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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67화 (67/224)

00067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 =========================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17)

블랙마켓의 경매품 중에서도 알짜배기들은 따로 있다.

바로 마법등급 아이템과 유일등급 아이템이다.

이건 어지간한 절정고수나 마스터들도 습득하기 어렵다.

‘유일등급보다 얻기 쉬운 마법등급만 해도... 어휴.’

고대의 마법이 인첸트 된 마법등급 아이템 중에서도 최상위권 아이템의 입수난이도는 S급이다.

절정고수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자들이 나서거나 일국의 정보조직이 총동원되어서 찾지 않으면 결실을 얻을 수도 없다.

대부분의 용사들이 지닌 최종장비도 한두 개만 빼면 전부 마법등급 아이템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습득하기 어려운 물건인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그걸 얻겠다고 할 개고생들을 생각하면 두통부터 이는군.’

수십 개에 달하는 연계퀘스트 속에서 아이템이 존재한다는 실마리를 잡고, 이와 관련된 온갖 비화(秘話)와 야사(野史)를 넘나들며 히든퀘스트에 돌입해야 한다.

아이템을 지키거나 봉인하기 위해 안배된 갖은 시련과 고초를 넘어선 뒤에는 수호자, 강력한 원령, 새로운 소유자와의 결전이 예정되어져 있다.

그마저도 쓰러뜨린 뒤에 속편하게 끝나는 것도 아니다.

저주.

대부분의 마법등급 아이템은 저주가 떡칠이 되어져 있다.

‘학살자의 대검을 들면 아군도 못알아보고 상시 버서커 상태에 돌입해서... 전신의 기력을 전부 소진하고 죽을 때까지 싸우다가 죽지.’

차라리 알아보기 쉬운 저주라면 해주하려는 시도라도 할 수 있다.

은밀하게 진행되는 저주는 착용자의 능력치를 감소시키거나 특정 능력을 망각시키는 등, 치가 떨릴 정도로 교묘한 수작질을 벌인다.

괜히 내가 카이사르한테 시작부터 뛰어난 장비를 갖추도록 만든 게 아니다. 좋은 장비는 입수난이도가 극악하기 때문에 CP를 바르다시피 해서 장착시킨 거다.

‘심지어 유일등급은 한 수 더 뜨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물로 여겨지는 유일등급 아이템은 이에 얽힌 비화도 훨씬 더 깊고 무거운 것들이다.

마법등급 아이템이 뛰어난 천재나 특정조직이 만든 회심의 역작이라고 한다면, 유일등급 아이템은 한 세기에 한 명이 나올까 말까한 천재 중의 천재가 만든 세기의 걸작이다.

당연히 수량 역시 손에 꼽을 정도이며 유일등급 아이템의 보유현황에 따라 각 국가의 균형이 급격히 요동친다.

‘흔히 말하는 국보급 아이템도 대부분은 유일등급이니까.’

이를 감안하면 그 가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졸라 귀하다.

그리고 지금, 그런 물건들이 마차 서른 대에 나뉘어서 30개가 들어왔다.

마법등급 아이템이 27개, 유일등급 아이템이 3개.

어떤 아이템은 입수과정에서 인근 호수가 범람하여 마을 십여 개를 침수시켰고, 어떤 아이템은 수호자 역할을 나누어 이행하는 요정족을 전멸시키고 탈환하였다.

하나같이 혀를 내두를만한 끔찍한 일을 겪으며 손에 넣은 보물들이다.

그리고 지금, 이걸 가져온 검은 왕관의 주력병단은 흑산회의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에 당해 철저하게 박살나고 있다.

“크아악! 비겁한 배신자 놈들! 네놈들의 영혼이 어비스의 구렁텅이에 빠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마!!”

정면으로 승부한다면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허나 적은 호위병단과 주둔병단의 변절을 눈치 채지 못했다.

또한 각기 다른 마차에 실린 아이템을 지키고자 병력이 30등분이 된 채로 나뉘어서 돌아왔다.

간간히 범상치 않은 실력자들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카이사르와 리나, 데이고르, 칼잡이 등의 실력자가 포진한 흑산회의 전력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와앗, 보스! 이거 봐. 황금색으로 빛나는 공이야!”

“만지지 마라. 마법등급 이상이면 저주 걸린다.”

“쳇. 살인광 녀석도 마법등급 무기랑 방어구 갖고 있잖아.”

애도 아니고 쟤는 있는데 나는 왜 없냐고 투덜대기는.

근데 한 가지 정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

“카이사르는 마법등급 장비를 갖추지 않았다.”

“으응? 그치만 엄청 좋은 무기랑 방어구를 가졌잖아.”

“희귀등급 아이템에 귀속처리가 되었을 뿐, 마법등급이 될 수는 없다. 애초에 마법등급 아이템은 특수한 공정을 거쳐야만 하지.”

리나는 뭔가 김이 샌다는 얼굴로 바닥의 돌멩이를 툭 걷어찼다.

애초에 마법장비는 저주 걸려있다고.

아무리 카이사르가 대단하다고 해도 게임 시작부터 저주 걸린 장비를 두 개나 장착하고 있으면 무슨 꼴을 겪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튼 마법등급이랑 유일등급 장비는 손 끝 하나 건드리지 말고 감정사들이 감정 끝내는 거 기다려라.”

리나는 마지못해 알겠다고 대답했다.

바로 얼마 전에 친 사고도 있으니 양심이 있으면 멋대로 사고를 저지르지는 않을 거다.

오히려 걱정이 되는 건 다른 상품이었다.

“빌어먹을 인간 놈들. 언젠가 네놈들을 전부 죽여주겠다.”

노예들 사이에 터무니없는 괴물이 하나 껴있다.

마족이다.

흡사 인간과 비슷한 생김새를 지녔지만 머리에는 산양의 뿔이 자라있고 짙은 회색의 몸체는 무술의 달인마냥 고도로 발달된 근육으로 뒤덮여있다.

몸체도 잘 보면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을 뿐이지, 마기에 찌들어서 실제로는 전혀 다른 무언가로 변이했을 거다.

작정하고 날뛰면 카이사르 이상으로 날뛸 것 같다.

근데 잘 보니 마법봉인구도 채워져 있다.

무술과 마법을 동시에 구사하는 듀얼클래스다.

이딴 괴물을 도대체 어떻게 생포한 거지?

그보다 이걸 누가 사.

덩치 3m의 불곰을 다루는 불곰조련사도 저딴 건 못 기르겠다.

“너 왜 여기에 있냐?”

그래서 물어봤다. 본인한테.

“인간. 날 놀리는 거냐!!”

“포획한 건 저놈들이고 난 전리품을 얻은 입장이라고.”

“크으윽! 인간 따위가 감히 이 몸을 전리품으로!!”

마족은 무척이나 분해하며 자신이 포획된 과정을 말했다.

“잠자다가 일어나니까 잡혀있었다.”

“…….”

“케두아스 대협곡 지저 700m 아래에서.”

와. 그 정도면 잡힐 만도 하네.

현대로 치자면 최첨단 감시시스템으로 도배하고 경비병까지 쫙 깔아둔 핵 벙커 안에서 침대에 몸 눕히고 일어나니까 납치된 거잖아.

감지수단에 주변에 깔린 몬스터들까지 죄다 무력화하고 포획한 능력이 놀라울 지경이다.

“널 사로잡은 놈들이 어디다가 팔 건지도 얘기해줬냐?”

“마탑에 판매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과연.”

마탑이라면 마족도 산채로 해부하고 온갖 실험을 해보려고 하는 또라이들이 우글거리겠지.

그럭저럭 납득이 된다.

“걱정 마라. 널 마탑에 팔 생각은 없다.”

“정말인가?”

“미궁의 심층지대가 아닌 미궁 밖 야생 환경에서 살아온 마족이라면 마기에 오염되지도 않았겠지. 지금도 보다시피 그럭저럭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너... 보통 인간이 아니군. 심층지대에 대해 알고 있는가?”

“어느 정도는.”

마족은 잠시 고민하더니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기껏 미궁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에 도달했으니 더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다. 내가 바라는 건 그저 날 잡아온 놈들을 다 죽이는 것뿐이다.”

“그놈들 다 죽였는데.”

“…….”

되게 민망해하네.

“그럼 그냥 잠만 자고 싶다. 죽고 죽이는 야만인 짓거리는 이제 질렸다. 네가 원수가 아니라면 너를 해할 이유가 없으니 조용히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 잠만 잘 거다.”

“그래서 풀어달라고?”

“믿을 수 없는가?”

“아니. 거짓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담하군.”

심층지대와 마족의 연관성을 아는 입장에서는 이놈이 꽤나 담백하게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족이라고 딱히 인간 죽인다! 피 좋다! 하는 유혈에 미친 광전사들만 있는 건 아니잖아.

그건 마기에 찌들대로 찌들어서 맛이 간 놈들이나 그러는 거고, 이놈처럼 미궁에서 탈출한 극소수의 마족들은 그럭저럭 온건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는 아무것도 안할 거냐?”

“그건 아니지. 단잠이 깨서 화가 나니까 두 번 다시 내 집에 인간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인근의 인간 천 명을 학살한 뒤에 돌아갈 거다.”

“그럼 안 되겠군.”

“...오백 명까지라면 협상할 의향도 있다.”

“그런 건 협상거리가 못 된다.”

애초에 이 마족이 지나가는 길에 사람 몇 명을 패죽이든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이놈이 평온하게 살고 싶어도 인간들은 마족을 이용하고 싶어 안달이 나있다는 거다.

마탑은 마족을 해부해서 연구하려 하고, 귀족들은 마족을 이용해서 공포정치를 펼치려 하며, 모험가 길드는 마족의 이지를 붕괴시킨 뒤에 심층지대에 대한 정보를 캐려 하겠지.

“네게는 이미 평온한 일상을 영위할 여유 따위는 없다. 인간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쫓아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하겠지. 네 안식은 이미 끝났다.”

“제기랄.”

“끝없는 싸움의 와중에 죽거나 싸움에 지쳐 제 발로 미궁에 돌아가느니 내 손을 잡아라. 미궁에 들어가지 않고도 안식을 취하며 스트레스 해소도 가능한 생활을 약속하지.”

내 제안은 마족에게도 꽤나 의외였던 모양이다.

마족의 세로로 갈라진 회색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았다.

“내게서 뭘 얻으려는 거냐.”

“딱히 아무것도.”

“뭐?”

“너 따위로 내가 얻을 이득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내 적이 될 놈들은 얻을 게 잔뜩 널려있단 말이지.”

“이상한 인간이군.”

마족은 불가해한 신비현상을 보는 것처럼 나를 쳐다봤다.

“미궁에 대한 이해도는 지금껏 보아온 어떤 인간보다도 뛰어난데 정작 하는 제안은 미궁진입과 담을 쌓은 것처럼 괴리감이 느껴지다니.”

“믿지 못하겠는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네놈의 생체마나가 분출하는 기운을 읽으면 진위유무쯤은 간단하게 파악할 수 있으니까.”

체내의 마나가 동결되고도 대기 중의 마나를 읽어 들일 수 있다니. 확실히 마족이 대단하기는 하다.

“그럼 날 고용하고 어떤 일도 시키지 않겠다는 건가? 정말로?”

“아주 안 시킬 건 아니지.”

“흥. 그럼 그렇지. 비열한 인간들은 언제나 교묘한 말장난으로 속임수를 쓰려고 드니까 문제야. 괜히 나이 든 악마들이 소원을 이뤄주는 계약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지.”

인간에 대한 불신감을 단단히 불태워도 말이지.

딱히 소원 같은 거창한 건 필요 없는데.

“네가 머무를 방은 알아서 청소하고, 식사는 간부식당에서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하고, 외출은 내 허가를 받고 동행해야 한다.”

“그게 끝이냐?”

“굳이 시킬 일을 찾아보자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잡아온 인간은 편식하지 말고 주는 대로 죽여주면 좋겠군. 신선한 처녀만 죽인다던가 하는 개소리를 하면 갖다버릴 거다.”

마족은 대놓고 심기가 불편하다는 기색을 드러냈다.

“솔직히 말해라. 너, 나를 마족으로 보는 거냐. 아니면 애완동물 같은 걸로 보는 거냐.”

“애완동물.”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대답했어! 심지어 진실이다!?”

사납게 눈을 부라려도 딱히 엄청나게 무섭지는 않았다.

매일매일 눈 부라리고 다니는 부하가 있잖아.

그놈 눈깔에 적응되다 보니까 마족 눈깔도 견딜만하다.

“넌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냐.”

“취급이 마음에 안 든다. 좀 더 날 존중해줬으면 좋겠다.”

“가령 예를 들자면?”

“두려워하고 경원시하며 숭배해야지.”

“…….”

뭔가 이 새끼 여러모로 귀찮은데.

“손 많이 가는 새끼. 그냥 마탑에 선물 주는 셈 치고 자질 있는 마법사 하나랑 교환할까…….”

중얼거리며 고민하자니 마족이 흠칫 놀랐다.

“그냥 주는 대로 죽이겠다.”

“협조적인 태도가 마음에 드는군.”

“궁금한 게 있다. 식사는 뭐가 나오지?”

“매일아침 신선한 새끼양의 염통을 하나씩 주는 건 귀찮은데. 마침 도장에 건빵이 잔뜩 쌓여있더군. 그거나 먹어라.”

“싫다. 고기를 먹고 싶다.”

빤히 쳐다보자 마족이 쭈뼛거리더니 힘없이 대답했다.

“그냥 주는 대로 먹겠다.”

“개인실에 특별히 들여 줬으면 하는 물건은?”

“몸과 마음을 유린하기 좋은 건강한 성처녀... 는 필요 없고 그냥 주는 대로 받겠다.”

마족은 모든 걸 포기하고 낙담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이사르와 리나, 그 외 간부들이 어째서인지 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혹시나 싶어서 나는 딱 잘라서 단언했다.

“내 꺼다. 안 준다.”

필요 없어.

부하들은 줘도 안 받는다며 혼비백산해서 흩어졌다.

근데 카이사르만 안 가고 멀뚱멀뚱 서있다.

“진짜 안 됩니까?”

미친. 이 새끼는 진짜 받고 싶었던 건가.

마족이 흠칫하는 걸 보니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진짜 이만한 또라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가 아닐까 싶다.

============================ 작품 후기 ============================

마족 야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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