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88화 (88/224)

00088 #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 =========================

#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13)

색마 콰이어의 전령이 다녀간 후, 하늘높이 쏘아올린 폭죽을 보고 브람베르크의 전령이 방문하는 일이 있었지만 결과는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되먹지도 않은 연기가 퍽이나 먹혔구나 생각하는데 알고 보니 먹힌 이유가 있었다.

“역시 보스는 대단해! 리나도 깜짝 놀랐어!”

“보스가 말하니 전부 진짜처럼 여겨집니다.”

리나와 카이사르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각했다. 칭호 [슈퍼빌런]. 내 언행을 슈퍼빌런답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칭호효과 때문이었다.

‘잠깐.’

그럼 색마 콰이어나 경비대 및 기사들한테는 흑산회가 전골폭탄이나 포커암기술을 쓰고, 리델라프 직속부대는 솜사탕독술을 쓰는 걸로 인식되는 거잖아.

나중에 다른 세력에서 전골폭탄이나 포커암기술 보여 달라고 하는 웃지 못 할 상황도 벌어지겠군.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가 없으니, 본의 아니게 흑산회 비전기술인 것처럼 꽁꽁 감추고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는 것처럼 행세하게 생겼다.

“빌헬름 마이어.”

내 팔에 매달리며 시간을 축내는 리나를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을 때, 리델라프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이번 폭동은 아무래도 당신들이 일으킨 건 아닌 것 같군.”

“흠?”

“기사단의 주력이 6강의 병력과 모두 대치하고 일존과 그를 따르는 직속 파티원들의 소재지까지 파악했다. 적어도 일선에서 날뛰는 인원 중에 일존육강은 없다는 말이지.”

허.

마냥 하잘 것 없이 시간을 때운다고 생각했더니 어느 틈엔가 그런 정보를 물어오다니.

듣고 보면 기사단의 진군도 일존육강의 병력을 틀어막고 소재지를 파악하기 위한 계산적인 행동임을 알 수 있었다.

“나쁘지 않은 수완이군. 시장 브람베르크의 발상인가?”

“아니. 시장은 당신이 그럴 일은 없다고 했지.”

“시장도 인복이 있군.”

폭동은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단기간에 발생했다. 이런 단기간에 미궁도시 브람의 암흑가 전체를 둘러싼 책략을 내는 건 어지간한 지력으로는 불가능한 일.

이는 인복이 있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뛰어난 인재가 브람베르크의 곁에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시장이 마냥 인복이 있을 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그가 내게 전달할 전언이 있지 않나?”

“당신. 무서울 정도의 실력자로군. 파괴자 루커스와 비등할 정도의 무력에 고위 뱀파이어 이즈라크에 필적하는 정치력, 교주 라만에 버금가는 카리스마를 지니다니.”

“허튼 소리는 그만둬라. 브람베르크의 전언은?”

나와 시장은 내가 명성 5만과 브람 시 유력자 30%의 인정, 천만 골드의 기부금을 달성할 경우에 한하여 중앙정계에 손을 써서 미궁공략에 박차를 가한다는 밀약을 맺었다.

40년간 이어진 거짓된 평화의 끝에 찾아올 특대형 몬스터 웨이브, 혹은 특급 계층보스에 맞서 싸워 살아남기 위해서.

그 밀약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갑작스레 서로를 공격하거나 위해를 가할 이유가 없다.

도시의 지배? 얼마간의 이권?

그딴 건 한 순간에 잿더미로 만들 대재앙이 지저 어디선가 꿈틀거리고 있다. 우리는 약간의 유혹을 못 이겨 자신의 미래를 파멸의 구렁텅이에 집어던질 멍청이가 아니다.

“일존육강 중 어느 하나도 이번 폭동에 관여하지 않았을 경우에 짐작할 수 있는 배경은 오직 한 곳. 중앙정계밖에 없다고 했다.”

“과연. 일리 있는 주장이군.”

실제로는 어떤 멍청한 게이머 두 명이 일으킨 소동이지만.

시장이 그딴 걸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나도 당사자들한테 들은 게 아니면 중앙정계의 소행이라고 여겼을 테니까.

“견제를 받기에는 지나치게 이른 타이밍인데. 어째서 놈들은 이런 어중간한 시기에 폭동을 일으킨 거지?”

리델라프의 착각에는 성실하게 응해줄 필요가 있다. 나한테 잘 보이려던 두 얼간이가 한 짓이라서 그래, 라고 대답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폭동의 목적은 관공서의 정보습득 및 내성에의 침투. 그렇게 여겨지기 쉬우나 본질은 다르다. 시장 휘하 기사단과 경비대를 암흑가의 암흑조직들과 충돌시키기 위함이지.”

“그런 목적이 세워지게 된 경위는?”

“나와 시장이 맺은 밀약. 그것이 중앙정계를 공격하는 일임을 깨달은 중앙정계에서 선수를 친 거다. 중앙으로 정보가 전달되고 지령이 내려질 시간까지 계산한다면...”

거의 즉각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진 셈.

“시장이 휘하 가신들에게 정보를 전함과 동시에 그 중에 섞여있을 배신자가 중앙정계에 정보를 전달했다. 이게 이 타이밍에 폭동이 일어나게 된 이유다.”

“...꽤나 쉽게 말해주는 군. 지금 그 말이 사실이라면 브람 시가 발칵 뒤엎어지고도 남을 일일 텐데.”

“집안단속은 브람베르크의 몫. 제 몫의 일도 다하지 못한 무능한 자의 실수를 지적하는 건 정치적 동반자로서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만.”

어리석게도 자신의 최측근에 배신자를 둔 브람베르크 탓에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리델라프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겠지.

실제로는 배신자 따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있더라도 이번 폭동과는 아무 관계도 없지만.

“난처하게 되었군.”

리델라프와 시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중요하다. 진실이라는 건 언제나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그 반응을 보아하니 너 또한 시장의 신임을 받는 최측근 중 한 명이겠군.”

“그렇다.”

“배신자 후보는 최측근 가신들. 너를 제외하면 다른 가신들은 누가 있지?”

“내무부의 능구렁이 피쟌 자작. 정보부의 숨은 거물 패트리 자작. 기사단의 철혈늑대 알큐러스 기사단장. 경비대의 늙은 여우 하이칼 경비총장.”

“꽤나 쟁쟁한 인사들이군. 그것도 일개 기사 리델라프가 나란히 신임을 받는 이유가 궁금해질 정도로.”

이쪽을 응시하는 눈매가 가느다랗게 좁혀졌다.

“세상에는 비밀이 참으로 많지. 그 중에는 몰라도 되는 비밀이 대부분이고.”

“그거 참 유감이군. 나는 비밀을 만드는 쪽의 인간이지 비밀을 궁금해 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래도 알 수 없는 비밀이 있다면 어찌할 텐가?”

뻔한 걸 묻는군.

“어떻게도 하지 않는다.”

“……?”

“내 앞에서 밝혀지지 않을 비밀은 없다.”

리델라프는 낮게 신음을 흘렸다.

“빠르고 늦음의 차이만이 있을 뿐인가.”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알고 싶은 게 있다면 상급 정보상인을 찾아가면 된다. 돈이 아닌 다른 대가를 요구하더라도 언젠가는 살 수 있으니 원하는 건 언젠가 전부 알게 된다.

“나에 대한 정보는 이런 곳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할만한 게 못 된다. 나중에 따로 자리를 마련하지.”

“알겠다.”

“그럼 목적은 달성했으니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무의미하군. 우리는 폭동을 진압하러 가겠다.”

“그걸 알려주는 이유는?”

“가능하다면 그쪽은 그쪽 나름의 방식으로 폭동의 배후를 물색해서 찾아주기를 바란다. 당신이라면 시장과의 밀약을 핑계로 시장의 최측근들과 마주칠 수 있을 테니까.”

시장의 최측근은커녕 지금 이쪽 무리에 있는 게이머 두 명이 폭동의 배후인데.

당사자들은 멀리서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인데도 벌벌 떨면서 두려워하고 있다.

대형사고 제대로 쳤다는 실감이 나나보지?

“알겠다.”

리델라프는 직속부하들을 이끌고 동쪽거리를 떠났다.

[단체퀘스트 ‘지역사수’를 완료했습니다!]

[당신은 적과의 교섭으로 일절의 유혈사태를 일으키지 않고 평화롭게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이러한 비상시의 영리한 활약은 부하들에게 뜻 깊게 각인될 것입니다.]

[흑산회 조직원들의 충성도와 호감도가 5 상승합니다.]

[흑산회 간부들의 충성도와 호감도가 2 상승합니다.]

[조직평판(명성)이 500 상승합니다.]

이런 소소한 보상으로는 이제 아무 감흥도 없다.

날 보는 부하들의 시선이 미세하게 달라진 것 같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고 명령을 내렸다.

“대치는 끝났다. 다른 6강의 세력도 크게 교전이 일어나지는 않을 터. 간부 및 주요조직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통상임무로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보스!”

카이사르, 리나, 레이브, 모자이크 녀, 마크, 데이고르, 사이토, 잭, 그레이.

새삼 보니 흑산회의 주요인원도 꽤나 늘었다.

인재부족에 허덕일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주요인원만 9명이나 된다.

“잠깐. 넌 왜 여기에 있지?”

레이브는 우물쭈물 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저, 저도 주요 조직원이라고 하셨어요…….”

“중급도적교본은 다 공부했는가?”

“거, 거의 다 했어요! 이제 저도 한 사람 몫은 할 수..”

“있으려면 중급심화도적교본도 공부해야 한다. 이거나 받고 가서 공부해라.”

“우욱.”

전보다 배는 더 두꺼워진 교본을 보자 레이브의 자그마한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기 시작했다.

“너무 많아요.. 보스, 저 힘들어요..”

“지금 눈물을 흘리는 정도로 나중에 맞이할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면 수지는 충분히 맞고도 남겠지. 죽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라.”

“우우욱..”

레이브는 두 손으로 들어올리기도 벅찬 두툼한 교본을 들고 휘청거리며 아지트로 들어갔다.

“와... 보스한테 뭐 가르쳐 달라고 하면 안 되겠네.”

“동감이오. 저런 걸 배우면 머리가 터지고도 남겠소.”

“흔한 조기교육의 폐해입니다.”

범죄길드와 거하게 한판 뜨고 사이가 가까워진 세 명의 주요조직원(마크, 데이고르, 사이토)들이 수군거렸다. 다른 녀석들도 질린 기색인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태평한 녀석이 둘 있었으니 하나는 카이사르요, 다른 하나는 리나였다.

“보스의 가르침을 받고도 건방지게 울먹거리다니.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어 1kg어치 피망을 먹여 괴롭히겠습니다.”

“아하하핳. 그거 너무 건강한 괴롭힘 아니야? 그보다 피망이라니, 좀 싫기는 하겠다.”

“뭘 태연하게 웃어대고 있는 거냐. 암살계집년. 네년이 도적으로서의 역할을 못하니까 보스가 레이브를 육성하는 거 아니냐.”

핀 포인트로 약점을 지적해도 당사자는 능글맞게 실실 웃으며 여유를 부렸다.

“거꾸로 라고. 이 멍청한 살인광아. 리나가 그런 하찮은 지식을 익힐 이유가 없으니까 저 꼬맹이가 공부하는 거잖아? 귀여운 리나는 암살만 잘해도 충분하다고. 베에~”

귀여움과 암살의 상관관계는 어디에 있는 걸까.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리나는 암살만 잘하면 되기는 하지.

세상에 어느 누구도 괴물의 목을 베는 칼에게 양털을 깎지 못한다고 싸구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칼은 저마다의 형태에 따라 쓰임새가 다르기 마련이니까.

주어진 무기를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칭얼대는 건 미숙한 게이머들이 곧잘 범하는 실수다.

“그만. 작전지시를 하달하겠다.”

현재 당면한 과제는 세 가지.

“팀을 세 개로 나눈다. 1팀은 내성에 진입해서 시장의 최측근 가신들과 대면하여 중앙정계와 손을 잡은 배신자를 색출해내 이를 시장에게 밝히는 역할을 맡는다.”

조직원들은 모두 대놓고 1팀만 걸리지 않기를 바란다는 표정이 되었다.

“상대의 진면목을 통찰하고 간파해야 하는 곳이다. 전투보다는 사교방면에 특화된 자, 사이토를 1팀의 팀장으로 삼는다. 호위를 맡을 팀원으로 데이고르와 마크가 간다.”

“에에엑!? 저희가 내성에 가도 됩니까? 그보다 보스가 가시는 게 아닌 겁니까?”

“엄중한 계산 끝에 내린 결정이다. 이후 팀 분배에 대한 불만은 받지 않는다.”

부하들은 명령을 따르겠다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2팀은 이지스 남작가의 장녀와 대면하여 그녀와 얽힌 문제를 파악하는 역할을 맡는다. 전투능력을 요구하는 역할은 아니므로 모자이크녀를 팀장으로 삼고 잭이 호위를 맡는다.”

“맡겨만 주세요!”

“이런 괴물을 내가 호위해야 하다니... 뭔가 이상해. 이상하다고...”

잭은 혼란에 빠진 기색이 역력했지만 모처럼 신임을 받고 중요한 임무를 받았다는 생각에 모자이크녀는 의기양양한 태도를 감추지 못했다.

짜식, 누가 게이머 아니랄까봐 쉬운 임무 받은 건 알아가지고 좋아 죽으려고 하네.

“3팀은 멸혼객을 찾아가 이번 사태에 대한 간략한 보고를 하고 암흑가와 시장 간의 충돌을 방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가장 중요한 역할이므로 나와 카이사르, 리나가 간다.”

멸혼객을 만나러 가는 길에 최고전력이 아니어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체면을 무시했다고 여기기라도 한다면 다른 부하들만 보냈다간 모조리 몰살당할 수도 있다.

뭣보다 멸혼객 씩이나 되는 거물은 이런 핑계라도 없으면 나라도 직접 만나러 가기가 꺼림칙하단 말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만날 일이 없었으면 한다.

‘무섭잖아.’

카이사르와 리나는 생각이 다른 것 같지만.

“걱정마십시오, 보스. 앞을 가로막는 애송이들은 전부 쳐죽이고 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뒤는 나한테 맡겨줘, 보스! 리나가 건방진 습격자들을 역으로 전부 암살할 테니까!”

그만 둬, 싸이코 듀오 새끼들아.

싸우러 가는 거 아니야.

그딴 짓 하면 없던 적도 생긴다고.

“어이. 나한테만 지령을 내리지 않았는데.”

“아아. 그레이인가.”

“그래. 나는 어디로 가면 되지?”

어디로 가기는.

“너는 자택근무원이다.”

“뭐?”

“집지키라고, 얼간아.”

“…….”

그레이는 시무룩해져서는 레이브를 뒤따라 아지트로 갔다.

============================ 작품 후기 ============================

-System : 그레이(마족 자택근무원, 223세). 현재 경미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