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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56화 (56/224)

00056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 =========================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6)

아지트에 위험물질이 한가득 쌓였다.

이거 정체가 뭐냐고?

불붙이면 쾅하고 터지는 화약이다.

“보스! 우리 테러라도 하는 거야?”

“신나하지 마라. 가지고 놀 것도 아니다.”

“에에. 아까워.”

보채지 마라.

이건 전부 다 용도가 정해져있다.

“블랙마켓의 입구를 박살내서 봉쇄하려면 이 수밖에 없다.”

애초에 그런 불법적인 영업이 아무 장소에서나 일어날 수는 없다.

무계획적인 증축과 보강작업이 이루어진 동쪽지구의 복잡한 골목길에서, 한층 더 보안에 주의를 기울이며 조성한 지하공간에서나 블랙마켓이 개장한다.

모자이크녀는 전작의 경험을 토대로 블랙마켓이 동쪽지구의 지하에서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입구를 폭파시킨 뒤, 일반 이용객들을 약탈하는 책략을 제의했다.

‘싸이코스러우면서도 유능한 책략이지.’

느닷없이 블랙마켓 건물입구를 폭탄으로 무너뜨리고 탈출구 중 하나에 죽치고 있다가 오는 놈들을 다 잡는다니.

이런 막나가는 작전을 제의한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이게 성공가능성이 가장 높은 책략이라는 사실이다.

“폭탄이 터져도 건물이 안 무너지면 어떡해? 방비도 여러모로 튼튼할 텐데.”

“카이사르의 펫도 그걸 감안했기에 폭발을 선택한 거다. 물리공격은 블랙마켓 입구에 주둔중인 병력이 막고, 마법공격은 대마법방어진으로 차단되겠지. 허나 폭발은 다르다.”

“폭발도 물리공격 아니야?”

“기사급 전투원이라도 인간을 상대로 싸우는 경우나 상정했지, 폭약이 터지며 발생하는 화염과 무너지는 건물에 맞서는 경우는 상정하지 못했을 거다. 마법방어진도 무의미하지.”

“정말이다! 역시 보스는 대단해!”

딱히 내가 세운 책략은 아닌데.

그래도 칭찬 받는 건 즐거우니까 그냥 받아두자.

“그래도 당장 써먹을 건 아니다.”

“어째서?”

“블랙마켓은 아무 때나 열리는 게 아니니까.”

블랙마켓은 일정주기로 열리는 암시장이다.

삼일 뒤부터 대략 일주일가량이 열리고, 다음 개장은 무려 반년 뒤에나 이루어진다.

여러모로 지금은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보스. 어디 놀러 다닐 거야?”

“별로 그럴 마음은 안 드는군.”

“그럼 도장 안에만 있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다니면서 검은 왕관의 습격을 유도할 필요는 없다. 괜한 변수를 만드느니 지금은 숨죽이고 시간을 죽일 때다.”

“그럼 리나가 없어도 딱히 위험한 일은 없겠네? 도장에는 살인광 카이사르가 있으니까!”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냐?”

아무리 나라도 이렇게까지 말하면 눈치 못 챌 수가 없다.

리나는 휴가를 원하고 있다.

“응! 보스 호위 때문에 좀처럼 놀 시간이 없었으니까!”

“...호위를 늘 긴장상태로 한 것도 아니었잖아.”

내 기억이 잘못 되지 않았다면 이 녀석, 꽤 놀았다.

가끔 누워서 ‘천장을 감시한다!’ 따위의 헛소리도 했다고.

새근거리면서 잘 때는 아예 모포도 덮어주었다.

게다가 전에 듣기로 이 녀석의 휴식시간은 삭막한 폐인의 시간 그 자체였다.

아무것도 안 한다.

그저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이 생기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이거 뭔가가 있군.’

억지로 눌러봤자 반발만 생길 뿐이다.

“허가한다. 작전개시까지는 아직 65시간가량 남았다. 넉넉잡아 60시간의 휴가를 주지.”

“와아! 보스, 고마워! 정말 기뻐!”

자그마한 녀석이 쪽쪽 거리며 뽀뽀를 하는데 야한 생각보다는 손녀의 재롱을 받는 할아버지의 기분이 들었다.

정신연령으로는 이미 100세를 넘겼으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성욕이 왕성한 변태게이머들은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변강쇠처럼 껄떡대고 다닌다던데 늙어서 나잇값도 못하는 주책바가지라는 생각만 든다.

띠링!

리나를 휴가 보내고 잠시 후, 신물 나는 알림소리와 함께 좀처럼 보기 힘든 팁이 나타났다.

[Tip> 고된 업무에 시달리거나 큰 사건을 겪은 부하들은 이따금 심신의 안정을 위해 휴가를 신청하기도 합니다. 휴가 중에는 부하에게 다양한 이벤트가 발동할 수 있습니다.]

[세부사항 : 다양한 이벤트에 대하여]

[우연한 아이템 습득, 선물 구매 따위의 귀엽고 아기자기한 이벤트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적대조직의 스카우트 제의나 살인사건 따위의 부정적 이벤트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나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려보았다. 역시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지금 내 심정은 야심한 밤에 어린 딸이 혼자 외출할 때 느낄법한 불안한 상태였다.

‘위험해!’

리나는 제법 귀여운 생김새를 지닌 암살자다.

어디 가서 맞고 다닐 걱정은 없다.

오히려 걱정하는 건 그 부분이 아니다.

‘리나가 몇 건의 살인을 저지를지 예상할 수가 없어!’

귀여운 외모를 보고 꼬여든 남자들은 가볍게 손대중을 해서 쓰러뜨리겠지.

그놈들은 자존심이 상해서 으슥한 골목길에서 패거리를 이끌고 와서 시비를 걸 테고.

단단히 열 받은 리나가 단검을 들면 피보라가 일기 시작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보기에는 마냥 귀엽고 턱을 간질여주고 싶을 뿐이지만, 열 받으면 여자 카이사르가 되는걸!’

차라리 함성이라도 지르면서 적을 곤죽으로 만드는 카이사르는 ‘내가 지금 1킬했다!!!’라고 온 동네에 광고를 하는 격이라서 즉각 상황수습에 나설 수라도 있지.

리나는 소리 소문도 없이 슥삭 해치우고 한참 있다가 돌아와서 ‘보스! 나 1킬했어! 잘했지?’라며 깜짝선물로 잘린 모가지를 들이대는 유형이다.

시스템 알림을 주시할 때라면 모를까, 주시하지 않을 때에 자칫 알림을 놓치기라도 하면 굉장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런고로 비상사태다.’

이제부터는 시스템 알림창만 보면서 리나가 뭔가 사건을 일으킬 때마다 조직원을 보내어 뒷수습에 나서야만 했다.

[Tip> 휴가 중인 부하가 일으키는 이벤트는 휴가가 종료된 뒤에 일괄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근데 꺼지란다.

빠드득.

나는 이를 악물고는 근처를 지나가다가 흠칫한 조직원을 불렀다.

“거기 너.”

“부르셨습니까, 보스!”

“리나 찾아와.”

“알겠습니다! 어디서 찾아오면 됩니까?”

“도시 어딘가.”

조직원의 얼굴이 보란 듯이 썩었다.

“그거 저 혼자서 해야 하는 임무입니까?”

“인원제약은 두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언제까지 찾으면 됩니까?”

정해둔 기한은 60시간.

그 시간이 지나면 리나가 제 발로 걸어서 돌아올 거다.

“60시간.”

“제한시간 내에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죽겠지.”

엄청난 수의 피해자라기도 뭣한 불량배들이.

조직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이 녀석도 이해해준 모양이다.

“뭐하고 있지? 임무는 이미 내려졌다.”

“히이익!”

조직원은 볼썽사나운 비명을 내지르며 카이사르 밑에서 한참 수련 중인 조직원들에게 달려갔다.

조직원들은 들고 있던 무기마저 떨어뜨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거친 손짓과 욕지기가 오가더니 더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패닉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도리어 어이가 없어졌다.

‘불량배들이 죽는 게 그렇게까지 괴롭나?’

아니, 어쩌면 감정이입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놈들도 비슷한 입장이었잖아.

걔들보다 보통보다 좀 더 힘과 깡, 실력이 있을 뿐이니까.

안절부절 못하던 놈들이 카이사르에게 우르르 달려갔다.

나를 가리키며 절박하게 뭔가를 설명한다.

카이사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내게 다가왔다.

“보스. 60시간 이내에 리나를 찾아야 한다는 임무가 사실입니까?”

“그렇다.”

“사망자가 대거 발생하는 것도 사실입니까?”

“그렇다.”

“저도 마찬가지입니까?”

이건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얜 지능 능력치도 정상인 수치면서 가끔씩 멍청한 소리를 한다니깐.

남들과 똑같은 10의 지능을 상식부분에 할애하지 않고 전투부분에만 활용하니까 싸이코 소리를 듣지.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 하냐?”

어째서인지 카이사르의 얼굴이 엄청나게 굳었다.

이내 흉신악살처럼 거칠게 일그러졌다.

얼굴로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은 인상파 스타일이다.

“너 정도라면 사망자를 만드는 쪽이지. 누가 널 죽여?”

“그런데도 제가 나서야 한단 말입니까?”

오호라.

이 녀석, 요상한 부분에서 질투를 부리는 건가.

리나 따위가 저지르는 사고가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하냐고 코웃음 치는 것 같다.

“알고 있을 텐데. 리나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건.”

카이사르는 모두가 알다시피 육강의 일원인 수전노 쉔조차도 본신의 실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눈치 채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목을 쳐버린 싸이코 새끼다.

그가 싸움을 꺼려한 상대는 극히 드물다. 놀랍게도 리나는 그가 즉각 교전을 벌이지 않은 극히 드문 예외에 속한다.

암살자의 하위 클래스인 도적으로서의 기본소양은 엉망진창이지만 암살 및 암습에 한해서는 최강에 가까운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고도의 기술을 지닌 암살자는 눈앞에서도 순간적으로 사라지며 부지불식간에 암습을 가할 수 있지.’

인간의 인지 그 자체를 속이며 기상천외한 기습을 가한다.

눈에 보인다고 방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이를 마치 맹수가 맹수를 알아보는 것처럼 깨달은 거다.

“너보고 나서라고 한 적은 없다.”

“역시 제가 더 위임을 인정하시는군요.”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나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리나의 실력과 네 실력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면 반드시 사상자가 나오게 된다. 그러니 이런 간접적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무슨 생각이십니까?”

“네게서 교육을 받은 조직원. 놈들만 동원해서 리나를 수색하고 60시간 전에 여기에 데려온다. 당연히 리나는 내 정식부하니까 생채기 하나 입히지 않아야 한다.”

그걸 해낼 수 있는 가, 없는 가로 역량을 가늠한다.

“전투가 아니면 불리합니다.”

“내가 요구하는 건 전투능력만이 전부가 아니다.”

“과연. 실행력의 문제라면 납득했습니다.”

리나는 모처럼 손에 넣은 휴가를 그리 간단히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조직원들은 가뜩이나 폭력배들의 떼죽음에 감정이입을 한 상황에서 보스인 내 명령이 내려졌으니 어떻게든 임무를 수행하려 할 것이 틀림없다.

그것도 범죄길드의 수색조차도 피하는 리나를 찾아내 상처 하나 입히지 않고 데려와야 한다.

“내기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카이사르가 문득 제안해왔다.

“저는 저 벌레들이 60시간 내에 리나를 데려오는데 성공한다에 걸겠습니다.”

“뭐를 걸 거냐.”

“보스의 특별지령을 뭐든지 한 가지, 원하시는 때에 즉각 이행하겠습니다.”

이건 제법 구미가 당긴다.

“좋다. 그럼 나는 리나를 데려오는데 실패한다에 걸지. 공평하게 나 역시 네 사적인 부탁을 뭐든지 한 가지, 원하는 때에 들어주겠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제가 드래곤을 잡아달라고 하면 어떡하실 겁니까.”

“안 해.”

미쳤냐.

나보고 뒤지라는 거냐.

“그러는 너야말로 드래곤을 잡으라고 하면 어쩔 거냐.”

“30년 내에는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딴 건 시키지 않아.”

30년이면 급박한 미궁도시의 정세에 휘말려 수십 번도 더 죽고 새 시트지를 몇 번이고 만들 시간이라고.

아무튼 그렇게 내기는 성립되었다.

덤으로 카이사르는 조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출발 전에 짧은 격려의 말을 했다.

“실패하면 보스가 시키는 지령은 너희들도 함께 할 거다. 보스의 특별지령이라면 드래곤은 아니더라도 석화의 마안이 갖고 싶으니까 히드라 정도는 잡으라고 하시겠지.”

아니, 그딴 거 별로 갖고 싶지 않은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조직원들은 더욱 사색이 되었다.

“맙소사. 보스께서는 히드라로도 만족할 수 없다는 건가?”

“위험해. 이거 실패하면 틀림없이 죽어. 그것도 초 위험한 특급지령을 맡아서!”

“으으으. 어비스의 악마를 산 채로 포획하라는 말도 안 되는 임무를 받을지도 몰라. 그리고 우리는 악마의 노리개가 되어 고통 받다가 죽을 거야! 그런 건 절대로 싫어!”

조직원들은 악에 받힌 눈을 하며 비장한 각오를 품고 미궁도시 브람의 거리로 나섰다.

어째서일까.

리나보다 저놈들이 더 큰 사고를 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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