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2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 =========================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12)
흑산회 보스가 직접 선두에 나서 대장전을 치른다.
충격적인 발언에 자하크가 잔뜩 긴장하였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활로가 열렸다!’
그간 밑도 끝도 없이 쌓아왔던 악명수치가 처음으로 내게 보탬이 되었다.
빌헬름 마이어라는 이름이 지닌 이름값이 고수로서의 존재감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압도된 자하크가 공포심을 느끼는 지금이야말로 내가 살아남을 단 하나의 길이 열렸다.
“삼류는 칼을 휘두르는 법을 습득하고 이류는 무술을 통해 효율적인 검로를 습득한다. 일류는 간격과 허실을 재는 법을 습득하며 초일류는 검기의 출납을 습득한다.”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잔혹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동기화 비율 1%의 표정에 얼마만큼의 감정이 반영될지는 모른다.
아마도 대부분의 감정은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아주 조금이라도, 정말로 조금이라도 감정의 편린이나마 나타나기만 하면 된다.
약자를 멸시하는 잔인함이, 강자만의 전유물인 오연함이 자하크의 눈에 비친다면 놈은 인지할 수밖에 없다.
내가 자신보다 고수라는 착각을. 그로인해 유발되는 직업스킬 [보스의 기백]이 선사하는 압박감을.
“절정고수는 무엇을 습득하는지 아는가.”
물러서면 죽는다.
한 순간도 꺾여서는 안 된다.
검을 휘두르기 전에 마음을 먼저 죽여야만 한다.
“자신만의 무술을 완성시켜 필살검로를 습득한다. 그것도 자신의 역량이 허락하는 최대한도만큼의 검로를.”
“필살검로(必殺劍路)! 그 검로에 들어서는 모든 것은 반드시 죽음을 면치 못한다고 불릴 정도로 경지에 접어든 고도로 발달된 살인기술을...!!”
“자아. 답해보아라. 내가 지닌 필살검로는 과연 몇 개 일거라고 생각하는가?”
자하크는 냉랭한 어조로 쏘아붙였다.
“한 개다. 개인의 경지를 절정지경에 올릴 정도로 수련치를 쌓으려면 뛰어난 오성과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지. 아무리 뛰어난 자라도 검술 하나의 오의를 깨닫는 게 한계다.”
“정답이다. 내가 보통의 사내였다면 말이지.”
“한 개가 아니라니! 당신이 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지녔다고 할지라도 그건 불가능해!”
여기까지 끌어냈다면 이제는 확신을 심어줄 차례다.
내가 진정으로 절정고수라는 확신을.
비록 지금은 아니더라도 한때는 그만한 경지를 넘보기도 했다.
‘삼절검 조광극.’
내가 육성한 최초의 마스터급 하수인이자 검술의 대가였던 그는 자신이 익힌 검술을 내게 전수하였다.
조광극이 절정지경에 오른 검술은 한 가지가 아니다.
그는 세 가지 검술의 극의에 도달하여 세 가지 필살검로를 습득하였다.
‘검의 마스터가 된 부하는 한 명만도 아니었고.’
수많은 도전 속에서 마주한 절정고수의 수는 결코 적지 않았다.
격전 속에서 부하들의 경지는 나날이 높아졌으며, 때로는 적의 필살검로를 부하가 습득하기도 했다.
네 개의 필살검로를 바탕으로 부하들이 약탈하여 연구, 개량해낸 적의 필살검로의 숫자만 무려 스물이 더해진다.
나는 그 모든 필살검로의 오의를 전부 습득했다.
원본의 위력은 낼 수 없다.
그러나 27개의 필살검로에 담긴 정수는 사라지지 않았다.
“분명 보통의 인간에게는 아무리 절정지경에 도달했을 지라도 27개의 필살검로를 습득하는 건 불가능하지. 그렇다면 슬슬 깨달아주는 게 어떻겠는가.”
“뭐를 말이냐!”
“내가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쩌면 이미 인간조차도 아닌 다른 무언가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네 눈에는 내가 인간으로 보이는가?”
말도 안 되는 말장난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코웃음치며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그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힘.
카리스마(Charisma).
기적을 염원하는 자들은 그저 기도하지만 기적을 실현하는 자들은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비현실을 현실로 이끌어내는 변혁의 힘의 원천이야말로 바로 카리스마이다.
지금 그 힘을 극대화시킨다.
나의 화술로.
카리스마 능력치의 보정으로.
이 상황의 효용을 극대화시키는 [보스의 기백]스킬로.
화술은 내가 지닌 본연의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10의 카리스마 능력치는 카리스마의 효율을 10배가량 상승시킨다.
최종적으로 이 카리스마를...
[중급숙련특전 : 보스의 위엄을 드러내어 자신보다 강한 적이 역으로 자신을 더 강하다고 착각할 시, 적이 받는 위압감의 규모가 급격히 증가합니다.]
검술스킬조차 개화시키지 않은 약자 중의 약자인 내가, 카이사르와도 검합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강자인 자하크를 압도하며 달성한 수십 배의 위압감으로 부풀린다.
그 규모는 최초의 수십 배에 달하는 카리스마가 10배에 달하는 효율로 움직인다.
한 사람의 인지를 교란하다 못해 장악하고, 제 손 안에 들어온 것처럼 뜻대로 의지를 농락한다.
“그렇다. 나는 검귀다. 인간의 검리를 뛰어넘은 존재다.”
“으으, 으아아!”
“내 앞에서 네놈이 쌓아온 검은 어디에도 닿지 못한다.”
“오지 마! 이 괴물 녀석!!”
“너는 뽑을 수 없다. 그 검을 뽑는 순간, 27개의 필살검로는 네놈이 쌓아올린 모든 걸 한 순간에 박살낸다.”
잔혹할 정도로 만끽하며 가혹할 정도로 몰아붙인다.
궤변투성이 논검이 자하크의 목을 겨눈다.
이제 승패는 단 하나의 행동에 갈린다.
“뽑아라. 그리고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며 죽어라.”
“아아악! 제기랄!!”
검을 뽑아야한다는 건 알고 있다.
이딴 건 전부 농간에 지나지 않는다.
알고 있어도 자하크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카리스마에 압도당한 그의 마음이 독소를 방출했다.
공포라는 이름의 독소를.
공포는 이미 그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승부다!’
검을 뽑는다면 자하크는 카리스마의 영향력을 떨쳐낸다.
검을 뽑지 못한다면 자하크는 카리스마에 집어삼켜진다.
“뽑아라, 자하크! 그 검으로 나를 찌르면 6강의 일원이 되는 건 바로 너다!”
“한다! 한다아아아! 할 거라고오오오오오!!”
“그럼 어째서 검을 뽑지 않는 것이냐! 검집에 손을 든 채로 검 한 번 뽑아보지도 못한 채 전신에서 땀을 흘리는 자신의 추한 모습을 깨닫고는 있는가?”
자하크는 멈칫거렸다.
그제야 자신의 몸이 땀에 젖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공포로의 몰아(沒我)가 깨졌다.
기껏 몰아붙인 걸 내 의지로 깨워내었다.
무슨 미친 짓이냐고?
아니다. 무인의 의지는 한 번 몰아세운 정도로는 꺾이지 않는다.
그대로 두었다면 녀석은 반드시 검을 뽑았다.
무인이 마지막에 믿는 것은 자신의 검 한 자루뿐이다.
그걸 깨트리는 방법은 나를 향한 공포심이 아니다.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미혹을 심어주어야만 한다.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의 강함이 아님을.
바로 자신의 나약함임을 영혼에 새겨 넣는다.
“자아. 어서 덤벼라!”
이성이 되돌아온 자하크는 전투를 강요하는 나를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방금 전까지 느꼈던 공포심과 전투를 원하는 내 모습을.
그리고 자연스레 깨닫고 만다.
덤비면 죽는다.
자신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함정!’
그렇게 받아들이는 순간, 그는 검을 뽑을 수 없게 된다.
이건 함정이다, 라는 핑계마저 생겼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사라졌기에 더욱 그 핑계에 집착한다.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내가 함정을 팠다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자기 좋을 대로 사고를 편중시켜 망상을 진실이라 믿는다.
“흑산회의 보스. 소문 이상으로 무시무시한 자였군. 언제라도 심검으로 날 벨 수 있으면서 농락하다니. 어째서 베지 않고 나를 가지고 노는 것이냐!!”
“내 검은 죽음을 각오한 자들만을 베는 절망의 검. 맞서 싸울 의지조차도 없는 나약한 것들은 베일 자격조차 없다.”
“크윽!!”
그 착각이 어느 방향으로 튀어 오르든 전부 맞받아쳐서 더욱 크게 되돌려준다.
사고방향과 전개속도를 따라잡다 못해 예측과 예지에 이를 정도로 넘어섰기에 보여줄 수 있는 극에 달한 화술을 펼쳐 보인다.
자하크의 얼굴 위로 패색이 뚜렷하게 드리워졌다.
“선택해라. 무인으로서 죽을지, 겁쟁이로서 살아남을지.”
“빌헬름 마이어어어어!!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자하크의 손에 폭발적인 힘과 기세가 실린다.
뽑는다.
무인으로서의 혼이 의지를 집어삼키며 타오른다.
그러나 부족하다.
그의 의지는 이미 자신의 뜻으로 공포에 물들었다.
공포심은 태울 수 없다.
연료가 부족한 혼은 결국 검을 잡는데 그쳤다.
덜그럭 덜그럭
덜덜덜덜덜
격풍 속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격렬한 진동을 일으킬 뿐.
결코 그 검이 밖으로 출수하는 일은 없다.
결국은 이 모든 게 함정이라고 믿고 싶은 자신의 나약함을 눈치 채고 말 테니까.
뽑아도, 뽑지 않아도 이미 무인은 될 수 없다.
여기에 있는 건 그저 한 사람의 겁쟁이다.
자하크라는 무인이 지닌 신념은 이미 진즉에 살해당했다.
“아아, 아아아...”
공포가 그의 무혼(武魂)을 집어삼킨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을 몸 안팎으로 짓누르는 거대한 위압감을.
“검을 뽑기도 전에 모든 게 끝나버렸는가...!”
내게 있어서는 카리스마.
그에게 있어서는 검계(劍界).
내 영향력의 범위가 검을 펼칠 수 있는 범위라 착각한다.
그는 완벽히 내 영향력 아래에 들어와 있다.
언제 어디서라도 마음만 먹으면 죽을 것이라 여긴다.
그는 비로소 확신에 이른다.
나와 마주친 순간부터 그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음을.
일말의 저항조차 사라진 채, 공포가 그라는 인간의 모든 감정을 집어삼킨다.
“자, 자하크 간부가 무릎을 꿇었어!”
“검 한 번 휘두르지도 못했건만!”
“서, 설마! 이것이 말로만 듣던 심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적을 베는 검.
출수도 움직임도 없이 일순간의 의지만으로 검기를 형상화해 적을 관통한다.
강력한 의지력과 반사신경, 극에 달한 검술실력이 없다면 저항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한 경지가 바로 심검(心劍)이다. 자하크의 부하들은 나를 심검의 소유자라 착각했다.
“자하크는 쓰러졌다. 다음은 누구냐.”
이제 자하크를 파멸시킨 나의 카리스마는 그들을 향한다.
마치 중력이 배가되는 것만 같은 거대한 압박감!
이에 직면한 자들은 무릎이 급격히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게.”
“히이익! 고수, 엄청난 고수다!”
“여기에 오는 게 아니었어. 우린 다 죽을 거야!”
나는 흥이 식었다는 투로 선언한다.
“자신의 뜻을 오롯이 세울 수조차 없는 벌레들은 베어봤자 흥이 나지도 않는다. 뒷일은 네가 처리해라, 카이사르.”
카이사르와 교관들이 내가 선보인 카리스마에 감화되어 더욱 용맹하게 달려들었다.
자하크와 그의 부하들은 마음부터 꺾였기에 검조차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무참히 살해당했다.
더러는 등을 돌리고 달아나려 했으나 발마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어정쩡하고 추한 움직임을 보이다가 등을 베이는 한심한 검상을 입으며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교관들은 날 두려워하고 카이사르는 만족스러워했다.
그들의 태도를 보고나서야 실감했다.
정말로 이겼다.
목숨을 건 허장성세가 통했다.
압도적인 전력 차를 역전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