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2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 =========================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22)
느닷없이 노화 퍼포먼스를 시작한 라만은 엄청난 속도로 늙어갔다. 건장했던 근육은 보잘 것 없이 쪼그라들고, 탄력 있던 피부는 볼썽사납게 쭈글쭈글해졌다.
100kg짜리 덤벨도 한 손가락으로 휙휙 들어 올릴 것 같던 마초적인 남자가 말라붙은 나뭇가지처럼 늙는 데에는 고작 1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미친.
이 늙은 놈이 지금 나랑 뭐하자는 거지.
노약자 할인 해달라고 이러는 건가.
“그대의 말이 옳다.”
육체는 보잘 것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더욱 또렷하게 귀에 들어왔다.
“만물의 발본은 존재의 근원에 있으니, 식물은 뿌리를 두고 그 힘으로 자라나는 것... 근본을 잃은 식물은 이미 식물이라 할 수 없으니 자신을 잃은 것과 같도다.”
“하. 그래서 얼마를 더 쓴다고?”
“어긋난 탑을 무너뜨렸으니 나의 영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영겁을 두고도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되물렸음에 천만 골드라면 값진 대가이겠지...”
경매사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예? 지금 그거 입찰입니까?”
라만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천만 골드.”
경매사는 그제야 당황한 기색을 수습하고 말했다.
“교주 라만님께서 이천만 골드를 입찰했습니다!”
나는 부쩍 기분이 나빠졌다.
지 멋대로 내 말에서 뭔가를 깨달았는데 그게 저놈을 더 강하게 해주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안 그래도 견제해야 할 놈을 더 강하게 만들었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대의 목적은 마땅히 취해야 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두는 데에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다른 자들과 달리 이 노구에게만 은혜를 입혀두는 것은 노구가 지녀야 할 것을 뺏은 도둑이 아니라 취해야 할 것의 일부라 여기기 때문인가?”
뭐라는지 잘 모르겠을 땐 가만히만 있어도 절반은 간다.
“…….”
“…….”
돌이랑 돌이 있으면 뭐가 될까.
그냥 돌 두 개가 된다.
이 새끼도 나처럼 아무 말도 안 하잖아.
당연히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짜증을 담아 대답했다.
“돈 주고도 못 거둘 은혜를 입었을 텐데? 그럼 돈 말고 다른 걸 줘야지.”
“지고한 경계의 저편에 도달한 자가 미천한 노구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이오?”
“미천한 노구라니까 무슨 슈퍼가게 사장님처럼 들리는데 실제로는 6강중에 1강이잖아. 가난한 척 하지 말고 있는 거 찾아서 되는대로 내놔.”
날강도나 다름없는 말이라서 내뱉고도 이거 싸대기 맞는 거 아닌지 걱정됐는데, 의외로 라만은 껄껄 웃으며 몹시 기분이 좋은 것처럼 보였다.
“날개를 꺾고 지팡이를 뺏으면 이 노구는 두 다리로 걸어 다니란 말이오?”
“뜻은 변치 않고 흔들리지 않을 지어니, 날개를 꺾더라도 피안의 저편으로 향하는 길을 닫을 수는 없소. 금탑을 쌓아올려도 부족할 시간이니 꺾인 날개를 주겠소.”
“뭐?”
“경매사에게 맡겨둘 터이니 끝나고 찾아가시오.”
“…….”
뭐, 됐어.
왠지 저 노인네랑은 그다지 얽히고 싶지 않아.
6강 견제도 끝났고.
“백만 골드 입찰.”
이후로는 평범하게 입찰에 참여하면서 갖고 싶은 걸 하나 찔러봤는데, 어째서인지 아무도 입찰을 하지 않았다.
“젠장. 빌헬름 마이어가 입찰하다니. 난 포기하겠어.”
“나도.”
“수전노 쉔보다 더한 놈이 나타났어.”
나는 마지못해 다음 물건부터는 입찰을 포기했다.
경매에 참여하기만 하면 지레 겁먹고 달아난다.
이러면 물건은 내 것이 되어도 돈은 얻을 수 없다.
어차피 마법등급 이상의 물건은 저주가 걸려있다.
억지로 쓰려면 못쓸 건 없다.
근데 그걸 쓰려고 들이는 심력이 아깝다.
딱히 저것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들도 아니잖아.
없어도 상관없다.
지금 필요한 건 귀한 쓰레기들이 아니라 대량의 돈이다.
‘지금이 아니면 처분 못할 물건들이니까.’
돈은 나중에라도 벌 수 있지 않냐고?
천만에.
블랙마켓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런 거금을 이런 단기간에 벌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끝.
그 의미를 알면 무조건 지금 팔아야 된다.
물건은 시간이 지나도 프리미엄 가격이 붙지 않고, 지금만큼 높은 값을 불러주는 사람들을 모으기도 어렵다.
[블랙마켓이 종료되었습니다.]
[총수입을 산정 중입니다.]
[블랙마켓 운영비로 8827만 6813골드를 습득했습니다.]
경매 낙찰금액과 상점수익, 임대상점 및 가판대 수수료를 모두 모은 결과다.
당초의 예상보다도 훨씬 더 많은 수익이 나왔다.
경매에서 나와 6강이 붙은 자금전쟁이 다른 VIP들에게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암흑가의 저력이 강해지는데 손 놓고 구경할 수는 없다.
그런 생각에 모두가 더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물건을 구매하는 데 앞장섰다.
특히나 세 개의 유일등급은 내가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천만 골드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의 금액에 낙찰되었다.
‘운반하는 것도 문제네.’
상급 정보상인이 건네준 아공간 금화주머니는 백만 골드까지 들어가는데 수익금은 백만 골드의 88배를 넘었다.
천만 다행히도 암시장에도 아공간 금화주머니가 있어서 40개는 거기에 넣었다.
그러고도 남은 건 평범한 금화주머니나 궤짝에 담아서 마차 가득 실었다.
“보스. 안 팔린 물건은 어떻게 합니까?”
“미리 빼돌린 것들 말고는 여기에 남겨둬라.”
“알겠습니다.”
블랙마켓을 개최하기 전에도 생각했다시피 나 말고 블랙마켓을 눈독 들일 놈들이 잔뜩 있다.
특히나 경매에서 모두가 돈을 쏟아 붓다시피 했으니, 쉔도 없는 지금의 블랙마켓이라면 먹어볼만 하다고 여기며 칼 들고 달려드는 놈들이 잔뜩 있겠지.
그때 먹을 잔칫상을 조금은 남겨둬야 지들끼리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지, 죄다 내가 먹고 나르면 날 싸움도 안 나고 범인 찾기에 전념하다가 나한테 칼이 돌아올 거다.
“이 많은 물량을 가져가는데 의심받지는 않겠습니까?”
“안 받으려고 밖에서 물건도 잔뜩 샀잖아.”
상점이랑 가판대에서 산 물건들이 마차 단위로 있다.
포션이나 주문서 따위의 실용적인 것들 위주로 구비했으며, 카이사르가 백보권도 개량했는데 다른 무술이라고 못할까 싶어서 무공서도 잔뜩 샀다.
개중에는 비급서로 판정될 정도로 귀한 무공도 몇몇 있었지만 어차피 내가 지불한 돈은 나한테 다시 돌아온다. 아낌없이 재력을 과시하며 사들였다.
“어디 전쟁이라도 치르러 갑니까?”
개중에 필요한 물건을 팔면서 블랙마켓 내부가 아니라 밖에서 들어온 입주상인들만 신났다.
걔들한테 준 돈은 회수할 길이 없으니 쌩으로 돈 주고 샀다고 보면 된다.
잔뜩 돈을 벌고도 내가 사들이는 물건의 물량을 보면서 적잖이 기가 죽은 모양새였지만 이것도 어쩔 수 없다.
‘금화가 오죽 무거워야지.’
마차 한 대에 모조리 몰아서 실으면 다른 마차랑 다르게 유독 무거워진다.
혹여나 마차가 털릴 때의 위험을 대비해서라도 모든 마차에 골고루 돈을 나눠서 실었다.
한 번쯤은 습격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마차를 습격당하는 일은 없었다. 카이사르는 검을 검집에 넣으며 무척이나 아쉬워하였다.
“내장으로 만든 순대라는 게 맛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내장을 만들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
어디서 게이머들이 하던 잡담이라도 들었나보다.
그보다 그거 돼지 내장으로 만들잖아.
이놈이 무슨 엽기적인 식인요리를 하려고 하고 있어.
마차에 습격자가 없을 만도 하다.
습격하면 인간순대가 되게 생겼는데 미쳤다고 덤비겠어?
아지트와 도장에 물건을 차곡차곡 싣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것들 엄청나게 눈에 띈다.
못해도 1골드짜리 물건들이 마차에서 잔뜩 쌓였잖아.
“와아아. 우리도 성공한 모험가가 되면 저렇게 떼돈을 벌고 물건을 잔뜩 살 수 있는 거야?”
“멍청아. 저분은 흑산회 보스잖아. 우리 같은 것들은 올려다볼 수도 없는 실력자라고.”
“저거 백분의 일... 만분의 일만큼만 살 수 있는 돈 벌면 좋겠다.”
금화랑 별개로 구매한 물건들의 가치만 측정해도 3천만 골드는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
만분의 일이면 3천 골드 남짓이네.
나는 마지막 말을 한 녀석에게 가서 그놈의 몸을 빤히 살펴보았다.
“헉... 죄, 죄송합니다.”
“만분의 일이라고 했던가?”
“네, 네...”
대충 계산을 마쳤다.
3천 골드면 한화 가치로 30억 가량이다.
“위에서는 하루 14시간씩 수련하고 미궁 안에서는 치열하게 사냥을 거듭해라. B10층 언저리까지 진입할 실력을 갖추고 사냥을 해나가면 3천 골드는 충분히 벌 수 있다.”
“저, 정말인가요!”
“물론 상급 수련과정은 수련비가 더 들것이고, 언제까지고 수련만 계속할 수는 없지. 몇 년은 미궁에 내려가서 수익을 내면서 수련비를 만들고 수련하기를 반복해야 할 거다.”
괜히 심심해서 교관을 잔뜩 만든 게 아니다.
나중에 되면 각자 특기무술도 갈라지겠지.
그놈들이 각자 수제자처럼 실력자들을 기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수는 흑산회의 손에 의해 자라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 조직, 길드, 클랜, 파티.
고수들은 각계각층의 온갖 크고 작은 집단에 소속되어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그런 자들이 모두 백보도장의 수련생이다.
서로 동거동락하거나 같은 도장에서 수련한 기억이 남으니 이를 연줄로 삼기도 쉽다.
나아가 백보도장이 무관으로 승급되면 정식 이력으로 삼을 수도 있다.
소문 난 무관 내지는 실력 있는 무관 출신이라는 것.
이게 의외로 이 바닥에서는 잘 먹힌다.
현실세계의 대학교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수련생들은 무관 프리미엄으로 한층 더 주가가 오르고, 흑사회는 백보도장을 거느린 실질적 뒷배이니 뛰어난 수련생을 대거 배출했다며 평가가 오른다.
늘어난 교관도 이때가 되면 상급교관이 되어 소수의 실력자들만 가르치고 초기 수련생이나 나중에 고용한 놈들이 교관 노릇을 대신하고 있을 거다.
처음에야 그딴 거 없이 그냥 얼떨결에 데려온 놈들이 교관이 되었을 뿐이지만.
원래 초창기의 우여곡절은 성장한 뒤에 보면 전부 뜻깊은 행동으로 포장되기 마련이다.
세상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보스! 우리 부자 된 거야?”
“그렇다.”
“얏호! 나 물건 구경해도 돼?”
“구경만 해라. 필요한 건 나중에 챙겨줄 테니까.”
“응! 응!”
리나는 눈이 돈 모양으로 변한 것처럼 좋아 죽는다.
반면에 카이사르는 시큰둥함 그 자체였다.
무기나 무공서, 심지어는 비급서도 샀는데 이런다.
“넌 구경하러 안 가냐?”
“하찮은 것들이라서 별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
돈을 미친 듯이 발라서 샀는데 하찮은 거라니.
진짜 띠껍네.
“백보권은 삼류무공인데도 잘 개량하지 않았던가.”
“가토의 의지를 높이 쳐주었을 뿐입니다.”
“그럼 저 쓰레기들의 장점을 따내서 백보권에 합쳐라.”
카이사르는 조금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됩니다. 가토는 순혈주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뭐?”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피부색으로 사람 차별하는 놈처럼은 안 보였는데.
“백보권에 다른 무공을 섞는 걸 싫어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가토는 강해지기만 하면 좋아할 거다.”
“그렇습니까?”
“그래. 네가 무공 개량할 때도 군말 않고 인정했잖아.”
“음.”
카이사르는 다시금 고민에 빠졌다.
그러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됩니다.”
가토 따위는 진즉에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별걸 다 챙길 정도로 기억하고 있네.
그래봤자 시답잖은 이유라도 떠오른 거겠지만.
“이번엔 또 뭐가 문제냐.”
“가토는 다리가 짧았습니다. 다리가 짧으면 각법은 쓰지 못합니다. 장점은 합칠 수 없습니다.”
“가토가 아들을 낳았다면 아들은 다리가 길 수도 있지. 혹여나 존재했을지도 모를 가토의 아들에게 무공을 전수한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어라. 각법도 쓰니 백투권이면 되겠군.”
카이사르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드디어 방에서 나가주는군.
근데 나가자마자 다시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발놈아. 빨리 좀 백보권 개량하러 꺼져.
이놈은 졸라 눈치가 없나.
혼자 남아서 상태창 확인해야 된다고.
“좌수를 위주로 하는 무공서와 우수를 위주로 하는 무공서가 있으면 어느 손을 더 잘 써야합니까?”
“둘 다 똑같이 잘하게 만들어라.”
“하지만 가토가 왼손잡이였는지 오른손잡이였는지 헷갈립니다. 자주 쓰는 손은 자식에게도 이어진다는데 만일 가토의 아들도 좌수검을 쓴다면 양손을 모두 쓰는 검은...”
젠장할.
가토의 아들놈이고 손자고 알 게 뭐야.
가토는 죽었고 애도 못 낳는데.
“가토의 아내가 오른손잡이고 딸이 무술을 배우고 싶어하면 그때 가서 좌수검 말고 우수검 전용 무술을 따로 만들 셈이냐?”
“아.”
“모든 경우를 고려하여 최적화된 게 양손을 모두 잘 사용하는 거다. 만들 때 파트를 나눠서 좌수, 우수, 쌍수검술을 다 만들고 가르칠 땐 한쪽만 뚝 떼어서 가르치면 되잖아.”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보스.”
“그럼 가봐.”
이걸 시킨다고 만들 수 있는 놈이 더 대단한 건데.
천재가 괜히 천재는 아닌가보다.
그럼 이번에야말로 밀린 시스템을 확인해볼...
벌컥!
“가토의 아내는 예쁩니까?”
“꺼져.”
지가 죽인 놈 아내 NTR할 생각하지 마라, 이 또라이야.
애초에 아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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