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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53화 (53/224)

00053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 =========================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3)

노점상에서 핫도그를 사먹고도 배가 출출해서 근처 빵집에 가서 바게트 빵을 샀다.

길쭉하게 생긴 게 VR게임을 하기 전, 옛날 만화나 영화에서 스쳐지나가듯 본 기억이 나는지라 호기심이 일어서 사먹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어쩐지 먹는 놈들이 다람쥐도 아닌데 그 큰 걸 잘게 썰어서 야금야금 먹는다 싶더라니, 졸라 딱딱하고 맛없다.

“으음?”

이 더럽게 맛없는 바게트 빵을 진열대에 던지고 나올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제복 차림의 경비대가 우르르 들이닥쳤다.

“흑산회 보스 빌헬름 마이어. 맞는가.”

노란 제복을 입은 경비대 하급 지휘관이 말을 걸었다.

나는 바게트 빵을 들이밀었다.

“할 말이 있거든 이걸 먹고 나서 해라.”

“…….”

지휘관은 바게트 빵을 한주먹 가득 뜯어서 베어 물었다.

가뜩이나 딱딱했던 얼굴이 한층 더 삭막하게 굳었다.

와그작거리는 소리가 숫제 돌이라도 씹는 것 같다.

“치워라.”

결국 지가 다 먹지는 못하고 부하한테 줬다.

내가 빤히 그 덩어리를 쳐다보자 녹색 제복의 최하급 지휘관인 경비대장이 인상을 마구 구기며 빵을 전부 먹어치웠다.

불쌍한 녀석.

짬이 딸리니까 바게트 빵이나 먹고 다니네.

역시 경비대나 군대는 내 체질이랑 안 맞는 것 같다.

“경비대에서의 정식 송환요청이다. 협조하겠는가.”

“좋다. 마침 심심했으니까.”

“…….”

노랑이가 인상을 확 구겼다. 뭔가 이게 아닌데, 하는 기분이 들었겠지.

근데 6강의 일원이 되면서 이제는 경비대가 별로 안 무서워졌는 걸. 억지로 ‘히이익! 그 악명 높은 경비대가 날 체포하러 왔다니!’하면서 놀랄 순 없잖아.

분명 그딴 연기를 보는 쪽이 도리어 기분 나빠질 거다.

“동행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

“쟤가 안 오면 카이사르가 경비대에 쳐들어올 건데?”

“...특별히 한 명만은 허락하겠다.”

리나는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 하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보스. 정말로 괜찮은 거야? 경비대면 나쁜 놈들이잖아.”

“원래 비열한 놈들은 후환이 두려워서라도 감당 못할 짓은 안 한다. 건방지게 굴거든 한 번 들어 엎으면 되지.”

“그렇구나! 역시 보스는 대단해!”

듣는 경비대원들은 누가 누구한테 뭐라는 거냐며 어이없어했지만 딱히 발언을 철회할 생각은 없다.

첫 던전탐사를 마치자마자 감히 날 삥 뜯으려 할 때부터 우린 적대관계다.

언젠가 반드시 경비대를 벗겨먹고 말 테다.

경비대 동부방면 지부.

나는 취조실에 들어왔고 덩달아 들어온 리나가 벽에 단검을 쿡 쑤시며 말했다.

“보스. 벽이 얇은데 뒤에 보물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설마.”

“그럼 확인해볼게!”

하도 상쾌하게 말해서 말리는 게 늦었다.

쨍강! 와르르!

유리벽이 깨지며 사람 몇 명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파편이 눈에, 눈에에에에!”

“의무벼어엉!”

“당장 병력을 불러들여어어!!”

어째서인지 리나의 단검 찌르기 한 번에 부상자가 다섯 명이나 발생했다. 그것도 부상자 전원이 노란 제복에 상급표식을 단 짬 찬 지휘관들이다.

[리나의 악명이 100 상승합니다.]

[빌헬름 마이어의 악명이 100 상승합니다.]

한 무리의 경비병이 창칼을 들고 들이닥쳤다.

“경비대 지부 안에서 지휘관을 암습하다니, 제정신이냐!”

“웃기는 소릴 하는군. 염탐을 허락한 기억은 없다.”

경험적으로 떠올리자면 사고를 치지 않는 게 제일이지만, 일단 사고를 쳤다면 더욱 뻔뻔하게 굴어야 한다. 나는 엄격 근엄 진지한 태도로 일관했다.

“암흑가에서는 염탐자의 눈을 뽑아 소금을 채워 넣지. 경비대라서 손속에 자비를 둔 것을 감사해야 할 거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었군! 네가 말한 대로 우리는 네가 암흑가의 보스임을 알고 있다! 언제라도 널 체포할 수 있는 입장의 인간들이라고!”

“그럼 해보던지.”

나는 아예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취조실 탁자에 두 발을 올리며 거만한 자세를 취했다.

“6강의 일원 중 하나를 건드리고도 뒷감당을 할 자신이 있다면.”

“!?”

그때부터였다.

이놈들의 반응이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은.

* * *

경비대 직속 심문관 마티아.

그는 세상의 이면에 감추어진 신비의 일부를 끌어다 사용하는 마법사이며, 장기로 하는 마법은 진위판별이다.

수많은 범죄자들의 거짓을 빠짐없이 간파하는 재주가 있는 이상, 진실을 이끌어낼 화술만 뒷받침된다면 그만큼 유능한 심문관은 찾아내기 힘들었다.

“빌헬름 마이어. 그대는 스스로가 6강의 일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진술에 틀림은 없는가?”

“그렇다. 그리고 반말하지 마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새끼가.”

“…….”

빌헬름 마이어는 외견 상 아무리 높게 치더라도 나이 30을 넘지 않는다.

인상이 사나워 늙어 보이기는 해도 그는 분명 20대다.

그러나 세상에는 겉으로 보이는 연령대와 실제나이가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경우가 존재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 나이가 다르다면... 당신은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산겁니까?”

“네놈보다는 많이.”

“맙소사.”

마티아는 올해로 40세가 넘었다.

그리고 빌헬름 마이어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신체나이를 역행하는 환골탈태가 틀림없다.

‘빌헬름 마이어가 본신의 실력을 숨긴 절정고수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게 사실이었을 줄이야!’

마티아는 한층 더 긴장하며 이번 취조의 목적을 밝혔다.

“현재 미궁도시 브람에서는 흑산회와 흑산회 보스 빌헬름 마이어에 대한 무수한 소문이 퍼져있습니다. 도시의 안위를 지키는 입장에서 저희는 진위유무를 파악할..”

“시답잖은 명분은 됐다. 너희에게 어느 정도 위협이 되는지, 때리고 뒷감당은 할 수 있는지 간을 재보려는 거겠지.”

“그건 다릅..”

“내게 거짓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

들어본 적이 있다.

절정고수는 체내의 정제된 마나를 기(氣)로서 다루고, 이를 역으로 대기에 퍼뜨려 많은 이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만일 취조실 전체가 기에 둘러싸였다면 어떤 거짓을 말하더라도 즉각적으로 간파하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진위유무를 판별할 수 있는 건 마티아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이봐, 어린 친구.”

“예, 예...”

“흑산회의 소문과 얼마 전의 혈겁은 전부 잊어라. 그 외에 흑산회가 한 활동이 뭐가 있지?”

마티아는 곰곰이 사실관계를 짚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 흑산회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너희는 그런 흑산회를 지금 실시간으로 자극하고 있고.”

“죄송합니다.”

“그럼 죄송한 일을 하지 말았어야지. 이제부터 더 죄송한 일을 만들지도 말아야 할 테고.”

“…….”

반백의 나이인 마티아를 하대함에 조금의 어색함이 없다. 빌헬름 마이어의 노련한 태도는 한 평생을 정쟁에 몸을 바친 늙은 정치가를 보는 것만 같았다.

“너희가 내가 정말로 6강의 일원인지가 궁금해서 이리 귀찮게 굴리는 없지. 수전노 쉔의 잔당들 [검은 왕관]이 돈을 발라두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진위유무를 들키지 않고자 말을 아끼는 건가? 유감이지만 네가 입을 닫아도 나는 이미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이제 와서 네 입이 닫힌다고 변할 건 아무것도 없지.”

졸린 듯이 반쯤 감긴 나른한 눈매에 속았다.

빌헬름 마이어는 온건하거나 협조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그 악명 높은 카이사르가 모시는 흑산회의 보스다.

당연히 예상했어야 했다.

이 남자가 품에 감춰둔 흉심과 살의는 범인들의 그것과는 격을 달리한다는 것을.

“경고해두지. 검은 왕관이 먹인 돈이 얼마나 되는지, 네놈들이 얼마나 돈에 환장했는지는 알 바가 아니다.”

빌헬름 마이어는 일말의 자비심도 담기지 않은 냉혹한 얼굴로 선언했다.

“내 영업장이나 영역 안에서 경비대가 소란을 피울 시. 6강의 일원을 하룻밤 사이에 지워버린 흑산회가 경비대와 전쟁을 치를 거다.”

“으으으...”

“잘 생각하는 게 좋아. 주인 잃은 암상인들의 더러운 돈을 따를지, 언제라도 네놈들의 목을 칠 수 있는 새로운 강자를 존중하며 성의를 보여야할지.”

전대 6강의 일원 쉔은 적이지만 아군이 될 수 있었다.

그는 돈으로 경비대를 매수했다.

압도적인 자금력을 바탕으로 적을 협력자로 포섭했다.

빌헬름 마이어는 건드리면 터지는 화약고였다.

그는 경비대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쉔과는 달리, 오히려 경비대가 뭔가를 바쳐야했다.

“그건 제 권한으로 확답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당연한 소릴 하지 마라. 그걸 정하는 건 경비대 본부의 ‘높으신 나리들’임은 알고 있다. 너는 내 말을 전하는 전령. 그 이외의 무엇도 아니다.”

“으으... 그분들께서 성의표시를 거절하면 어쩔 생각이십니까. 정말로 전쟁이라도 치르려는 겁니까? 미궁도시 브람의 오랜 평화를 깰 작정이십니까?”

평화.

그 말에 빌헬름 마이어가 발작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재밌는 소릴 하는군.”

“뭐가 우습다는 겁니까. 경비대의 저력을 얕보지 말아주십시오. 저희가 암흑조직을 건들지 않은 건 그들이 스스로 고개를 낮추고 밤의 치안을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틀렸다. 그건 우리가 영주에게 바치는 ‘쾌락’이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빌헬름 마이어는 그 질서를 알면서도 단호히 부정했다.

“비탄의 굴은 마약을, 검은 왕관은 장물과 노예를, 주지육림은 창기를, 루카스 패밀리는 무력을, 진홍의 속삭임은 지배력을, 오래된 것들은 영생의 유혹을 바쳤지.”

6강의 일원들이 관장하는 분야는 모두 영주나 권력자들을 유혹하기에 적절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새로이 6강의 일원에 들어선 흑산회는 다르다.

무력 면에서는 확실히 뛰어나지만 아무리 강해도 루카스 패밀리에 비하면 뒤처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흑산회가 제공할 건 공포 하나뿐이다.”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건들지 않으면 공포스러운 흑산회조차 경비대를 건드리지 않고 질서에 순응한다는 평판을 얻을 수 있지. 허나 우리에게 도전한다면...”

빌헬름 마이어의 삭막한 눈이 마티아와 시선을 마주했다. 나른한 눈매 사이로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이 마치 거대한 혼돈처럼 일렁거렸다.

“흑산회가 어째서 공포를 관장하는 조직인지 몸소 깨닫게 될 거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의 심문은 의미 없겠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들어보고 생각은 해보지.”

마티아는 자신 없는 태도로 말했다.

“경비대 입장에서는 흑산회가 강대한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는 물증이 하나라도 있어야 합니다. 뇌물이 아니더라도 도시의 체제에 순응하는 행동을 보여주십시오.”

빌헬름 마이어는 잠시 고민하더니 반쪽 남은 바게트 빵을 내밀었다.

“빵집에서 이거 샀는데.”

“예?”

“돈 주고 샀다고.”

바게트 빵 산걸 뭐 어쩌라는 걸까.

어색한 정적이 이어졌다.

뒤늦게 그의 의도를 눈치 챈 마티아가 고개를 저었다.

“부족합니다. 상점에서 제 값을 치르고 물건을 사는 건 확실히 암흑조직의 보스답지 않은 유한 태도입니다만, 좀 더 경비대와 관련된 공적인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빌헬름 마이어는 입매를 비뚜룸하게 치켜올렸다.

“제법 머리를 잘 썼군.”

“예?”

“경비대가 주관하는 업무 중 하나는 미궁 탐사자들의 감시. 미궁에 들어갔다 나오면 탐사보고서를 통해서 ‘공적인 무언가’는 충분히 달성되고도 남지.”

“그건... 예. 맞습니다.”

“그렇게 흑산회의 주력이 미궁에 들어간 사이에 지상에서는 검은 왕관이 흉계를 펼치고, 경비대는 이를 방관한다. 누가 이기든 양측 모두 피해를 입고 패자에게 책임을 지운다.”

상상도 못한 놀라운 흉계에 마티아는 깜짝 놀랐다.

“이게 경비대의 수작이지?”

“예? 아, 아닙니다.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아니다. 이건 경비대의 수작이다.”

경비대에 속한 본인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우긴다.

그 태도에 당황하기도 잠시.

마티아는 불현 듯 그의 의도를 깨닫고 전율에 휩싸였다.

‘이 남자. 미궁탐사를 빌미로 경비대의 의심을 가라앉힘과 동시에 검은 왕관과 전쟁을 치를 작정이야. 거기서 검은 왕관을 꺾고, 패자가 된 놈들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려는 거야!’

실로 악마적인 지혜와 오만한 자신감이었다.

자신이 패배할 경우는 생각하지 않는다.

승리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기에 내세우는 계획.

물론 착각이다.

그런데 빌헬름 마이어는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추측을 말하고 있다.

진위유무를 판별할 수도 없으니 마티아는 그냥 그가 엄청난 흉계를 세우고 이를 경비대에 제시하여 대단히 교묘한 방식의 거래를 제안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얌전히 짜져있어라.

흑산회가 검은 왕관을 파멸시키는 모습을 지켜보라.

그럼 먹고 남은 찌꺼기는 너희들에게 던져주마.

천하의 경비대를 마치 들개 취급하는 오만한 발언이지만, 이 남자라면 그런 태도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다른 6강의 보스들 못지않은,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를 대단한 카리스마가 엿보였다.

마티아는 수긍하였고, 송환의 목적은 달성했기에 빌헬름 마이어와 리나는 경비대에서 풀려났다. 바야흐로 장대한 착각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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