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8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 =========================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8)
왕실 보물창고에 들어가서 드래곤하트를 슥삭 채집하겠다는 연금술사의 장대한 계획. 듣고 기가 막혔지만 막상 실현이 불가능하면 도중에 좌절되고 말 것이라 생각했다.
왕실 보물창고라고.
어감부터 철통같은 보안과 엄중한 경비체계가 예상되지 않는가. 어지간해서는 아무리 흑산회의 저력으로도 뚫을 수 없다고 핑계를 대면 계획은 쉽사리 무산될 거다.
‘미쳤다고 왕실에 전쟁을 걸어? 언젠가는 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카이사르가 무서운 기세로 성장을 거듭하며 백보권의 무술등급을 미친 듯이 상승시키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멸혼객의 반열에 오르려면 까마득하게 멀었다.
적어도 1년, 길게는 5년의 시간은 있어야만 한다. 흑산회의 전력 또한 늘어난 활동구역을 간신히 따라잡고 본격적인 무장부대를 창설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브루투스. 드래곤하트를 채집..하겠다는 네 야망은 인정해주지. 허나 왕실 보물창고까지는 어떻게 접근할 작정인가. 엄중한 경비는 또 어찌 뚫을 테고.”
“아. 그거라면 간단합니다. 저희들, 지금 수도로 가고 있거든요.”
“...뭐?”
“모르셨습니까? 이 수로를 따라 내려가면 수도에 직행으로 도착합니다. 앞으로 두 시간쯤 남았겠네요. 창고까지 가는 길은 신분사칭 좀 하고 뇌물만 뿌리면 길이 열릴 겁니다.”
“말은 꽤나 간단하게 해주는군.”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이쪽을 봐라.”
리나 밑의 견습암살자들은 기동훈련을 한다면서 다다다 달려가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 넘어진 놈한테 걸려 넘어지고, 거기에 걸려 또 넘어지고...
리델라프를 따르는 친위대원들은 체력이 방전되어서 새하얗게 탄 잿더미처럼 선실에 모여앉아 탈진해있다. 숨소리 빼고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려서 무서울 지경이다.
대장격인 리나와 리델라프는 어째서인지 포커를 둘 정도로 멀쩡해 보이지만.
“리나와 리델라프를 제외하면 나약한 부하들은 전력으로 활용할 수 없다.”
“보스는 도와주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내 힘은 이 자리에서 보여서는 안 된다. 지금은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
“흐음.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시장님은 시장님 나름대로 생각해둔 계획이 있을 테니, 그걸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 두 사람만 붙여주십시오.”
“괜찮겠는가?”
“오히려 보스는 얼굴이 너무 알려져서 곤란합니다. 브람 시를 집어삼킨 슈퍼빌런이 왕실에 나타났다며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할 테니까요.”
다행히도 이번 작전에 내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리나가 훗 하고 웃었다.
“후후후. 걱정 마! 리나가 언젠가 필요할 때가 올 거라 생각하고 이걸 준비했지롱!”
복면이다.
“…….”
“어때, 보스? 이거라면 괜찮겠지?”
“미안하군. 리나. 나는 복면 알레르기가 있다. 그걸 쓰는 건 선천적으로 무리다.”
“에에엑!? 정말이야!?”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번 작전은 네게 일임하겠다. 내가 함께할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위험하거든 즉각 작전구역에서 이탈하도록.”
그러자 대뜸 브루투스가 품에서 물약 하나를 꺼냈다.
“우연이군요. 마침 알레르기 면역포션이 있습니다. 이걸 복면에 뿌리면 3시간은 착용할 수 있을 겁니다.”
젠장! 뭐 그딴 세세하게 실용적인 포션이 다 있어!
나는 가슴을 움켜잡고 신음을 흘렸다.
“으음. 저주의 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군.”
“어, 어떡해! 보스, 괜찮아!?”
“피치 못하게 당분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다.”
순진한 리나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결의를 다졌다.
“걱정 마, 보스! 왕실 보물창고라면 보스의 저주를 해소할 수 있는 물건이 있을지도 몰라! 브루투스, 얼른 가자!”
“어쩔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리델라프님도 여기는 견습암살자들과 친위대원들에게 맡기고 저희와 함께 해주십시오.”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아직 두 시간이 남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배 위에서 서두른다고 방법이 있는가?”
브루투스는 품에서 스크롤을 한 장 꺼냈다.
“수도로 향하는 텔레포트 마법진입니다.”
시발놈아.
처음부터 그냥 그거 찢고 넘어갔으면 됐잖아.
지난 5일간의 개고생은 대체 뭐였던 건데.
“이왕이면 마지막까지 아껴두고 싶었지만 저주에 걸린 보스의 치료를 위해서라면 한 장 쯤은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이동을 위해 제 손을 잡아주십시오.”
“보스. 조금만 기다려! 꼭 저주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올 테니까!”
“어린 간부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친위대장 리델라프,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저희가 죽어도 되는 순서는 브루투스, 저, 마지막이 리나입니다.”
브루투스가 어째서 자신이 첫 번째냐며 불퉁하니 쏘아붙이기도 잠시, 스크롤을 찢자 전개된 마법진이 세 사람을 둘러싸더니 입체마법진을 형성하였다.
파아아아앗!
눈부신 백광에 휩싸인 세 사람은 빛의 기둥이 명멸하며 사라질 무렵, 이미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추었다. 텔레포트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거, 걱정 마십시오. 리나 간부님이 없더라도 저희들 견습암살자들이 최선을 다해서 암중호위를 맡겠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견습암살자가 다가와 넌지시 말을 건넸다.
리나의 빈자리를 걱정한다고 여겼던 걸까.
약해빠진 주제에 꽤나 기특한 소리를 하고 있구나.
“좋다. 믿고 맡기겠다.”
견습암살자들은 무표정하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술통 뚜껑을 열었다. 잠시 고민하던 암살자들은 대뜸 술통을 배 밖으로 기울여 내용물을 콸콸 쏟아버렸다.
텅 빈 술통을 통통 두들기고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명이 술통 안으로 들어가 뚜껑을 덮었다.
“…….”
이 녀석들 꽤 하드보일드하네.
그보다 무서워.
그 이전에 뭔가 민폐가 쩔어.
“보스. 큰일입니다.”
견습암살자들이 내 앞에 쪼르르 달려와 말했다.
“뭐냐.”
“남은 술통이 없습니다.”
“…….”
은신지점은 술통밖에 없는 거냐.
애초에 왜 술통에 숨어서 경호하려고 하는 건데.
“술통은 적이 접근해도 포착하기 힘들 텐데, 어떻게 경호임무를 하려는 거냐.”
“구멍을 뚫어두면 됩니다.”
사각사각
뭔가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까 술통 안에서 단검이 불쑥 튀어나왔다.
삐뚤삐뚤하게 잘린 구멍을 손가락으로 톡 찌르더니 자그마한 눈이 빤히 이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
역시 이 녀석들 무서워.
리나처럼 쾌활하지가 않으니까 뭔가 거부감이 든다.
“술통이 아닌 다른 곳에 숨어라.”
“어디에 숨으면 좋겠습니까?”
“호위대상에게 의지하려 들지 마라. 스스로 생각해라.”
니들 뭔가 무서우니까 나한테 말 붙이지도 말고.
빨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냉큼 사라져라.
슥슥
도리도리
암살자들은 이곳저곳 손짓하고 고개를 젓기를 반복했다.
암살장소를 찾는데 꽤나 난황을 겪는 모양이었다.
그보다 대포을 가리키지는 말아줄래...?
대포랑 같이 폭사해버리는 수가 있다고.
호위하기도 전에 영문도 모르고 덜컥 즉사해버린다고.
“힌트를 요청합니다.”
“...리나는 천장에 숨는 걸 좋아했지.”
그래도 리나의 후임들답게 조금 귀여운 구석이 있다.
나이도 다들 어린 편이고.
리나만큼은 아니어도 귀엽게 생긴 놈이 부대장 역할이다.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힌트를 줬다.
견습암살자들은 천장을 빤히 올려다보며 고민에 빠졌다.
나는 흥미진진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과연 쟤들은 어떻게 천장에 숨을까.
퍽 퍽
암살자들은 단검을 벽에 박고 단검을 밟아 천장 높이까지 올라갔다. 그리고는 천장을 단검으로 퍽퍽 후려치며 목재를 뜯어내더니 구멍에 매달려서 팔다리를 바들바들 떨었다.
힘이 부족해서 올라가지를 못하는 모양이다.
뭐 저런 안습한 녀석들이 다 있담.
보다 못한 나는 선실에 축 늘어져있던 시장 친위대원을 데려와서 말했다.
“저놈 좀 위로 올려줘라.”
“어린 나이에 참 딱해 보이는 놈들이군요. 알겠습니다.”
친위대원이 손을 뻗었다.
천장까지의 거리가 제법 되는 탓에 손이 닿지 않았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무상자를 들고 왔다.
‘저걸 밟고 올라가면 어떻게든 닿을 수 있겠군.’
친위대원은 나무상자를 밟고 올라갔다.
우지직! 쿵!
나무상자는 부서졌다!
“갑옷의 무게에 견딜만한 발판이 필요합니다. 작전활동 중에는 친위대 내부규정 상 갑옷을 벗을 수 없습니다.”
친위대원의 말에 견습암살자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튼튼해 보이는 물건을 가져왔다.
친위대원은 그 모든 물건을 한 발로 박살내며 자신의 육중함을 과시하였다.
어째서 도움이 되라고 데려온 놈이 새로운 골칫거리를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보다 그만 좀 부숴.
“으으.”
견습암살자들이 갑자기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하더니 가위바위보를 시작했다. 저마다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안도와 절망이 교차했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견습암살자 세 명이 바닥에 엎드렸다. 가차 없이 발을 내딛어왔던 친위대원도 움찔했다.
“갑옷무게까지 합치면 저 130kg입니다.”
“괜찮습니다.”
“괜한 오기로 허세 부리지 마요. 척추 부서집니다.”
“살려주세요.”
“에휴.”
친위대원은 대뜸 암살대원 하나를 짊어지더니 천장을 향해 휙 집어던졌다. 아등바등 팔다리를 휘젓던 암살대원이 천장의 뚫린 구멍 안에 쏙 들어갔다.
“던지기 힘듭니다. 괜히 구멍 옆에 맞으면 아프니까 날다람쥐처럼 사지 뻗지 말고 얌전히 날아가세요.”
견습암살자들은 얌전히 줄지어 서고는, 친위대원이 집어던질 때마다 얌전히 천장구멍으로 휙휙 들어갔다.
여유가 생겼는지 나중에 이르러서는 공중에서 휙휙 돌면서 들어가기도 했다.
친위대원도 도중에 재미가 붙었는지 씩 웃었다.
“마지막 한 분이군요.”
“저는 괜찮습니다.”
“이런. 나중에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면 불러주십시오. 덕분에 지친 몸도 풀리고 재밌는 경험도 했습니다.”
친위대원은 어깨를 붕붕 돌리며 선실로 돌아갔다.
견습암살자들과도 나름 친해진 것 같다.
아등바등 거리는 모습도 꽤 귀여웠고 좋은 구경거리였다.
“너는 어디에 숨을 거냐.”
부대장 소녀가 내 망토를 들추더니 등 뒤에 붙었다.
“!”
이 녀석은 꽤 영리하네.
멍청하게 천장에 날아간 놈들이 불쌍하게 여겨진다.
“움직이면 들킬지도 모르는데?”
“시험해보셔도 좋습니다.”
“흠.”
불쑥 호기심이 생겨 몇 걸음 가볍게 걸어보았다.
소녀는 자그마한 다리로 나를 따라 등 뒤에서 걸었다. 발걸음 소리도 안 들리고 움직임도 작아서 밖에서 보면 모를 것도 같다.
기습적으로 오른발을 옆으로 슥 뻗었다.
소녀는 동요하지 않고 몸을 틀어서 한쪽 다리 뒤에 찰싹 달라붙어 몸을 숨겼다. 작고 마른 체형인지라 몸을 숨기기가 편리한 모양이다.
‘리나가 어리거나 작은 놈들 위주로 견습암살자로 발탁한 이유를 알 것 같군.’
암살을 위한 은밀 행동에 있어서 작은 체구는 상당히 유리한 이점을 지니고 있다.
타닥 탁 타닥
나는 대뜸 탭댄스를 춰봤다.
“!!”
부대장 소녀는 허겁지겁 내 움직임에 의태하려 시도했지만 발을 헛디딘 나머지 망토 밖으로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하하하. 미안하군. 짓궂은 장난이었다.”
“괜찮습니다.”
뚱한 표정으로 그리 대답하는 모습을 보니 나름 심통이 난 모양이었다.
이 녀석, 엄청나게 귀엽고 재밌잖아.
암살자 부대장 소녀와 이런저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수도로 먼저 떠난 3인조나 후방에 남겨진 카이사르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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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장 소녀 의문의 귀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