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0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 =========================
#2 - 내 부하는 두려움을 모른다(25)
어둠이 빗발치듯 달려들어 온 도시를 집어삼키는 시각.
미궁도시 브람의 모처에 암흑가에 군림하는 실력자들이 대거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길거리를 지나가는 일반인은 순식간에 발가벗겨져 낙인이 찍힌 채 노예로 팔려나가거나 잘게 썰려 비참한 고깃덩어리로 전락한다.
‘변변찮은 애송이는 단 한 명도 없군.’
그런 복마전(伏魔殿)의 한복판에 들어간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걸 나는 해냈다.
안 무섭냐고? 미쳤냐. 당연히 졸라 무섭지.
근데 안 갈 수도 없잖아.
1존6강이 지들 멋대로 ‘흑산회가 요즘 좀 건방지군. 가서 박살내.’ ‘ㅇㅋ’ 따위의 결론을 내리면 나는 아무것도 못해보고 조직을 잃는다.
어디 그 뿐 만이랴.
까딱 잘못했다간 지난 10년간의 업적달성으로 모은 CP를 모조리 투자한 카이사르가 덜컥 죽어버린다.
‘게임폐인으로서의 내 모든 게 걸린 부하다. 그따위로 허무하게 잃을 순 없어.’
나는 두려움을 꾹 눌러 삼켰다. 긴장을 가라앉히고자 상급 정보상인에게 받은 인명부를 떠올렸다.
1강. [교주 라만]
영생을 추구하는 자들의 터전, [오래된 것들].
주 구성원은 악신숭배자. 주 분야는 영생의 유혹.
2강. [고위 뱀파이어 이즈라크].
피를 탐미하는 자들의 모임, [진홍의 속삭임].
주 구성원은 뱀파이어 스폰. 주 분야는 지배.
3강. [파괴자 루커스].
군림하는 자들의 무력조직, [루커스 패밀리].
주 구성원은 마피아. 주 분야는 무력.
4강. [색마 콰이어].
맛만 좋으면 뭐든지 따먹는 마귀소굴, [주지육림].
주 구성원은 포주. 주 분야는 매음.
5강. [수전노 쉔].
부에 미친 황금마의 암흑상단, [검은 왕관].
주 구성원은 암상인. 주 분야는 장물과 노예.
6강. [마약술사 파난].
나태에 찌든 망가진 자들의 낙원, [비탄의 굴].
주 구성원은 약물중독자. 주 분야는 마약.
6강의 일원들은 하나같이 절정고수나 한 분야의 마스터, 혹은 이에 버금가는 권력이나 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괜히 미궁도시 브람에 불순한 세력들이 버젓이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성주도 막대한 손실을 감내하고 싶지 않기에 적당한 선에서 이들을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거 참. 난이도가 오른 게 실감나는군.’
전작이라면 미궁도시에서 암약하는 최종보스 격의 인물이 한 도시에 여섯 명이나 널려있다.
심지어 그들의 위에는 절대지존으로 군림하는 일존이 존재한다.
[다크히어로 영혼살해자] 혹은 [반 영웅 멸혼객(滅魂客)].
그에게 세력은 없다.
다만 용사시절부터 함께해온 파티원들이 있다.
그것도 한명 한명이 6강의 보스와 육박하는 전투력을 지닌 자들이다.
당연히 그들과 대적하는 건 미친 짓이다.
마음만 먹으면 수도 왕궁에 쳐들어가서 국왕을 참살하는 일마저 가능한 전력이니까.
‘특이하게도 먼 동방대륙에서 건너온 용사라.’
어떤 사정이 있고, 어떤 역경을 지나왔는지.
그런 건 알 바 아니다.
당장 내가 확보해야 할 건 정보가 아닌 안전이다.
“멈춰라. 어디서 온 놈들이..으아악!”
“건방지게 보스에게 반말을 지껄이다니. 네놈은 여분의 목숨을 집안에 감쳐두고 나오기라도 했는가?”
카이사르는 문지기의 손을 한 손으로 꽉 붙잡았다.
우드득 꽈드득!
가만 두면 그대로 손목이 박살날 기세다.
“그만 둬라. 지금은 피를 볼 때가 아니다.”
“알겠습니다.”
문지기는 혼비백산하며 물러섰다.
나는 녀석에게 암흑가 정상회담 참석티켓을 보여주었다.
문지기는 무척이나 억울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드, 들어가시죠.”
왜 이걸 먼저 안 보여줬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보여주기도 전에 니가 면상 들이댔잖아.
쿠구궁... 꾸구구구궁!
기계장치로 잠금 된 육중한 문이 개방되며 마침내 회담장소가 개방되었다.
“……!”
공기가 다르다.
불과 문 하나를 두고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자극에 둔감한 내가 짜릿함을 느낄 정도다.
‘장난 아니군. 이거 전력으로 살기를 발산하고 있는 건가.’
6강에 속하는 전원이 새로운 참석자를 시험한다.
단지 기백만이라도 예사로운 수준이 아니다.
동기화 비율이 높은 게이머였다면 기절하거나 오줌을 지리고도 남았을 농밀한 살기다.
“환영인사가 거칠군. 마음에 들어.”
“!!”
“뭘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짓지?”
회담장에 들어가자 넓은 원탁을 두고 여섯 명의 인간이 거리를 두고 앉아있다.
뒤에 기립한 인원은 정확히 두 명씩이다.
6강의 최측근이자 보디가드인 그들의 무력 또한 한 분야의 마스터나 절정고수가 되기 직전이다.
‘지금의 카이사르나 리나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
그런 감상은 조금도 드러내지 않은 채 오히려 한쪽 입매를 치켜올린다.
그런 의도된 여유로움에 6강의 기세가 일변했다.
“걸물이군. 3년 만에 제대로 된 녀석이 나타났어.”
“루커스. 네놈의 안목도 한 물 갔군.”
“밑줄이 살해당했다고 노골적으로 티내는 건가. 쉔.”
검은 정장에 거대한 체구를 지닌 남자, 루커스. 그가 깊이 눌러 쓴 중절모 아래로 이를 드러내며 조롱했다.
늙고 추레한, 그렇기에 더욱 고집스럽게 보이는 영감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쾅 내리쳤다.
“건방 떨지 마라! 시답잖은 병정놀이나 하는 늑대 새끼가!”
“쉔. 사냥꾼들의 격언을 하나 들려주지.”
루커스는 피와 철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거친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약한 짐승일수록 우는 소리가 크다. 딱 네놈처럼 말이지.”
“이이익!”
분을 참지 못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노인.
그가 홱 고개를 돌려 카이사르를 노려보았다.
“네놈이냐. 바르돈을 죽인 녀석이.”
“그렇다. 늙고 못생긴 것아. 네가 바르돈의 애비냐?”
“이 찢어죽일 놈이!! 그 돼지는 검은왕관의 조직원이다!!”
정말로 격분해버린 노인과 달리, 육강의 나머지들은 모두 폭소하거나 흥미롭다는 시선을 보내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유쾌함을 드러내었다.
“괜찮은 맹견을 기르고 있군. 그놈, 팔 생각은 없나?”
루커스가 나를 향해 물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내 플레이의 핵심요소를 내가 팔아먹겠어?
“없다. 하물며 카이사르는 맹견이 아니다.”
애초에 이 녀석의 진가는 맹견 따위가 아니다.
미치광이 상 또라이라고.
맹견한테 실례되는 소리는 하지 마라.
“흐하하. 맹견이 아니라니.”
루커스는 유쾌한 농담을 들은 것처럼 즐거워했다.
물론 이딴 새끼의 기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진짜배기는 6강이 아닌 1존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아무런 기척도 기색도 없이 원탁을 내려다보는 자를 발견했다.
“브람 시의 어둠을 지배하는 일존, 멸혼객. 진정한 거물을 보게 되어 기쁘군.”
멸혼객의 모습은 테라스에 드리운 천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너머로 비추는 실루엣과 모두를 내려다보는 위치로서 그가 멸혼객임은 특정 지을 수 있었다.
내가 그에게 말을 거는 순간, 육강은 조금이나마 풀어졌던 기세를 바짝 조인 채 긴장하였다.
절대자의 앞에서 한 순간의 방심은 곧 죽음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흑산회의 보스 빌헬름 마이어. 듣던 것 이상으로 흥미로운 자로군.”
루커스의 체구가 거대하고 기세가 살벌할지라도 그는 적어도 인간의 범주에 속한다는 인상이 들었다.
허나 멸혼객은 달랐다.
지옥 끝에서 올라온 것 같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 자가 정녕 인간이 맞기나 한지 의구심을 감출 수가 없었다.
“탄인명후국조(嘆人命吼國趙). 인간은 제 이름에 탄식하고 국가는 제 이름에 울음을 흘린다. 그 의미를 알겠는가.”
뭐지 이건.
지금 나랑 시조 짓기라도 하자는 건가.
“인간이 어떻고 국가가 어떻고. 그딴 건 관심 없다.”
“호오. 일말의 망설임이나 두려움조차 없이, 나의 시험 그 자체를 부정하는가.”
“내가 있기에 세상이 존재한다. 내가 없는 세상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그딴 건 내 알 바가 아니다.”
장막 너머의 실루엣이 크게 요동쳤다.
“크하하! 실로 오만한 대답이로군. 암, 한 조직의 보스라면 그만한 자긍심은 지녀야지. 네 대답은 라만의 불멸보다도 만족스러웠다.”
6강 중 1강이라 여겨지는 교주 라만.
그보다 나은 대답이라는 말에 6강 전원의 기세가 한층 격해졌다. 할 수만 있다면 기세만으로 나를 압사시키고픈 의지가 느껴질 정도였다.
멸혼객은 그딴 기세 따위는 애들 놀음이라는 것처럼 일말의 관심조차 표현하지 않은 채, 내게 물었다.
“세력은 아직 미흡하나 보스로서의 역량은 능히 6강과 동등한 반열, 7강의 자리에 설 자격이 있다. 허나 이 원탁에 자리는 여섯뿐이다. 빌헬름 마이어여. 너는 어찌하겠는가.”
이건 시험이다.
7강이 되어 원탁의 한 축을 차지하고 싶다면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6강이 인정할만한 무언가를 보여라.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고개를 숙인 채 6강의 아래에 속해, 우리들의 질서를 받아들여라.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당연히 후자다.’
본래라면 어떻게든 6강과 대등한 자리를 차지하려 했으나, 운 좋게도 멸혼객이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단숨에 내가 파멸하는 일은 없다.
잠시만 고개를 숙인 채, 6강보다 낮은 하수임을 자처하며 경계심을 죽인다. 그러면 언젠가는 7강이 될 기회가 온다.
“7강이라. 그럴 필요는 없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당분간은 6강의 질서를 따르겠다.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카이사르가 수전노 쉔을 죽였습니다!]
[카이사르의 악명이…]
[…….]
푸확! 데구르르.
6강의 일원, 수전노 쉔의 머리통이 바닥을 굴렀다.
쉔의 호위들마저 반응하지 못한 돌발 상황.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를 놈이 달리 있을 리가 없다.
모두의 놀란 시선에 뭐 어쩌라고, 라고 눈을 부라리는 저 또라이 새끼의 짓이다.
물론 그런 또라이가 카이사르 외에 달리 있을 리가 없다.
‘무슨 미친 짓이야 이 미친 새끼가!?’
놀라는 건 나중에 해도 된다.
뒷수습이다.
당장 수습하지 않으면 나랑 카이사르 둘 다 죽는다.
“이러면 7강이 아닌 6강이 되니까.”
마치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태연하게.
강자의 오연함을 과시하듯 선언했다.
눈 뜨고 주인을 잃은 쉔의 부하들이 발광하려던 순간.
“크하하하하하하하하!! 흐하하하하하하하하!!”
온 몸이 보이지 않는 로프에 칭칭 감긴 것처럼 덜컥 멈췄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은 공포심이 일었다.
나조차도 그렇게 느꼈다면 NPC들의 상태는 훨씬 더 심각한 게 당연했다.
다른 놈들은 무거운 침음을 흘리며 얼굴에 괴로운 기색이 역력했으며, 쉔의 두 충복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비틀거리다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지기까지 했다.
“웨에엑!”
급기야 입으로 핏물을 게워내기까지 했다.
멸혼객의 무형의 기운이 그들을 집중압박 했던 모양이다.
그런 경이로운 실력을 지닌 자가 나를 향해 물었다.
“정상회담의 한복판에서 기존의 6강의 일원을 제거하다니, 그 실행력과 배짱은 이 나조차도 감탄하였다.”
“…….”
“탓할 생각은 없으니 답하라. 어째서 쉔이었지?”
몰라 시발.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건데.
나는 카이사르에게 턱짓했다.
네가 저지른 트롤 짓은 네가 치우라는 의미다.
“보스께서는 일찍이 명령하셨다. 사채업자 바르돈과 관련된 모든 인물을 제거하라고.”
“호오.”
“바르돈은 수전노 쉔의 조직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회장 입구에서는 아직 피를 볼 때가 아니라는 말도 들었지. 피를 보아야 하는 건 회장 안이라고 말하신 거다.”
완전 지 편리한대로 생각하네!
이 싸이코패스 새끼!
“거기에 더해 신호를 주셨다. 7강은 필요 없다고.”
“과연.”
“보스께서는 저 하찮은 노인네를 끌어내리고 6강의 자리에 올라서겠다고 정했다. 놈이 죽기에는 충분한 이유다.”
아아아, 이젠 다 틀렸어!
우린 다 죽을 거야!
소리 없이 절규하는 내게 멸혼객이 말했다.
“좋다. 공석이 된 5강의 자리는 흑산회의 보스 빌헬름 마이어가 맡는다. 6강의 일원이 된 걸 축하한다.”
……네? 이건 무슨 개소리죠?
장관을 하나 죽였더니 대통령이 오늘부터 네가 차기 장관이다, 라고 하는 상황인데.
멸혼객 이놈도 실은 카이사르랑 같은 싸이코패스 아니야?
============================ 작품 후기 ============================
짜잔! 빌헬름 마이어의 상승한 스펙에 걸맞은 지위를 끼얹었습니다!
선호작 및 추천, 쿠폰, 쪽지 모두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