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4 #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 =========================
#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9)
청일은 고뇌에 빠졌다.
‘국가전복의 음모. 이걸 방관해야만 하는가...!’
미궁도시 브람의 시장 브람베르크.
흑산회 보스 빌헬름 마이어.
두 사람은 은밀히 손을 잡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아무리 중앙정계가 대단하다고 해도 이처럼 충격적인 진실을 깨닫기는 힘들 거다.
심지어 멀리서 감시한 바에 따르면 빌헬름 마이어는 도시 암흑가를 지배하는 1존6강의 세력구도 중에서 1강 교주 라만과 2강 고위 뱀파이어 이즈라크와도 교류를 지녔다.
어쩌면 브람베르크와 함께 하는 건 암흑가 세력 전부일지도 모른다.
‘이 도시의 어둠이 빛과 함께 한다면...’
브람베르크가 지닌 전력은 단숨에 두 배가 된다.
가뜩이나 미궁공략을 위해 과할 정도의 전력이 집중된 도시에서 이만큼의 전력이 가세한다면?
미궁도시 주위의 군사도시들이 단숨에 점거되고 수도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은 아니다.
“이봐, 도구점 주인. 왕국전도를 한 장 사고 싶은데.”
“20골드.”
“...조금 비싼 것 같은데?”
도구점 주인은 어째서인지 흠칫 놀랐다.
“허허. 심심해서 한 농담일세. 원가가 1골드이기는 한데 왕실에서 국가전도를 판매하는 일에 민감해서 말이지. 세금이 500% 붙어서 못해도 6골드에는 팔아야 하네.”
“그럼 1골드.”
“어째서 6골드가 아니라 1골드!?”
“부패한 시장에게 환수될 세금 따위는 낼 수 없다!!”
“히이익! 또 흑산회 보스 같은 사람이... 팔겠습니다. 1골드에 팔겠습니다!”
청일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흑산회 보스가 이 가게에 온 적이 있었는가?”
“예에...”
“뭘 구매하러 왔었지?”
도구점 주인은 두 손을 파르르 떨며 괴로워했다.
“지도를... 사는 대가로 다른 물건을 전부 공짜로...”
“...뭐?”
“돈 한 푼 안 들이고 물건을 잔뜩 뜯겼습니다. 흐윽!”
청일은 형언할 수 없는 충격에 사로잡혔다.
미쳤다.
그 남자는 이미 진즉에 지도 따위는 세금조차도 내지 않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권력의 중심과 가까웠단 말인가.
“손님처럼 지상의 지도는 아니었지만─”
“지상의 지도가 아니야? 미궁의 지도를?”
“예에.”
혼란스러운 마음도 잠시. 청일은 생각했다.
어째서 미궁지도를 샀는지.
반란을 획책하는 무리에게 미궁지도가 필요하다면 이유는 뻔했다.
‘전력을 양성하고 있는 거다!!!’
모험가 길드도 글렀다.
이 도시의 주 전력은 이미 시장과 빌헬름 마이어의 손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미궁도시 브람 안에서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고 단언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아니. 전부는 아닐 거다.’
그 정도로 완벽하게 도시를 장악했다면 구태여 미궁으로 몸을 숨길 이유도 없다.
양지에 있는 도장과 무관을 모두 장악하고 그곳에서 병력을 육성하는 게 훨씬 더 이득일 테니까.
미궁 아래에 있는 건 어디까지나 모험가 집단 중에서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도망쳐야 하나?’
그는 고민 끝에 가벼이 고개를 저었다.
‘혼자라면 모를까 지금은 아니다.’
청일은 대단한 실력의 고수다.
그러나 동시에 한 조직에 소속된 몸이기도 했다.
[길드]라고 불리는 기인이사들의 조직이다.
길드는 불가해할 정도로 많은 자금을 지니거나 강대한 전투력, 뛰어난 자질을 지닌 자들의 모임.
자신의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도 어쩌면 처리할만한 역량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접선장소로 향해 한 흑의인과 접선하여 정보를 공유하였다.
“옳은 판단이오. 당신이 여기서 도망쳤다면 흑산회는 추살령을 내렸을지도 모르지.”
“그런...!”
“흑산회 보스가 당신에게 정보를 노출한 이유는 하나뿐이오. 자신들과 뜻을 함께 하기를 바라는 거지.”
반역의 기치를 내세우며 수도진격의 날에 참가한다.
“이 정보는 특급정보이오. [길드]의 향후방침을 전면적으로 뒤엎을 정도의 일이지. 경거망동하지 않고 정보를 물어온 것은 정말로 잘한 일이오.”
“으음. 그리 평가해준다면 나 역시 기쁘다. 하지만... 설마 반역에 한 손 거들 작정인가?”
“무턱대고 반역이라고 꺼려할 수도 없소. 중앙정계가 마족과 결탁했다고 했으니 수도 쪽은 이미 전혀 다른 의미로 복마전일지도 모르지.”
흑의인은 청일과 달리 NPC가 아닌 게이머였다.
그렇기에 청일은 할 수 없는 방식의 사고가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정보전달의 속도가 빠르다.
‘수도 쪽 게이머들은 이번 패치로 인해서 제대로 허탕을 쳤다고 했지. 처음에는 길드를 향한 압박 때문이라고 여겼지만 만일 그게 왕실의 배후에 도사린 마족 때문이라면?’
확실한 정보는 아니다.
그러나 심각하게 고려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우선 시장과 흑산회 보스의 관계부터 재점검한다.’
길드는 시장 브람베르크와 흑산회 보스 빌헬름 마이어에게 꼬리를 붙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에게서 정보가 입수될 터.
판단은 입수된 정보를 바탕으로 해도 늦지 않는다. 일단은 수도에 파견한 게이머들을 전원 불러들이는 게 우선이다.
‘소득도 없고 위험하기만 한 적지. 당분간은 미궁도시 내부에서의 정보활동이 보다 중요하다.’
빌헬름 마이어. 게이머 이호연의 강력한 경쟁자인 [길드]는 자발적으로 수도공략의 의지를 꺾었다.
뿐만 아니라 미궁도시 브람으로 모든 정보망을 집중시키고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들의 시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시장의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목적지는 어디지? 수령자는? 그것만 알아내면 서신을 강탈하고 내용물을 확인한 뒤, 이쪽에서 가짜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잖아!”
“수도로 향하는 직파서신이다! 수령자는... 알란 대공! 내용은 틀림없다. 브람 시의 <마약술사 파난>과 그녀의 조직 <비탄의 굴>이 수도로 마약공급을 하는 건에 대해서다.”
길드의 날고 기는 기린아들이 긴급회의에 돌입했다.
“어째서 이 타이밍에 마약거래가 이루어졌지?”
“그것도 엄청난 규모의 거래다.”
“미궁에서만 확보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특제 마약이라.”
길드의 게이머들은 온갖 게임에서 랭커의 자리를 석권하거나 [통제]를 하는 입장에 섰던 인물들.
정보의 동향이나 정치적인 발상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민감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시장 브람베르크와 빌헬름 마이어 사이에서 이루어진 밀약을 일부분이나마 유추해내었다.
“이건...! 브람 시의 어둠을 수도에 진출시키는 작업이다!”
“거대한 연환계의 시작에 지나지 않아.”
“틀림없어. 이건 브람 시의 반란군이 중앙에 맞서기 위한 첫 발을 내딛은 거다.”
브람 시의 시장이 빌헬름 마이어와 대면한 이후, 6강의 일원을 하나씩 불러들여서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마약술사 파난의 마약을 수도에 공급한다는 이야기는 분명 수도진출을 위한 선행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종래에는 6강에 속하는 전원이 수도로 진출하여 내부에서부터 수도를 좀먹고, 반란의 날이 되거든 안팎에서 동시에 중앙정계와 수도를 붕괴시킬 것이다.
“메인퀘스트다! 그것도 이제껏 마주한 적 없는 최대규모의 메인퀘스트!!”
“반드시 끼어들어야 한다. 아니, 이 반란에서 주도적인 자리를 차지해야만 한다!”
“빌헬름 마이어는 지나치게 심계가 뛰어난 인물. 우리의 역량으로는 그 남자를 가늠하기란 역부족이다. 6강 중 5강에 불과한 그가 그 정도라면 상위서열은 더욱 힘들겠지.”
[길드]의 게이머들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만만한 자는 오직 한 명. 마약술사 파난 뿐이다.”
“그녀와 손을 잡는다.”
“마약재료 수급 및 공급에 전력을 다한다. 길드의 모든 노선을 파난 조직에 스며들어 조직 역량을 급진전시키는 방향으로 돌린다.”
“파난의 성장은 곧 우리의 성장.”
“우리는 여기에 건다. 반란의 날, 파난의 위치가 누구보다도 위에 선다면 우리에게 돌아올 보상 또한 가장 막대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길드는 마약술사 파난을 향한 전폭적인 지원을 결정했다.
그날부로 길드 소속 실력자들이 대거 파난을 찾아갔다.
뛰어난 인재들이 제 발로 찾아오니 파난은 의심했다.
“이놈들은... 대체 뭐지...?”
확실히 마약술사로서 그녀의 역량은 최고수준이다.
그녀보다 뛰어난 마약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실력자들이 대거 유입되는 건 이상했다.
“그보다... 뭔가 이상해... 이거고 저거고... 전부 다.”
갑작스러운 실력자들의 유입뿐만이 문제가 아니다. 빌헬름 마이어를 노리기 부담스러워 잠시 빈틈을 노리고 있던 와중, 갑자기 시장 브람베르크가 내성에 그녀를 초대했다.
수도를 향한 진출제의!
시장의 제안은 놀라웠고 막대한 이득이 돌아올 것이 자명했다. 제안은 수락했고, 이미 상당량의 마약을 제조했다. 막대한 군자금을 벌어들이는 건 이미 확정사항이다.
“지나치게 형편 좋은 상황...”
마치 자신이 지닌 일생의 운을 전부 다 끌어다 쓰는 것만 같은 상황이 아닌가.
미궁도시 브람의 험난한 암흑가에서 최하급 불법 연금술사부터 시작해서 마약술사의 칭호를 따기까지 거친 노고는 얼마나 험난했던가.
그에 비하면 지금은 마치 그림으로 그려낸 것만 같은 유리한 상황과 유익한 제안, 우연한 행운이 빗발치고 있다.
“음모... 깊은 늪... 빌헬름 마이어의 정적.”
파난의 자그마한 가슴이 고동을 울렸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직감했다.
시장의 제안, 실력자들의 연이은 투입, 마약거래.
이 모든 게 빌헬름 마이어의 함정이라면?
가능성은 높다.
빌헬름 마이어의 곁에는 본래 실력자들이 많았다.
“거기에 시장 브람베르크가 협력.. 전직기사.. 잠입..”
신중하게 관찰해보니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신규 유입된 실력자들은 마약을 흡입하고도 그리 간단히 망가지지 않았다.
기사훈련을 받은 흔적도 보이고, 무엇보다도 그녀로서도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역량을 지닌 자들도 많았다.
“마약거래가 이루어지면... 본색을 드러내... 위험...”
그녀는 확신했다.
거래가 이루어지는 순간, 모든 행운은 반전된다.
조직에 들어온 실력자들은 기사가 된다.
[비탄의 굴]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질 것이고, 그녀는 브람베르크의 특명에 의해 잠입한 기사들에게 사로잡혀 6강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지리라.
그렇다면 이제 그녀가 취할 방법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전부... 죽여.”
마약술사 파난의 혼신의 역작이나 다름없는 무색무취의 마약이 [길드]의 게이머들을 단숨에 중독 시켰다.
“컥! 파, 파난. 어째서!”
“크악! 괴, 괴로워. 동기화 비율을.. 낮춰야..!”
“HP가.. 엄청난 속도로 줄어...!”
파난은 흰색가운에 손을 구겨 넣은 채, 자그마한 손끝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서걱.”
무뚝뚝한 선언이 이루어진 직후, 게이머들은 어마어마한 격통이 전신에서 일어나 목을 향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환통이다! 떨쳐내!!”
“안 돼. 중급 고통내성으로도 버틸 수 없어!”
“통제력을 잃었어! 저항체크가 전부 실패..”
푸화악!
랭킹 1000위권 안에 속했던 랭커들이 무더기로 즉사했다.
마약술사 파난.
그녀는 마냥 자그맣고 여린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미궁도시 브람의 어둠의 일축을 담당하는 자.
겉보기만 보고 방심했다간 저항조차 불허하는 강력한 마약의 힘에 의해 파멸해버린다.
투입된 게이머들은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몰살당했다.
“투입조가 전멸당해!? 마약술사 파난의 급습이라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오프 쪽으로 가서 알아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길드의 비밀아지트는 발칵 뒤엎어졌다.
다행히도 이쪽의 위치는 파난과 공유하지 않았기에 습격을 받지는 않았다.
허나 일선에 직접 나선 게이머들이 한 명도 남김없이 모조리 즉사한 것만은 명백했다.
“어이, 쿠로. 이쪽의 작전이 들킨 건가?”
청일은 귀중한 NPC 전력이기에 이번 작전에 투입되지 않았다. 그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는 것 이상으로 흑의인 쿠로는 절망에 빠졌다.
“파난의 손에 죽어가던 와중에.. 죽어가던 동료가 파난의 중얼거림을 듣고 그 말을 전달했소. 목숨과 맞바꾸어 전달한 중요정보이지.”
“대체 뭐라고 했기에 그러는가?”
“빌헬름 마이어. 뜻대로.”
정확히는 ‘빌헬름 마이어, 네 뜻대로는 되지 않아’였다.
하지만 감각이 교란된 와중에 온전한 소리를 정확히 들을 수는 없었다.
뚝뚝 잘린 음성을 짜깁기해서 만들어낸 유언은 도리어 남겨진 이들에게 엄청난 착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흑산회는 처음부터 청일, 그대가 우리 쪽 사람이었음을 눈치 채고 있었나보오.”
“설마...!”
“지금 생각하는 게 맞소. 의도적인 정보노출. 파난을 향한 작업. 그 모든 게 빌헬름 마이어, 그 자의 심계에서 나온 거대한 작전이었을 터. 우린 완전히 놀아나고 만 것이오.”
지금에 이르러서는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빌헬름 마이어는 [길드]가 자신들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일선에 나선 인원을 전부 제거했다.
“맙소사.”
비밀아지트 내의 모두가 말을 잇지 못했다.
빌헬름 마이어.
그의 심계는 너무나도 무시무시했다.
…….
…….
…….
전부 착각이지만.
============================ 작품 후기 ============================
직접 나설 것도 없이 자멸하는 적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