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9 #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 =========================
#4 - 내 조직이 이상한 유명세를 얻었다(24)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해 대량의 몬스터들이 지상에 활개치더라도 최후까지 방어선을 펼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제 2 내성이다.
대마법방어진은 물론이거니와 온갖 물리공격에 대한 방어수단 및 방어마법진마저 갖추어졌다.
설계대로라면 진도 9의 대지진을 직격으로 맞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방어력을 갖추고 있다.
쩌적 쩌저적
그런 성벽에 조금씩이나마 금이 가고 있다. 멸혼객의 전심전력을 다한 일격이 성벽을 후려칠 때마다 온갖 마법진이 불길한 파열음을 내며 찢겨졌다.
붕괴와 파열만이 반복되는 와중에 기사단은 수성병기인 다연장 캐터필드(Multiple Catapult)까지 동원했다.
악을 쓰며 날린 십여 발의 거대한 투창이 멸혼객을 덮쳤지만 절망만이 커질 따름이었다.
콰과과과과!!!
반으로 갈라진 투창들이 그의 좌우를 스쳐지나가 허망하게 지면을 갈아엎다가 정지했다.
기계장치에 마법까지 동원해가며 급가속에 충격마법, 물리적인 중량으로 짓눌러야 할 십여 발의 투창들이 모조리 반으로 갈라지며 빗나간 것이다.
찰나 간에 모든 공격을 파악하고 순차적으로 투창들을 전부 베어냈다. 인간이 저만한 무위를 보일 수 있다는 시점에서 수성측은 완전히 절망에 빠졌다.
“틀렸다... 썩어도 한 때는 영웅이었던 자. 검의 극의를 깨우친 마스터 급 강자가 다섯 명 이상이 모이더라도 그를 당해내는 건 불가능하다.”
알큐러스 기사단장의 패색어린 중얼거림에 하이칼 경비총장마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우리들도 여기까지인가.”
한 때는 멸혼객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시장 측 세력이라면 능히 통제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위태로운 상황은 자신의 능력으로 억제할 수 있다고 여겼다.
말도 안 되는 오만이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딴 미친 생각은 접고 당장 미궁도시 브람에서 벗어날 거다.
다크히어로를 상대로는 동등한 영웅급 강자가 아닌 한,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
“그는 강하다. 동시에 영리하기까지 하지.”
강자 특유의 오만함에 스스로의 목을 조이지도 않았다. 암흑가에 일존육강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자신만의 세력을 양성해내기까지 했다.
브람 시의 모든 전력을 동원하더라도 육강을 저지하는 데 그치며, 결국 멸혼객을 상대할만한 실력자들은 모두 육강의 선에서 발이 묶인다.
최소 다섯은 있어야 진심을 보인 멸혼객과 결전을 벌일 수 있고, 못해도 일곱은 있어야 그와 동수를 이룰 수 있다. 그만한 수의 강자들이 모일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크윽!”
멸혼객이 기세를 끌어올려 막강한 일격으로 성문을 찢어발기려던 순간이었다.
“거기까지다!”
“!?”
후방, 누구도 예기치 못한 곳에서 대량의 마법진이 펼쳐지며 공성측 병력의 머리 위를 점했다.
“대마법사 하인즈!!”
멸혼객을 제외한다면 이 도시에서 제일가는 실력을 지닌 유력자다.
걸어 다니는 마탑이라고 불릴 정도로 지고한 실력과 자신만의 전신절기를 지닌 현역 노고수의 등장에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가 일었다.
단숨에 일반 부하 대부분의 생사권을 빼앗긴 멸혼객 또한 기세를 줄인 채 하인즈와의 대화에 응했다.
“기이한 일이군. 당신이라면 전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중립을 고수하며 도시의 주 전력을 온존시킬 거라고 여겼건만 내 판단이 틀리는 일이 이리 빈번이 벌어질 줄이야.”
“본래라면 그랬겠지. 허나 이 노구에게도 마침내 자신의 의지로 지지할만한 걸물이 나타났다면 얘기는 다르오.”
“대마법사 하인즈의 지지를 받는 걸물이 나타났다고? 크하하하하!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 하는 군. 변변찮은 꼭두각시라도 내세워 늘그막에 권력의 좌를 차지하려 하는가!”
하인즈의 노쇠한 얼굴에는 일말의 분노도 비치지 않았다.
그는 확신어린 어조로 외쳤다.
“네놈과 맞설만한 기량을 지닌 자는 이 나라에서 오직 이 남자밖에 없겠지.”
“나와 맞선다? 대등하게? 무슨 농담이냐.”
“그대는 이 늙은이가 농담 따위로 이런 자리에 나설 몸이라고 생각하는가?”
관전하던 모든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멸혼객의 발언이 멈췄다.
그 또한 하인즈가 그럴 인물이 아님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대체 이 도시의 누가 그에게 맞설 수 있는가.
대군조차 막아낼 제 2 내성을 단신으로 완파하기 직전까지 몰아붙인 멸혼객이다.
그에게 맞선다는 건 제 2 내성을 넘어설만한 실력을 전제조건으로서 지녀야만 한다. 그만한 실력자는 여태껏 단 한 명도 알려지지 않았다.
“흑산회 보스, 빌헬름 마이어! 그가 노구의 지지를 받아 이 혼란을 종식시킬 새로운 영웅이다!”
“빌헬름 마이어……!?”
좌중의 모든 실력자들이 멈칫했다.
확실히 그는 다르다.
실력자들도 선뜻 자신이 그보다 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멸혼객에 비교하자면 단언컨대 위는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그런데... 막상 비교해보면 아래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빌헬름 마이어라면... 어쩌면...”
“분명히 그가 보여온 모습은 전부 본신의 실력의 편린에 불과했었지.”
“수전노 쉔은 부하 선에서 정리하고 교주 라만에게도 가르침을 하사할 정도의 실력. 절정고수는 확실하나 멸혼객과 동격의 초절정고수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달리 말하자면 그가 멸혼객보다 하수라고 확정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흑산회는 유일하게 멸혼객의 군세에 합류하지 않았어. 멸혼객이라면 힘으로 억압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인가!?”
“대마법사 하인즈가 그를 옹호하고 있어. 저 노고수가 지지할 정도의 실력을 지녔다면... 가만. 하인즈만이 아니야! 뒤를 봐. 뒤를 보라고!”
“모험가길드. 장인협회. 연합상단. 시청 관료집단에 치유의 교단까지!? 양지의 거대세력들이 전부 하인즈와 함께 흑산회를 지지하고 있어!!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멸혼객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수성측과 합세해서 내 군세를 공격하기라도 할 작정인가?”
“그렇지 않소.”
“그럼 대체 뭘 노리고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냐!”
“거기서부터는 당사자가 밝히는 게 낫겠지. 묻고 싶은 말이 있거든 직접 묻도록 하시오.”
“빌헬름 마이어!!”
하인즈의 부유마법과 성량확대마법, 방어마법 등을 전신에 두른 빌헬름 마이어가 허공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침내 그의 차례가 되었다.
* * *
간신히 이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이 자리에 다시금 도착하는 건 두 번 다시 불가능한 일이다.
10년의 세월에 걸쳐 인계 CP를 모으고, 카이사르 급의 부하를 만들어 기적 같은 성과를 연이어 쟁취하고. 그런 일은 평생에 걸쳐 노력한다고 해도 두 번 다시 실현할 수 없다.
과거의 기억에 의지하고, 부하들의 유능함에 의지하고, 그렇게 물러설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지금이다.
지금 내가 선 자리가 가장 높은 곳이다.
진정한 내 역량을 시험받는다.
“멸혼객. 당신에게는 한 사람의 전사로서 경의를 표하지. 그대가 이룩한 실력은 분명 인류의 대부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지고한 경지에 닿았음이 틀림없다.”
“그걸 알면서도 네놈은 내게 맞서겠다는 것이더냐?”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뜰 수는 없는 법. 그대는 시장 브람베르크만을 적수로 생각했겠지만 그건 명백한 오산이었다. 당신의 진정한 적수는 바로 나, 빌헬름 마이어니까.”
한 시대를 풍미할 절대자를 상대한다고는 믿을 수 없는 한없이 권태롭고 나른한 어조.
그러면서도 자연스레 뻗어 나오는 기백에서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지배자 특유의 아우라가 발휘될 거다.
만인을 압도하고 군림하는 거대한 기백은 분명하게 발휘되었는지, 멸혼객이 품었던 일말의 방심이 사라졌다. 지금 이 순간, 그는 나를 자신의 호적수로 인정했다.
“분명 네놈의 수는 뛰어났다. 중앙정계의 늙은 것들도 이 나를 여기까지 몰아붙이지는 못했다. 네놈이 최초라고 할 수 있지.”
“그런가.”
“시장측 전력과의 결전에 시선을 분산시키며 중립세력 전원과 구 시장측 주요 인사들의 지지를 받아 돌아오다니. 네놈의 정치적 수완은 이미 이 나라의 정점에 도달했다.”
절대자인 멸혼객의 인정을 받았다!
이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품어온 의구심을 비로소 확신으로 만들었다.
빌헬름 마이어는 진정으로 멸혼객과 맞설 자격이 있다. 그 사실을 공언받자마자 나로부터 발산되는 기백이 한층 더 강력해졌다. 강자들의 인정을 받기에 더욱 더 강해지는 거다.
“더는 본신의 실력을 감출 필요가 없다는 건가?”
“이 정도의 기백이라면, 어쩌면!”
“멸혼객에게도...!”
거세게 일어나는 희망의 불길.
거센 감정의 격동이 전장의 전역을 뒤덮으며 타오른다.
그 불길은 단숨에 멸혼객의 발밑까지 도달하여..
“무르다!!!!”
짓눌린다.
군중의 감정, 흔들리는 의지, 얄팍한 동요.
그딴 수준으로는 범접할 수 없다.
“대마법사 하인즈. 중립세력의 강자들. 그 수를 모두 헤아리면 절대자에는 못 미치더라도 절정고수 일곱 명 분의 저력은 발휘할 수 있겠지.”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고 말할 셈인가?”
“당연하다. 이 나를 믿고 따라온 것은 암흑가의 육강만이 전부가 아니다. 신들의 농간에 저항하며 나와 함께 배신자의 오명을 무릅쓴 파티원들이 있다.”
“!!”
“종군사제 카라스. 소드마스터 데이만. 어쌔신마스터 베이테르. 세 사람의 전력으로 강자 셋의 발은 묶인다!”
남은 건 기껏해야 절정고수 네 명 분의 저력.
이것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나를 꺾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자 한다면 못해도 절정고수 여덟 명 분의 저력은 있어야만 한다. 네놈이 남은 네 명 분의 저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그렇게 주장할 셈인가!!”
할 수 없다.
내게는 확실히 그만한 힘이 없다.
그러나 여지는 남아있다.
‘놈은 무력으로 맞서지 않았다. 이대로 교전에 돌입하면 이길 수는 있되, 상처뿐인 승리가 될 테니까.’
공멸을 원치 않기에 자신이 지닌 모든 저력을 드러내어 철저하게 비교하고 상대를 굴복시킨다.
멸혼객은 나를 압도하기로 작정하고 나섰다.
지더라도 목숨은 잃지 않는다. 내 세력을 전부 흡수하고 그가 강자로서 군림할 뿐이다.
‘그렇게 만족하고 물러나라 이거냐?’
대단하다.
멸혼객은 힘뿐만 아니라 지혜를 발휘하는 법도 알고 있다.
한 때나마 영웅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자다.
그렇기에 더욱 오기가 들었다.
이대로 굴복할 수는 없다.
내게는 아직 발휘할 수 있는 저력이 남아있을 것이다.
“멸혼객. 네놈의 계산은 철저하게 잘못되었다.”
“뭣이 어째?”
“우선 네놈이 계산하지 않는 절정고수 급의 전력이 있다.”
카이사르와 리나가 부유마법을 받고 내 좌우에 도열했다.
그들의 실력은 아직 절정지경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둘의 모습을 본 누구도 그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티펙트가.. 대체 몇 개를 두른 거지!?”
“블랙마켓이다! 역시 흑산회가 블랙마켓을 털었어!”
“템빨로 부족한 경지를 메워버렸다!!”
군중들의 외침에 왠지 모르게 양심이 쿡쿡 찔렸다.
뭐. 왜. 뭐.
나는 템빨 같은 거 하면 안 되냐.
“크하하하하! 이건 정말로 놀랍군. 수전노 쉔을 꺾고 자금력을 쟁취한 건 이때를 위한 한 수였는가! 좋다. 이걸로 두 명을 채웠다. 남은 두 개는 네놈이라면 메울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허나 네놈 역시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잘못되었다. 네놈의 수 계산은 근본부터 잘못되었지!”
“!?”
“세월이 지남에 따라 강해지는 건 약자들만의 특권이 아니다. 강자 또한 노력을 들어 연마를 거듭한다면 강해질 수 있지. 오히려 그 성장 폭은 약자들보다 더욱 크다.”
말도 안 돼.
안 그래도 괴물 같은 수준의 강함을 지니고 있다고.
지금껏 보인 모습만 해도 충분히 넘사벽이건만.
“영웅으로서의 책무로부터 해방되어 20년간 수련을 거듭한 반 영웅.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반 영웅이 어디까지 강해졌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이십 명 분이다.”
“!!”
“절정고수 이십 명. 그 정도의 전력이 아니면 나를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앞으로 열 넷. 그만큼의 강함을 네놈이 단신으로 메울 수 있음을 증명해보아라!!”
끝도 없이 솟구치는 적색 아우라.
그 패도적인 기세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멸혼객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허. 무슨 보스몬스터도 아니고. 기가 막히네.’
기껏 필사적으로 좁힌 거리가 무색해진다.
페이즈 2 - 파워 업이라니.
뭐 이런 전투력 53만의 외계인 같은 새끼가 다 있지.
‘틀렸다.’
아무리 나라도 절정고수 14명 어치의 저력을 지녔다고 허세를 떨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실력이 아닌 나 자신의 실력이 그만하다고 주장하려면 그에 걸맞은 성과를 지금 이 자리에서 육안으로 보여줘야만 한다.
당연히 사기적인 공격스킬 따위는 전혀 갖추지 않은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직입니다. 보스는 모든 저력을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
“제가 모시는 보스는 고작 이 정도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카이사르는 악에 받친 외침도, 울분을 터트리는 외침도 내뱉지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사실을 전하려고 말했을 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전투력’이라는 카테고리를 회계스킬을 통해서 순식간에 재검토하였다. 지난 과거의 모든 행적을 되돌아보며 점검한 결과, 간신히 깨달았다.
“카이사르의 말 대로이다.”
“뭣이...?”
“네놈의 숨겨둔 저력. 절정고수 14명 어치의 전력. 남김없이 모두 추월해 짓밟아주겠다.”
그깟 수련 좀 했다고 잘난 체 하면서 유난 떨지 마라.
보스보정은 네놈만 받는 게 아니다.
흑산회 보스, 빌헬름 마이어의 저력은 이제부터가 진짜다!
============================ 작품 후기 ============================
보스전 매칭!
빌헬름 마이어 vs 멸혼객! 2차전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