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1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 =========================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11)
범죄길드 동쪽지구 지부장, 야구사 아몬.
그는 대대로 암흑가의 밤의 귀족이라 불리며 군림해온 아몬 가의 17대 가주이자 최고의 암살자이다.
피도 눈물도 모르는 냉혈한 자라고 알려진 그에게도 유일한 약점이 한 가지 있었으니…….
“선택해라. 빨간색이냐, 검은색이냐.”
“딸기시럽도 초코시럽도 싫어! 리나는 그런 걸 먹으러 온 게 아니라고!”
“흠흠. 변함없이 화내는 얼굴도 귀엽군.”
그는 귀여운 것만 앞두면 정신을 못 차린다.
덤으로 리나는 귀엽다.
고로 리나만 보면 나사가 풀어지게 된다.
“교섭. 제대로 듣고 있었어?”
“아아. 물론 듣고 있었다. 훔쳐간 물건은 하나도 사용한 게 없으니 그대로 돌려주고, 별 거 아닌 점원의 목숨 값도 돈으로 치르겠다고.”
“맞아. 그러니까 이제 리나 앞으로 내린 수배령은 철회해줘. 리나는 범죄길드나 지부장이랑 적이 되고 싶지 않아. 일단은 15살이 될 때까지 암살자로서 고용해주었잖아?”
야구사 아몬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과연. 새로운 직장을 구했고, 이제 범죄길드를 나가도 배 굶지 않고 살 자신이 있다는 건가... 한 가지만 확실하게 대답해준다면 허가하겠다.”
“뭐를?”
“네 새로운 고용주는 당연히 여자겠지?”
리나의 얼굴이 마구 구겨졌다.
‘쳇, 이 빌어먹을 로리콘 녀석이.’
리나의 반응만 봐도 답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허락할 수 없다! 그런 귀여운 얼굴로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다가 어떤 취급을 당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지부장. 꽤나 멋대로 말해주시는데...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엄청나게 성희롱 해대잖아! 보스는 자상하고 인자한 분이야. 변태 같은 당신이랑은 다르다고!”
“변태 같다니. 15살이 되도록 고아인 너를 돌봐주며 암살자의 길을 걷도록 교육한 게 누구라고 생각 하느냐. 네 아비의 역할을 대신한 게 바로 이 몸, 야구사 아몬이다!”
리나는 대놓고 싫다는 얼굴로 쏘아붙였다.
“내 소시지를 먹어라, 같은 소리나 한 주제에.”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듯, 자식 또한 아버지에게 사랑을 돌려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가 아니던가?”
“미친 새끼. 당신은 최저의 쓰레기야.”
야구사 아몬은 히죽 웃었다.
“그런 쓰레기 밑에서 자란 게 너지. 그런 네가... 어울리지 않은 짓을 하는군. 교섭? 돈을 바쳐? 흑산회의 보스. 그 남자를 지키기 위해 이런 일까지 하다니.”
“범죄길드에서 이미 내 행적을 찾아낸 건 알고 있어. 싸워서 지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이 이상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 보스는 당신들 따위에게 발목이 잡혀서는 안 돼.”
그랬다.
리나는 이미 범죄길드의 포위망이 좁혀지는 걸 눈치 챘다.
그렇기에 휴가라는 핑계까지 대며 교섭에 나섰다.
‘인성은 쓰레기지만... 이런 남자이기에 오히려 강해.’
야구사 아몬의 강함은 누구보다도 리나가 잘 알고 있다.
그는 그녀의 암살자로서의 스승이기도 하니까.
그가 직접 암살에 나서면 보스를 지킬 자신이 없다.
“리나. 네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야구사는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벌렸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5년을 기다린 과육, 지금이라면 수확하기에 늦지 않겠지.”
“당신이라는 인간은 정말로... 딸처럼 길렀다는 아이한테 손을 댈 작정이야?”
“언제나 그렇듯 강요하지는 않는다. 하고 싶지 않다면 거절하고 대가를 감수해라. 그게 우리 사이의 암묵적인 규칙이 아니었던가?”
좋은 사람 행세를 하던 얼굴이 급변했다.
한없이 불길한 흉소가 어렸다.
이것이야말로 야구사 아몬의 진면목이다.
“원하는 게 뭐야?”
“스파이가 되어라. 6강의 일원이 된 흑산회 보스, 빌헬름 마이어. 그의 측근이 된 너라면 정보를 빼낼 가치는 있겠지.”
“그건...”
리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보스는 단순한 부하로서만 그녀를 받아들인 게 아니었다.
어른들은 언제나 불길한 눈을 한 범죄자, 꺼림칙한 암살자라며 그녀를 멀리하거나 지부장처럼 변태적인 성욕이나 내비치며 접근해왔다.
오직 보스만이 달랐다.
마치 자신을 ‘평범한 여자아이’처럼 취급해주었다. 가끔 짓궂어지기는 해도 그 바탕에는 자신을 향한 걱정이 담겨있음을 은연중에, 혹은 뒤늦게 알 수 있었다.
‘호위에 실패했을 때에는 죽을 각오마저 했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책망하지 않았다.
전과 다름없는 신용을 보여주었다.
‘이 사람이야.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돼.’
보스다운 행동으로는 부족하나 인간적인 호감이 생겼다.
그런 빌헬름 마이어를 배신한다?
다시 예전처럼 야구사 아몬의 손아귀 아래에서 놀아난다?
그런 건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할 수 없지만...
“큿...!”
거절하면 교섭은 끝. 빌헬름 마이어는 암살당한다.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럴 바에야 스파이 행세를 하면서 기회를 노린다.
“그 조건, 받아들..”
“지부장! 긴급사태입니다!”
벌컥 문을 열고 길드원 한 명이 들이닥쳤다.
야구사 아몬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말해라.”
“블랙마켓에서 판매하려고 노예들을 모아둔 노예보관소가 급습 당했습니다!”
“노예보관소를...? 감히 겁도 없이 범죄길드의 물건에 손을 댄 머저리들은 누구냐.”
“흑산회입니다! 놈들의 기세가 엄청나서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호오...”
리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보스! 아니, 살인광 놈의 짓인가!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야구사 아몬이 킬킬거리며 이를 드러내었다.
“리나. 발칙한 짓거리를 해주었구나.”
“어... 이건 귀여운 리나도 모르는 일인데.”
“몰랐다? 몰랐다... 그래, 모를 수도 있지. 그럴 수 있어.”
그는 선뜻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리어 그 행동이 불안했다.
이내 잔뜩 위축된 리나에게 단검을 건넸다.
“이건...?”
“몰랐다면 선택할 기회를 주지.”
그는 냉혹한 어조로 선언했다.
“흑산회 간부 내지는 보스의 목을 가져와라. 네놈의 것이든, 다른 놈들의 것이든 바쳐야 할 목은 하나. 기한은 앞으로 단 하루다.”
“!!”
“하루가 지나고도 바쳐진 목이 없다면 범죄길드는 흑산회를 [공적]으로 선포하고 전쟁을 치른다. 아무리 6강에 속한 조직이라도 내실이 다져지지 않은 지금이라면 전부 죽겠지.”
범죄길드는 결코 적지 않은 수의 강자를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부장들의 강함은 진짜배기다.
지금의 리나로서도 감히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다.
“…….”
리나는 말없이 단검을 집어 들고 범죄길드를 떠났다.
모두가 살 수는 없다.
누군가의 목을 바쳐야만 나머지가 살아남는다.
리나는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보스를 향한 충성심이라면 내 목숨이 걸린 시점에서 어떻게든 포기할 수는 있어. 하지만...’
빌헬름 마이어를 향한 애정만큼은 외면할 수 없다.
비로소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은 생각한 것보다 더 그를 좋아하고 있었음을.
죽어야 할 사람은 역시 한 명뿐이다.
카이사르.
그놈의 목을 바치고 보스와 사랑의 도피를 떠나면 된다.
이제 방법은 그것밖에 남지 않았다.
* * *
도장 안을 어슬렁거리던 카이사르가 대뜸 물었다.
“보스. 피가 많이 흐르는 게 좋습니까?”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당연히 싫다.”
“역시 보스라면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피가 아주 많이 흐르는 방법을 택해야겠군요.”
“…….”
이 녀석의 사고방식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다.
보통 그런 대답은 안 돌아온다고.
그보다 느닷없이 발정이라도 했나, 웬 피 타령이지.
“눈치가 빠르구나! 흑산회의 광견!”
새카만 그림자들이 도장 담벼락을 뒤덮었다.
촤자작
일제히 착지한 무뢰배들 가운데 한 남자가 선두에 나섰다.
“블랙마켓의 개최 시기를 앞두고 움직이면 수를 쓰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가. 그건 크나큰 오산이다. 병력의 대부분이 빠진 본진이라면 기습을 가하기에 더할 나위 없지!”
“검은 왕관의 잔당들인가. 그 늙다리에게 이 정도의 충심을 바칠 자들이 있었다니 놀랍군.”
“수전노 쉔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금의 검은 왕관에 필요한 건 공석이 된 수장의 좌를 차지할 차기수장! 흑산회 보스의 목이라면 차기수장의 좌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지!”
과연... 행동에 나선 건 저쪽도 마찬가지라는 건가.
“건방지게 지껄여대는군. 네놈. 이름을 밝혀라.”
“레드그리드 검문의 일대제자, 자하크. 네놈들의 목을 벨 사내의 이름이다!”
자하크라는 남자.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무위를 지니고 있다.
검술실력은 카이사르와 호각이거나 그 이상.
‘위기에 몰렸다는 건가.’
백보도장의 교관 십여 명이 남아있다지만 저쪽 또한 자하크의 수하 검객들만 무려 30여명에 달한다.
“애송이 놈들. 영광으로 알아라.”
카이사르는 오만한 눈을 하며 당당하게 선언했다.
“오늘의 보스는 피가 아주 많이 흐르는 방식을 선호하신다. 몇 명 정도의 피로는 부족하지. 인질도 포로도 필요 없다. 오늘 네놈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전부 죽는다.”
“하하. 자신의 처지를 알고 지껄이는 건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건 바로 네놈이다. 너희는 결코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될 검객을 앞두고 있다.”
그래.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지막에 믿을 건 카이사르다.
평소엔 놈의 싸이코 짓이 두렵고 꺼림칙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닥치면 놈의 그런 기질이 상황을 장악한다.
카이사르가 하도 오만하게 구니까 자하크와 놈의 수하들조차도 벌써 자신들이 모종의 함정에 빠진 건 아닌지 강하게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함정인가!”
“함정? 그딴 건 필요 없다. 네놈들은 전부 검에 죽는다.”
“...블러프라니, 괘씸한 짓을!”
자하크는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흑산회의 광견 카이사르. 네놈이 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지닌 검객이라도 이 정도의 전력 차를 역전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그 건방진 목을 토막내주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네놈은 틀렸다.”
어라? 오늘의 카이사르는 뭔가 이상하다.
평소라면 ‘목을 토막내? 그럼 난 네놈의 목에 사지를 포함해 일곱 토막을 내주마. 마지막 한 토막은 쥐새끼만한 앞 꼬리를 잘라내어 만들어주지!’라며 달려들고도 남을 시간인데.
묘하게 검보다 혀가 긴 게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설마 카이사르도 이길 자신이 없어서 시간을 끄는 건가.
‘만일 그렇다면... 이거 틀림없이 게임오버인데.’
나는 리나에게 휴가를 준 것을 후회했다.
만일 리나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기습을 사전에 감지하고 선공을 가할 수도 있었겠지.
물론 만약 따위는 이런 순간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지나간 일을 후회해봤자 늦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네놈들을 상대할 건 흑산회의 정점에 군림하는 자. 흑산회 최강의 고수. 보스 빌헬름 마이어님이시다.”
근데 이 새끼 지금 뭐라는 거냐.
“뭐, 뭐라고...!?”
“전혀 눈치 채지 못했어! 설마 자신의 기세를 완전히 갈무리할 정도의 고수라니!”
“설마 보스가 카이사르보다도 강한 거였어!?”
카이사르의 외침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하크를 비롯한 그의 부하들도. 백보도장의 교관들도.
그리고 나도 말이다.
“보스. 실력을 감추고 있다는 말은 이미 들었습니다. 평소와 달리 피를 아주 많이 보겠다는 건 제 검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보스의 검을 직접 휘두르겠다는 의지표명일 터.”
카이사르는 당당하게 내게 요구했다.
“이 전쟁의 선두를 보스에게 양보하겠습니다.”
“!?”
“자하크라는 애송이의 목을 쳐주십시오.”
내가 너한테 뭔 잘못을 했냐.
이 싸이코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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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은... 죽어도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