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7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 =========================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7)
세 개 방면의 군대는 자연스레 다섯 개 영지성으로 진군하였다. 그들은 신속하게 각 영지에 도달하였고 뻥 뚫린 성문을 지나쳐 성 안에 진입했다.
놀랍게도 빌헬름 마이어의 정예군은 이미 다섯 개 영지 중 네 개 영지의 영지군을 몰살시킨 뒤였다.
군단장들은 신속하게 정보를 공유하며 빌헬름 마이어의 소재지를 찾고자 했다. 정보공유를 마친 뒤에야 예기치 못한 사태에 직면했음을 깨달았다.
“없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어디에도 없다!”
“브람 시에 귀환하지도 않았다.”
그럼 대체 빌헬름 마이어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혼란스럽지만 실마리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는 대단한 기동력과 돌파력으로 각 영지에서 말을 바꿔타며 즉각 네 개 성을 점령해왔다. 그만한 실행력을 지닌 자가 브람 시를 둘러싼 마지막 영지를 놔둘 리 없다.”
다섯 개 영지 중 마지막 영지, 티오른 영지에 어떻게든 습격을 가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군단장들은 티오른 영지의 수비를 강화하는 한편, 인근지대에 샅샅이 수색망을 펼쳤다.
또한 정보를 수집하며 빌헬름 정예군의 동향을 파악하고자 했다.
“이상하군. 정예군의 주력을 담당하는 브람 시 친위기사단은 1km 밖에서도 번쩍거리는 황금갑옷을 입은 병신 같은 놈들이라 이렇게 철저하게 숨을 수 있을 리 없는데.”
“갑옷에 진흙을 묻힌 건 아닐까? 아니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접근하고 있다거나.”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면... 설마 지하인가!?”
세 군단장은 전율에 휩싸였다.
대군을 전개한 영지 성 내부에 토굴을 뚫고 나타난 진흙투성이 황금기사단.
자신들의 상징과 이쪽의 병력배치를 역이용하여 이쪽의 본진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참히 영주와 영주의 가신들을 도륙하고 달아나는 모습이 떠올랐다.
“빌헬름 마이어. 소문대로 무시무시한 귀계로군. 허나 간파한 이상, 맥없이 당하지는 않는다.”
“토굴을 찾아라! 적은 지하에서부터 급습을 가할 것이 틀림없다!”
“땅을 파헤쳐라! 발견하면 양면에서 놈들을 급습하거나 땅굴을 붕괴시켜 몰살할 수 있다! 초절정고수라도 대지에 짓눌리면 그걸로 끝이다! 압사는 피할 수 없다!”
군단장들은 자신들의 뛰어난 책략에 만족하며 수많은 대응책과 파생전략을 펼쳤다.
세 개 군단은 전력을 다해 영지 안팎에서 땅을 파헤치고 빌헬름 정예군의 행방을 찾고자 갖은 노고를 기울였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도록 성과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기에 모두가 회의감을 감추지 못했다.
“적은 정말로 지하에서 오는 것인가?”
어쩐지 조금 다른 의미로 삽질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정체된 상황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와중이었다.
“카이사르다! 악마계약자 카이사르가 나타났다!”
“멸혼객이다! 파괴신의 재림 멸혼객이 나타났다!!”
온 진영이 발칵 뒤엎어질 소동이 벌어졌다.
충격적인 두 인물이 나타났다.
흑산회의 주축이나 다름없는 초고수들의 등장이었다.
“놈들은 어디서 나타난 거냐!”
“병력은!”
“영지성 정면! 단 둘입니다!”
혼란은 한층 더 커졌다.
“대체 이건 무슨 책략이지?”
“빌헬름 마이어는 말도 안 되게 깊은 심계를 지닌 자. 방심을 유도하고 덤빌 전력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력을 다해 맞서고자 주 전력을 투입하면 영지 경비수준이 낮아진다.”
“그런가! 놈들은 카이사르와 멸혼객, 두 명을 막기 위해 주 전력이 이탈한 사이에 내성에 급습을 가할 작정이다!!”
세 군단장은 병력배분을 5 대 5로 나누었다. 빌헬름 마이어의 보이지 않는 책략에 맞서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의 책략은 보이지 않는 게 당연했다.
카이사르는 말을 바꿔가며 강행군을 한 빌헬름 일행을 놓쳐서 뒤늦게 다섯 개 영지성을 점령하려는 목적인가 싶어서 여기에 왔을 뿐이다.
멸혼객은 브람 시 내에서 뒹굴거리다가 시장이 재미난 일을 벌인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느긋하게 단신으로 성 밖에 나와 카이사르를 발견하고 합류한 참이었다.
즉, 전부 착각이다.
덕분에 카이사르와 멸혼객만 날뛰기 쉽게 되었다.
“보스를 찾으려면 이놈들을 전부 때려죽여야겠군.”
“애송이. 일전에 보니 기개는 있던데. 실력은 어떨지 구경해볼까.”
“좋다. 가토류 무술을 이어받은 이 카이사르의 저력, 똑똑히 두 눈에 각인시켜주겠다.”
브람 시를 둘러싼 최후의 장벽, 티오른 영지.
그곳에서 학살극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 * *
[카이사르와 멸혼객이 소속불명의 대군과 전쟁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구운 생선을 씹어 먹던 도중에 뜬 알림이었다.
이 새끼들은 어디서 뭐하는 거야?
카이사르가 걱정이기는 해도 멸혼객이 함께 있으면 전쟁터에 휩쓸렸더라도 죽지는 않겠지만 괜히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보스. 왜 그래?”
“별거 아니다. 잠깐 카이사르 놈이 어디선가 바보짓을 하는 기분이 들었을 뿐이다.”
“보스. 살인광 녀석이 막장이기는 해도, 지금은 저 연금술사 녀석이 좀 더 막장이지 않아?”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동안 무슨 관우도 아니면서 관문돌파를 하고 다니나 했더니, 네 번째 영지 내부에 있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미리 꼬장을 부려두지 않으면 수로를 이용하는 데 이런저런 제약을 두면서 귀찮게 굴 거라나 뭐라나.
“재료채집으로 대체 뭘 채집하려고 이동루트가 이래?”
“나한테 묻지 마라.”
저 관우 같은 새끼한테 물어라.
관우처럼 수염이라도 있으면 확 잡아당기기라도 할 텐데.
전신갑옷을 입어서 솜털 하나도 안 보인다.
“이봐. 연금술사.”
“어라. 시장님 아니십니까. 목적지까지는 아직 몇 시간은 더 걸릴 텐데 무슨 일입니까?”
“연금술사 주제에 왜 이리 체력이 좋지? 이쪽의 기사들보다 네 체력이 더 뛰어나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이다.
리델라프와 기사단은 배가 출발하기 직전에 허겁지겁 말을 몰고 달려와 배 위로 탑승했었다.
느닷없이 배 위에 난입하려다가 몇 명은 강변에 떨어지기도 하는 처절한 광경을 연출해서 이건 뭔 병신 같은 상황인가 싶었는데, 처음부터 있는 힘껏 쫓아오고 있었댄다.
“그야 저 사람들은 갑옷을 입었잖아요. 말에도 마구를 잔뜩 채워버렸고.”
확실히 그렇기는 하다.
전신갑옷을 입고 말에도 마구를 잔뜩 채워버리면 말이 감당해야 할 무게는 급격히 늘어난다.
아무리 힘 좋고 체력이 뛰어난 전투마라도 오랜 시간 추격에 나서다보면 지쳐서 추격이 원활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네놈의 몰골이나 보고 말해라.”
근데 연금술사 새끼도 전신갑옷 입고 말도 중무장했잖아.
어엿한 철갑기병이라고.
솔직히 이쪽의 마른 시금치처럼 쪼그라든 기사들보다 얘가 더 어엿한 기사 같다.
“제 체력이 놀랍다는 겁니까?”
“뭐 그렇지. 연금술로 체력을 늘리기라도 한 건가?”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날마다 가벼운 체력단련을 하면 누구나 저처럼 강건한 체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오오.
연금술사의 비전 수련법이라.
이건 꽤 관심이 간다.
“어떤 방법이지?”
“팔굽혀펴기 100회. 윗몸일으키기 100회. 스쿼트 100회. 달리기 10km. 이것들을 매일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하면 됩니다.”
“…….”
이런 시발.
신체개조도 아닌데 그딴 거만 한다고 인간이 너 같은 초인적인 체력을 지닐 수 있겠냐.
이 자식이 대놓고 나한테 거짓말을 치고 있다.
“넌 평범한 연금술사가 아니다. 취미로 양조를 하고 운동도 하는 연금술사가 있을 수는 있지. 그런데 너는 평범한 취미의 수준을 아득히 넘었다.”
“이건 심문입니까?”
“구두면접이다. 능력과는 별개로 신용이 없는 인재를 발탁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매 회차마다 유능한 NPC는 늘 있었다.
중요한 건 그들을 믿을 수 있는가, 라는 대목이었다.
믿을 수 없기에 적이 된 자들이 오죽 많았던가.
이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숨기는 게 많은 수상쩍은 자를 데려갈 수는 없다.
“제가 그걸 밝힌다면 어떤 혜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가산점. 평가의 상승.”
“스스로 범인의 영역을 넘었다고 평가한 결과물을 그저 약간의 면접점수와 평가만으로 얻어가겠다는 겁니까?”
연금술사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다.
놈이 지닌 비밀은 그만큼 대단한 거다.
연금술사가 저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다면 전투직종 클래스는 더욱 더 강해질 수 있다.
연단법(煉丹法). 이는 인체를 단련하는 고등한 기술의 정수로 수백 년의 무맥을 이어온 정통무가에나 존재할법한 비전기술이다.
그것이 그에게는 존재한다.
그렇지만 연금술사의 비전이 나, 빌헬름 마이어의 이름값과 흑산회의 지난 행적을 압도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흑산회 임시조직원들은 정규조직원이 되기 위해서 압도적 열세의 전력으로 거대조직을 격파해야 했다.”
“!!”
“흑산회 간부들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자신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지닌 강적들과 싸워 승리했다.”
“그건...”
“흑산회 보스인 나는 브람 시의 모든 유력집단 사이에서 불과 한 달 만에 최강의 조직을 양성해내고 이를 통해 브람 시의 정점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그것이 지난 한 달간, 나와 부하들이 이뤄낸 공적이다.
“그런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네 비전기술을 듣는 것이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게 당연하다.”
연금술사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군요. 인정하겠습니다.”
“비전기술의 정체가 뭐냐.”
“연단법입니다. 저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평범한 수련뿐만 아니라 연금술에 입각한 일종의 신체 개조술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금술사 비전의 신체개조술을 실현하는 방법이 바로 연단법이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사전에 미리 말씀드리지는 않았지만 지금 저희가 찾으러 가고 있는 재료 또한 연단법에 필요한 재료입니다. 흑산회의 이름값을 이용해서 재료를 얻을 작정이었죠.”
보아하니 지금까지는 그저 흑산회를 이용하려 했었지만 나와의 대화를 통해 마음을 연 모양이었다.
양조를 취미로 하는 연금술사 겸 창술사 지망생.
알고보면 흑산회를 이용해서 연단법에 필요한 특수재료를 수집하려는 비밀마저 갖고 있었다.
‘이거 위험한 새끼군.’
적이 되면 확실히 무섭도록 골치 아파진다.
‘그렇기에 아군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겠어.’
이놈은 끌어들여야 한다.
어떻게든 내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싸이코 같은 새끼는 다 유능한 법이니까.
믿을 수 없어서 문제라면?
믿을 수 있게 만들면 된다.
“채집하고자 하던 재료를 말해라. 재료습득을 도와준다면 그때는 진심으로 흑산회에 충성을 바치고, 네가 지닌 연단법을 내 조직 흑산회를 위해서 활용해라.”
“보스가 아닌 흑산회를 위해서 말입니까?”
“그렇다.”
“진심이십니까? 제 연단법은 병약한 연금술사도 어지간한 베테랑 용병 수준으로 단련시킬 수 있는 고등기술입니다. 그 혜택을 본인이 아닌 부하들을 위해 사용하겠단 말입니까?”
“필요한 자에게 필요한 힘을 선사한다. 탐욕 따위에 져서 합리적인 판단을 포기할 수는 없다.”
연금술사는 몹시 만족스러워하며 손을 내밀었다.
“브루투스입니다.”
“좋다. 브루투스. 원하는 재료는 뭐냐.”
“드래곤하트입니다.”
그래, 어지간히 비싼 물건이라면 내가 돈 주고 사서라도...
뭐?
“드래곤하트입니다.”
시발. 우리 지금 드래곤 잡으러 가는 거였어?
이런 개 미친.
재료채집 하다가 다 뒤지려고?
“걱정 마십시오. 당연히 드래곤과 직접 싸울 일은 없습니다. 물론 흑산회의 도움은 필요하지만요.”
“듣던 중 다행이군. 목적지는 대체 어디냐.”
“알폰스 왕국의 보물창고 심처에 드래곤하트가 있습니다. 거기에 들어가서 쓱싹 채집해오면 됩니다.”
야 이 싸이코 새끼야. 그게 어딜 봐서 채집이냐.
도둑질이잖아.
그것도 국가를 상대로 하는 도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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