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6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 =========================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21)
보스 빌헬름 마이어의 반사신경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기계석궁에서 발사한 쇠꼬챙이를 순간적으로 회피함과 동시에 부하를 위기에서 구하기까지 했다.
만일 부하가 중상을 입도록 방관했다면 직접 다치는 일도 없었을 거다.
인간사냥꾼은 흑산회 보스가 겉보기와 달리 상당한 실력을 감추고 있음을 확신했다. 호위도 독이 바짝 올랐을 테니 섣불리 암살을 시도하는 건 어리석은 선택이다.
‘사냥감을 사냥하는 방식이 꼭 저격만 있는 건 아니지.’
사냥감을 ‘몰이사냥’으로 특정 장소에 유도해서 미리 설치한 ‘덫’을 발동시켜 잡는 방법도 있다.
저격처럼 손맛이 느껴지는 방법은 아니라서 그리 즐기는 방식은 아니나, 강한 사냥감을 상대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만큼 제대로 발동한다면 효과 하나는 확실하다.
“흐흐. 기대되는군.”
사채업자 바르돈. 그에게 자금을 융통하는 범죄조직 여섯 곳에서 병력을 차출해 임시 호위대를 조직했다.
나름 엄선한 조직원들로 이루어진 호위대지만 분명 흑산회의 역습에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흑산회의 행동대장 카이사르가 나선다면 대부분이 죽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게 노림수인지도 모르고 날뛸 테니까.”
바르돈에게 진 빚을 탕감하고자 보낸 부하가 죽었다.
여섯 조직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바르돈이 구태여 그들의 무능함을 지적하지 않아도 그들은 조직원을 해친 흑산회에 적의를 품고 전면공세를 퍼부을 수밖에 없다.
전쟁이 벌어지면 흑산회는 어디로 움직일까.
바로 미궁이다.
가지 않는다면 주변을 포위해서라도 유도할 거다.
가장 가까운 출입구로 들어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쪽도 ‘덫’을 깔기는 쉽다.
위험푯말이나 적당히 돈을 주고 고용한 하급 모험가들로 길을 하나씩 봉쇄하면 자연스레 이동루트는 특정된다.
가장 안전하고 사람의 방해가 없는 길.
거기에 치명적인 덫을 설치한다.
장치가 발동하면 남은 꼬챙이들이 날아든다.
‘살 길은 없다.’
몰이사냥과 덫, 두 가지 장치는 모두 완벽하다.
인간사냥꾼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큰일입니다!”
“뭐냐.”
그의 거처에 뛰어 들어온 자는 바르돈의 연락책이다.
저런 말을 한다면 정말로 일이 벌어진 거다.
“호위대가 전멸하기라도 했는가?”
작전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큰일로 보이기도 하겠지.
바보 같은 꼴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연락책이 말한 큰일은 그의 상정범위를 넘어섰다.
“호위대만이 아닙니다! 바르돈님과의 접견을 위해 모여들었던 두 개 조직의 간부들이 몰살당했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틀림없습니다. 흑산회의 행동대장 카이사르의 소행입니다! 지금쯤이면 이미 두 조직의 보스나 바르돈님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서둘러서 지원을!”
일이 꼬였다.
계획은 완벽했을 터였다.
“카이사르!”
변수는 그 자의 무력이었다.
강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호위대를 전멸시킨 걸로도 모자라 사무실에 주둔시킨 두 조직의 정예병력을 박살내고 간부들까지 죽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대체 얼마나 강한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다면 그런 미친 짓이 가능하단 말인가.
“녀석의 부하는 몇 명이냐!”
“한 명도 없습니다!”
“뭐...라고!?”
인간사냥꾼은 고향의 모두가 병사들에게 살해당한 이래로 실로 오래간만에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놈은 엄청난 실력을 지닌 고수입니다! 사냥꾼님이 없으면..”
“그딴 괴물을 내가 해치우라고? 미친 소리 마라.”
사냥꾼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사냥감이 있고, 감당할 수 없는 사냥감이 있다.
덫을 깔아도 한 주먹에 박살내며 현장을 초토화시키는 괴물을 상대로 무슨 수로 사냥을 하란 말인가.
카이사르의 위험도는 이미 밀림 속의 포악한 곰 따위는 가볍게 넘어섰다.
“여길 떠난다. 너도 목숨이 아깝거든 떠나라.”
“그건...!”
“바르돈이 지급하는 돈이 네 목숨을 살려주지는 못한다.”
돈보다 우선시되는 건 목숨이다.
그걸 잊고 돈에 현혹된 자들은 전부 죽는다.
“허망하군. 괴물 같은 녀석과 엮여서 잠적을 타야하다니.”
어쩌면 미치광이 토마의 영혼을 착취하여 파멸시켰다는 소문도 거짓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괴물과 정면대결에 나섰다간 목숨이 몇 개라도 부족하다.
인간사냥꾼은 아끼는 장비와 도구, 가벼운 배낭 하나에 돈주머니를 챙기고는 빠르게 거처를 벗어났다.
두고 온 물건이 훨씬 더 많았지만 도시에 오기 전에는 그런 것들이 없어도 얼마든지 살았다. 전부 군더더기다.
‘그런 군더더기들이 많아질수록 사냥꾼의 감은 무뎌지고 낡은 것이 되어버리지.’
최대한 신속하게 도시를 벗어나고자 길을 잡았다.
사냥꾼에게는 도시의 복잡한 뒷골목도 어렵지 않았다.
최단경로로 돌파하면 성문까지는 30분이면 된다.
끼리릭.
파악!
“컥!”
지붕 위를 달리던 인간사냥꾼이 비명과 함께 추락했다.
어깨에 틀어박힌 쇠꼬챙이.
번들거리는 색을 보니 독까지 발라져있다.
“누구냐!”
사납게 외치며 주변을 둘러보아도 적은 보이지 않았다.
유령에게 당한 기분이 이러할까.
인간사냥꾼은 적을 찾는 대신에 자신이 당한 함정을 봤다.
“이건...!”
설치형 트랩.
우연히 당하거나 아무렇게나 깔아둔 게 아니다.
정확히 그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지상도 아닌 지붕 위에, 그것도 설치형 함정. 심지어 도구는... 내가 사용했던 쇠꼬챙이와 똑같다.’
인간사냥꾼의 두뇌가 기민하게 회전했다.
철물점이 들켰다.
그에 대한 정보도 노출되었다.
‘어쩌면 그때, 연락책이 정보를 전할 때부터.’
아니면 그 전부터.
상대는 그를 관찰하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이 내가... 몰이사냥과 덫에 당했다고?”
최단경로로 움직이고자 하는 생각이 읽혀 덫에 걸렸다.
사냥감은 바로 그였다.
흑산회 보스를 지키던 호위의 짓이 틀림없다.
“젠장. 이거 정말 지독한 독이군…….”
시야가 핑핑 돌면서 사물이 길게 수십 개로 늘어난다.
가느다란 선의 세계에서 시각은 의미를 상실했다.
그러나 다가오는 죽음의 냄새만은 분명히 맡을 수 있었다.
“너는... 대체 누구냐.”
목이 베였다.
최후의 저항 따위를 할 새도 없었다.
인간사냥꾼의 몸이 허물어졌다.
“암살자.”
밀림의 사냥꾼은 결코 도시의 암살자를 이길 수 없다.
이변 따위는 허락하지 않는 당연한 결과다.
금발적안의 소녀는 기계적으로 도구와 전리품을 회수했다.
“보스에게 그런 상처를 입히고도 무사할 리가 없잖아.”
싸늘한 시선을 겨누며 무미건조하게 말하기를 잠시.
리나는 시체에 약품을 뿌렸다.
빠르게 부식된 시체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리나의 모습은 어둠 속에 스며들 듯이 사라졌다.
증거도 없앴다. 모든 흔적은 사라졌다.
목격자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완벽한 은신이었다.
* * *
카이사르는 피와 살점이 얽힌 검을 힘주어 털어내었다.
촤라락.
검은 단번에 깨끗해졌지만 실내는 피범벅이 되었다.
“사채업자 바르돈. 네놈이 부린 수작질에 보스가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다. 할 말은 있는가?”
“크윽!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녀석을 구한 거지. 호위대에 이어서 혼자서 두 조직의 전력을 궤멸시키다니.”
“말귀가 어둡군. 유언을 남길 기회를 주었더니 쓰잘데기 없는 헛소리만 했어.”
촤아악!
카이사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르돈의 팔을 갈랐다.
“끄아아아악!!”
“엄살이 심하군. 보스는 이 정도 부상을 입고도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아아악! 제, 제발! 돈을, 돈을 줄게! 얼마면 돼! 얼마면 널 고용할 수 있냐!”
카이사르는 연달아 반대쪽 팔도 길게 베었다.
“끄아아아아아아!!”
“돈? 그딴 건 언제든지 얻을 수 있는 거다.”
보스는 언제나 명령했다. 적의 자산을 갈취하라고.
그렇게 얻은 돈이 벌써 천 골드를 넘었다.
바르돈이 얼마나 많은 돈을 지녔는지는 상관없다.
전쟁에서 이겼다.
당연히 그건 전부 흑산회의 것이다.
“네놈에게선 보스와 같은 거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군. 기껏해야 돈이 전부인 버러지였는가.”
“끄으으!”
“그깟 푼돈으로 모은 전력이었으니 날 당해낼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감히 보스를 건드린 죄, 그 몸에 혹독한 고통을 새겨 뉘우치게 해주마.”
카이사르는 바르돈을 고문했다.
목적은 고통을 주는 것.
당연히 협상의 여지도 없고, 해방될 방법도 없다.
“끄르르르륵.”
바르돈은 피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카이사르는 그가 기절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죽일 건 이놈이 끝이 아니다.
「카이사르. 너는 바르돈의 본거지로 쳐들어가서 녀석의 목숨과 녀석과 관련된 모든 자들의 목숨을 끊어라.」
보스는 분명 그렇게 명령했다.
바르돈과 관련된 모든 자에는 방금 전에 죽인 조직도 해당한다.
그렇지만 그런 건 전부 그가 돈으로 부린 아랫것들이다.
“일어나.”
“크학!”
“딱 한 번만 묻겠다. 대답하지 못하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백 번의 칼질을 당하고도 살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지.”
피투성이가 된 바르돈이 절박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카이사르는 말이 안 통하는 미치광이였다.
협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그가 지독한 고통에서 벗어날 길은 협력뿐이다.
“네놈과 관련된 암흑가의 윗줄을 불러라.”
“미궁도시 브람에서.. 고리대금업자가.. 그륵.. 위에 둘 사람은 하나.. 그르륵.. 수전노 쉔.. 컥, 커어억!”
역류한 혈액이 목구멍을 틀어막고 그를 질식시켰다.
지닌 재산에 비하면 실로 처참한 죽음이었다.
“수전노 쉔이라.”
암흑가의 사채업자가 밝힌 윗줄이다.
같은 사채업자라고 여길 게 아니라 그 분야의 거물이라고 보아야 마땅할 터.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바르돈의 수십 수백 배에 달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거다. 그런 인간을 적으로 돌렸다간 적의 몸에서 흐르는 피로 강이 만들어지고도 남는다.
‘보스도 참으로 잔혹하시군.’
팔에서 피 좀 흘렀다고 적의 피로 강이 흐르게 만들라니.
제정신인 인간이 할 수 있는 명령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래야 내 보스답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카이사르 그 자신을 부하로 둔 보스다.
이 정도 잔혹함은 지녀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는 적의 피로 강이 흐르게 만들 수 있는 실력자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카이사르는 발길을 돌렸다.
당장이라도 혈겁을 일으킬 것처럼 굴었지만 목적지는 백보도장이다.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간만에 힘을 썼더니 졸리군.’
일단 한숨 자고 일어나서 남은 일을 처리한다.
카이사르는 그렇게 정했다.
이러지 저러니 해도 그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남자였다.
* * *
[카이사르가 바르돈의 호위대를 전멸시켰습니다.]
[카이사르가 적대조직 두 개를 궤멸시켰습니다.]
[카이사르가 사채업자 바르돈을 죽였습니다.]
[카이사르의 레벨이 5가 되었습니다.]
[카이사르의 투지가 4 상승합니다.]
[카이사르가 지닌 다수의 스킬 레벨이 대폭 상승합니다.]
[카이사르의 악명이 2000 상승합니다.]
[흑산회의 조직평판(악명)이 2000 상승합니다.]
[리나가 인간사냥꾼을 암살했습니다.]
[리나의 레벨이 8이 되었습니다.]
[리나의 민첩과 통찰이 각각 1씩 상승합니다.]
[암살의 완벽한 성공에 의해 리나의 악명이 상승하지 않습니다.]
[인간사냥꾼의 실종이 흑산회 때문이라 짐작한 자들에 의해 흑산회의 조직평판(악명)이 500 상승합니다.]
[일련의 활동이 보스 경험치로 정산됩니다.]
[레벨이 4가 되었습니다.]
[통찰과 지능, 카리스마가 각각 1씩 상승합니다.]
[빌헬름 마이어의 악명이 2500 상승합니다.]
[보스의 기백 스킬레벨이 3 상승합니다.]
두 부하가 돌아오자마자 알림창이 우르르 쏟아졌다.
“수고했다.”
“어라? 보스. 리나는 아직 아무 말도 안했는데.”
“보면 안다.”
인간사냥꾼은 암살되었고 바르돈은 목숨을 잃었다.
시스템 알림이 없더라도 알 수 있다.
두 사람이 돌아왔다면 임무는 당연히 완수된 거니까.
“역시 보스는 대단해!”
“보스. 좀 피곤한데 자러 가도 됩니까?”
“아아. 쉬고 있어라. 후속처리는 직접 마무리하겠다.”
조직원을 흡수한 네 개 조직과 카이사르에게 궤멸당한 두 개 조직.
거기에 더하여 사채업자 바르돈의 사무실까지.
돈이 나올만한 구석이 무려 일곱 군데나 생겨버렸다.
이걸 다 흡수하고 체하지 않게 소화하는 것도 일이다.
이 정도면 미궁탐사도 조금 더 미룰 가치가 있다.
카이사르도 지친 모양이니 당분간은 얌전히 있을 터.
즐거운 전리품 정산시간이 찾아왔다.
============================ 작품 후기 ============================
평일은 잔잔한 2참으로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