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3 #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 =========================
#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18)
이지스 남작가의 조상은 악독한 마녀에게 대대로 전해지는 혈통의 저주를 받았다. 25세가 되거든 현격한 신분차이를 지닌 자와 사랑에 빠져 행복할 수 없는 결혼생활을 하게 되는 저주였다.
결혼대상 또한 간접적으로 저주에 걸려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뜻을 품고 자신은 선조들과는 다를 것이라 결심하더라도 결국은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결혼상대와 아이는 이지스 남작가에 편입될 수밖에 없는데, 이를 거절하면 극심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기를 거듭하거나 끝내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하아. 앞으로 석 달인가.”
이지스 남작가의 장녀 도르시 이지스. 미모가 활짝 만개할 25세의 나이를 앞두고도 그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근심걱정이 가득했다.
“불운한 결혼생활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은데…….”
“아가씨... 흑흑.”
“피. 유모가 왜 울고 그래요. 울고 싶은 건 난데.”
어릴 적부터 도로시를 돌봐온 유모 또한 그녀의 불우한 처지에 동정을 금치 못했다.
세인들은 속편하게 불행할 운명을 타고난 여자라느니 지껄여대고, 거기에 상처받은 도로시가 사교회에서의 활동마저도 단념하면서 칩거생활을 한 지도 수년이 지났다.
이지스 가의 자손이 행복한 시간을 겪을 수 있는 건 25세 이전까지. 입 싼 호사가들 때문에 천금보다 귀한 시간을 저택 안에 갇혀서 보낸다는 건 너무나도 원통한 일이었다.
타다다.
수심에 잠긴 둘의 산통을 깨려고 작정했는지 견습 시녀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도로시님! 도로시님!”
“무슨 일이니?”
“괴, 괴물이. 아니, 손님이 찾아왔어요!”
도로시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운명의 상대가 찾아온 건 아니겠지...?”
이지스 남작가의 불운을 아는 사람들은 아무리 꽃다운 처자나 늠름한 청년이 나오더라도 함부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저주를 받는 건 배우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결혼상대가 없어서 저주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선조들도 더러는 있었다.
헛된 희망이었다. 저주는 [운명의 상대]를 만들어서 강제로 끌고 왔다. 이렇게 끌려온 상대는 직접 선택한 배우자보다 심각한 결함이 있으며, 예외 없이 위험한 인물이었다.
“이지스 남작가의 여식, 도로시 이지스입니다. 어느 분께서 저를 찾으셨나..”
도로시의 손에 들린 작은 향로가 떨어졌다.
심신의 안정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전신이 모자이크로 이루어진 괴물이 있었다.
“흐윽. 흑.”
아무리 심한 사람이 나타나더라도 결코 울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게 무색하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맙소사!”
뒤따라 온 유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상대는 인간조차도 아니었다.
도로시의 배우자는 무려 괴물이었던 것이다!
“당신들 너무해. 심한 꼴이라는 건 자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울 것 까지는 없잖아!”
“히끅. 죄송합니다. 정말로, 히끅. 죄송합니다.”
“내가 나쁜 거야!? 그런 거였어!? 아무튼 일단 진정부터 해달라고요.”
물론 상대는 전신 모자이크녀였다.
“저는 보스의 지령을 받고 여기에 왔을 뿐이에요. 이지스 남작가의 장녀와 얽힌 문제를 파악하라고 들었을 뿐이니까 잡아먹힐 걱정 같은 건 말고 우리 차분하게 얘기만 해요.”
“저, 정말이죠...?”
“그럼요! 생긴 건 이렇고 주변에는 무서운 사람만 잔뜩 있어서 기가 죽었지만... 정상적인 몸을 지녔을 때에는 선남선녀들도 말 한 번 붙여보려고 기를 쓰던 몸이라고요?”
간만에 정상인을 만나서 신이 난 모자이크녀의 모습에 도로시는 점차 마음이 풀렸다.
“세상에나! 혈통의 저주라니. 당신도 만만찮게 고생하겠네요. 그런 종류의 저주는 시전자를 죽여도 풀리지 않고 해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던데.”
“저기... 괴물님. 이름은 뭐라고 부르면 되나요?”
“모자이크녀로 괜찮아요. 원래 이름 같은 거 말해봤자 다들 들은 체 만 체 하고 모자이크녀라고 부르니까. 그렇다고 공공외설물이라고 부르면 용서 안 해요?”
“풉. 앗, 죄, 죄송해요. 저주에 걸려 고생하시는 분께 웃음을 보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만..”
“괜찮아요. 도로시양 정도면 굉장히 상냥한 편에 속하니까요. 적어도 멀쩡한 사람한테 원반을 물어오라고 던져대지는 않잖아요.”
물론 원반을 던져대는 건 카이사르밖에 없다.
“듣기로는 보스께서 그 저주를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하실 모양이에요.”
“예에?”
놀란 것도 잠시, 도로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억지로 울음기를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소용없을 거예요. 왕국에서 이름 난 대마법사도 어찌하지 못한 저주인걸요. 더는 치료법을 찾겠다고 가산을 탕진하고 싶지도 않아요.”
“내 생각도 마찬가지기는 한데... 보스도 보통 인간은 아니라서 조금이라면 기대해도 좋을지도 몰라요.”
“어떤 분이신데요?”
“흑산회 보스. 알아요?”
“그런!!”
도로시가 뒷걸음질 쳤다.
안색은 당장이라도 까무러칠 것처럼 창백하게 질렸다.
“눈을 뜨면 부하 한 명을 베어 죽이는 걸로 하루를 시작할 정도로 잔혹하고 갖고 싶은 건 처녀의 순결이라도 빼앗을 정도로 탐욕스러운 범죄조직 흑산회의 보스요!?”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아요.”
모자이크녀는 보는 입장에서는 딱히 변화가 없을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실력을 숨긴 절정고수이고, 돈이 엄청나게 많고, 부하들이 엄청나게 강하고, 그런데도 언제나 만사가 귀찮다는 눈으로 적을 잔뜩 죽이고 다니는 것뿐인걸요.”
“그런 설명으로는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아요! 어째서 그분이 저한테 관심을 보이시는 거죠!?”
“딱히 나쁜 의도는 없을 거예요. 유력자들의 인정을 얻고 명성도 올릴 겸 도로시양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거든요. 순수한 호의는 아니어도 대가를 요구하지는 않을 거예요.”
도로시는 힘없이 의자에 앉아 수심에 빠졌다.
“아무렴 어떻겠어요. 어차피 쇠락해가는 가문의 위세를 생각하면 정략혼이라도 해야 될 처지인데.”
“정략혼이요?”
“석 달 안에 망나니로 악명 높은 알폰스 왕국의 3왕자와 결혼할 처지에요. 저주의 희생자가 되길 원치 않은 유력자들과 망나니를 둔 왕실, 쇠락한 가문의 어르신들의 뜻이죠.”
“아니, 그 망나니는 저주 걸린 사람하고 결혼한대요?”
“예쁘고 몸매만 좋으면 상관없대요. 사랑 따위는 모르고 어차피 성욕만 해결할 수 있으면 상관없다나봐요.”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려낸 것만 같은 쓰레기였다.
모자이크녀는 울컥하며 화를 냈다.
“차버려요, 그딴 쓰레기!”
“운명의 상대가 그보다 나쁜 사람일 가능성이 있어도요?”
“그건...”
“신분의 격차가 있는 상대라는 게 저보다 위일 거라는 보장도 없어요. 막말로 노예로 부려 먹히던 몬스터라도 걸리면 어쩌겠어요?”
“…….”
도로시가 걸린 저주는 그 정도로 강대한 것이었다.
“어이, 모자이크. 정말로 보스가 감당할 수 있는 거냐? 이 여자의 저주는 아무리 봐도 장난이 아닌데.”
“입 다물어요, 잭. 확 찢어버리기 전에.”
“!?”
흠칫 놀란 잭이 입을 다물었다.
모자이크녀의 몸을 뒤덮은 입자가 적색으로 물들었다.
극심한 감정변화에 따른 입자색상변화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당신처럼 착한 사람이 저주에 걸려서 고생하는 건 말도 안 되죠.”
“모자이크씨...?”
“석 달이라고 했죠? 방법을 찾아볼게요. 그런 머저리 같은 왕자한테 팔려나가기에는 당신이 너무 아깝잖아요.”
“그만두세요. 자꾸 그러시면 기대하게 되잖아요... 어차피 실패할 걸 알면서도 기대하게 만드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얕보지 말아요. 이래 보여도 전직 랭커였던 몸이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법을 찾아내겠어요!”
굳은 결의를 마치기가 무섭게 대뜸 저택에 폭음이 울렸다.
드드드드득!
거센 진동이 한 차례 응접실을 강타했다.
“꺄악!”
찬장에서 예쁜 접시와 컵, 기타 잡기들이 쏟아졌다.
쨍그랑!
도로시는 질끈 감은 눈을 떴다.
“젠장. 흑기사 따위가 될 생각은 없었건만. 어쩐지 보스께서 맡긴 일 치고는 시시하더라니, 드디어 방해꾼이 등장한 모양이군.”
온 몸으로 찬장에서 쏟아진 물건들을 받아낸 잭이 가볍게 몸을 털었다.
후두둑거리며 파편들을 흘려내는 모습이 얼핏 보기에는 멋졌고 잭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괜찮은 연출이라고 여겼다.
헌데 그를 바라보는 도로시의 표정은 감탄이나 반했다, 같은 게 아니라 경악 그 자체였다.
“괘, 괘, 괜찮으세요!?”
“뭐가..”
주르륵.
얼굴에 끈끈한 피가 흘렀다.
머리 위에 슬며시 손을 가져다 대보니 파편이 꽂혀있다.
‘시발.’
폼 재놓고 느닷없이 중상을 입어버렸다.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었다.
“별 거 아니다.”
애써 무덤덤하게 말하는데 뒤늦게 통증이 확 일어났다.
눈물이 찔끔 흐르려는 걸 안간힘을 쓰며 막았다.
“굉장히 아파 보이시는데...”
“괜찮다.”
“몸이 기울어지고 계세요! 게다가 얼굴색이 나빠요!”
“괜찮..”
“피도 멈추지 않는 게 이대로 대량출혈로 죽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서 치료를 하지 않으면..”
듣다보니 덜컥 겁에 질렸다.
진짜 죽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자 잭은 허겁지겁 품을 뒤졌다.
“제길. 포션 따위는 쓰고 싶지 않았는데...”
고통을 참으며 파편을 뽑고는 머리 위로 포션을 반쯤 붓고 나머지 반은 직접 마셨다.
이걸로 상처부위의 수복 및 혈액생성 속도 상승이 동시에 이루어질 거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끄으윽.”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이 엄청나다.
각오는 했지만 예상 이상으로 상처가 심했던 모양이다.
“위층이다! 다 조져버려!”
“웬 놈들이.. 크아악!”
그러는 와중에도 일단의 무리들이 빠르게 저택 안을 종횡무진하며 경비병들을 제거했다.
일개 남작가의 경비로는 침입자를 당해낼 수 없었다.
침입자 전원이 카이사르 급의 스펙을 지닌 ‘길드’ 소속 게이머들이기 때문이다.
“여기다!”
“이지스 남작가의 장녀, 도로시 이지스! 그 목을 받으러 왔다!”
“잠깐, 여기 상태가 왜 이래?”
길드 소속 게이머들은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난장판이 된 실내.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무릎을 꿇은 채 고통스러워한다. 도로시 이지스와 하녀복을 입은 중년여자가 근심어린 눈으로 상처를 보고 있다.
한편으로는 전신 모자이크 괴생물체가 위협적인 적색입자를 번쩍거리고 있는 상황. 빠르게 실내를 훑어본 게이머들의 안색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저 괴물이 도로시 이지스의 호위무사를 쓰러뜨린 것 같다. 상당히 강해보이는 인상의 호위무사가 손도 못 쓸 정도로 무력화되다니...”
“섣불리 선공을 가하지 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을 구사할지도 모른다.”
“잠깐. 모자이크, 모자이크... 이거 얼마 전에 공지에 뜬 그거 아니야? 전신 모자이크 녀.”
게이머들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이 상황에서 못해도 탑 100위권에 들 랭커인가. 신의 질투를 받을 정도라면 특정 분야에서 경이로운 저력을 지니고 있음이 틀림없어.”
“죽이는 게 목적이라면 진즉에 죽였겠지. 목표는 이지스 도로시의 확보인가.”
“쿠로. 어떻게 할 거냐. 저놈을 뚫고 표적을 제거할 자신은 없어. 여기까지 오면서 남은 건 다섯밖에 없다.”
게이머 셋, 지부장 쿠로, NPC 청일.
미궁도시 브람지부 길드의 최고전력 다섯이 남았다.
잘만 하면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윽, 도망, 크으으아아아아아아아악!!”
괜히 말 한 마디 하려다가 고통이 물 밀 듯이 밀어닥친 잭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개거품을 물며 흰자를 뒤집고 기절했지만 몸은 건강해지는 중이다.
물론 느닷없이 난입한 불청객들은 그 모습을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뭐, 뭐에 당한 거지!?”
“몰라. 그보다 엄청나게 고통스러워 보였어.”
“우리들의 동기화 비율로는...”
고통의 강도가 줄어들어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일 게 당연했다.
무엇보다도 상대는 인지조차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다.
길드원들 못지않게 지부장 쿠로 또한 겁에 질렸다.
“이봐, 랭커. 우리는 너를 적대하려는 생각이 없다. 그저 저 여자만 죽일 수 있게 해다오. 여자만 죽이면 아무 소란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물러나겠다.”
“하?”
“원한다면 돈을 주지. 권력도 주겠다. 인간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는 뭐든지 안겨주지. 그러니 우리랑 손을 잡자. 네가 원하는 건 전부 이루게 해주겠다.”
탑 랭커인 모자이크녀에게 부귀영화를 만끽하는 사치스러운 삶 따위는 오래 전에 질려버린 낡은 컨텐츠다.
더욱이 호위라는 놈이 맥없이 기절해버린 이상, 도로시를 지킬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
이런 상황, 이런 자리에서라면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딴 건 누릴 만큼 누렸고 내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
“날 방해하지 말고 꺼져라.”
모자이크녀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쿠로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탑 랭킹 100위에 든 랭커와 그렇지 못한 랭커의 실력차이는 천지차이나 다름없다. 이대로 맞붙으면 승산은 0%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달랐다.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승산은 100%다. 모자이크녀는 모든 CP를 매력상승에 때려 박은 컨셉충이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컨셉충을 건드리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집니다.
오버워치에서 적에게 한대 맞을 때마다 "큭" "크윽" "크아아아아아악!!" 하고 공감각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고, 아군 라인하르트가 "성문을 열었다! 지금이다!!"라면서 방패 방향을 180도 돌려서 적군이랑 같이 쳐들어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