지켜내는 것이다.”
“!!”
“교관후보생에서 교관이 되기 위한 최종시험이다.”
나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면 내 형편에 맞춰서 다른 사람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 이루어질 적대조직원들의 침공으로부터 도장을 지켜내라.”
명령을 내리기가 무섭게 정문 너머가 부쩍 소란스러워졌다. 살벌한 고성과 행인들의 비명이 오가더니 쾅, 하고 문을 박차며 일단의 무리들이 들이닥쳤다.
“여기가 흑산회의 영역이다! 전부 쳐라!”
“뒤져 **들아!”
야만적으로 달려드는 적대조직원들의 모습에 교관후보생들은 저마다의 무기를 든 채로... 주춤거렸다.
아니 잠깐.
여기서 너희가 안 싸우면 곤란한데? 다른 방법은 그다지 생각해두지 않았는데!?
“음. 아무래도 보스는 진심이신 것 같군. 저 표정을 봐라.”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있어!?”
“맙소사. 저 권태로운 표정은 우리가 싸우지 않아도 저 정도 잔챙이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는 건가.”
아니, 나 엄청나게 동요하고 있는데.
동기화 비율이 1%라서 티가 안 나는 것뿐인데.
“제길. 싸울 수밖에 없잖아! 가자!”
“우와아아악!!”
멋대로 싸울 이유를 찾아낸 교관후보생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드는 적대조직원들을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백보도장의 교관후보생 15명이 적대조직 연합 60명과의 교전을 개시합니다.]
15 대 60.
살벌한 전투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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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폭참!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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