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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06화 (106/224)

00106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 =========================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6)

영주성에 도착하자마자 말들이 기진맥진하며 주저앉았다.

다행히도 연금술사도 말을 멈춰 세웠다.

뭔가 저만치 앞에서 영주랑 얘기를 하고 폭음이 울렸던 것 같은데 들어와도 괜찮은 건가?

“…….”

그렇다고 뭐라 물어볼 기력도 없다.

[상태이상 ‘탈진(Lv1)’에 걸렸습니다.]

[상태이상 ‘근육통(Lv1)’에 걸렸습니다.]

[상태이상 ‘전신피로(Lv1)’에 걸렸습니다.]

지친다.

상태이상이 걸리자마자 가뜩이나 희박한 몸의 기운이 한층 더 희박하게 느껴졌다.

이런 상태에서는 말을 해도 어눌하게 울리고 동작도 어설프게 보인다. 최대한 말수를 줄이고 행동을 최소화하지 않으면 보스로서의 위엄이 살지 않는다.

“흐아아. 평소에 안 쓰던 근육을 쓰니까 너무 힘들어! 리나는 좀 쉬고 싶은데!”

“가서 말해라.”

“알았어! 저 무식한 연금술사한테 좀 쉬었다 가자고 할게!”

뒤는 리나에게 맡긴다.

힘들고 지치는 건 리나와 견습암살자들도 마찬가지다.

알아서 사정을 헤아리고 의사를 전달하리라.

리나는 연금술사와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결과를 전달하였다.

“보스! 저 연금술사가 우리를 깔보고 있어!”

“뭐?”

“이 정도 행군에 휴식을 취할 정도의 일행이라면 낙오시키고 목적지로 바로 향하고 싶대. 자기 역량을 시험받는데 시험관들의 무능함이 발목을 잡을 순 없다는데?”

어떤 새끼가 저놈한테 시험 같은 거 걸었냐.

가만……. 그거 나네.

“으음.”

솔직히 마음 같아선 여기서 휴식하고 싶다.

근데 자존심이 상하잖아.

보스로서의 위신도 걸려있고 힘에 부쳐서 못 따라간다고는 곧 죽어도 말 못하겠다.

게다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시험을 낸 장본인이다.

그런 내가 낙오되어서야 말이 되지 않지.

뭣보다 내게는 <치유의 목걸이>가 있으니 기력회복은 문제없다.

그러니 걸어서라도 움직이겠다면 함께 할 의사는 보인다.

말이 잔뜩 퍼져버렸잖아?

가고 싶어도 이동수단이 이래서야 어쩔 수 없지.

“말은 휴식을 필요로 한다.”

“알았어! 다시 전하고 올게!”

리나는 연금술사에게 쫄래쫄래 달려가 몇 마디 말을 섞고는 금방 돌아왔다.

“영지에서 새로운 말을 사래!”

“!!”

시발!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무슨 재료채집을 이 따위로 무식하게 하는 거야.

“취침과 식사는?”

“그건 미리 말해줬어! 말 위에서 달리면서 먹고 자래!”

“…….”

미친. 내가 아는 연금술사는 이런 터프가이가 아니야.

골골대면서 시약이나 뒤적거리는 약방 늙은이다.

아무리 타협해도 병약한 비운의 천재가 마지노선이다.

결코 전쟁터에서 선봉장을 설만한 전사 따위가 아니다.

근데 이 새낀 아무리 봐도 돌연변이 종이잖아.

정령이 정령마법 안 쓰고 워 해머 휘두르는 느낌이라고.

“어떻게 할 거야?”

“전원, 새로운 말에 탑승한다.”

보육원장도 개같이 빡센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만큼 빡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극한직업 보스 체험기도 아니고 이게 뭔 개고생인가.

절망적인 내심을 감추며 명령을 내리고는 말과 식량을 구비하고 있자니, 대뜸 디르트 영지의 영주가 왔다.

“제, 제 영지에는 어떤 용무로..”

“아. 네가 영주인가.”

“그렇습니다. 제가 디르트 영지의 영주, 디르트 자작..”

“말 좀 팔아라.”

“예?”

“적당한 놈으로 인원수 별로 끌고 와라. 돈은 뭐, 이 정도로 쳐주지.”

나는 나름의 잔머리를 굴려서 저액의 금액을 보여주었다.

이 정도 금액이면 형편없는 잡종말 밖에 못 산다.

말의 체력이 떨어지면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에 다른 말을 구매하면서 휴식할 기회가 생긴다.

“말을 준비해왔습니다!”

디르트 영지는 정치력을 요구하는 영주의 자리에 올라선 인물답게 내 의도를 간파했는지 상당한 시간을 들인 끝에 말들을 끌고 왔다.

그러나 정작 가져온 말들을 본 순간, 이 새끼가 나한테 좋지 않은 감정이 있음을 확신했다.

‘시발.’

하나같이 준마 소리는 들을 법한 뛰어난 말들만 엄선해서 끌고 나왔다.

“제 영지에서 가장 뛰어난 말들만 추려서 전부 끌고 나왔습니다. 제가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선택입니다.”

“그 돈으로? 이 말들을?”

“빌헬름 시장님에게 드리는 말을 싸구려로 내놓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부디 이 말들은 제 성의라고 생각하고 부담스레 여기지 말고 받아주십시오.”

웃는 낯으로 비수를 팍팍 박는 건 리나만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뚱땡이도 솜씨가 리나 못지않았다. 역시 정치하는 새끼들은 하나같이 다 속이 구린 놈들이다.

이 나를 상대로 면전에서 이렇게나 엿을 먹이면서 안 받을 수도 없지? 라는 느낌으로 약올리기까지 하다니.

“그런가. 이것이 디르트 영주가 내 호의에 보내는 답인가.”

“헉... 마,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겁니까?”

“최선의 선택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 허나 잊지 않겠다.”

예상치 못한 싸늘한 목소리에 놀랐다는 것처럼 당황하는 모습마저 가증스럽게 보였다.

역시 용서할 수 없다.

이 녀석은 내 상황을 대략적으로 전부 파악한 뒤, 의도적으로 날 엿 먹이고 있다.

“죄송합니다! 실은 영지에서 준마로 취급받는 말들 중 일부는 기병대가 출병하면서 끌고 나간지라... 그들이 돌아오면 지금보다 더 좋은 말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놈은 적이다.

“리나. 출발한다.”

“응!”

신호를 받은 연금술사는 곧바로 북문으로 말을 몰았고, 나 또한 말을 몰아 연금술사를 뒤따라 나섰다. 다음에 디르트 영지에 올 때는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거다.

* * *

디르트 영주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뭐지?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거지?”

빌헬름 마이어는 헐값에 가까운 대금을 지불하고 준마를 지급받았는데도 노골적으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서릿발 같았던 기세는 지금 떠올려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역시 무섭다.

브람 시를 집어삼킨 암흑조직의 보스다운 기백이 느껴졌다. 문제는 그 기백을 자신에게 유감없이 드러내며 우호표시를 모조리 무시했다는 데에 있었다.

“한 번 노선이 정해진 자의 전향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건가?”

오만이다.

놈은 성문을 부수고 말들만 데려간 채 성을 나섰다.

디르트 영지에 재기의 기회를 남겨두었다.

“이 내가 그렇게까지 얕보였단 말인가!!”

까득.

디르트 영주는 이를 악물며 분노를 못 이겨 몸을 떨었다.

“이놈들. 용서하지 않겠다. 아무리 무능한 나라도 중앙의 지원을 받는다면 발목을 잡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날 끝장내지 않고 살려둔 걸 후회하게 해주겠다!!”

격분한 영주가 책상을 주먹으로 쾅 내리친 순간이었다.

두두두두두.

기시감이 느껴지는 땅울림이 저 멀리서 느껴졌다.

“기병들이 돌아왔는가!”

한 발 늦었다고 해도 납득했다.

빌헬름 마이어와 조우한다면 맞설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오히려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특하다.

포상을 내리고 정예만 추려서 빌헬름 마이어의 뒤를 밟도록 지시하자.

그렇게 품은 결심은 태양 아래 눈처럼 녹아내렸다.

“아, 아니잖아...”

기병은 디르트 영지 소속이 아니었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황금갑주를 걸친 기사단.

그런 건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다.

브람 시 기사단이다.

그들은 디르트 영지를 지나치지 않았다.

성에 침입해 병사는 전부 죽였다.

전투의 달인들이 무차별적인 섬멸전을 개시했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는가. 기사단이 따라오고 있기에 내 목을 취하지 않고 다음 목적지로...!”

이제야 알았다.

죽음에 이르기 직전에서야 간신히 빌헬름 마이어의 사고에 도달하였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브람 시에 인접한 다섯 영지를 모두 순회하며 빌헬름 시장이 적이 될 자들을 몰살시켰다. 중앙과 연결되는 직통 수정구도 간섭마법에 의해 먹통이었다.

“흐헤. 흐헤헤. 다 틀렸다. 헤헤헤!”

디르트 자작은 실성한 채 웃음을 흘렸다. 그조차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푸확!

거대한 투창이 심장을 관통했다. 온 몸의 감각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워지고, 이내 대빙하에 잠긴 것처럼 차게 식었다. 곧 고통마저도 사라졌다. 디르트 자작은 사망했다.

* * *

중앙은 뒤늦게 디르트 영지에서 일어난 참상을 접할 수 있었다.

“빌헬름 마이어가 움직였다. 소수의 정예군을 이끌고 5개 영지를 순회하며 전쟁을 걸고 있다고 한다.”

“믿을 수 있는 정보인가?”

“브람 시에 심어둔 내통자가 직접 전한 정보다. 마법협회의 지원이 있는지 사방에 간섭마법이 펼쳐져 통신을 하는 것도 상당히 힘들었다고 하더군.”

실제로도 정보는 삼일이나 늦게 전해졌다.

그래도 중앙의 대귀족들은 안심했다.

“삼일이라. 적지 않은 시간이나 다섯 영지를 모두 점령하기에는 충분하지도 않은 시간이다. 기껏해야 최초의 공략지점에 급습을 걸어 성 하나를 점거한 수준이겠지.”

“지원군을 파견해야 하는가.”

“국경지대의 병력을 동원해야겠다. 북부 대수림의 경계를 지키는 레인저(Ranger), 동부 평야지대에서 야만국가를 경계하던 철갑중기병을 동원하라.”

최전선 3개 방면에서 군대를 돌려 압박한다.

부패한 대귀족 중 일부는 당황했다.

“그런 짓을 했다가 타국의 침략이라도 받으면 어쩌려 하는가.”

“그 때는 브람 시를 화살받이로 삼으면 그만이다.”

“과연. 그 방면의 요충지는 미궁도시 브람이지. 인접 다섯 영지의 영주성 또한 3개 방면의 군대가 동원되면 금방 수비라인이 굳혀질 터. 훌륭한 묘안이다.”

군사적인 지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정치력만 비대한 무능한 자들의 감탄이었다. 정작 작전을 입안한 헤오라츠 후작은 비웃음을 감추느라 곤욕을 치렀다.

‘자신들의 지지 세력을 멸혼객과 동급의 강자와 교전을 시켜도 좋다고 하는 모양새라니, 우습기가 짝이 없군. 뭐가 군사적 요충지냐. 일이 터지면 당장 적에게 돌아설 텐데.’

헤오라츠 후작은 중앙에서 진정으로 실력과 야망을 모두 지닌 자는 자신과 남부 7성의 지배자, 탈론밖에 없다고 여겼다. 오직 탈론만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눈치 챘군. 이 기회에 머저리 같은 세 짐 덩어리를 축출하자는 신호를.’

대패하더라도 세 개 군대의 세력도 어느 정도는 보존이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군사력이 약화된 세 대귀족의 세력을 탈론 공작과 함께 나누어 가진 뒤, 새롭게 재편된 중앙의 질서를 미궁도시 브람에도 보여주면 된다.

빌헬름 마이어가 아무리 뛰어난 간웅이라고 해도 복마전이나 다름없는 중앙정계의 실력자인 자신을 상대할 수는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이쪽의 군세를 당해내지 못한다고 쓰러지면 차라리 쉽다. 뛰어난 능력으로 격파하더라도 그 이후는 세 짐 덩어리를 낙오시키고 나와 탈론 공작의 시대가 열린다.’

어떤 경우라도 손해만큼은 없는 책략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실낱같은 불안이 존재했다.

만에 하나, 정말로 희박한 확률로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쪽이 흡수할 수 없을 정도로 세 개의 군세가 반 수 이상 몰살당한다면 중앙은 빌헬름 마이어의 실력과 악명을 감당하기 버거워진다.’

아무리 그래도 그럴 일은 없겠지.

헤오라츠 후작은 애써 불안한 예감을 지우려 애썼다.

‘...정말 그런 일은 없겠지?’

왠지 모르게 불안한 기분이 사라지지를 않았다.

============================ 작품 후기 ============================

-System : 헤오라츠 후작이 플래그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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