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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96화 (96/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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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21)

나는 우선 치유의 교단을 찾아갔다.

“이 여자는 도로시 이지스이고 나와 결혼할 사이다.”

“예에에에에!?”

“덤으로 시장을 죽인 역적을 내 부하로 받아들였다. 공석이 된 시장의 자리를 이 여자와 결혼해서 차지할 생각이다. 결혼식에서 주례를 서는 것으로 협력해줬으면 한다.”

한 치의 가감도 없는 폭풍 돌직구에 사제들은 비명까지 지르며 경악하였다.

어지간히도 놀랐는지 중급사제 알라인 뿐만 아니라 치유의 교단 브람지부를 총괄하는 사제장까지 맨발로 달려 나와서 자세한 자초지정을 캐물었다.

묻는 대로 대답해주고 적당히 거절당하면 중급사제 알라인의 도움만 받으려고 했는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교단은 두 분의 결혼식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겠습니다.”

“뭐? 진심이냐?”

“물론입니다.”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치유의 중급사제 알라인의 협력을 받기도 힘들 거라고 생각했었다. 시장을 죽인 진범들을 조직원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허나 정작 당사자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니 중급사제 알라인은 물론이거니와 사제장마저 상식을 파괴하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시장 브람베르크의 죽음을 안타깝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신실하지 못한 자였으며 신전의 세가 지금 이상으로 커지는 걸 두려워하던 사악한 불신자였지요.”

“우리를 돕겠다는 건가?”

“물론입니다. 사악한 불신자에 비하면 당신은 훨씬 더 훌륭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는 지위가 아닌 자신의 행동으로 결정되는 법이니까요.”

사제장은 명언까지 하면서 우리를 지지해주었다.

[치유의 교단이 당신과 도로시의 결혼을 지지합니다.]

[사제장 뮤온이 주례를 설 것을 맹세합니다.]

[유력자들의 인정을 받을 확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치유의 교단과 흑산회가 동맹관계가 되었습니다.]

[양 진영의 소속원들은 서로에게 쉽게 마음을 엽니다.]

[빌헬름 마이어의 명성이 3000 상승합니다.]

[흑산회의 조직평판(명성)이 2000 상승합니다.]

순식간에 치유의 교단이 아군세력으로 돌변했다.

아아.

이젠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시청의 클레드. 그쪽으로 합류하는 건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는 길에 공성측의 병력이 전개되어 있거든요. 통상의 루트를 이용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어딘가 알려지지 않은 길을 이용해야 한다.

사이토는 그렇게 주장해왔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똑똑한 녀석이니 놈의 판단이 잘못되지는 않았을 거다.

“보스. 범죄길드의 루트를 이용하는 게 어떻습니까?”

“마크? 그 길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이토. 넌 머리가 좋아도 때때로 사고가 고지식해서 탈이다. 보스가 범죄길드의 지부를 개박살을 냈던 걸 잊었냐? 범죄길드 동쪽지구는 지부장 야구사 아몬까지 죽었다고.”

“아아! 그걸 잊고 있었네요!”

“그쪽 길을 경유하면 귀찮게 앞을 가로막는 놈들은 없을 겁니다. 일존육강이라도 범죄길드는 건들지 않아왔으니 그 길은 알면서도 통제하지 않고 있겠죠.”

마크의 뒷골목지식이 돌파구를 찾아내었다. 실제로 뒷골목을 이용하자 범죄자들이 드문드문 보였지만, 이쪽을 보자마자 움찔하더니 기겁하며 달아났다.

“대단하군요. 보스께서 범죄길드 지부장을 해치운 건 지난 번 블랙마켓 급습전 때라고 들었건만, 그 혼란스러운 난국에서도 이런 날이 오리라 계산하고 안배를 해두셨을 줄이야.”

그딴 거 할 수 있을 리가 있겠냐.

사이토랑 마크, 데이고르 세 얼간이들이 멋대로 범죄길드의 노예보관소를 공격해서 거기에 생각이 닿다보니 얼떨결에 범죄길드까지 갔을 뿐이라고.

리나를 구하려는 목적과는 별개로 야구사 아몬이 지 멋대로 기세에 압도당해서 덜컥 자살해버렸지만. 그런 건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웬 놈들이냐! 시청은 우리 의용군이 탈환했다! 침략군이라면 괜한 피를 흘리지 말고 물러나... 히이익!? 흑산회잖아! 게다가 악마계약자 카이사르에 슈퍼빌런 빌헬름 마이어!?”

“겁먹지 마라. 너흴 해치려는 의도는 없다.”

“산 채로 포박해서 짐승의 먹이로 바치겠다는 건가!? 설마 장기적출!? 으아아, 싫어. 죽더라도 그런 비참한 죽음은 맞이하고 싶지 않아!!”

의용군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칭호 슈퍼빌런의 효과가 발동했습니다.]

“…….”

뭐, 이제는 익숙한 일이다.

시큰둥하니 시청 안에 들어가자니 직원들이 보였다.

다행히 클레드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보스! 이런 곳에 오시다니.. 설마 저를 구하려고 왔나요?”

“그렇다.”

“입에 발린 말이나 하다니 꽤나 능청스러워지셨네요.”

말은 그렇게 해도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나요?”

“혼인신고서를 작성해라.”

“예?”

“나와 이 여자. 도로시 이지스가 결혼한다.”

“예에에!?”

귀찮아서 상황설명은 부하들에게 맡겼다. 타오르는 초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겨우 놀란 마음을 가라앉힌 클레드가 공문서 작성을 실시간으로 진행하였다.

“이거 들고 결혼식 마치자마자 저한테 들고 오세요.”

“지금 받으면 안 되는 건가?”

“보스가 법에 구애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이번 결혼 건에 대해서는 공적인 관계를 확정지으려는 거잖아요? 이럴 때에 한해서는 관습에 따르는 걸 추천하겠어요.”

클레드의 조언은 언제나 옳았다.

나는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

[혼인신고서를 습득합니다.]

“앞으로는 직원이라고 부르지 마요.”

“해고당했나?”

“승진했거든요! 무려 감사관의 자리에 올랐다고요.”

브람베르크가 죽기 전에 힘 좀 썼었던 모양이다.

꽤나 높은 직위에 올려두었군.

밀담을 나눌 창구로서 그 정도 위치에는 있어야 했겠지.

“겸사겸사 저희 좀 구해주시면 안 돼요?”

“의용군이 있었을 텐데?”

“그놈들은 관료들한테 궐기를 진압하라니 뭐니 말도 안 되는 소릴 해대고 있어요. 이러다가 서류철을 방패로 삼고 펜을 칼 대신 휘둘러야 할 판국이에요.”

“의지가 안 되는 놈들이군. 좋다. 시청 소속 관료들은 전부 흑산회가 보호한다.”

“고마워요. 이걸로 저도 한시름 덜었네요.”

다른 시청 관료들은 흑산회의 보호를 받는 걸 두려워했지만 우리와 함께 하는 치유의 교단을 보고는 안심한 모양이다. 괜한 말썽은 부리지 않고 순순히 따라주었다.

[시청 관료집단이 당신과 도로시의 결혼을 지지합니다.]

[감사관 클레드가 서류를 접수할 것을 맹세합니다.]

[유력자들의 인정을 받을 확률이 초 대폭 상승합니다.]

[시청 관료집단과 흑산회가 동맹관계가 되었습니다.]

[양 진영의 소속원들은 서로에게 쉽게 마음을 엽니다.]

[빌헬름 마이어의 명성이 10000 상승합니다.]

[흑산회의 조직평판(명성)이 5000 상승합니다.]

엄청나다.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상황전개다.

“이렇게나 단숨에 아군을 확보하다니. 이것이 흑산회 보스의 저력이었단 말인가.”

“우리는 이런 자를 적대할 심산이었는가... 미친 짓이었군. 5강조차 이 정도라면 6강에 맞서는 건 자멸행위나 마찬가지였어.”

“우리들의 목숨이 붙어있는 게 용할 정도야.”

길드 소속 게이머들은 대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이들의 대장 격인 쿠로는 달랐다.

“언제부터였습니까?”

“음?”

“치유의 교단과 시청에 인맥을 만든 건 대체 언제부터였습니까?”

한없이 심각해보이는 표정.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출 여유조차도 없는 꼴이다.

보통 게이머라면 딱해서라도 놀리진 않겠지만.

‘이놈은 가증스러운 길드 소속의 두뇌파니까.’

동정 따위는 하지 않는다.

나는 한없이 여유로운 태도를 가장하며 대답했다.

“삼주 전.”

“삼주!! 고작 그 정도의 기간으로 이만한 인맥을 모았다는 겁니까!?”

“어쩔 수 없지 않는가. 이 도시에 들어온 게 삼주 전부터였으니까. 초행길인 도시인 점을 감안하면 시행착오로 헛되이 날린 시간이 대부분이었지.”

쿠로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 말씀은.. 마음만 먹는다면 삼주보다도 더 빨라질 수도 있었다는 겁니까?”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보스께서는 얼마나 더 빨라지실 수 있습니까?”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을 마주한 얼굴이다.

나도 모르게 즐거워지는군.

“하루.”

“!!”

“전부 한 번의 대면이면 충분하다.”

쿠로가 전율에 휩싸였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모두가 우리의 대화를 듣고 동요를 금치 못했다.

“이 모든 게 삼주 전부터 안배된 일이었단 말입니까?”

“당연하지! 리나의 보스는 대단하다구!”

“누가 모시는 보스라고 생각하는 거냐. 나, 카이사르가 모시는 보스다. 이 정도는 당연하다.”

뭔가 건방 떠는 부하 한 놈이 거슬리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클레드가 화색을 띄었다.

“그럼 당장 시작해도 되겠어요!”

“시작하다니. 뭐를?”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첫 대면에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고 하셨죠? 그럼 유력자들을 상대로 구태여 복잡다단한 심계를 펼칠 필요가 없는 거잖아요.”

“!?”

“이참에 싹 다 불러 모아서 단번에 인정을 받아버리죠! 거기, 당신들. 상류거리에 가서 주요인사 소집을..”

폭주하는 흐름을 겨우 쫓아갔다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한층 더 무서운 속도로 사태가 급진전된다.

* * *

그 사실에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건 빌헬름 마이어가 아니라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쿠로였다. TOP 100위에 드는 최상위 랭커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오직 쿠로만이 알 수 있다.

‘빌헬름 마이어의 진가는 감춰둔 전투력 따위에 있는 게 아니다. 끝을 짐작할 수 없는 모략에 있다.’

고수의 반열에 접어들수록 상위경지와의 간극은 종이 한 장 정도로 좁혀든다.

이는 검을 다루는 검술이나 개인의 전투력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현묘한 이치를 다루는 지혜나 기기묘묘한 꾀를 다루는 모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략에 있어서는 일류급의 소양을 길러낸 그조차도 빌헬름 마이어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한 하수에 불과했다.

‘빌헬름 마이어의 역량. 그건 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종이 한 장이 쌓이고 쌓여서 거대한 벽이 되었다.

그 간극을 가늠하는 행위조차도 불가능하다.

이 남자는 그야말로 악마적인 지혜를 지니고 있다.

아주 작은 사소한 과거의 행적조차도 전부 의미가 있다.

무의미한 행동이라 여겼던 것이 불쑥 튀어나온다.

이미 가치를 상실했다고 여긴 것들이 복병처럼 덮쳐든다.

간신히 눈치 챌 때에는 이미 늦었다.

대국은 그의 손아귀에 있고 흐름은 그의 뜻대로 흘러간다.

‘단발성의 모략 따위로는 당해낼 수 없는 진짜배기다.’

그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책략을 내거나 십년에 걸쳐서 방대하고도 치밀한 모략을 세우고자 고뇌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보다도 단기간에 십년지계로도 부족할 대계를 그려내고 부지불식간에 완성시킨다.

그야말로 천재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지혜의 번뜩임이다. 그렇기에 더욱 기이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그가 보이는 한 가지가 이 모든 인상을 납득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단순한 천재라면 더럽게도 운이 좋다며 잠시 욕하고 금방 떨쳐낼 거다. 재능이 앞서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법이니까.

그렇지만 빌헬름 마이어의 번뜩임의 뒤에서는 언제나 전혀 다른 무언가가 보였다.

그렇다. 구태여 말하자면 <노련함>과도 같은 무언가가.

‘빌헬름 마이어. 그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하물며 일존육강의 일원이면서도 멸혼객의 의지에 저항하는 유일한 암흑조직의 보스. 그렇다는 건...’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의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빌헬름 마이어는 다크히어로라고까지 불리는 멸혼객과 동등한 반열에서 맞서 싸울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사고가 닿는 순간, 쿠로는 결심했다. 여기가 승부를 걸어야 할 분수령이다.

“외부의 연락망을 통해서 <길드> 전체에 급보를 보내라.”

“뭐라고 보냅니까?”

“우리는 브람지부 길드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빌헬름 마이어를 지지한다. 그는 영웅급 NPC다. 다른 지부에서도 기용가능한 모든 전력을 동원하기를 권장한다, 라고.”

길드원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무모합니다! 설령 빌헬름 마이어가 영웅급 NPC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습니까!?”

“무력형 영웅급 NPC라면 헛된 기대에 불과하겠지. 지금 날뛰고 있는 멸혼객처럼. 허나 빌헬름 마이어는 다르다. 그는 우리가 발견한 최초의 지략형 영웅급 NPC다.”

“그렇다는 건...!”

가능성이 보였다.

그것도 역대 최고에 이르는 엄청난 가능성이.

“그와 함께 한다면 미궁의 심층지대를 돌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태는 빌헬름 마이어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한층 더 급격하게 진전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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