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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78화 (78/224)

00078 #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 =========================

#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3)

[남은 CP : 35,700CP]

입이 다물어질 수가 없는 엄청난 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나는 이 수치의 가치를 알고 있다.

30억을 주고 사는 게 1,500CP다.

10년간의 열정을 들여서 받는 게 196,000CP다.

35,700CP는 행동정산의 상한에 걸리고 남은 여과물과 업적보상이 내게 적립된 CP다.

그럴만한 일을 하고 받았다.

그렇다는 걸 감안해도 너무나도 많은,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수치를 목격해버렸다.

값으로 따지자면 1CP 당 2백만 원이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1CP 당 약 27분이다.

환산하면 얼마나 되는가.

값으로는 714억이다.

시간으로는 약 1년 304일 9시간이다.

그걸 고작 게임 시간으로 한 달도 안 지나서 얻었다.

무섭다? 그럴 리가.

지금 내가 느끼는 건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짜릿함이다.

살아있다는 실감이 든다.

게이머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 나보다 앞서나가는 게이머는 없다.

전 인류를 통틀어서 제일 앞에 서 있다.

게임 속에서라도 나는 최고다.

그런 쾌감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끝내주는군.”

물론 착각일수도 있다.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더욱 크다.

랭킹 1위는 나 같은 놈보다 훨씬 더 괴물이니까.

그래도 그런 착각에 빠질 수 있을만한 성과를 얻었다.

‘조금쯤은 자기만족에 빠져도 좋겠지.’

나는 자기만족에 빠졌다.

리나는 불퉁한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보~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은 건 알겠는데... 어째서 내 턱을 간질거리고 있는 거야?”

“기분이 좋기에 이러고 있는 거다.”

“정말이지... 영문을 모르겠다니깐. 느닷없이 이런 일을 겪는 리나의 심정도 조금은 알아달라고.”

일방적으로 간질거리는 입장이라 미안하기는 하다만.

그래도 어쩌랴.

이러고 있는 게 기분 좋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걸.

‘그러면... 이제 선택의 시간인가.’

CP를 투자할 곳은 크게 세 곳으로 정해졌다.

내 시트지, 조직관리창, 하수인 시트지.

물론 지금까지 한 투자를 극대화시키려면 후자가 답이다.

[Tip> 하수인에게 CP를 투자할 시, 해당 하수인이 새로운 능력을 각성했다는 개념으로 변화가 적용됩니다. 주의하십시오. 이 변화가 반드시 긍정적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문제는 하수인이 교만해질 수 있다는 거겠지.

각성해서 강해진다.

듣기에는 좋지만 당사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이렇게나 강한데 여기서 더 강해질 수 있다.

내게 정말로 [보스]라는 게 필요할까?

그런 의혹이 생기는 순간, 충성도는 하락하기 시작한다.

카이사르에게 이 이상 힘을 싣는 건 위험하다.

그렇기에 눈을 돌렸다.

또 한 명의 부하, 암살자 리나에게로.

그녀는 하수인 시트지를 제작해서 만든 하수인이 아니다.

카이사르보다도 나와의 관계성은 희박하다.

그런데도 이만큼의 인연이 쌓였고, 행동을 함께 한다.

이건 어느 정도의 믿음을 줄지 결정하는 기로다.

그녀에게 CP를 투자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허나 투자한다면 많은 게 달라진다.

마지막까지 품고 가야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

고민 끝에 나는 결정하였다.

밀어준다.

리나는 마지막까지 데려갈 부하로 결정했다.

“리나. 만일 지금보다 강해진다면 어떤 능력을 얻고 싶지?”

“드래곤 브레스! 재밌을 것 같아!”

“……좀 더 현실적인 능력은 없는 거냐?”

“우웅... 딱히 없는데.”

“굳이 새로운 능력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럼 암살을 좀 더 잘하게 되지 않을까?”

암살광인 리나다운 대답이군. 길 찾기 스킬이라도 배우게 할까 했는데, 그건 레이브가 자력으로 습득하고 있으니 그럴 필요는 없겠지.

[NPC 리나의 ‘암살’ 관련 스킬 및 특성을 확인합니다.]

[부분스캔에 10CP가 소모됩니다.]

[암살스킬 숙련도 현황 : 상급 숙련 3레벨.]

[소유 특성은 <은밀한 발걸음>, <검은고양이의 눈>, <천장이 좋아>, <유연한 몸놀림>, <암살자의 기본소양>, <암살의 귀재>, <암살중독자>입니다.]

[CP를 투자하여 스킬레벨이나 특성단계를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 특성이 하나 보인다.

천장이 좋아는 뭔데.

툭하면 천장 자르고 내려다보는 게 저거 때문이냐.

‘진짜 고양이가 따로 없네.’

암살스킬에는 손대지 않는다.

숙련도를 인위적으로 올리면 당장은 좋아도 장기적으로는 손해가 된다.

성장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특성은 다르다.

이건 어차피 인위적인 노력으로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다.

CP를 투자한다면 특성단계를 올리는 게 최선이다.

[천장이 좋아]랑 [암살자의 기본소양], [암살중독자]는 빠르게 제외.

이건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인다.

[은밀한 발걸음]과 [검은고양이의 눈], [유연한 몸놀림].

이건 CP투자로 성능을 상승시킬 여지가 있다.

[암살의 귀재].

암살자로서의 재능을 상승시키려면 이걸 올려야 한다.

‘재능을 올리는 게 효과는 가장 확실하니까.’

카이사르만 해도 ‘천재’가 얼마나 뛰어난 존재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타고난 재능을 상승시키는 건 막대한 변화를 일으킨다.

복잡한 무학을 타고난 오성으로 깨우치고 범인은 보지 못할 걸 보며 하지 못할 걸 한다.

[특성 <암살의 귀재>를 두 단계 승급하여 <암살의 천재>로 승급하였습니다.]

[승급비용으로 35,000CP를 소모했습니다.]

이걸로 리나는 한층 더 강해졌다.

충성도나 호감도?

그건 내가 성심성의껏 대하며 올려야지.

“재능을 개화시켜줬다. 앞으로는 더 강해질 거다.”

“그랬으면 좋겠네!”

조금도 믿지 않는 건가.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리나가 강해지면 이득을 보는 건 나니까.

* * *

CP투자 이후로도 턱 간지럼으로 꽤나 괴롭힘을 당했는데도 리나는 눈을 흘길 뿐, 이내 평소처럼 행동했다.

뭐랄까. 꽤나 적응이 된 모양이다.

기껏해야 16살의 여자아이가 턱 간지럼을 일상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미안해지기는 하네.

“와! 보스, 여기가 제 2 내성이야!”

“내성에 오는 건 처음인가?”

“아니? 두 번째!”

기분 좀 풀어줄 겸 데려오기는 했는데.

두 번째면서 뭐 그리 좋아하냐.

그보다 암살자였던 리나가 제 2 내성에 올 일이라면..

“…….”

이건 지뢰다.

적어도 여기서 물어볼 일은 아니야.

“어머. 이런 아이가 취향이었던 건가요?”

“그 표현법은 좋지 않군, 클레드. 이래보여도 두 번째로 아끼는 유능한 부하다.”

“흑산회의 서열 3위... 저런 어린 나이에. 놀랍네요.”

카이사르가 얘보다 한 살 어리다.

이거 알려주면 기겁하겠네.

“화려하군.”

“후후. 미궁도시 브람은 번화한 도시니까요.”

“군더더기가 넘쳐흐르고 있어.”

이어지는 내 말에 클레드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전신갑주를 걸친 기사단이 경호를 하며, 길은 새하얀 자갈을 깔고 주변 정경은 아름답게 꾸몄다.

북쪽지구의 상류거리를 넘어서는 기품과 아름다움이 느껴지지만, 그렇기에 오랜 평화에 찌든 군더더기가 사방에서 넘쳐흐른다.

“제 2 내성의 역할은 몬스터웨이브가 발생하여 도시 내부에 대량의 몬스터가 침입할 시, 이를 격퇴하기 위한 구심점일 텐데.”

“그거야... 규정상으로는 그렇겠지만, 몬스터웨이브는 한동안 발생하지 않았잖아요?”

“심각하군.”

내 얼굴은 점점 더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확실히 생각지도 못했다.

NPC들이 전시태세가 아닌 평화에 찌든 모습이라니.

심지어 호감도 락도 제대로 걸렸잖아. 위험을 경고하려고 해도 어지간해서는 안 들어먹겠지.

오히려 불순한 소릴 한다며 적개심을 보이며 압력을 가하고도 남는다.

미궁공략을 위해서는 [밑]뿐만이 아니라 [위]에서도 충분한 활약이 없으면 곤란함을 겪을 게 뻔했다.

블랙마켓만 해도 그렇다.

도시에 장물과 온갖 희귀물품을 공급하는 편리한 암시장.

있어서 나쁠 게 없다고 여겼지만 그게 함정이었다.

미궁을 공략할 필요성이 낮아진다.

왜?

어차피 주기적으로 블랙마켓이 열리니까.

구태여 힘들게 미궁에 내려가서 물건을 구할 이유가 없다.

공급되는 물량도 훨씬 더 많다.

이러니 미궁공략은 더뎌지고 다들 필요성을 못 느낀다.

미궁에 대한 이해도는 낮아지고, 사람들은 방심하게 된다.

오래도록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제 2 내성을 커다란 장난감상자처럼 꾸미고 있어?

이놈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그게 얼마나 끔찍한 사실을 의미하고 있는지.

이런 물러터진 상태로 방치했다간 미궁도시가 하루아침에 궤멸할지도 모른다.

“어서오십시오. 성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하라.”

여기서 마중 나오는 게 치렁치렁한 메이드복을 입은 시녀가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인가.

완전히 쾌락을 탐닉하며 경계심을 내려놓은 건 아니었는지, 정갈한 정복을 입은 올백머리의 노년의 집사가 안내인을 자처하였다.

옷 아래로도 드러나는 튼튼한 체구나 균형이 바로잡힌 발걸음을 보면 평범한 집사가 아닌 무술을 익힌 전직기사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만나서 반갑소. 혜성처럼 나타나 암흑가에 격변을 일으킨 인재와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미궁도시 브람의 시장 직을 맡은 브람베르크이오.”

“흑산회 보스 빌헬름 마이어. 당신의 미궁도시를 한층 더 번화하게 만들어준 은인이다.”

“건방지군. 그대와의 대면을 약속한 걸 후회하게 만들지 마시오.”

성주는 집사와 마찬가지로 무술을 익힌 흔적이 보였다. 청색눈동자에 강인한 인상의 생김새는 고급스러운 복장으로도 숨길 수 없는 야생의 기운이 은연중에 흘러나왔다.

타고나기를 모든 걸 손에 쥔 채 태어난 귀족 특유의 오만한 기세다.

엄중한 교육으로 짓눌렀을지라도 감출 수 없는 개인의 기질 또한 포악한 강자의 그것에 가깝다. 이 작은 장난감상자에는 어울리지 않는 포악한 놈이다.

“힘과 지혜를 모두 지녔기에 중앙정계를 경계하고 스스로의 힘을 낮추어 보인다. 정치를 하는 자라면 능히 그럴 수도 있겠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허나 경계해야 할 대상이 잘못되었다. 네가 [위]에 있는 적만을 경계하는 사이, 미궁 [아래]에서는 실시간으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을 테니까.”

브람베르크의 바위 같은 얼굴이 한층 더 삭막해지며 암석처럼 굳었다.

“몬스터웨이브조차 없는 평화로운 미궁 안에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건가?”

“몬스터웨이브. 애초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는 건가?”

“물론이다. 미궁의 마기에 찌든 마물들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먹이를 찾아 지상으로 올라오는 현상이다. 휴식기에 접어든 지금의 미궁과는 관계없는 일이지만.”

알고 있다면 어째서 한 발 더 나아가지 못한 건가.

“몬스터웨이브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미궁이 휴식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인 게 아니다. 미궁은 단 한 번도 휴식에 접어드는 일이 없다.”

“...무슨 말이지?”

“성주씩이나 되는 자가 블랙마켓의 경매장에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고 말할 셈은 아니겠지? 나는 고위 뱀파이어 이즈라크조차 인정할 정도의 미궁지식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런 내가 단언한다. 미궁 아래에서 한도 끝도 없이 쌓여야 할 몬스터들이 올라오지 않는 이유는, 그걸 전부 먹어치우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

“특정 종족이 강세를 보이는 거라면 차라리 낫겠지. 군대와 군대의 결전이니까. 하지만 그게 [필드보스]를 넘어서 계층을 넘나드는 [계층보스]라면?”

브람베르크는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강해지고 있겠군. 경쟁자도 없이 포식을 거듭하고 엄청난 양의 경험치를 독식하면서.”

“한시라도 빨리 계층보스를 찾아서 제거해야 한다. 평화가 지속된 시간만큼 계층보스는 강해졌을 테니까. 참고로 묻겠다만, 마지막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한 건 언제지?”

“40년 전이었다.”

10년이면 위협적이고, 20년이면 피해가 막대하겠지.

30년이라면 이미 군대가 동원되어야 할 수준이다.

허나 40년은 전작에서도 전례가 없는 기간이다.

“미궁도시의 모든 역량을 집결시키지 않으면 생사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가.”

미궁 난이도가 올랐다는 말은 누차 들어왔지만, 이 정도로 화끈하게 올랐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 작품 후기 ============================

도전과제 : 40년간 역대급으로 폭☆풍☆강화된 계층보스를 제거하라!

저라면 탈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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