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0 #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 =========================
#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15)
보스의 특별지령을 받은 제 1팀 팀장 사이토!
“이 얼마나 멋진 울림인지. 크으! 보스에게 신임 받는 부하가 된다는 건 꽤나 기분 좋은 일이군요.”
“보통이라면 우리 같은 놈들에게 신임을 주지는 않을 텐데. 우리 보스가 대범한 면모가 있기는 하지.”
“동감이오. 전직 교관과 타 조직의 간부, 조금 유명세를 얻었을 뿐인 격투가 따위에게 내성에 진입하는 임무를 맡기는 건 놀랍다 못해 파격적이기까지 하지.”
사이토와 마크, 데이고르는 자신들에게 중임을 맡겼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만족했다.
내성에 진입해서 시장 브람베르크의 최측근 가신들과 대면하여 중앙정계와 손을 잡은 배신자를 색출해내 이를 시장에게 밝히는 역할이라니.
듣기만 해도 엄청나게 어렵고, 어지간히 신임하는 부하들이 아니면 맡길 수도 없는 임무가 아닌가.
“기분 좋은 건 그렇다고 쳐도, 이거 애초에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한 겁니까?”
부여된 임무의 막중함을 생각하자니 갑자기 위가 쿡쿡 쑤시고 마음은 무거워지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응?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봐.”
“자신의 직위를 자각하시오. 사이토 팀장.”
“에에엑!? 전부 제가 알아서 해야 되는 겁니까!?”
“보스도 말했잖아? 우리는 호위 역할이라고.”
“우리 중에서는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 게 사이토 팀장이니 어쩔 수 없소.”
마크와 데이고르는 매정하게 선을 그었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들은 보스의 지령을 이행할 자신이 없었다.
“끄응. 일단 직접 찾아가봅시다.”
1팀은 즉각 제 2 내성으로 향했다.
“멈춰라! 너희는 누구냐! 전시상황에 거리를 돌아다니지 말라는 경보가 내려졌을 텐데!”
“흑산회에서 보스의 지령을 받고 온 사이토 팀장이라고 합니다. 시장님께 보스가 긴히 전할 소식이 있다고 전해드리면 출입허가가 내려질 겁니다.”
“그 슈퍼빌런이 시장님에게 소식을 전해? 이런 잔악한 놈들. 설마 인질을 잡고 시장님을 협박하려는 건 아니겠지?”
경비병은 몹시 경계하는 기색이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뭘 어찌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작정 공격부터 하기에는 흑산회의 조직평판이 너무나도 살벌했기 때문이다.
결국 기사들을 대신해서 경비를 서던 경비병 중 한 명이 내성 안으로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
내성은 넓기에 소식이 전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사이토가 짓궂은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도 딱 그 무렵부터였다. 이걸 하염없이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당신들 벌어둔 돈은 좀 있습니까?”
“뭔 헛소리냐!”
“아무래도 오늘부로 해고되거나 감옥에 갇힐 것 같은데.”
농담 삼아 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운 이야기였다.
“우릴 능멸하려는 거냐!”
“냉정하게 잘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보스에게 시급을 요하는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며 여기까지 왔는데 댁들 때문에 전달이 늦어지고 있단 말이지.”
“어쩔 수 없다!”
“내 말은 시장도 그렇게 생각하겠느냐는 겁니다. 물론 댁들이야 맡은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죠. 다만 귀중한 정보를 뒤늦게 알고 막대한 손실을 입은 시장은 어찌 생각할까요?”
“그, 그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후환이 두려워진다.
해직? 투옥?
그런 느슨한 수준으로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다.
미궁도시의 시장 브람베르크는 백작의 직위를 지녔다. 비록 여타의 백작들과는 달리 미궁도시 브람과 인접지대만을 지배권에 두고 있을 뿐이라도 귀족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여차할 때에는 평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가혹한 처벌을 내리거나 분풀이 삼아 목을 치고도 남을 위치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으으. 저놈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린 다 죽는 거잖아.”
“모아둔 돈으로는 정착생활을 하기에는 부족해!”
경비병들은 동요를 금치 못했다.
“잘 생각해보세요. 만일 일이 잘못되었다간 시장뿐만 아니라 우리 보스도 격노하실 테니까. 보스가 하위조직원의 암살시도를 당했다고 6강의 일원조차도 죽인 일은 알고 있죠?”
“수전노 쉔 피살사건...!”
“쉔 정도 되는 거물조차도 암흑가 정상회의 자리에서 피살당했습니다. 보스가 목숨을 노리면 죽을 수밖에 없어요. 댁들은 암살지령 떨어지면 30분도 못 버티고 다 죽을 겁니다.”
사이토의 무자비한 협박에 경비병들은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었다.
“제길. 성실하게 일해도 우리만 손해 보는 거잖아.”
“통과! 통과! 얼른 들어가십쇼!”
“잠깐! 이게 함정이면 어쩌려고 받아들이는 거냐!”
경비대장이 애써 용기를 쥐어짜내 소리쳤다. 그나마 머리를 굴리려는 기색이 보였지만 사이토는 대놓고 피식 웃으며 빈정거렸다.
“슈퍼빌런의 지령을 받은 부하들이 깽판을 칠거면 정문으로 들어가겠습니까? 성벽이라도 넘어서 아무도 모르게 내성 안을 활개치고 다니지.”
“그건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 하지만 흑산회 보스의 지령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 사람은 암흑가 정상회의가 이루어지는 장소에서도 당당하게 쉔을 피살했다고!”
“그럼 뭐 우리들이 안에 들어가서 시장님 목이라도 딸 것 같습니까?”
경비대장은 사이토를 빤히 살펴보다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럴 거면 이런 약골은 안 보냈겠네. 괜한 의심을 해서 미안하다. 그냥 통과해라.”
내성에는 진입했지만 경비대장이 자신의 약함에 납득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몹시 더러워진 사이토였다. 경비병들과 적당히 거리가 벌어진 뒤, 사이토가 팀원들에게 물었다.
“제가 그렇게 약골입니까?”
마크와 데이고르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뭐 한 주먹거리지.”
“솔직히 한 손가락이면 될 것 같소.”
“…….”
“괜찮다. 그래도 넌 머리를 잘 쓰잖아. 너 덕분에 내성에도 훨씬 더 빨리 진입했고.”
“싸움도 잘하고 머리도 좋은 사기적인 스펙 같은 건 보스 같은 사람이나 갖추는 것이니 그리 낙담해하지 마시오. 귀공은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이행하고 있소.”
하기야 빌헬름 마이어를 떠올리면 굳이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조차도 들지 않았다.
인간이 대체 얼마나 가혹한 환경을 뚫고 나와야 그런 잔혹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상상조차도 되지 않았다.
이따금 카이사르가 들려주는 보스의 일화만 떠올려도 감히 보스의 경지를 넘볼 마음이 들기는커녕 적이 아닌 부하가 되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만 앞섰다.
“후. 간담이 다 떨리는군. 전직 범죄조직 간부 출신인 내가 시장을 만나는 날이 다 오게 되다니.”
“예? 저희 시장 안 만날 건데요.”
“뭐?”
마크의 중얼거림에 사이토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마크는 기가 막혀서 반문했다.
“시장 허락도 안 받고 멋대로 돌아다녀도 괜찮은 거냐?”
“안될 거 뭐 있습니까. 분명 보스랑 시장이 남 모를 밀약이라도 맺었다는 거 같은데, 만나는 사람들은 알아서 그 밀약과 관련된 이야기라도 하러 왔나보다 생각하겠죠.”
“뒤탈은 어쩌고?”
“보스의 지령은 시장의 최측근 중에 숨어있을 배신자를 찾아내라는 거 아닙니까. 저희는 그냥 배신자가 누군지 찾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때 가서 슬쩍 알려주기만 하면 되겠죠.”
“허. 배짱 한 번 두둑하군.”
마크는 마냥 감탄했지만 데이고르는 조심스레 물었다.
“배신자를 색출할 방법은 찾았나?”
“아니요.”
“그럼 단서부터 습득하려는 건가?”
“아니요.”
“설마 아무 계획도 없는 건 아니겠지?”
사이토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마크와 데이고르의 뜨악한 표정을 보고도 그는 머쓱해할 따름이었다.
“하하. 제가 보스도 아닌데 시장 버리고 중앙정계랑 손잡은 배신자를 어떻게 찾아냅니까? 그 정도로 배짱 두둑한 인간이면 심계도 뛰어나고 증거도 안 남길 텐데요.”
“보스 앞에서 그 말을 했어야지!”
“미쳤다고 그러게요? 무능한 녀석은 필요 없다. 죽어라. 라고 하면서 바로 목을 치실지도 모르는데요.”
“그거... 현실성 있군.”
“그렇죠?”
부하들 사이에서 빌헬름 마이어의 이미지는 대략 그런 느낌이었다. 카이사르의 똘기가 더욱 차갑고 냉철하며 잔혹하게 벼려지면 보스의 성격이 될 거라는 평판이 자자했다.
언제나 나른한 눈매와 권태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무덤덤하게 타인의 생사를 결정짓는 빌헬름 마이어를 본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오죽하면 그가 진심이 되는 순간에는 미궁도시 브람이 피에 잠길 거라는 출처불명의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서 진지하게 회자되고 있겠는가.
“가만.”
사이토의 입매가 요상하게 삐뚤어졌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어지간히 이상한 생각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거 굳이 우리가 찾을 필요가 있습니까?”
“응? 무슨 소리야 그게.”
“중앙정계랑 손을 잡았다는 건 시장보다 중앙정계가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잖아요?”
“그렇겠지.”
“만약에 보스가 중앙정계보다 더 도움이 되는 걸 어필하면 배신자를 찾아서 제거하는 걸 넘어서 이쪽으로 회유하고 포섭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죠.”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마크와 데이고르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거 좋군.”
“좋은 생각이오.”
사이토는 넌지시 물었다.
“보스의 장점이 뭐가 있을까요?”
“무자비함.”
“잔혹함.”
“…….”
“…….”
장점이 어째 장점 같지가 않다.
“뭔가 다른 건 없을까요? 듣기만 해도 절로 구미가 당겨서 배신자가 자발적으로 이쪽에 달라붙을 정도의 매력적인 강점이요.”
“보스의 강점이라. 워낙에 다방면으로 유능한 양반이라서 막상 손에 꼽으려니 뭘 추려내야 할지 모르겠는데. 무자비함과 잔혹함을 제외할 때의 얘기지만.”
“우리들의 보스는 대국을 보는 눈이 뛰어나시오. 도장 하나를 접수하려다 6강의 일원이 되고, 부하를 휴가 보낸 김에 블랙마켓에서 떼돈을 벌고 인맥마저 다지지 않으셨소.”
사이토는 데이고르의 말이 옳다고 여겼다. 분명 처음에는 별 거 없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누구도 예상치 못할 엄청난 성과를 이룬다.
보스의 그런 의외성 때문에 적들은 언제나 제때 대응에 나서지 못하고 기세에 밀려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린다.
만일 편승할 수만 있다면 1등 복권을 긁는 것과 다름없다.
“좋아! 이걸 주제로 설득해보자고!”
마크의 힘찬 외침과 함께 세 사람은 내성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많은 이들의 눈에 띄었다.
가장 먼저 내성에서는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시장 브람베르크가 소식을 접했다.
“흑산회 보스의 수하들이 성내에서 묘한 이야기를 하며 돌아다닌다고?”
“그렇습니다. 어째서인지 빌헬름 마이어의 지난 행적을 운운하며 재무총장 피쟌 자작과 정보총장 패트리 자작에게 자랑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군. 대체 이런 불순한 시기에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거지?”
시장은 혼란에 빠져서 판단을 보류했다. 빌헬름 마이어의 행동이라면 자신이 미처 헤아리지 못한 큰 뜻이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하나의 염탐꾼들은 확고한 판단을 내렸다.
“흑산회가 시장의 최측근 가신들을 유혹하고 있다. 뭔지는 몰라도 이대로 내버려두면 시장과 빌헬름 마이어의 관계만 더욱 돈독해질 뿐이다!”
“그래. 저지른다면 지금밖에 없겠군.”
“내성으로 돌아오는 기사단의 뒤를 암흑조직들이 바짝 따라붙는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시장과 흑산회의 결합을 막을 수 없다면 적어도 한쪽의 힘이라도 꺾어야만 하지!”
제 2 내성 깊숙이 침투한 과금전사들의 집단, [길드]가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시장을 따르는 내성 안 최측근 가신들을 모조리 죽여 행정을 마비시킨다!”
그들이 일으킬 파란이 어찌나 커다랗게 일지는 미처 예상하지도 못한 채, 도시 전체를 발칵 뒤엎을 사건이 마침내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두둥! 둥!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