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4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 =========================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4)
나는 치를 떨었다.
설마 경비대가 그렇게까지 교활한 수를 낼 줄이야.
이제는 싫어도 미궁탐색을 해야만 한다.
동시에 검은 왕관이 벌일 수작을 미리 막아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하나뿐이다.
미궁에 내려가기 전에 검은 왕관을 미리 조지는 거다.
‘근데 저걸 어떻게 조지냐고.’
수전노 쉔처럼 그냥 가서 목만 슉 날릴 수는 없다.
놈들은 블랙마켓을 주관하는 암상인(Dark Merchant)이다.
음지에만 존재하는 온갖 물품을 공급하는 공급주라고.
당연히 개인호위도 엄청 많고, 돈도 썩어 넘친다.
정면으로 당당하게 쳐들어가면?
개떼거지로 몰려오는 용병들에 짓밟혀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암살을 시도하면?
개떼거지로 달려드는 암살자들의 역습에 죽을지도 모른다.
“골치 아프군.”
저런 통보까지 들은 이상, 못해도 일주일 내에는 미궁에 들어가야 한다.
[검은 왕관]을 파멸시킬 기한도 일주일 남은 셈이다.
뭔가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는데 모자이크녀가 슬금슬금 다가와 물었다.
“저기 보스. 뭔가 고민이라도 있으세요?”
“뭐. 도와주려고?”
“네, 네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맡겨주세요!”
초롱초롱 빛나는 눈 대신 치직거리는 모자이크.
진짜 쳐다보기도 부담스럽네.
아무튼 모자이크녀의 태도를 보니 알겠다.
얜 완전히 내가 NPC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거 퀘스트를 얻으려고 안달난 거다.
근데 이게 마음만 먹으면 진짜 퀘스트를 줄 수가 있다.
‘퀘스트의 발생조건을 알고 있단 말이지.’
의뢰주가 존재하고, 게이머의 개입이 필요한 임무가 존재하고, 임무를 달성하면 지불할 보상이 존재한다.
화술과 재력, 약간의 재치만 있으면 게이머가 NPC 행세를 하며 퀘스트를 주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문득 보기에는 괴상해도 이 여자 또한 전작기준 탑 랭킹 100위에 들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 여자의 지혜라면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전노 쉔. 놈이 남긴 조직 [검은 왕관]을 일주일 내로 파멸시킬 예정이다. 앞으로 하루 안에 쓸 만한 책략을 제시한다면 채택해주지.”
“처, 처음부터 그, 그런 엄청난 퀘스트를!?”
“괜찮은 책략을 제시한다면 앞으로의 네 가치를 달리 생각하겠다. 카이사르의 부장 정도로는 써주지. 다만 이번 기회를 헛되이 보낸다면...”
나는 반쯤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너는 영원히 카이사르의 펫으로 사육한다. 물론 그 경우에는 카이사르의 널 향한 관심이 떨어지는 날, 네놈의 무가치한 목숨을 친히 거둘 것이다.”
“히이익! 저, 저 이거 하기 싫어요!”
“건방진 년이 주제파악을 못하는군. 감히 흑산회 보스가 내린 지령을 철회하게 만들겠다고. 그 뒤에 일어날 일을 네년이 감당할 수는 있는가?”
모자이크녀는 망연자실하였다. 털썩 주저앉는 걸 보니 제대로 퀘스트가 주어진 것 같다.
‘카이사르의 부장으로 삼는다.’라는 명확한 보상이 제시되었으니 퀘스트 발생요건은 충족된 셈이다.
내가 진짜 NPC도 아니고 퀘스트를 깨면 호감도가 오른다, 라고 해서 모자이크녀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보상은 지위나 골드 따위의 물질적인 것이어야만 한다.
경험치까지는 퀘스트 자체가 시스템의 판단으로 성립된 것이기에 별개로 적용된다지만 호감도만큼은 예외다.
‘진짜로 그딴 일이 벌어지면 게이머의 감정이 시스템에 따라서 멋대로 변동되는 거잖아.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명색이 TOP 랭킹 100위 안에 들 만한 게이머이니 내버려두면 알아서 쓸 만한 비책을 모색해내리라.
그 사이에 나는 뭘 했냐고?
교관후보생 하나를 심부름꾼으로 삼아서 노점에서 사온 꼬치구이를 뜯어먹었다.
그게 전부냐고? 설마.
제대로 심부름꾼으로 나갔다온 놈과 리나, 카이사르, 레이브, 마크의 몫까지 구매하게 했다.
‘간부랑 주요 조직원, 내 말 듣는 놈은 우대를 해줘야지.’
보스의 권위는 의자에 앉아서 ‘음’ ‘흐음’ ‘호오’ 거리면서 생기는 게 아니다. 무서울 땐 엄청나게 무서운 양반이 자기 부하는 잘 챙겨줄 때 생기는 거지.
위협적인 맹수가 자신을 지켜주고 뒷배가 되어준다고 확신할 때야말로 비로소 두려움이 아닌 충성을 받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왠지 카이사르가 날 지켜주는 게 그런 모양새가 아닌가 싶었지만, 곧 멍청한 또라이한테 의지한다는 사실이 짜증나서 생각하기를 관뒀다.
“보스.”
“뭐냐. 벌써 책략을 떠올린 건가?”
“그.. 책략을 세우기 위해서 알고 싶은 게 있어요.”
정보수집인가. 뭐, 생각보다는 현명하군.
이런 건 의뢰주한테 캐는 게 맞지.
하도 나한테 겁먹어서 한참은 더 어버버 거리다가 찾아올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는 훨씬 빠르게 왔다.
“흑산회의 전력에 대해 알고 싶어요.”
“어느 정도로?”
“가급적 많을수록 정확한 책략을 제시할 수 있어요.”
나는 고민에 빠졌다.
흑산회의 전력이라고 들어도 막상 떠오르는 게 없다.
카이사르고 있고, 리나가 있고, 떨거지들이 있다.
끝이다.
내가 아는 흑산회는 그게 전부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 이상을 알려주고 싶어도 아는 게 없다.
“특별히 알려줄 건 없다.”
“으음... 그러면 카이사르 주인님이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을까요?”
“카이사르의 강함이라.”
그것도 딱 잘라서 단언하기가 힘들다.
카이사르는 중급검술의 보유자이며 무술의 천재 특성을 지녔다.
그 외에도 전투에 도움이 되는 스킬과 특성을 다수 지녔고, 착용한 장비는 이십 년간 현역으로 활동한 최상급용병 못지않게 대단하다.
그런데 그게 카이사르가 절정고수라는 의미는 아니다. 기를 활용하는 대단한 기술이 있거나 깨달음을 지닌 것도 아니며, 특정 무술을 마스터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막상 전투상황에 돌입하면 전투력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백이나 똘기 넘치는 행동이 변수를 일으킨다.
실제로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질 암흑가 정상회담에서 6강의 호위들이 방심하는 순간, 저벅저벅 걸어가서 쿨하게 수전노 쉔의 목을 뎅강 베어버리지 않았던가.
“때에 따라 다르다. 또한 이번 경우에는 좋은 때라고 할 수는 없지.”
주인을 잃고 단단히 독이 오른 녀석들이 지난번처럼 간단히 당해줄 리가 없다.
쉔의 두 호위들도 실력만으로 치면 카이사르보다 높지만, 특성이나 장비 때문에 거의 비등하게 싸울만한 놈들이었다.
그런 녀석들이 방심하지 않고 부하들을 동원해 맞선다면 카이사르가 뭘 해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그럼 저 여자애는요?”
“리나는 전력에 포함시킬 수 없다. 내 개인호위다.”
“그럼 보스도 전력 외로 계산해야 하나요?”
이게 당연한 소리를 하네.
“카이사르와 조직원들만으로 행동한다. 외교적인 부분이라면 나설 수는 있지만 전투는 놈들의 몫이다.”
“보스는 절정고수잖아요.”
아니야.
그거 헛소문이야.
“언제까지고 애들 싸움에 끼어들어서는 조직이 성장하지 않는다.”
“그런가요. 그럼 정면승부는 안 되겠고... 좋아요. 대충 작전을 세웠어요.”
“벌써?”
겁나 빠르네.
말 몇 마디 나누더니 진짜 계산이 선 모양이다.
“블랙마켓에 정면으로 싸움을 걸면 이기는 건 불가능해요. 그러니 다른 조직들의 침입을 유도하고 혼란을 틈타 주인님과 조직원들이 가세하는 거예요.”
“다른 조직들의 침입을 유도하는 방법은?”
“보스께서 교섭을 해야죠. 다른 조직의 보스들과. 블랙마켓의 지분을 두고 교섭한다거나.”
이년이 퀘스트를 날로 먹으려고 드네.
“기각. 이번 임무의 주 과제는 흑산회의 저력을 과시하고 만인들에게 공포를 심는 것이다. 주역의 자리를 다른 조직에 내주어서는 안 된다.”
“그럼 제 2안을 제시할게요.”
모자이크녀는 조금 더 솔깃한 책략을 제시했다.
“블랙마켓의 공급품이 들어오는 루트를 파악할 수만 있다면 그걸 약탈하고, [검은 왕관]의 방비가 공급품 방어를 위해 산개되는 틈에 중앙을 치는 방식이에요.”
“루트를 파악하는 방법은?”
“그거야 보스의 몫이죠. 위엄을 보이려면 역시 보스의 역할이 중요해야 하니까요.”
이년은 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내 몫으로 떠넘기는 거냐.
그런 배려는 필요 없어.
귀찮으니까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서 해결하라고.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다. 칭찬해주지.”
“그럼... 이것도 안 되는 건가요?”
“암상인들은 독자적인 루트를 지니고 있다. 카이사르와 임시조직원들을 집중투입하면 하나씩 부수는 건 가능하나, 정보를 구매하는 데 필요한 지출이 더욱 크다.”
“검은 왕관의 공급품을 후불로 팔면 되잖아요.”
“제 2안은 보류다. 이건 결정사항이다.”
상급 정보상인은 후불 안 받는다고.
선불로 지불하는 건 불가능하다.
암상인들이 다루는 물건이 얼마나 비싼데.
그걸 털 수 있는 루트도 당연히 가격이 비싸지.
지금 있는 돈으로도 부담될만한 수준이다.
‘상담을 한다고 정보를 흘릴 양반은 아니지만.’
가격상담 자체가 내 무능함을 증명하는 꼴이 될 수 있다.
NPC들은 날 겁나 잔인하고 유능한 놈으로 안다.
그 이미지를 망치는 행동을 자발적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어쩔 수 없네요. 그럼 마지막 제 3안이에요.”
원래 이런 제안은 뒤로 갈수록 솔깃해진다.
뭐가 나올까.
나는 이번에야말로 기대를 품었다.
“블랙마켓의 정상운영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서 거기에 붙은 세력원들을 절반 이상 이탈시키는 방책이에요.”
“마음에 드는군.”
“카이사르 주인님이나 흑산회의 방식에는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략을 실행하면 문제가 생겨요.”
“말해라.”
“악명이 올라요.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TOP 100위 안에 속하는 랭커의 경고다.
어지간한 악명은 훈장처럼 여기는 암흑조직의 보스에게 경고할 정도라면 예상되는 상승 폭이 정말로 장난 아니게 높아서 그런 거겠지.
나는 애써 긴장한 기색을 감추며 물었다.
“흥미가 이는군. 그건 어느 정도의 악명이냐.”
“경비대가 즉시 출동할 정도로요.”
경비대가 즉시 출동할 정도의 악명수치라면 짐작은 간다.
악명 1만 이상.
칭호 ‘대악인’이 ‘빌런(Villain)’으로 승급되는 수준이다.
“엄살 부리기는. 고작 그 정도인가.”
“네에에? 정말로 경비대가 출동한다고요?”
“문제없다.”
내 말에 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첨언했다.
“경비대는 이미 출동했었는걸!”
“네에에!?”
애초에 내 악명이 몇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이미 1만 넘었다.
아까 빵집에서 만난 경비대가 그거였다고.
오른 이유? 뻔하잖아.
카이사르가 깽판치고 6강의 일원이 되면서 상승한 거다.
이제는 이름값만으로도 악명이 스스로 오른다.
“그러면... 더 위험한 거 아니에요? 악명이 지나치게 오르면 경비대가...”
“움직일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거물이 되면 그만이다.”
애초에 이번 일에 한해서는 움직이지도 않을 테고.
거래했잖아?
이번 일로 발생하는 문제는 전부 패자한테 덮어씌운다고.
그것도 경비대에서 먼저 한 제안이다.
나중에 와서 없던 일이라고 발뺌하면 나까지 카이사르처럼 깽판을 쳐버릴 거다.
“보, 보스는 정말로 대단하시네요.”
“그렇지? 보스는 대단하다고!”
모자이크녀와 리나의 감탄을 받았다.
미소녀의 감탄을 받으면 남자는 원래 우쭐하기 마련이다.
모자이크녀는 아니지만 리나는 어엿한 미소녀에 속한다.
근데 별로 기쁘지가 않았다.
누가 나보고 ‘님 정말 쓰레기네요!’ 하고 감탄하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잖아.
“제 3안의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듣고 싶다.”
모자이크녀는 기뻐하며 책략의 구체적 내용을 제시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뒤, 나는 100% 확신했다.
내 주변에 싸이코가 하나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