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1 #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 =========================
#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16)
길드의 전력은 마약술사 파난에 의해 절반가량이 죽었다.
분명 피해는 막대했다.
허나 달리 말하자면 아직 절반이나 되는 전력이 남았다.
개개인이 매 회차마다 100인의 게이머 중에서 1·2위를 다투는 실력자들이 무려 열 명이나 된다.
제공받은 인계CP의 양 또한 빌헬름 마이어보다는 못해도 결코 적지 않은 수준이다.
하수인이 아닌 본인들에게 모든 CP를 투자한 과금전사 게이머들의 스펙은 카이사르와 동일했다.
열 명의 카이사르가 날뛴다.
성벽 위의 경비들은 적을 발견하자마자 목이 떨어졌다.
“레피드 스파이크(Rapid Spike).”
식물술사의 주문 한 번에 십여 명의 경비병들이 넝쿨에서 솟구친 가시에 전신이 난자당했다.
그런 학살극이 다방면에서 벌어지니 내성 경비병들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평시처럼 기사들이 순찰을 돈다면 상황은 달라졌겠지만 지금 브람 시의 기사전력은 모두 외부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닥치는 대로 죽여. 시장의 세력이 우리 것이 될 수 없다면 다른 놈들도 이득을 보게 할 수는 없어!”
무자비한 참상이 성벽 아래에서도 재현되기 시작했다.
수도 없이 많은 고위관료들이 개죽음을 당했다.
“이, 이 새끼들은 대체 뭐.. 읍읍!”
“쉿!”
사이토와 마크, 데이고르와 함께 있던 시장의 최측근 가신 두 명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솔로 모험가답게 다가오는 위험을 미리 감지한 데이고르가 강하게 경고를 해서 모두가 성내에 존재하는 비밀통로에 몸을 숨겼기 때문이다.
생존자는 재무총장 피쟌 자작과 정보총장 패트리 자작이었다.
“갔어요. 말살을 목적으로 하는 놈들이 활동구역을 다시 방문할 리는 없으니 이제 안전합니다.”
사이토의 말이 떨어지자 내무부의 능구렁이 피쟌 자작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들은 대체 누구인가? 외부인이 어떻게 제 2 내성에서 활개치고 다닐 수 있지?”
사이토는 빈약한 머리를 최대한으로 굴렸다.
이내 그는 결론을 도출했다.
보스가 자신들을 보낸 이유를 떠올리면 답은 뻔했다.
“배신자가 중앙정계의 힘을 불러들인 겁니다.”
착각이지만.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전혀 착각 같지가 않았다.
“배신자? 중앙정계?”
정보부의 숨은 거물, 패트리 자작.
그의 영민한 눈동자에 숨길 수 없는 증오심이 깃들었다.
“감히, 감히 이딴 짓을 저지르다니.”
“분노하신 건 알겠지만 지금은...”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밝혀야겠지. 내가 배신자였다.”
패트리 자작의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네?”
“허나 이번 습격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내가 아닌 다른 배신자가 있었고 중앙에서는 그놈의 파벌을 밀어주기로 작정한 게 틀림없다.”
“그럴 수가. 배신자가 설마 두 명이었다니.”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일세.”
“피쟌 자작님?”
피쟌의 수염이 감출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을 따라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나 또한 배신자였다네. 패트리 자작과 마찬가지로 중앙에서 내쳐지고 입을 막기 위해 자칫 암살당할 뻔했지만.”
기가 막힌 상황의 연속이었다.
중앙정계에서는 본래 패트리 자작과 피쟌 자작, 두 사람을 이용해 미궁도시 브람의 내정을 틀어쥐어 영향력을 행사할 작정이었다.
허나 길드의 무차별 살육극을 간발의 차이로 벗어난 두 사람은 중앙이 자신들을 배제하려 했다고 여기며 중앙을 향한 격렬한 적개심을 드러내었다.
“흑산회 보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빚을 지게 되었군.”
“구명의 은혜는 반드시 갚겠다.”
“다행이군요. 보스께서도 틀림없이 기뻐하실 겁니다.”
사이토는 문득 보스의 지령을 떠올렸다.
「팀을 세 개로 나눈다. 1팀은 내성에 진입해서 시장의 최측근 가신들과 대면하여 중앙정계와 손을 잡은 배신자를 색출해내 이를 시장에게 밝히는 역할을 맡는다.」
배신자를 시장에게 밝히라는 말만 있었지, 그들을 어찌하라는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어쩌면 보스는 이 습격을 예고하고 자신들을 보내 배신자들을 살린 채 흑산회와 협력관계를 맺게 한 뒤, 시장에게 찾아가 이 사실을 통보하라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대로 시장을 찾아가서 정보를 전달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무언가 이들을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존재할 것이다.
선결과제!
지령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이 두 사람을 이용해서 흑산회에 이득이 될 만한 일을 우선적으로 달성해야만 한다.
“보스께서는 이미 두 분의 자리를 마련해두셨습니다. 이번 습격을 예견하고 두 분의 목숨을 구하고자 저희를 보내었지요. 영민한 두 분이라면 제 말의 의미를 아시리라 믿습니다.”
“지참금을 준비하라는 건가.”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할지는 직접 결정하시면 됩니다. 다만 지금의 결정이 흑산회 내에서 두 분의 입지를 결정지을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평상시였다면 이딴 소리를 들으면 코웃음을 치며 무시하거나 자신들을 능멸하려 들었다며 진노하여도 이상할 게 없는 발언이었다.
허나 상황이 너무나도 특수하고 심각하였기에 피쟌 자작과 패트리 자작은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흑산회 보스쯤 되는 거물이 자신들의 무엇을 원하고 목숨을 구해주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내 그들은 자신들이 ‘중앙정계와 손을 잡은 배신자’라는 점을 떠올렸다.
흑산회 보스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덤으로 중앙정계의 숙청으로부터 그들을 살려내었다.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중앙정계와 손을 잡고 행해왔던 내부공작 자료들.”
“정보검열과 통제로 중앙의 입맛대로 통제해온 흐름들.”
그것들을 [전부] 원하는 게 틀림없다.
스파이 활동의 결실을 원하는 거다.
그걸 어떻게 써먹을지는 흑산회 보스의 몫이다.
“중앙 지령서와 회계장부, 이중장부는 아공간 주머니에 모두 담아갈 수 있지. 내무부에서 10분만 엄호를 부탁하겠네.”
“정보부는 내성에 침입자가 발생할 시 즉각 모든 자료를 파기하고 시설을 버리게 되어있다. 대신 제 2 접선지점에 최중요 기밀자료들은 따로 보관해둔다. 그걸 가져오겠다.”
두 사람은 길드의 눈을 피해서 은밀하게 자료를 빼돌리는 데 성공했다.
허나 그 과정을 목격한 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저 자들은.’
길드와 행동을 함께 하던 NPC 중 한 명이 이채를 띄었다.
청일.
그는 브람 시의 주요 인사들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놈들에게 보고를 할 의무는 없겠지.’
청일은 이번 작전에 무고한 민간인이 휘말린다는 사실에 처음부터 반발심을 품고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았기에 둘은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흑산회 소속 주요조직원들의 얼굴마저 알아보고 내성에 그의 영향이 미치기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흑산회 보스, 빌헬름 마이어. 그 자의 심계는 길드의 쿠로가 당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쿠로는 미궁도시 브람 지부의 지부장으로 활동하는 길드의 최정예요원이다.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뛰어난 지략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상대가 너무나도 나빴다.
“쿠로. 지금 즉시 후퇴해야 한다.”
“어째서냐.”
“흑산회가 내성에 도착했다. 놈들은 준비가 되었고 우리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대로는 마약술사 파난에게 몰살당한 일이 되풀이될 뿐이다.”
“!!”
“너희가 물러서지 않는다면 나라도 물러나겠다.”
두건 아래로 비치는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퇴각한다.”
“잘 생각해주었다.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
“시장 브람베르크를 제거한 뒤에.”
청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쳤군. 여기서 죽을 작정인가?”
“흑산회가 여기에 있다면 시장과 시장의 최측근들을 살리려는 의도밖에 없다. 실제로도 주요인사 몇 명이 발견되지 않았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했다간 알큐러스 기사단장이 돌아오고 만다. 하이칼 경비총장도 관청에 몰려든 폭도들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있을 거다.”
쿠로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여기서 물러서면 어차피 끝장이다. 주요인사들이 살아있다면 시장은 부담 없이 암흑가와 손을 잡고 우리를 찾아내 박멸하려 하겠지.”
“포기하고 물러나라. 목숨만 부지하면 뭐든 못하겠는가.”
“주요인사들이 흑산회의 보호 하에 들어갔다고 해도 시장만은 다르다. 놈들도 시장이 위협받으리라고는 믿지 않고 있어. 시장을 제거하면 색출 및 제거 명령을 내릴 자도 없다.”
쿠로는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당연히 그 판단은 잘못될 수밖에 없었다.
시장이 빌헬름 마이어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부터 길드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냥 파난에게 찝쩍대다가 몰살당한 걸 자의식 과잉인 랭커 게이머들이 멋대로 착각했을 뿐이다.
제거명령이라도 내려올 까봐 두려워하며 일을 키우고 있지만, 그런 행동이 도리어 그들의 위험도를 증가시키고 있다.
쿠로는 제 발로 수렁을 향해 전력질주 하고 있음은 미처 알지 못한 채, 길드 소속 게이머와 NPC들을 향해서 최종지령을 내렸다.
목표는 시장.
암살의 때가 되었다.
“크아악!”
“이 앞으로는 누구도 접근할 수 없다!!”
시장의 친위대는 강력했다.
랭커급 게이머들의 급습에 맞서 용맹하게 맞서 싸웠다.
허나 친위대장의 부재가 우열을 가리고 말았다.
“쿨럭! 리델라프 친위대장만 있었다면 이리 허망하게 패하지는 않았을 텐데!”
“친위대장의 부재를 노리고 암살을 시도하다니. 전부 계획된 음모였는가...!”
“으으. 우리가 죽으면 시장님은..”
길드 소속 게이머도 다섯 명이나 죽었다.
그래도 친위대를 전멸시킬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시장 브람베르크밖에 없다.
“어째서 오지 않는 거냐. 가신들에게는 향한 흑산회가 대체 왜 여기에는 오지 않는 거냐!”
브람베르크는 극심한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흑산회가 내성에 들어와 최측근 가신들과 접선한 게 그들을 살리기 위한 목적임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선택받지 못했다. 단 한 명의 조직원조차도 파견되지 않았다.
밀약을 맺은 자신에게 이런 대우를 할 수는 없었다.
버림받았다. 대체 어째서?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던 끝에 문득 깨달았다.
아니,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흐흐흐흐흐! 흐하하하하!”
브람베르크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죽음을 납득하지 못했는가.”
쿠로의 중얼거림에도 브람베르크는 눈물까지 흘리며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흐흐. 전혀 깨닫지 못했군. 나도, 네놈들도 전부 흑산회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음을.”
“...뭐라고?”
“흑산회는 나와 네놈들을 모두 제거한 뒤, 무주공산이 된 미궁도시 브람을 지배할 작정이다. 시장과 중앙이 상잔한 끝에 남은 세력을 전부 집어삼키고 말이지!”
최측근 가신들은 실무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강력한 지지세력으로 그를 뒷받침할 것이다.
시장이 없더라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정치적 영향력의 부재도 그라면 어딘가에서 메울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가! 내가 내 목을 조르고 말았는가!!”
떠올렸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다.
부족한 정치적 영향력을 메울 퍼즐조각이 보였다.
“이지스 남작가의 장녀!! 그녀를 이용해서 브람 시의 모든 유력자들의 인정을 받아 차기 시장이 될 작정인가!!”
격노하던 브람베르크가 한 움큼의 피를 토해내었다.
심장을 검에 관통 당했다.
브람 시의 지배자는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빌헬름 마이어. 놈이 브람베르크의 대역을 정했는가!!”
시장의 마지막 유언은 들을 가치가 있었다.
시장이 없어도 대역이 살인지령을 내리면 끝장이다.
원수를 갚는다며 기사들과 친위대장이라던 놈의 눈이 벌게지겠지.
“다음 목표가 정해졌다. 살아남고자 한다면 더는 물러설 수 없다. 이지스 남작가의 장녀를 죽이러 간다!”
길드의 잔당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달려 나갔다.
빌헬름 마이어는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 서있다.
시장 하나의 목숨 따위로는 살 길을 열 수 없다.
‘대체 지력이 얼마나 높으면 NPC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귀계를 펼친단 말이냐!’
쿠로의 가슴에 서슬 퍼런 긴장감이 일었다.
그는 직감했다.
빌헬름 마이어라면 분명 이지스 남작가의 장녀를 호위할 인선으로 강력한 조직원을 보냈을 거라고.
실제로도 파견된 자들이 없지는 않았다.
2팀 모자이크녀와 잭.
심연에서 뛰쳐나온 괴물이라고 해도 믿을 비주얼의 소유자였다.
============================ 작품 후기 ============================
작가는 마의 슬럼프 구간을 뚫고 1부 마지막 챕터에 진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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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1부를 마치고 며칠은 쉴 텐데...
비축분이 많아서 연재는 노 딜레이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