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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69화 (69/224)

00069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 =========================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19)

멍청하게 차단당한 4강 색마 콰이어와 달리, 다른 6강의 일원들은 통신을 건네지 않았다.

이 자리에 온 것은 대단하지만 경매에서 중요한 것은 운도 무력도 아닌 자금력이다.

기껏해야 이제 막 6강의 일원이 되었고 자금줄도 별 볼일 없는 내가 참여해봤자 위협이 될 리가 없다.

‘전원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콰이어 또한 내가 엄청난 자금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서 영상통신을 시도한 건 아닐 거다.

그놈은 그냥 자기 바로 밑에 있던 약해빠진 놈이 대뜸 적진 한가운데에 나타난 일이 놀랍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해서 경계와 탐색을 시도해보려 했을 뿐이겠지.

근데 차단했잖아?

빡치는 건 둘째 치고 경계심이 폭증했겠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아 미안. 버튼 잘못 눌렀음’이라고 하기에는 쪽팔리잖아. 사실대로 말해봤자 믿을 것 같지도 않으니까 그냥 의도적으로 차단한 척 해야겠다.

“보스. 우리는 왜 개인실에서 경매해?”

“VIP 고객이니까 그렇다. 그보다 넌 왜 여기에 있냐.”

“밀착호위야! 언제 어디서 일이 생길지 모르는걸!”

방심하지 않고 경호임무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건가.

리나도 꽤나 기특해졌군.

“보스가 갑자기 기력이 다해서 급사하면 신전에 들춰업고 갈 사람이 필요하잖아?”

“기분 나쁜 예로군. 대체 날 얼마나 병약하게 보는 거냐.”

“그치만 보스는 평소에는 엄청나게 약한데 중요한 순간에만 숨겨진 실력을 발휘하잖아? 그거 잠력을 폭발시켜서 수명을 감소시키고 있는 거 맞지?”

카리스마의 효과를 참신하게도 해석해낸다.

뭐라 둘러대기도 귀찮다.

그냥 그렇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력폭발의 부작용은 일상생활 도중에 나타난다고. 암살자 중에도 고수를 상대하려고 잠력폭발을 남발하다가 평상시에 돌연사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어쩔 수 없군.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호위를 허락하지.”

리나는 해냈다는 얼굴로 씩 웃으며 손으로 브이를 만든다.

뭐냐 저건.

잠력폭발이니 뭐니 하는 건 대충 둘러댔던 말이었나.

“그럼 블랙마켓에 있는 VIP고객은 몇 명이야?”

“개인실은 도합 100개다. VIP고객은 블랙마켓이 개최될 때마다 소지금액 상위 100명으로 선정되지.”

“그럼 반칙 아니야?”

리나는 비밀을 알고 있기에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보스는 완전 사기 쳐서 들어왔잖아.”

“안 들키면 된다.”

“흐응. 리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내가 블랙마켓을 개최하는 당사자인데 VIP고객이 못 되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렇다고 돈도 없는데 거짓말만 친 것도 아니다.

실제로도 나는 블랙마켓의 경매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 상위 100명 안에 속했다.

“경매를 시작합니다!”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대던 경매사가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첫 번째 경매물품은 악명 높은 야차의 검! 검의 형태와 양식만 살펴보아도 심상치 않은 유래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작 가격은 만 골드!”

만 골드면 백억이다.

경매물품들의 최하가격이 천 골드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후한 평가를 받고 시작하는 경매다.

허나 사전에 모든 물품의 감정결과를 직접 확인한 나로서는 누가 멱살을 잡고 이 검을 가지라며 들이밀어도 갖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1초당 악명이 10씩 오르는 검을 왜 가져?’

악명도 명성이다.

높을수록 유명해지고 그만큼 ‘이름값’이라는 게 생긴다.

강하지도 않으면서 악명이 높으면 단명하기 좋다.

평소라면 아무 일 없이 인간들의 도시 위를 지나갔을 드래곤이 갑자기 날 보고 ‘마룡급 악명을 지닌 인간이라니! 네놈은 인간이 아니군!’ 이러면서 공격할 수도 있다.

드래곤이 아니더라도 당장 미궁도스 브람의 암흑가를 지배하는 일존 멸혼객이 실력을 시험하겠다고 검을 들어봐라.

1초식도 버틸까 말까다.

일초지적도 안 되는 벌레처럼 갈가리 찢겨져나갈 게 뻔한데 미쳤다고 악명을 올릴까.

6강의 일원 쯤 되면 저딴 검을 들고도 어느 정도는 감당을 할 수 있겠지만, 야차의 검의 성능도 그리 대단하지는 않다.

‘한 놈도 입찰하지 않았군.’

다른 VIP들과 달리 6강의 일원들은 전부 경매에 응하지 않았다.

일존 멸혼객은 아예 참석조차 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도시 암흑가 최고전력들은 자신들의 분석력과 통찰력만으로 저 검의 실체를 어느 정도 간파했음을 알리는 광경이었다.

‘이거 NPC들의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더 높은데.’

뭐든지 전작을 기준으로 삼았다가는 호된 꼴을 당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50만 골드에 용병단장 베드로님께 낙찰되었습니다!”

결국 야차의 검은 돈 많고 안목 없는 한 멍청이의 것이 되었다.

입찰경쟁에 나섰던 이들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음을 깨닫지도 못하고 꽤나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마치 저놈 대신 내가 저걸 가지고 자살해야 했는데, 하는 광경처럼 보여서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보스. 몇 개 살 거야?”

“다섯 개.”

“나머지는?”

“안 사. 간만 보면서 약 올릴 거야.”

“바람잡이?”

역시 리나가 제법 눈치가 있다.

“이번 기회에 육강의 자금을 싹 말려놔야지.”

조직 간의 항쟁도 막상 하려면 돈이 든다.

조직원들 입에 두둑하게 돈도 물려주고 장비도 갖추고 하려면 소모되는 금액이 장난 아니다.

어디 시골에서 파는 녹슨 철검을 들려줄 것도 아니고, 인간과 몬스터 간 격돌의 최전선이나 다름없는 미궁도시에서 수많은 명품 장비를 구매할 수 있다.

내가 안사도 적이 산다는 걸 감안하면 무조건 좋은 장비를 떡칠하듯이 돌려야 된다.

과금전사들로 이뤄진 [길드]와의 전쟁도 언제나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보통은 부하들의 강화와 더불어 자신에게는 가장 강한 무기와 방어구를 갖추기도 한다지만, 나는 아예 작정하고 카이사르 한 놈만 밀어주었다.

‘당분간 카이사르의 전력강화는 필요 없어.’

지금은 이놈의 힘을 바탕으로 다른 부하들의 전력을 급격히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마침내 올라왔다! 장인의 도시에서 직접 벼려낸 만년한철로 제조한 대단한 보검! 착용자는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강자도 해치울 수 있다는 ‘일루미네이터 검’입니다!”

저건 감정서를 보면서 형광등이라고 이름붙인 검이다.

마나를 불어넣으면 번쩍번쩍 빛이 난다.

어두컴컴한 미궁에서의 효력은 더욱 뛰어나다.

감정사가 한참 끙끙거리며 감정하기도 했었지.

유독 시간이 오래 걸려서 호기심에 다가가 물었다.

이 검이 그렇게 좋은 검이냐고.

감정사는 대답했다.

능력이 하도 싸구려라서 잘 팔릴만한 이름을 뭐로 붙여야할지 모르겠다고.

속된말로 저것도 겉보기만 요란한 놈이다.

나는 ‘형광등 검’을 강력하게 추천했지만 감정사는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나중에라도 아이를 갖거든 절대로 이름은 직접 짓지 말고 아내한테 맡기라고.

“…….”

괜히 그것 때문에 카이사르한테 가서 니 이름이 마음에 안드냐고 물었다가, 전후사정을 들은 카이사르가 하마터면 감정사를 죽일 뻔했던 소동도 있었다.

뭐.

카이사르는 자기 이름 맘에 드는 눈치던데. 이만하면 내 작명실력도 나쁜 편은 아니지 않냐.

“5만 골드!”

“10만 골드!”

“20만 골드!”

어째서인지 굉장한 기세로 가격경쟁이 붙기 시작했다.

“100만 골드!”

“오오오! 뇌전철추의 텐젠 경이 작정했습니다! 더 높은 경매가가 없다면 카운트 10 종료 후에 경매가 종료됩니다! 10, 9, 8...”

“150만 골드!”

“우오오오오! 암구회 회장 쟝 호른이 이번 경매 처음으로 참전합니다! 바람잡이를 목적으로 한 것일까요? 진의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럼 다시금 카운트 10을 진행합니다!”

“…….”

뭐야, 저 인기는.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보스. 번쩍번쩍검이 그렇게 좋은 거였어?”

“혼자 다닐 작정이라면 그렇겠지.”

검의 인정을 받으면 착용자는 빛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허나 동료들은 깜짝 번쩍거림의 영향을 전부 받는다.

적과 아군이 모두 눈을 부여잡고 으아악! 거리게 된다고.

미궁 깊은 곳에서 그딴 걸 썼다가 눈먼 무기에 아군이 덜컥 죽기라도 하면 어쩔 셈인가.

눈뽕 당하는 것도 빡치는데 희생자까지 나오면 끝이다.

파티는 즉각 해체당하고 의도적으로 그걸 쓴 거 아니냐면서 칼부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

“뭣보다 저거 별로 필요 없고.”

미궁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층이 많이 있지만, 일정 층 아래로 내려가면 지하에 인공태양이라도 뜬 것처럼 환한 장소가 많다.

초거대마정석이 자체적으로 빛을 발산하면서 미궁 내부의 생태계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미궁공략을 노리면서 이 사실을 모르는 자들이라면 저렇게 돈을 퍼붓다시피 구매할 만도 하다. 아니면 그냥 번쩍이는 검을 갖는 게 로망이었을지도 모르지.

“150만 골드에 암구회 회장 호론 경에게 낙찰되었습니다!”

선언을 마친 경매사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귓가에 장착한 초소형 통신구로 보조들의 연락을 받은 모양이다.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휘저었다.

“발언을 철회합니다! 암구회 회장 호론 경은 보유자산 이상의 금액을 경매가로 선언하였습니다. 과한 욕심을 부린 대가로 호론 경의 VIP자격을 즉각 박탈, 벌금을 회수합니다!”

개인실에 있을 VIP들이 당황하는 기색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급기야 공개적으로 영상통신을 하며 몇 명인가의 유명인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일루미네이터 검은?”

“암구회 회장 호론 경의 입찰 바로 직전의 입찰가 100만 골드에서 다시금 입찰을 진행합니다!”

물론 저딴 검을 백만 골드 이상을 주고 갖고 싶어 하는 인간은 한 명밖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갖고는 싶은데 재력이 되는 게 한 명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100만 골드에 뇌전철추의 텐젠님에게 낙찰되었습니다!”

결국 일루미네이터 검은 뇌전철추 텐젠의 손에 들어갔다.

입찰하면서도 얼굴 한 번 안보여주네.

뭐하는 괴짜인지 얼굴을 못본 게 무척이나 아쉽다.

“축하하오.”

“젠장. 더럽게 부럽군.”

“큭. 저건 내게 가져야 했는데.”

수어 명의 얼굴이 입찰스크린 위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참으로 불가해할 정도의 인기였다.

돈 많은 졸부나 어설프게 실력 있는 반푼이, 괴짜들은 어디서 타오를지 몰라서 무섭다니깐.

“다음 경매품은 말라붙은 태양의 물잔! 제물을 바치고 의식을 진행하면 물잔 위로 각양각색의 성능을 지닌 액체가 생성된다고 합니다. 경매 시작가는 천 골드!”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오만 골드!”

“이십만 골드!”

“오십만 골드!”

예사롭지 않은 무력을 지닌 용병단장, 돈 하나는 넉넉한 중견상단의 상주,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기인이사들.

각계각층의 온갖 유명인사들이 폭발적으로 경매경쟁에 뛰어들었다.

허나 이건 너희들의 장난감이 될 수 없다.

“삼백만 골드.”

“오옷, 드디어 브람의 어둠, 암흑가의 6강이 움직였다! 6강 마약술사 파난이 입찰합니다!”

파난은 공개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얀 연구가운에 양손을 구겨 넣은 짙은 다크써클을 지닌 여자가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입찰하면... 밖에서 찾아낼 거야. 찾아서... 개돼지의 몸체랑 섞어서... 평생 가축으로 살게 해주겠어.”

뜨거웠던 경매장의 분위기가 단번에 차게 식었다.

저건 장담컨대 농담이 아니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담백한 진실을 말하고 있다.

저 여자는 진심으로 저지를 작정이다.

이번 경매는 비밀경매가 아니다.

이름이 드러나기에 함부로 입찰할 수도 없다.

“삼백 오십만 골드.”

“오오오! 또 한 명의 6강이 전쟁을 선포합니다! 상대는 놀랍게도 새로이 6강의 자리를 꿰찬 5강 빌헬름 마이어!”

근데 내 알바는 아니지.

애초에 경매에 참석한 내 목적이 뭐였던가.

6강의 자금줄을 말리는 거다.

“영상 띄워.”

리나가 화면을 조작해서 내 모습을 영상에 띄워 올렸다.

“개돼지와 몸을 섞는 개조라. 할 수 있으면 해봐라.”

“빌헬름 마이어...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물론. 네년이야말로 몸을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나는 대놓고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한테 잡히면 넌 노예 확정이다.”

“고작?”

“주인은 카이사르다.”

“!?”

선전포고는 이렇게 하는 거다, 이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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