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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87화 (87/224)

00087 #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 =========================

#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12)

동쪽지구는 비상사태에 접어들었다. 평상시라면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닐 별 볼 일 없는 무뢰배나 난봉꾼, 파락호 따위는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다.

지금 다가오는 위협은 이 도시의 최대권력자 시장 브람베르크의 병력이며, 그에 맞서는 건 암흑가를 지배하는 6강의 병력들이다.

이미 전쟁을 앞둔 상황이라고 표현해도 다를 건 없었다.

“하필이면 접견지역에 흑산회가 있다니. 재수 없군. 퉤.”

“…….”

접견지대의 경비를 맡은 것은 6강 중 4강의 지위를 차지한 색마 콰이어와 그의 조직 [주지육림].

전투에 특화된 조직은 아니기에 그리 강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상당한 수련을 쌓은 부하들이 많다.

남자들은 상당수가 떡대이고, 그렇지 않은 호리호리한 자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특수한 무술을 익혔는지 자세나 기도 등이 심상치 않았다.

‘색공인가.’

전작 미궁도시에서도 색공이 없던 건 아니다. 허나 색공을 익힌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경우는 처음 본다. 세계관이 확장된 것이 여실히 실감나는 순간이다.

“야, 시커먼 놈아. 성마의 왕관을 내놓는다면 이번 동쪽지구 수비전에서 도움을 줄 것을 약속하마.”

“아아. 그런 것도 있었지. 창고에서 먼지나 먹게 하기도 아쉬운데 재떨이로라도 써야겠군.”

“이런 미친…….”

천만 골드어치 돈지랄을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내 태도에 녀석은 기가 질렸다.

“잡담이라면 나중에 받아주지.”

“크으읏.”

색마는 분하다는 듯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예전에도 생각했지만 남자답지 않게 피부가 매끄러운 녀석인지라 참 심란한 마음이 드는 모습이다.

붉은 색의 나풀거리는 옷에는 손으로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꽃마저 큼직하게 그려져 있으니, 몸을 움직일 때마다 꽃이 나풀거리는 것만 같아 시선이 절로 향했다.

“박음직하게 생긴 년이군요. 보스.”

아무리 그래도 카이사르의 충격적인 발언에는 모두가 경악했지만 말이다. 마크는 뜨악한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혹시나 싶어서 말했다.

“큰형님. 저거 남자인데요.”

“정말이냐?”

“정말입니다. 여태껏 색마가 여자인줄 아셨습니까?”

“물론이다. 발랑 까진 게 참 색기가 넘친다고 생각했지.”

“허. 큰형님도 참 담력이 대단하십니다.”

카이사르는 입맛을 다시며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는 곤란하지.”

모두가 내심 안도했다.

아무리 그래도 색마 콰이어를 따먹는다는 건 너무했다.

당장 전쟁에 들어가도 할 말이 없을 폭언이다.

그래도 남자랑 잘 생각은 없어보이는 게 다행이다.

이만하면 색마 콰이어와 불필요한 충돌은..

“거세를 해서 음경을 끄집어내고 여자로 만들어야겠어.”

“…….”

일어날 가능성이 수직상승했다.

미친.

거기를 잘라서 강제로 구멍을, 뭐가 어째?

“큰형님은 역시 무시무시하군. 남자도 계집으로 만들어서 겁탈하는 상남자라니.”

“절대로 개기면 안 되겠어.”

“반반하게 생긴 사내자식을 잡아오면 좋아하시려나. 내일부터 미소년을 모아봐야겠군.”

조직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러다가 흑산회 아지트에 미소년 컬렉션이 만들어지고 메이드 시녀들을 대신해서 미소년 시종들이 늘어날 판국이다.

“헛소리는 그만둬라.”

“보스는 어떻습니까? 미소년이 취향..”

“고추 달린 것들은 필요 없다.”

의심할 여지도 없도록 확실하게 단언했다.

“보스는 변태가 아니야! 너희 같은 이상성욕자들이랑 같은 취급 하지 말라구!”

리나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치며 가슴을 당당하게 내세웠다.

부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봐도 리나를 보며 수긍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보스의 취향은 꼬맹이 간부였었지.”

“작고, 빈약하고, 무자비하고.”

“저런 조건을 갖출 수 있는 건 꼬맹이 간부밖에 없지.”

불편한 오해였지만 이걸 부정해봤자 리나의 호감도만 뚝뚝 떨어질 뿐이다.

[리나의 호감도가 1 상승합니다.]

[카이사르의 호감도가 1 상승합니다.]

응? 카이사르는 왜 오르는 거지.

“천만 다행입니다. 보스와 성적인 취향이 같았다면 제가 노리는 여자는 전부 보스에게 빼앗겨 노리개처럼 굴러지는 꼴을 보아야만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악취미는 없다. 얼마나 쓰레기 취급하는 거냐.

“왔군.”

10분쯤 지나자 대규모 병력이 육안에 포착됐다.

“저 남자는...!”

곁을 지키던 간부 중에서 모략가 사이토가 동요했다.

“아는 사람인가?”

“시장 브람베르크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 중에서도 수위권을 다투는 실력자, 기사 리델라프입니다! 소문에 따르면 5m급 적색트롤을 단신으로 해치웠다는 말도 있습니다.”

“적색트롤을...? 기사가 미궁탐색도 했단 말인가?”

“블랙마켓에서 탈주한 몬스터를 해치운 겁니다. 물론 트롤을 도시에 풀어버렸던 몬스터 블랙마켓은 그날로 기사단의 총공세를 입고 파멸해버렸고요.”

“기가 막히는군.”

레드트롤 같은 괴물을 포획해서 팔 생각을 하는 놈들이나, 그걸 사려고 모여든 사람들이나, 풀려났다고 떡하니 잡아버리는 괴물보다 더한 기사라거나.

이번 게임은 아무리 생각해도 NPC들의 스펙 업이 장난 아니게 이루어졌다.

그 스펙 업의 혜택을 온몸으로 받은 당사자가 바로 눈앞에 선 전신 플레이트 갑옷을 걸친 적철의 기사, 리델라프다. 정면승부에 돌입하면 카이사르라도 승산을 점칠 수 없다.

‘카이사르의 재능은 진짜배기지만, 적의 실력은 그 이상.’

전투를 통해서 재능이 개화될 여지조차 주지 않고 순식간에 압살해버리면 그걸로 끝. 카이사르는 허망하게 목숨을 잃고 흑산회는 그날로 파멸, 내 목숨도 거기까지가 된다.

“흑산회 보스, 빌헬름 마이어.”

모두의 명운을 결정지을 리델라프가 지금, 진중한 어조로 장내의 분위기를 사로잡으며 선언한다.

“시간 좀 때우다가 가겠다.”

“…….”

“…….”

끝이다.

그 말을 끝으로 정말로 시간을 떼울 생각인지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입을 다물었다.

가만 보니 눈을 감고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는 게 잠들기 좋은 자세를 찾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어째서!?’

퀘스트는 지금 당장 서로 죽고 죽이는 총력전을 벌일 것처럼 경고하고 있는데 우린 왜 아무것도 안 하지?

“보스. 어떻게 합니까?”

“기다려라.”

싸우지 않으면 이쪽은 무조건 좋다.

카이사르가 당장 선빵을 갈기고 싶다는 얼굴로 쳐다봐도 생까고 무시했다.

쟤가 지금 니 목숨 살려주고 있는 거야, 새끼야.

“리델라프님. 저희 이러고 있어도 됩니까?”

“안될 거 뭐 있냐.”

“영주님께서 이 일을 들으면 격노하실 겁니다.”

리델라프는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럼 듣지 못하게 하면 되겠지.”

“네?”

“어이, 흑산회. 지금 얘기는 들었겠지? 오늘 일이 영주의 귀에 들리게 되거든 귀찮아지는 건 우리 모두다. 괜한 힘 빼기 싫으면 알아서 입단속 잘 시켜라.”

아니, 그건 불가능할 텐데. 동쪽거리에도 게이머는 적지 않게 있으니 분명 넷으로 정보가 샐 거다.

“어째서 싸우지 않는 거지?”

“허. 어지간히도 실력에 자신이 있나보군. 그럼 더욱 싸울 수 없지. 암흑가의 일존 멸혼객에게도 도전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괴물과 칼부림을 벌이다니. 미친 짓이다.”

“…….”

악명 때문에 유포된 헛소문을 믿고 있는 모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내 실력을 드러낼 자리는 고작해야 이딴 곳이 아니거든.”

“기이한 일이군. 시장 브람베르크의 군문에 발을 들이고도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니. 네놈, 평범한 기사가 아니로군.”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평범한 암흑조직의 보스 치고는 터무니없는 실력과 수완을 지니지 않았는가.”

피차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은 건 마찬가지라 이건가?

처음이다.

미궁세계에 진입한 이후, 처음으로 피가 끓는다.

왠지 모르게 알 수 있다.

이놈은 악명으로 가장한 내 가짜실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 [진짜 실력]이 뭔지를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다.

빌헬름 마이어, 로드리어스 엘드리고, 수많은 캐릭터로 활동하면서 완성된 <게이머 이호연>의 실력을 말이다.

“뭐, 지금은 상관없겠지. 휴전제의를 받아주겠다.”

그렇게 적과 아군의 기묘한 대치가 시작되었다.

“기사님. 저희 다리 아픈데 좀 앉아있어도 됩니까?”

“전령이 오자마자 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해도 된다.”

“뭐든지 말입니까?”

“뭐든지.”

“감사합니다!”

적병들은 대놓고 낮잠을 자거나 바닥에 모여앉아 카드게임을 하는 등, 파격적으로 풀어지기 시작했다.

지휘관인 기사 리델라프 못지않게 부하들도 엽기적이었다.

아무래도 리델라프의 직속 부하들에게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 아닌 모양이다.

‘대체 저 새끼의 정체가 뭘까.’

왕가에서 파견한 감찰관? 성주의 비밀호위? 숨은 실력자?

뭐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저 녀석이 여기에 온 덕분에 이쪽도 괜한 사상자가 발생할 걱정을 덜었다는 거다.

“보스! 저희도 카드게임이 하고 싶습니다!”

“...전령이 오자마자 전투태세에 돌입할 수 있다면.”

“감사합니다, 보스!”

저쪽 병사들이 노는 모습에 자극을 받았는지 이쪽의 조직원들도 보란 듯이 놀아대기 시작했다.

아예 냄비를 가져와서 전골을 끓이는 놈부터 시작해서 돈 걸고 도박판을 만드는 녀석까지 나타나는 등, 이쪽은 한술 더 뜨는 모습을 보였다.

어지간히도 할 짓 없는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저놈들, 암흑조직의 조직원 주제에 우리보다 잘 놀고 있잖아.”

“부패한 병사의 표본으로써 적보다 제대로 놀지 못한다는 오명을 감수할 수는 없다!”

“폭죽 터뜨려! 이쪽은 축제분위기로 가는 거다!!”

이놈들은 대체 무슨 승부를 하는 거냐.

기가 막혀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니 리나가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보스. 쟤네가 만드는 솜사탕 먹고 싶어!”

“...돈 주고 사오던지.”

“와아! 보스는 멋쟁이! 너무 좋아!”

저걸 만드는 놈이나, 돈 주고 사는 놈이나.

충격적이다 못해 파격적이다.

대체 우린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한 뭉치에 3쿠퍼요. 이용해주셔서 감사.”

“이놈들 의외로 솜씨가 있는데?”

“하하. 이 친구들 노는 법을 좀 아는군. 마음에 들어.”

맥 빠진 놈들 사이에서 김샜다는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는 카이사르.

이 녀석이 이럴 정도면 교전이 일어날 걱정은 덜었다.

“엇, 저거 전령 아니야?”

“동작 그만!”

“전령이 온다! 전투태세 돌이이이입!!”

후방에서 망을 보던 놈이 소리치는 순간, 장내의 분위기는 카오스가 되었다.

무기도 꺼내들지 않고 서로 주먹을 휘두르는 척, 발길질을 하는 척, 부산스레 격전을 치루는 흉내를 내기 바쁘다.

전령은 숨 가쁘게 달려와서는 내 앞에서 숨을 헐떡거렸다.

“크, 큰일입니다. 색마 콰이어님이 계신 전선으로 적의 증원이 도착했습니다. 시급히 지원을 요청합니다.”

“불가. 보다시피 이쪽도 교전 중이다.”

“예? 여기는 뭔가 한가한 느낌이 듭니다만. 그보다 저거, 전골입니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전골을 끓이던 조직원이 국자로 전골을 듬뿍 퍼내고는 적진을 향해 흩뿌렸다.

“전골폭탄이다아앗! 모두 피해애애!”

“...보다시피 공격용이다.”

“아, 예에... 어? 그런데 저건 트럼프 카드가..”

사이좋게 포커를 치던 조직원이 카드 다섯 장을 암기처럼 흩날리며 소리쳤다.

“받아라! 풀하우스 어택!!”

“컥! 이, 이 녀석은 강해! 당해낼 수 없어!”

“젠장, 풀하우스라니. 크억...!”

우르르 쓰러지는 적의 모습을 보자 한숨이 목 끝까지 올라올 뻔했다.

“보다시피 암기조합 공격을 하기 위한 용도다.”

“예에? 저런 것도 가능한 겁니까?”

“포커암기술이다. 흑산회에서 이 정도는 기본소양이지.”

전령은 뭔가 납득할 수 없는지 혼란스러운 기색이 뚜렷했지만 농땡이 치다가 대충 싸우는 척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럼 저쪽의 솜사탕 기계는 뭡니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솜사탕을 돌리던 적병의 손이 엄청나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오오!!”

솜사탕이 10배속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지원물품이 도착했다! 거대 솜사탕이다!”

“이, 이걸... 어쩌라고!?”

“적에게 던져!”

적병들은 에라 모르겠다 하며 솜사탕을 던졌다.

솜사탕을 받은 조직원들은 당황했다.

뭔가 하기는 해야겠는데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으아악! 솜사탕이다!”

“크허억!”

“이런 잔인한 녀석들! 솜사탕을 던지다니!!”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조직원들과 마치 사용해서는 안될 금단의 무기를 사용한 것처럼 분노하는 조직원들의 명연기에 나는 생각하는 걸 포기했다.

아무리 호구같은 전령이라도 저딴 걸 보고...

“세상에! 솜사탕에 독을 실어서 날리다니. 방심을 유발하면서 저런 실용적인 독공을 펼치는 적은 처음입니다. 콰이어님께는 이쪽 전선도 버겁다는 보고를 하러 가겠습니다!”

속았다.

============================ 작품 후기 ============================

전쟁씬(feat.전골폭탄, 포커암기술, 솜사탕독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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