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4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 =========================
#3 - 내 부하의 사생활이 충격적이다(24)
우선 기대감이 큰 쪽부터 살펴보았다.
교주 라만이 선물이라면서 준 ‘꺾인 날개’를 봉한 상자!
영생을 추구하던 자의 날개라니 절로 기대가 된다.
“!?”
나는 상자를 열자마자 최대속도로 다시 닫았다.
시발.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비릿한 피냄새가 미미한 감각으로도 또렷이 잡혔다.
착각 따위가 아니다.
어째서인지 상자 안에는 인간의 살가죽이 있다.
‘시발. 저게 어딜 봐서 꺾인 날개야.’
무슨 인피면구 재료나 가죽갑옷 재료도 아니고.
사람 살가죽이 여기 왜 들어있는데.
나중에 감정사를 초빙해서 정체부터 파악해야겠다.
‘저거에 비하면 차라리 이쪽이 나은가.’
경매장에서 백만 골드에 얼떨결에 입찰해버린 물건.
‘고통을 주는 워 엑스’라는 놈이다.
근데 기가 막히게도 이건 사용자한테 고통을 준다.
덤으로 고통을 받는 크기만큼 공격의 위력이 상승한다.
심지어 저주의 효과는 고통을 더욱 배가시키는 것.
맞는 놈보다 때리는 놈이 더 아파서 죽는다.
이딴 무기를 누가 써.
동기화 비율이 1%인 나라면 고통도 1%로 느껴져서 어떻게든 쓸 수야 있겠지만... 대신 위력도 1%로 감소한다.
의미 없잖아.
말 그대로 애물단지다.
“하... 뭐 됐어.”
창고에 박아두면 언젠간 쓸모가 생기겠지.
아니면 말고.
덜컹.
문을 열고 나오는데 대뜸 펑 소리가 들렸다.
시발 깜짝이야.
움찔하는 내 얼굴 위로 나풀거리는 뭔가가 떨어졌다.
“감축드립니다, 보스!!”
부하들이 모여 있다.
그것도 주요 조직원부터 임시 조직원까지 전부 다.
마족 그레이마저 한편에서 떨떠름하니 서있다.
“…….”
뭐지, 이 상황. 사내새끼들이 나 몰래 모여서 한 목소리로 졸라 크게 소리치고 있는데.
감격이라거나 그딴 거 없이 그냥 소름돋고 무서웠다.
빈집에서 자고 일어났더니 좀비들이 우워어 거리면서 달려들면 딱 이 기분이겠다.
“니들 왜 여기에 있냐.”
제일 앞에서 폭죽을 터뜨린 카이사르가 말했다.
“누구도 안에 들이지 말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래서 축하드리고자 집합시켰습니다.”
이 새끼는 지능이 10이지만 싸이코 짓에 지능을 전부 할애해서 사람 말을 잘 모르는 거 아닐까.
왜 모였냐고 물었더니 축하하려고 모였댄다.
그럼 존나 귀찮고 짜증나게 축하는 왜 하냐고 또 물어야 되잖아.
한 문장에 한 가지 정보밖에 전달을 못하다니.
정보전달력이 원시인 수준이네 시발.
“뭘 축하하려고.”
속 터져도 물어봐야지.
궁금해서 암 걸리는 건 쟤가 아니라 난데.
“경지상승을 위해 수련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
안했는데.
또 지 멋대로 상상하면서 지 혼자 결정했나보다.
근데 아니라고 하면 할 말이 궁색하다.
시스템 알림창 보고 있었어, 라고 말할 수도 없잖아.
얘들은 마법 써야 상태창 보이는데.
곧이곧대로 말하면 ‘보스는 마법도 하실 줄 압니까?’라고 하겠지.
그럼 막 내가 헬파이어 쓰는 7써클 마법사냐고 물어볼 거고.
아니라고 하면 ‘실망스럽군. 헬파이어도 못 쓰는 하찮은 마검사를 모실 생각은 없다.’라면서 내 목을 뎅강 벨 거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인류 역사상 최악의 상또라이 카이사르라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만족할만한 성과는 얻지 못했다.”
“아.”
카이사르를 제외한 나머지의 표정이 어색해졌다.
경지상승을 할 거라고 생각해서 축하했는데 실패했다고 했잖아.
겁나 미안해서라도 앞으로 이런 짓은 못하지 않을까.
이러면 뭘 준비하더라도 적어도 성공유무 정도는 사전에 나한테 물어보고 나서 진행할 거다.
아무것도 모르고 대뜸 얼굴에 케이크 폭죽 터트리고 나오는 종이를 끼얹음 당할 일도 없을 거고.
10초 뒤에 시커먼 사내새끼들이 당신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달려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라는 경고로 삼을 수도 있겠지.
“보스 정도의 경지라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뭐지 이건.
너 같은 허접은 경지상승도 못한다는 신종 괴롭힘인가.
“교주 라만에게도 한 수 가르침을 베풀 정도의 실력자라면 위로 올라가는 길은 더욱 고되고 험난한 게 당연합니다.”
“뭐?”
“라만의 경지는 생사입멸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수준. 이를 벗어던지고 지닌 힘의 상당부분을 소실했지만 기운은 정순해지고 한층 더 깊은 경지에 발을 들였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그게 뭐 어쨌다고.
“보스는 그런 라만에게 가르침을 베풀 정도이니 적어도 라만보다는 강한 거 아닙니까.”
아.
거기서 착각 당하고 있었구나.
되게 부담 되네 이거.
“음.”
내버려두면 이 싸이코 새끼가 품은 착각을 다른 부하들과 다 같이 공유하게 생겼다.
근데 이거 정정하려면 내가 허접이라고 밝혀야 한다.
카이사르의 보스라는 입지가 무너진다.
이 새낀 보스 전지전능설을 믿어서 보스가 전지전능하지 못한 걸 알면 충성도가 하락하는 개 같은 자식이다.
그냥 난 전지전능한 졸라 쌘 보스다, 라고 인식시키고 모든 걸 내려놓는 게 그나마 나은 선택이다.
“그렇다. 라만은 내 하수다.”
“오오오!”
“역시 우리 보스는 대단해!”
“거봐. 수련이 맞을 거라고 했잖아.”
“하긴. 보스 정도 되는 남자가 자위를 할 리가 없지.”
감탄하는 놈들 사이로 어째서인지 날 두고 불순한 내기를 하던 부하들의 대화가 슬그머니 들려왔다.
“…….”
합당한 의심이기는 하다.
애초에 수련이 아니면 안에서 뭘 하는데.
다 큰 남자의 혼자만의 시간.
사람 하나 묻는 거 아니면 자기위로밖에 생각 안 난다.
그보다 보스는 그것도 하면 안 되는 거냐!?
“보스는 엄청난 돈이 있잖아. 경국지색의 미녀도 돈 주고 사서 개목걸이를 채우고 펫으로 삼을 수 있는데 자위를 왜 하겠어?”
“하긴. 뭔가 폼이 안 나기는 하네.”
게임 안에서는 영원히 자기위로는 하면 안 되겠다.
발각 즉시 권위가 와르르 무너지게 생겼어.
굳이 보스가 아니더라도 인간적으로 수치심을 느낀다.
“해산해라.”
아무튼 소동은 가라앉았다. 리나는 재미난 구경거리를 봤다며 싱글거리며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보스. 케이크 먹을래?”
“그레이나 줘라. 건빵만 먹고 살 녀석인데 입가심이나 해두라고 하지.”
“응, 알았어!”
그레이는 마족이라는 정체성이 무색하게도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정으로 케이크상자를 넘겨받았다.
배정된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는 모습이 정말 처량하기 그지없다.
마족이 저리 불쌍해 보이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넌 여기서 뭐하냐. 백보권 개량 안 하고.”
“따로 전할 말이 있습니다.”
“말해봐.”
“응접실에 손님이 와있습니다.”
“...언제부터?”
카이사르는 시계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3시간 전부터입니다.”
미친.
그딴 건 좀 빨리 말해.
개 민폐잖아.
아니,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말한 건 나였던가.
아무튼 응접실로 갔다.
“음?”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있었다.
경비대 직속 심문관 마티아와 간부코트를 걸친 남자.
경비대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이었다.
“배짱도 좋군. 경비대가 흑산회 아지트에 제 발로 찾아오다니.”
“범죄자 주제에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는구나.”
경비대 간부가 고압적인 태도로 윽박질렀다.
응?
나는 그 반응에 위축되기는커녕 도리어 황당해졌다.
“너 소드마스터냐?”
“검술 따위는 익히지 않았다!”
“그럼 다른 분야의 마스터라도 되는 거냐?”
“지고한 경지는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럼 뭘 믿고 나대는 거냐.”
진심으로 이해가 안 돼서 묻는데 대뜸 간부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스킬 ‘보스의 기백’이 발동합니다!]
[스킬 ‘공포부여’가 발동합니다!]
[특성 ‘지배자의 아우라’가 발동합니다!]
[칭호 ‘슈퍼빌런’이 발동합니다!]
[칭호 ‘암흑가의 유망주’가 발동합니다!]
미친. 이게 다 뭐야.
몇 마디 말 좀 섞었다고 막 쏟아지는 거 봐라.
“으, 으으. 가, 감히 경비대 간부를 협박하다니..”
“너 여기서 살아서 나갈 자신은 있냐?”
“흐에엑! 잘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나 원 참.
진즉에 이렇게 굴 것이지.
“심문관 마티아. 용건을 밝혀라.”
“저... 검은 왕관이 다른 조직들의 습격을 받아 실시간으로 궤멸하고 있기에, 이 과정에서 흑산회가 어떤 개입을 했는지 파악하고자...”
“흠. 그런가. 너에게라면 진상은 밝혀도 무방하겠지.”
경비대와는 이미 거래를 했다.
흑산회는 공포를 관장하는 조직이며 이를 증명한다.
그걸 위해서 블랙마켓 침입 작전을 세웠었다.
얼떨결에 임무는 대성공을 했지만 전후사정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갑자기 검은 왕관이 사방에서 린치를 당하는 것처럼 보일만도 하다.
부패한 고위관리라면 모를까, 경매장에 경비대 소속 따위가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블랙마켓의 운용자금은 전부 내가 털었다.”
“예!?”
“지금 검은 왕관을 습격하는 놈들은 그걸 노리고 서로 상잔하고 있지만, 다른 조직이 먼저 빼돌렸다고 여길 뿐 범인이 누구인지는 찾지 못하겠지.”
뒤늦게 내가 범인이라는 게 경비대를 통해서 밝혀지더라도 딱히 꿇릴 건 없다.
“그래도 이거 하나만은 장담할 수 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검은 왕관은 흔적조차도 남기지 못한 채 처참하게 파멸한다. 두 번 다시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히끅.”
“어째서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놈들을 짓밟아 부수는지 이유를 알고 싶지 않은가?”
마티아는 잔뜩 굳은 채 식은땀만 흘렸다.
감히 입을 열 엄두조차도 나지 않는 기색이었다.
“간단하다. 검은 왕관 소속의 사채업자 한 놈이 건방지게 내게 암살자를 보냈기 때문이다.”
“무, 무슨...!?”
“나는 간단한 해결책을 찾았다. 암살자와 사채업자를 죽이고, 놈들의 위에서 나를 성가시게 굴 만한 수전노 쉔을 찾아가 죽였다. 그리고 놈을 따르던 조직도 궤멸시켰다.”
마티아는 이제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보였다.
“그런 일이 경비대에는 닥치지 않았으면 좋겠군.”
“며, 명심하겠습니다.”
“약속했던 경비대와 관련된 공적. 그건 아직도 필요한가?”
본래라면 미궁탐사를 해야 했는데.
일이 이 지경이 되어버렸으니 딱히 필요하지는 않을 거다.
마티아는 당연히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럼 몸 조심히 돌아가도록.”
“으으...”
마티아는 애써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일어났다.
헌데 아직도 용건이 남았던 모양이다.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배짱도 좋군. 뭐가 더 남았냐.”
“블랙마켓에서 대규모 수입을 얻으셨다면... 그 자금을 활용하기 위해서 휘하 작업장을 통해 세탁을 거쳐야 합니다만... 지금 보유하신 작업장으로는 규모를 감당 못합니다.”
“호오. 그걸 내게 알려주는 이유는?”
“뒤가 구린 돈이 나돈다고 소문이 돌아서 경비대가 출동이라도 했다간... 다 죽이실 거 아닙니까?”
내가 무슨 파괴신의 재림도 아니고 그걸 다 죽이겠냐.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근데 옆에 카이사르가 있어서 아니라고 말 못하겠다.
“그러겠지.”
“으으.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디 부탁드립니다. 경비대의 다른 라인이 이상을 눈치 채지 않도록 보다 큰 작업장을 확보하거나 수입을 늘려주십시오.”
“예를 들자면?”
“아무리 못해도 월수입 1만 골드 이상의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가게를 보유해야 합니다.”
“뭐, 신경은 써보도록 하지.”
마티아라는 녀석, 용감하기도 하군.
다리에 힘이 풀릴까 걱정하는 와중에도 이런 말을 하다니.
게다가 심문관이라면 감정에도 나름 자질이 있겠지?
‘좋아. 영입후보다.’
나중에 때가 무르익으면 흑산회에 영입제의를 해보자.
지금은 저놈 옆에 경비대 간부가 있다.
사람 없을 때 리나라도 보내서 은근슬쩍 제의하게 해야지.
“보스.”
잠자코 대화를 듣던 카이사르가 불쑥 말했다.
“가게를 운영할 예정입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제게 맡겨주십시오.”
이보다 무섭고 충격적일 수 없는 발언이었다.
“뭐?”
“저라면 충분히 월 1만 골드 이상의 가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니면 보스는 제 능력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미친.
상또라이 녀석이 갑자기 되도 않는 억지를 부렸다.
근데 이걸 어떻게 막을지도 모르겠다.
“...진짜로?”
카이사르는 ‘그거 재밌겠군. 꼭 내가 해봐야겠어.’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망했군.
가게 하나 장사 접을 생각으로 대충 던져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