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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82화 (8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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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7)

영화 세트장처럼 꾸며진 알록달록한 거리를 따라 걷는다.

곁에는 금발에 하얀 피부를 지닌 예쁘장한 꼬맹이 리나도 함께 한다.

거기까지라면 즐겁겠지만 단 하나의 흠이 풋풋한 로맨스영화에나 어울릴법한 분위기를 공포스릴러로 뒤바꾼다.

“갔냐?”

“아직 따라오고 있어!”

“…….”

청일. 청학도장의 청학의 사형이라던 남자가 기계적인 발걸음으로 우리들의 뒤를 쫓고 있다.

놈은 검의 고수다.

카이사르 정도가 아니라면 상대할 수도 없다. 검계가 3m가 넘는 고수를 암살하는 건 지극히 힘들다.

“보스. 어쩌지?”

“어쩌면 가는 길이 같을 뿐인지도 모른다. 만약 아닐 경우도 대비해서 마차를 타고 거리를 벌린다.”

“그런 방법이...! 역시 보스는 대단해!”

가끔 리나가 날 칭찬하는 건지 바보취급 하는 건지 헷갈리는데. 아마도 기분 탓이겠지?

“어이, 마부. 동쪽지구까지..”

“히이익!”

마부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말을 몰았다.

투다다다다!

마차는 전장의 전차마냥 격렬하게 가속하며 멀어졌다.

“…….”

마차를 타는 계획은 실패했다.

그냥 사거리가 나오면 적당히 방향을 꺾어서 따돌려보자.

“역시 보스를 따라오는 것 같아.”

리나는 슬쩍 주변 창을 보고는 울상을 지었다.

청일의 목적은 나임이 틀림없다.

잡히면 카이사르를 내놔라 따위의 말이나 하겠지.

“보스. 앞에 마차가 한 대 더 보여.”

“..말 걸면 도망칠 텐데.”

“이번에는 리나가 수를 써볼게!”

호오. 암살자인 리나가 마차를 이용하는가.

과연 어떤 비책을 내놓을까.

답은 마차 옆을 지나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쉭! 팍!

자그마한 금속파편이 말의 다리를 찔렀다.

“히히힝!”

갑작스러운 고통에 놀란 말이 크게 발을 치켜 올리더니 전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리를 찌른 금속조각 탓에 한쪽 다리에는 힘이 덜 들어갔고, 자연스레 방향이 틀어졌다.

정확하게 청일을 향해서 전력으로 돌진하고 있다!

‘이거라면 먹힌다!’

말에 치여서 죽을 정도로 만만하다고는 생각 안 한다.

다만 못해도 시간벌이는 될 거다.

자신만만하게 뒤를 흘끗 돌아보자 빛이 번뜩였다.

파가가가각!

“!?”

마차가 청일의 옆을 지나쳤다.

세 걸음 뒤.

산산조각 난 마차가 무너져 내렸다.

“우와악! 뭐, 뭐야! 어째서 갑자기 마차가!?”

놀란 마부가 허둥거렸지만 말은 다치지 않았다.

베인 것은 말도 마부도 아닌 마차 뿐.

그것도 세 걸음이나 무너지지 않고 형체를 유지했다.

‘엄청난 정밀도!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게 아니야!’

벨 것과 베지 말아야 할 것을 정확히 구분한다.

선별하고 임의대로 원하는 만큼 벤다.

그런 복합적인 검술을 여유롭게 제 의지로 펼친다.

이 녀석은 강하다.

결코 적으로 두어서는 안 될 놈이다.

‘그보다 초 무서워!!!’

카이사르랑 비슷한 수준의 무력을 지닌 건 맞지만 아무리 싸이코라고 해도 그놈은 일단 내 부하다.

반면에 저놈은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더라도 사제지간인 청학이 내 부하에게 개망신을 당했다.

사문의 명예 어쩌고 운운하고 다니는 걸 보면 잡혔다간 굉장한 일을 당할 게 틀림없다.

‘그래, 민간인이다!’

저 녀석, 작정하고 벴다면 말과 마부도 벨 수 있었다.

베지 않는다면 이유는 뻔하다.

불필요한 살상을 원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제와 사문을 욕보인 흑산회의 보스.

그런 내가 민간인을 주변에 둘러 인의 장벽을 세운다면?

놈의 검이 아무리 쾌속하더라도 내게 닿지는 못한다.

민간인쯤이야 돈을 줘서 적당히 고용하면 그만이다.

우선 저쪽에 걸어가는 행인들을 매수해보자.

“그쪽의 인간들.”

“으음?”

“잠깐 이리로 와봐라.”

사람들이 날 발견하더니 흠칫 놀랐다.

좋았어.

높은 악명 덕분에 금방 얼굴을 알아보고 말을 듣는군.

“그리 겁먹지 마라. 너희를 해치려는 속셈은 없다.”

“저희한테 뭘 원하시는 거죠...?”

“얼마간 내 주변에 선 채로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누가 듣더라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제안이었다.

수상하면 뭐 어떠랴.

공짜로 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10분당 100골드.”

“!!”

“너희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일 거다.”

고민하는 기색만 봐도 알 수 있다.

이건 넘어왔다.

그렇게 확신하기 직전, 남자 한명이 불신을 피력했다.

“믿을 수 없어. 이건 모종의 사기인 게 분명해.”

남자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자는 미궁도시에서 두 번째로 위험한 슈퍼빌런이라고. 대뜸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남한테 돈을 퍼줄 사람이 아니야.”

“으음. 그 말도 일리가 있군.”

“게다가 ‘10분 당 100골드’라는 건 10분이 경과되기 전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거잖아.”

“무슨 일이라면?”

“습격이나 암살.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

이 녀석, 쓸데없이 날카롭다!

“어쩔 수 없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 상당한 실력을 지닌 검사에게 추적을 당하고 있다.”

“역시...! 우릴 고기방패로 써먹으려던 거였어!”

“냉정하게 생각해라. 날 위협할 정도의 실력자를 상대로 너희가 방패 노릇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현실감각이 뛰어나다면 나 역시 현실성을 바탕으로 설득을 시도하면 그만이다.

“저놈은 민간인을 죽이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를 방패로 쓰려고 하는 거다.”

“과연... 그런 거라면 이해할 수 있어...”

“납득했다면 당장 내 주변에 서라.”

남자는 납득한 기색이었지만 곧 새로운 의문을 제기했다.

“이대로 외면하면 흑산회 보스가 알아서 죽는 거 아닌가?”

“!?”

“딱히 도와줄 필요 없잖아.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뿔싸!

도망치다보니 자연스레 상류거리로 가고 있었다.

이쪽 시민들은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다.

“잘 생각해보아라. 흑산회가 일반 시민들을 위협한 적이 있었는가? 분명 없었을 것이다.”

“으음.”

“너희에게도 100골드는 있으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액수의 금액이지 않은가.”

시민들은 점차 마음이 기우는 모양이었다. 허나 아까부터 거슬리던 남자 녀석이 대뜸 앗, 하고 소리치며 말했다.

“마초카페라는 곳에서 지나가던 남자들을 가게에 납치해서 만신창이가 되도록 혹사시키고 돈도 뜯어낸 채 쫓아낸다는 소문을 들었어! 그런 조직의 보스라면 믿을 수 없어!”

시민들이 주춤거리며 적개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아. 이만하면 나는 충분히 노력했다.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었지만 너희가 거절한거야.

“리나, 인질이다!”

“몇 명?”

“되는대로 많이!”

리나는 얇은 배낭에서 칭칭 감긴 무언가를 꺼내더니 한손으로 회전을 가미해 휙, 하고 공중에 힘껏 돌렸다.

놀랍게도 큼지막한 그물이 리나의 손을 따라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투척용 그물은 남자들이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날아들어 그들의 몸을 뒤덮었다.

“잡았어!”

리나의 기습적인 포획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남자 네 명이 그물에 갇혔다!

정확히는 시민 셋과 나까지 포함해서 네 명이다!

“어이, 리나. 도망칠 수가 없게 되었잖아.”

“미, 미안! 보스! 이제 어쩌지!?”

“어떻게든 그물에서 벗어날 때까지 놈을 상대해라.”

청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리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보스. 여기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 유언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그동안 즐거웠어.”

“뭘 멋대로 사망플래그를 세우고 있는 거냐! 조금만 버텨라. 어떻게든 방법을..”

카강!

단검이 불똥을 튀기며 튕겨져 나와 벽에 틀어박혔다.

분하게도 보이지도 않았다. 평범한 민첩 능력치가 선사하는 동체시력으로는 인지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쾌검.

기본공격을 남들의 필살기처럼 구사하는 청일 앞에서는 아무리 리나라도 십초지적이라도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더는 달아날 수 없다.”

“으읏.”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리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청일의 쾌검이 신속하게 리나를 덮쳐들었다.

촤라라라락!

빛살처럼 밀어닥치는 검격의 무리들.

가혹한 맹공이 사라진 뒤...

‘이럴 수가.’

리나의 뻗친 머리가 단정하게 가다듬어졌다!

“음. 이제야 봐줄만하군.”

“어어...?”

“귀여운 여자아이에게는 시미트리적인 헤어스타일이 어울린다. 명심하도록.”

청일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지나갔다.

시미트리가 뭐?

어안이 벙벙하기도 잠시, 리나의 머리를 보고 깨달았다.

‘좌우대칭이다!!!’

저놈은 귀여운 여자아이인 리나의 머리카락이 좌우대칭이 아닌 게 신경 쓰여서 여기까지 따라왔던 모양이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는 것을.

“뭐야 저 사람. 흑산회 보스를 죽이려던 거 아니었어?”

“멋대로 가버리면 우린 어쩌라고!”

“으으으. 이, 이대로는 살해당하고 말아...!”

남은 건 바로 조금 전에 날 외면하려던 시민 셋인가.

나는 비릿한 썩소를 지었다.

“네놈들. 아까는 잘도 지껄여대더군. 응분의 값을 치를 각오는 되었겠지.”

영업장에서 일주일 간 무보수 노동은 각오해야 할 거다.

그렇게 말하려는데 남자들이 픽 쓰러졌다.

어리둥절해서 내려다보는데 시스템 알림이 마구 떴다.

[당신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한 시민들이 과도한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습니다!]

진짜냐…….

“보스. 이거 어떡해?”

그물에 갇힌 채 심장마비에 걸려 죽은 남자가 셋인가.

하하.

아무리 나라도 이 광경은 얼버무릴 자신이 없다.

“튀자.”

나와 리나는 전속력으로 현장을 이탈했다.

* * *

뭔가 직접적으로 저질렀다는 인상이 드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지금까지는 사망자가 나오더라도 대부분 카이사르나 리나가 저지른 거였으니까 그런가.

무관계하지는 않아도 딱히 의도한 게 아닌 일반인이 죽었다는 게 엄청나게 꺼림칙하기는 하다만, 어쩔 수 없지.

“여러 가지로 지쳤다. 오늘은 그만 아지트에서 쉰다.”

“동감이야, 보스...”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아지트에 돌아왔다.

얼른 2층의 침실로...

아니, 잠깐.

방금 지나가면서 1층 응접실에 있어선 안 될 게 보였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걸음을 돌려서 다시 응접실을 확인해보았다.

‘어째서!? 대체 어째서!?’

역시 착각 따위가 아니었다.

상류거리에서 헤어진 청일이 응접실 소파에 앉아있다.

심지어 눈까지 마주쳤다고.

리나의 얼굴에도 숨길 수 없는 공포심이 가득 차올랐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공포스릴러 상황이냐.

‘분명 무단으로 침입한 거겠지. 하지만 어리석은 선택이다. 이 집에는 내가 사비를 들여서 고용한 사용인들이 있지. 놈들이 침입자를 발견하면 가만 두지는 않을 거다!’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한 값을 치를 때다.

마침 사용인들이 응접실에 있는 청일을 발견했다.

그들은 몰래 엿보는 나와 응접실 안의 청일을 돌아보았다.

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전후사항은 대충 파악했나보다.

나는 무언으로 신호를 보냈다.

‘저 괴물 같은 놈을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하수인은 청일에게 걸어가 말했다.

“주인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지금 손님분을 뵙고자 내려오십니다.”

“음. 고맙군. 다과도 맛있고 만족스러운 대접이다.”

“칭찬 감사합니다.”

뭘 고스란히 일러바치고 있는 거야, 저 녀석은!

신호는.

대체 무슨 신호를 받았다고 생각한 건데!?

‘제길.’

일이 이렇게까지 꼬인 이상, 더는 피할 수도 없게 되었다.

정면으로 나서는 수밖에.

“음? 당신들은 아까 거리에서의.”

“반갑다. 내가 흑산회의..”

“사이좋은 아버지와 딸이로군.”

삭았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그 정도일 줄이야. 그보다 청일 이 자식은 아버지가 보는 앞이라고 생각하면서 딸의 머리에 칼질을 한 거였냐!

============================ 작품 후기 ============================

오해가 풀리든 풀리지 않든 무서운 경우.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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