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5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 =========================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5)
나는 상급 정보상인을 찾아갔다.
물론 [검은 왕관]에 대한 모든 정보를 구매하는 건 무리다. 내 소지금이 20만 골드에 육박한다고 해도 안 된다.
놈들이 운영하는 블랙마켓은 미궁도시 브람 최대 규모의 암시장이며 취급물품은 하나같이 진귀하거나 희소한, 혹은 음지가 아니면 구매할 수 없는 불법적인 상품들뿐이다.
블랙마켓이 한 번 열릴 때마다 흐르는 자금규모는 단순추정으로만 약 한화 대비 10조원 이상, 골드가치로는 대략 천만 골드에 육박한다.
내가 지닌 20만 골드도 안 되는 돈으로 덤벼볼만한 규모가 아니다.
정보구매는 물론이거니와 이걸 힘으로 어떻게 해보겠다고 덤비면 바위에 던진 계란처럼 퍽 하고 터져 죽는다.
“끌끌. 진심인가? 검은 왕관의 정보를 구매하겠다니. 위험을 무릅쓰는 남자가 성장한다지만 그렇다고 고객님이 단명 하는 건 싫은데. 뭣보다 돈도 부족하고.”
“구매할 정보는 하나. 그것도 지금 있는 돈으로도 충분히 구매 가능할만한 정보다.”
나는 원하는 정보를 요구했다.
“블랙마켓의 출입구 위치를 알고 싶다.”
“아... 그거라면 확실히 비싸기는 해도 감당 못할 금액은 아니겠구나. 오히려 심히 저렴해.”
“이왕이면 제일 저렴한 비밀통로도 하나만 포함해서.”
“그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가격은 10만 골드.”
“좋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10만 골드를 꺼냈다.
좌르르르륵!
골드 10만 개가 일제히 떨어지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금색물결이 테이블 위로 수북이 쌓이다 못해 바닥에 깔리며 넘실거린다.
멍하니 지켜볼 때는 즐거웠는데 다 떨어지고 나니까 엄청나게 멍청한 짓을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물론 이 광경을 본 상급 정보상인은 내게 빡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객님. 다음부터는 아공간 주머니에 담아서 주거나 전표 써서 주지 않을래?”
“...미안하다.”
한창 분위기 잡던 게 머쓱하게도 우리는 바닥에 수북이 떨어진 골드를 한참이나 주워서 계산해야 했다.
돈을 다 줍고 계산을 마치자 상급 정보상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종이뭉치 하나를 건넸다.
“자. 원하는 정보.”
“상당히 빠르군.”
“돈 세느라 시간이 왕창 걸렸으니까.”
할 말 없게 만드네.
“소란을 피우고 비밀통로에 매복이라도 하려는 건가? 어차피 거물들은 고객님이 구매하지 못한 보다 확실한 비밀통로로 도망칠 텐데.”
“그런 거물들은 이쪽에서도 건드릴 수 없다.”
오히려 마주치고 싶지 않아. 소드마스터 같은 거랑 비밀통로 외길에서 만나면 전멸엔딩이라고.
“흐음... 뭘 어떻게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대되네. 관련정보 팔 생각 없어?”
“없다.”
“정보 보호비는?”
“팔 테면 팔아라. 되도록 많이 팔아도 상관없으니 오히려 정보비를 5 대 5로 나눠가지고 싶은데.”
“대단한 자신감이네. 그래도 정보판매는 귀찮은 일이니까 8 대 2. 물론 이쪽이 8이야.”
수락했다.
어차피 팔릴 정보에서 조금이라도 돈을 받는다.
멍청한 놈은 지 정보가 팔리는 줄도 모르고 나중에 ‘망할 정보상인이 내 정보를 팔았어!’라며 분개하겠지.
그렇다고 앙심을 품고 정보상인을 공격하거나 이용하지 않아서 손해 보는 건 지 밖에 없다.
원래부터 이런 놈들인 걸 인정하고 이용할 수 있는 걸 이용하는 게 옳다.
“이건 서비스.”
[상급 정보상인이 아공간 금화주머니를 선물했습니다.]
“어디가서 금화 흘리고 다니지 말라고.”
“고맙다.”
“백만 골드까지는 들어가니까 유용하게 쓰도록 해.”
1조 원 어치의 현금이 들어가는 주머니라니.
이걸 꽉 채우는 날이 오기는 할까.
그보다 이거 잃어버리면 자살은 확정이겠다.
* * *
빌헬름 마이어가 나간 뒤, 상급 정보상인은 꾹 감추었던 상기된 표정을 숨김없이 드러내었다.
“역시 저 남자는 거물이야.”
이제까지의 정보이용자들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처럼 개거품을 물고 덤볐다.
빌헬름 마이어는 달랐다.
그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오히려 마음대로 정보를 팔아도 좋다며 호언장담했고, 거기에 더해 정보비를 나눠 갖자는 발칙하면서도 유쾌한 제의까지 했다.
“대체 뭘 준비하고 있기에 저리 자신만만한 거지?”
그녀는 휘하 정보계통을 동원해서 그가 무엇을 준비하는지 확인했다.
그는 남은 자금의 대부분을 사용해서 어떤 물건을 대량으로 확보하였다.
가져간 정보와 구매한 물품을 통해서 그가 노리는 게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저 남자! 블랙마켓의 운영을 방해하는 걸 넘어서 일반 이용자들을 털어먹을 작정이야!’
신용도에 금이 간 암시장은 운영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주인인 쉔도 죽었다.
그런 일이 벌어졌다간 [검은 왕관]은 풍비박산이다.
“아아. 정말로 대단해.”
그렇기에 더욱 진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빌헬름 마이어의 수는 파격적이며 뛰어났다.
그러나 성공하기까지 딱 한 수가 부족했다.
“그가 조금만 더 돈이 많았다면 가능했을 텐데.”
확보한 물건의 수량이 부족했다.
이대로는 틀림없이 계획은 실패한다.
그래도 직접적으로 도울 생각은 없었다.
실패한다면 그도 거기까지인 인간일 뿐.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조언 한 마디 정도는 괜찮으리라.
* * *
스테이크를 썰어먹는데 딱딱한 뭔가를 물었다.
뼈라도 씹었나.
와그작와그작 씹어서 삼키는데 맞은편에서 같이 스테이크를 썰어먹던 리나가 퉤 하고 뭔가를 뱉었다.
“으엑. 딱딱해.”
“밥상에서 뭐하는... 포춘쿠키?”
“오. 보스, 이거 뭐야? 스테이크 안에서 포장된 종이가 나왔어!”
시발. 그럼 나 방금 포장된 종이 씹어 삼킨 거잖아.
오돌뼈 먹는 감각으로 삼킨 게 실수였다.
“이 포장지. 먹어도 괜찮은 건가?”
“아하하핳. 엄청 웃겨. 보스 그거 먹었어?”
“…….”
이년이 나 종이 먹었다고 되게 좋아하네.
내가 염소처럼 보이냐.
“딱히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가서 물어보고 올게!”
리나는 점원에게 가서 나를 가리켰다.
어째서인지 점원이 킥킥 웃다가 내 얼굴을 알아보고는 사색이 되었다.
허둥지둥 손을 휘저으며 리나에게 사정사정 하다시피 이야기를 하는 모양새를 보니 설명 하나는 제대로 들을 것 같다.
[빌헬름 마이어의 악명이 1 상승합니다.]
덤으로 악명도 올랐고. 이런 건 이제 일상이라서 딱히 한숨조차도 나오지 않는다.
“부작용은?”
“속이 더부룩해지고, 소화가 잘 안되고, 잠깐 열이 나고 이따금 쑤시는 감각이 들다가 마지막에는 포장지가 혈액에 융해되면서 피 색깔이 잠깐 파래지는데 별 상관은 없대!”
그딴 설명을 들으면 누가 들어도 별 상관이 있는 것처럼 들리잖아.
당신은 복통을 느끼고 소화가 비정상적이며 갑작스러운 고열과 통증에 시달리다가 혈액이 변색되는 증상을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별 일 없고 괜찮습니다, 라고 했잖아.
현대에서 의사가 면전에서 이딴 소리 싸지르면 일단 싸대기부터 갈길 거다. 네 피는 빨간색이니까 괜찮겠지 새꺄 하면서 때릴 거라고.
“그래서. 네 종이에는 뭐라고 적혔냐.”
“음...”
리나의 표정이 해괴해졌다.
“보스. 음식점 점원이 보통 이런 것도 써줘?”
보통 포춘쿠키에는 오늘의 럭키컬러는 노란색! 같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개소리가 적혀있다.
근데 리나의 종이에는 한층 더 뜬금없게 ‘사랑합니다. 저와 결혼해주세요.’라고 써져있었다.
어떤 로리콘 새끼가 이 짓을 저질렀나 하고 얼 타고 있자니 점원이 으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종이를 가져갔다.
“잊어주세요! 이거 옆자리 손님한테 드려야 하는 건데 하필이면 서빙을 잘못해서..”
마침 옆 테이블에서는 남자가 가오를 잡고 있었다.
“그 종이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들어있어.”
“정말? 이상한 거 쓴 건 아니겠지?”
“내 진심이야. 언제나 밤이면 이 생각만 했어.”
여자는 상기된 얼굴로 종이를 펼쳐보았다.
“이 못된 녀석!”
짜아악!
옆자리 여자가 동석한 남자의 뺨에 싸대기를 날리고는 몹시 화난 표정으로 가게를 뛰쳐나갔다.
남의 일에는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는 나라도 이것만큼은 호기심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은근슬쩍 옆 테이블에 여자가 던져놓고 간 행운의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슬슬 인정해주세요. 당신의 외모가 추악하다는 것을!
이게 어딜 봐서 행운의 종이냐.
뺨 맞을 만도 하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저희 가게는 원래 불행의 종이를 넣고 우스갯소리처럼 악담을 판매하는 걸요! 이걸로 마니아층이 얼마나 생겼는데!”
“그런 건 몰라도 커플 하나를 깨뜨린 건 알겠군. 저 남자에게 칼로 찔려도 할 말이 없겠어.”
“저, 정말로 죄송합니다, 손님! 제 착오 때문에 그만!!”
남자는 눈물을 주륵 주륵 흘리며 울었다.
어찌나 서러웠던지 점원이 잘못했다며 이거라도 받고 기운 내라고 음식을 한 보따리 안겨줘도 받지도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못 달래면 며칠 있다가 진짜로 칼이라도 들고 찾아올 것 같이 슬퍼했다.
“제발 이거라도 받고 진정해주세요!”
점원은 급기야 돈주머니까지 내밀었다.
당장 칼에 찔려 죽을 판국인데 뭔들 못 아끼겠는가.
남자는 슬퍼하면서도 돈주머니는 챙겼다.
거 웃긴 놈이네.
재미난 구경거리라고 생각하며 가게를 나왔다.
그러자 남자도 뒤따라 가게를 나왔다.
“아, 젠장. 겨우 작업 쳐서 성공하기 직전에 이딴 훼방을 받다니. 진짜 죽여 버리고 싶어서 미치겠네.”
“…….”
“아. 옆자리 부녀시네. 아까 포장지 씹어 먹는 거 보고 웃음 참느라 미치는 줄 알았수다.”
리나는 입까지 쩍 벌리며 경악했다.
“리나가 보스의 딸처럼 보여!?”
거기에 놀라는 거냐.
좀 더 저 녀석의 연기력에 놀라달라고.
“음? 그럼 원조교제라도 하는 건가?”
“교, 교제라니. 그런 부끄러운 말을...”
리나는 원조교제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게 틀림없다.
알고도 저러는 거면 더 섬뜩해.
그 경우는 눈곱만큼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내가 두렵지 않은가.”
남자의 허물없는 태도가 내게는 낯설게 다가왔다.
악명이 오른 뒤로는 모두가 날 두려워하거나 경계한다.
지닌 힘의 강약과 지위의 고저를 막론한 모두가 그러했다.
예외가 있다면 카이사르와 리나 뿐.
거기에 이 남자가 추가되었다.
“댁이 뭔데 두려워해? 보스라고 불리던데 무슨 흑산회 보스라도 되시나? 하하.”
“맞는데.”
“웃기는 소릴 하는군. 누굴 촌놈으로 알아? 소문으로 듣기로는 흑산회 보스는 손과 발을 합쳐서 12개나 되고, 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통을 세 개씩 들고 다닌다고 했어.”
그걸 믿고 있는 시점에서 너 촌놈 확정이네.
그보다 태클 걸 구석이 너무 많아.
팔다리가 12개나 되면 일단 인간이 아니고, 머리통을 들고 다니면 아무리 나라도 경비대에 체포된다.
“들었어, 보스? 팔다리가 12개래!”
“흐흐. 놀랐지? 그거에 비하면 네 보스는─”
“몸통에 접어둔 팔다리라도 있으면 펼쳐주는 게 어때?”
“촌놈이랑 놀아주지 마라.”
“치. 그치만 저 촌놈도 보스를 바보 취급했는걸.”
리나의 말에 남자의 얼굴 위로 땀방울이 맺혔다.
“호, 혹시 어느 조직의 보스이신지... 여쭈어 봐도..”
“흑산회 보스 빌헬름 마이어다. 촌놈아.”
“흐에엑!!”
성대하게 뒤로 나자빠지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석연찮았던 반응이 사라져 한층 개운해졌다.
그야 보통은 이렇겠지.
쌓인 악명이 1만이 넘고 빌런 타이틀까지 습득했으면 일반인은 말도 쉽게 못 붙이는걸.
슬슬 아지트에나 돌아가자.
방금 산 물건들을 배달받을 때가 되었다.
결국 내 불행의 종이에는 뭐가 써져있을지가 궁금하긴 하다만,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