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1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 =========================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21)
사람들은 6강을 한 덩어리로 묶어서 부르지만 암흑가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내 생각은 달랐다.
6강은 둘로 나뉘어져있다.
일 존에 도전할 수 있는 둘과 그렇지 않은 넷으로. 당연히 그 둘은 2강과 1강이다.
2강 고위 뱀파이어 이즈라크.
그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버젓이 인간사회에 군림한다.
보통 실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궁도스 브람이 아닌 전 세계 암흑가로 범위를 넓히더라도 이즈라크는 서열 50위권 내에 속할만한 실력자다.
나는 이자가 ‘격’을 지닌 존재임을 확신했다.
‘일존 멸혼객의 기세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모습이었지.’
억지로 기세를 견뎌내려던 루커스와는 극명히 비교되었다.
격을 이룬 자와 이루지 못한 자의 차이는 크다.
같은 절정고수라도 상대를 격하의 존재로 내려다본다.
“이번 경매물품은 성마의 목걸이! 고위 천족과 마족이 격전 속에서 상대를 멸하기 위해 발산한 기운이 결집하여 만들어진 정수를 정제하였습니다! 경매 시작가는 오만 골드!”
성마의 목걸이는 아주 골때리는 물건이다.
이 목걸이는 천족과 마족의 기운을 발휘해서 상대를 멸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다만 순수혈통을 지닌 천족과 마족이 아니라면 목걸이가 발휘하는 마법의 십분의 일의 위력이 언제나 착용자에게도 전가된다.
‘저놈에게는 예외이지만.’
천족이나 마족의 힘이 어쩌고저쩌고 하기 이전에 저건 핏방울이다.
뱀파이어는 피를 다루는 데 가장 정통한 종족.
하물며 격을 이즈라크에게 성마의 목걸이는 노 리스크로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한 목걸이다.
무엇보다도 마족인 그가 천족의 파괴마법을 쓸 수 있다.
힘은 목걸이가 발동시키고 쿨타임이 지나면 알아서 새로운 힘을 비축한다.
자연히 성스러운 힘을 쓴다고 해가 되지도 않는다.
몸에서 기운을 역류시켜서 쓰는 것도 아니잖아.
내부 장기를 건드릴 걱정도 없다.
이쯤 되면 그냥 쟤가 사라고 가져왔구나 싶을 정도의 물건이다.
“흐음.”
이즈라크와의 접전은 이 성마의 목걸이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벌써부터 공개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붉은 코트에 왕관문양의 장식을 수놓은 고급정복이라.
밤의 귀족이라고 불리는 종족답게 옷차림도 귀족 같다.
뚱뚱하기만 한 귀족들보다는 훨씬 더 멋있다.
“빌헬름 마이어. 네게 궁금한 게 있다.”
“입찰부터 하고 말하는 게 어떤가.”
“좋다. 백만 골드를 입찰해두지.”
무슨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려고 싸구려 커피 값을 내는 것처럼 쿨하게 백만 골드를 입찰한다.
대부분의 VIP들은 기가 질려서 떨어져나갔다.
어차피 진귀한 물건은 널려있고, 굳이 자금의 한도를 측정하기도 힘든 6강과 싸우고 싶지도 않았겠지.
“색마 콰이어는 네게 나름의 호의를 지니고 있었다. 강한 남성에 대한 호의를 같은 남성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초대면부터 늘 나쁜 감정은 아니었지.”
느닷없이 엄청난 폭탄발언을 한다.
미친.
그 녀석이 게이였고 심지어 날 좋아했다니.
“파괴자 루커스. 그 아이도 네게는 적잖은 관심을 보였다. 그 아이는 권위 있고 강한 자를 좋아하지. 자신만의 조직을 이끄는 보스인 너라면 제법 긍정적인 관심이었을 거다.”
바로 조금 전에 게이한테 호감을 받았다고 했었잖아.
거기다 대고 다른 남자의 관심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관심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다.
“그 모든 호의를 배척하고 스스로 적을 늘렸다. 마치 네게는 어떠한 아군도 동맹도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바로 보았다.”
“이유를 알고 싶구나. 너는 어째서 6강에 속하지 않은 다른 실력자들은 방관하고 같은 6강을 적으로 돌리려고 하는 거지?”
제법 날카로운 구석을 찔러댄다.
폼으로 2강이 된 건 아닌가.
나는 잠깐의 고민 끝에 대답했다.
“그 질문의 대답은 비싸다. 아직도 그게 궁금한가.”
“부디 듣고 싶군.”
나는 망설임 없이 선언했다.
“천백만 골드.”
“빌헬름 마이어님의 입찰을 확인했습니다! 과연 이분의 자금줄이 마르는 날이 올 것인가!”
“경매사.”
“예?”
“입찰 확인했으면 좀 닥쳐.”
“…….”
경매사는 시무룩해져서는 입을 다물었다.
“천이백만 골드.”
“이즈라크님의 입찰을 확인했습니다.”
경매사가 너스레를 안 떨고 조용해졌다.
이제 좀 봐줄만하네.
나는 한결 편안해진 기분으로 대답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게 있어서 6강은 암흑가를 나눠가질 실력자가 아닌, 내 것을 나누어 갖는 괘씸한 놈들이기 때문이다.”
“대단한 자신감이로군.”
“감탄 다했으면 입찰이나 해보실까?”
“자금력으로 승부할 생각은 없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돈으로 꺾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으니.”
“좋은 판단력이다.”
이즈라크는 내게 물었다.
“자신 있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건 좋다만, 경매가 끝나자마자 내 손에 살해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건가?”
“안 한다.”
“호오. 어떤 연유에 근거해서 그런 확신을 지녔지?”
나는 입찰대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겼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칠백만 골드.”
“천팔백만 골드.”
“두, 두 분의 입찰을 확인했습니다.”
장내의 모든 VIP들이 스크린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가격은 천문학적인 수치에 도달했다.
소국의 재정을 좌우할만한 돈이 도박판의 칩처럼 쌓인다.
“네게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은 결코 나와 겹쳐질 수 없으니까.”
“나와는 고작 두 번을 보는 주제에 목적을 논한다?”
이즈라크는 괴이한 일을 목격한 사람처럼 몹시 떨떠름해하였다. 아니, 괴기현상을 목격한 사람도 저렇지는 않겠다 싶을 정도로 떨떠름해하고 있다.
“밤의 귀족이 귀족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건 지상에서만이지. 미궁은 지옥이니까. 당신은 절대로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인간들이 만든 문명의 어둠을 만끽할 뿐이다.”
“6강을 적으로 둔 네가 나와 다른 목적을 지녔다고 해도, 그게 널 살려둬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을 텐데.”
“내 목적은 미궁 심층지대의 [돌파]. 생지옥을 뚫고 그 너머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즈라크의 얼굴 위로 격동이 일었다.
일그러졌다.
아니, 이것이야말로 이 남자의 본색이다.
“네놈. 미궁에 심층지대의 ‘너머’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이 시대의 인간은 아직 그곳에 도달한 적이 없을 텐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 미궁의 심층지대에 진입하고도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인간이 당신 앞에 있다는 거지. 아직도 날 죽이고 싶은가?”
“그럴 리가.”
모든 VIP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만한 무례를 범했다.
경매 후는커녕 당장 찢겨 죽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들은 놀랐고 우리는 대화를 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심층지대 너머를 모르고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심층지대를 어느 정도 공략한 게이머들은 알 수 있다.
미궁은 심층지대가 끝이 아니다.
그 너머, 미궁의 최하층에 가장 두려운 게 있다.
그것과 대면하기 직전에 지상으로 직행할 수단도 있다.
심층지대를 돌파하고도 생환이 가능하다.
이 정보를 알고 있는 건 당연히 ‘돌파자’나 돌파자와 깊은 관계를 지닌 자들밖에 없다.
“미궁에 남은 동족들에게 전할 말이라도?”
“지금은 보는 눈이 많군. 거기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물건은?”
“양보한다면 미궁에 대한 정보를 판매하지.”
“계약서.”
“밤의 귀족의 긍지를 걸고 맹세하지.”
“좋아.”
인간과 달리 뱀파이어는 자신의 종족을 향한 무궁한 긍지를 지녔다.
이즈라크 정도 되는 고위 뱀파이어가 격이 훼손될 위험을 감수하며 긍지를 포기할 리가 없다.
나는 입찰을 중지했고, 그는 1골드를 더 입찰해서 천팔백만 1골드에 입찰을 완료했다.
이거 경매 끝나면 시스템 알림만 엄청나게 뜨겠네.
앞도 안 보일 정도로 뜨지 않을까.
미리 설정 조작해서 나중에 혼자 있을 때 뜨게 해야겠다.
“와...”
옆을 보니 리나가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
“보스 쩔어...”
“...네 얼굴이 더 쩐다. 침이나 닦아라.”
“핫! 아, 아니야! 리나는 침 같은 거 흘리지 않아!”
“오줌도 안 싸고 이슬만 마시고?”
“응!”
놀고 있네.
그래도 귀여운 내 부하니까 봐줘야지.
“너는 뭐 없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 보스가 이렇게 대단한데 전보다 달리 보이고 그런 거 없어?”
카이사르는 평소처럼 띠껍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
이 새끼는 진심으로 내 보스면 당연히 이래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미친.
도대체 날 얼마나 유능하게 보는 건데. 충성도가 1도 안 오르는 걸 보면 진심으로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전작에서의 경험이 조금만 부족했어도 끝장났겠네.’
아무리 강해지고 유능한 모습을 보여줘도 카이사르를 다룰 때만 되면 아슬아슬한 기분이 멈추지를 않는다.
이 녀석의 충성도 판정기준이 너무 엄격해서 무슨 짓을 해도 ‘음. 이래야 내 보스답지’상태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오히려 조금 풀어지려고 하면 ‘아니, 내 보스가 저딴 모습을 보여주다니’라면서 충성도가 뚝뚝 깎일 것 같아서 느슨하게 굴지도 못하겠다.
그보다 이 녀석은 정말로 내 부하가 맞을까.
실은 상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엄청나게 눈치 보면서 비위까지 맞춰줘야 하잖아.
차라리 이놈이 보스 하라고 하면 안 되나.
...아니, 그건 아니야.
그럼 나한테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칼질하겠지.
카이사르는 처음 대면한 사람을 보고 ‘얼굴을 보니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도 칼질할 수 있는 또라이다.
그런 광기가 나를 향해 겨눠지는 건 필사적으로 사양한다.
“어지간한 소국의 1년치 재정보다 많은 거금을 지니고 있다니. 대체 저 남자의 재력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지?”
VIP들은 공개스크린을 이용해서 대놓고 나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완전 머쓱하네.
어디 안 보이는데 가서 니들끼리 얘기하지 왜 공개스크린에서 이러냐.
“건방진 새끼들이!”
대뜸 카이사르가 마이크를 빼앗아들고 역정을 부렸다.
“보스의 눈앞에서 보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지껄여대다니. 히드라처럼 모가지가 아홉 개쯤 있기라도 하는가? 여덟 번쯤 베여죽고도 살 자신이 있어서 주둥이를 놀리는가!”
“…….”
경매장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용병단이나 상단, 암흑가, 관리, 귀족 따위가 잔뜩 모인 곳에서 그들을 향해 막말을 퍼붓는다.
카이사르의 똘기는 진짜로 나조차도 감당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놓고 말해서 나는 돈 믿고 날뛰지.
얜 대체 뭘 믿고 이래?
“건방진 놈들이 입을 다물었습니다. 다시 마음 편하게 경매에 참여하십시오, 보스.”
불편해.
그것도 네놈의 존재가 제일 불편해.
“어... 음. 다음 경매물품은 신성의 잔재가 담긴 성유물 중 하나입니다. 유물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면 자연재해를 직격으로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데요. 경매가는..”
“천만 골드.”
“천만 골드... 에에엑!?”
줄곧 침묵하던 1강이 불쑥 튀어나왔다.
“1골드만 더 올려도 가져갈 수 있다.”
저건 대놓고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가져가려면 가져갈 수는 있다.
근데 저 물건은 나한테는 그리 절박하게 필요하지 않다.
가지고 있으면 다양한 파멸을 막아주는 성유물.
있으면 좋지.
근데 저거 겁나 커서 여행용 배낭에도 못 집어넣는다.
“돈 많잖아. 좀 더 쓰시지?”
툭 한 마디 던지니까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었다.
“영겁의 경계에 발걸음을 새기면 그 자취는 어디에 닿는가. 피안의 저편에서는 그저 흐르는 물결, 떠도는 나뭇잎 한 장 만도 못한 것을.”
영겁의 경계? 피안의 저편?
시발. 이 새끼 지금 뭐라는 거야.
나는 짜증나서 대답했다.
“나뭇잎도 쌓으면 시체 정도는 덮어줄 수 있지. 돈 쌓으면 네놈의 주검쯤은 가볍게 덮어줄 것 같지 않냐?”
돈 졸라게 아끼네.
얼른 뒈져서 황금 관짝에나 들어가라, 늙다리야.
“황금을 쌓아올린 탑으로 경계의 저편에 닿고자 하는가.”
“돈이 쌓으라고 있는 거냐? 덮으라고 있는 거지.”
“어디에도 닿지 못한 나뭇잎이 고여 썩어가는구나. 허나 그 또한 나쁘지 않음이 세상의 이치일 터…….”
이 새끼 지금 나랑 선문답 하면서 돈 욕심 그만 내고 그만 꺼지라고 돌려 까는 건가.
왜 같은 말을 하는데 나만 이해를 못하는 거지.
왠지 모르게 억울한 기분이 들어서 적당히 저놈의 성질을 건드릴만한 말을 즉석에서 하나 지어서 툭 던졌다.
“발밑에 쌓인 나뭇잎도 볼 줄 모르는 놈이 영겁의 경계를 논해? 어리석음의 극치로군. 네놈이 자아낼 모든 것들은 경계를 만질 수는 있어도 전부 흘러내릴 거다.”
“……!”
“바닥이 없으면 전부 날 수 있다고 생각 한다면 크나큰 오산이지. 네놈에게 날개 따위는 없다.”
멀쩡하게 사람 말 잘할 수 있는 놈이 왜 갑자기 더럽게 어려운 말만 쓰고 지랄이야.
그런 짜증난 심보를 가득 담은 말에 1강 교주 라만이 굳게 입을 다물었다.
건장하고 굳건한 육체를 지닌 라만의 몸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갑자기 그의 육체가 늙기 시작했다.
“뭐, 뭐지? 늙지 않는 라만이 늙고 있어!!”
“영생이 멈췄어!”
“아니, 저건 인위적으로 억제한 노화를 받아들인 거다!!”
미친, 저놈 저거 뭐하는 거야.
돈 더 쓰라니깐 갑자기 노화 퍼포먼스를 왜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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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 라만의 노화 퍼포먼스에 추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