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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09화 (109/224)

00109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 =========================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9)

배가 수도에 정박했다.

술통이나 천장에 숨었던 견습암살자들은 힘들게 숨은 보람도 없이 다시 나와야만 했다.

술통에 들어간 놈들은 뚜껑을 열고 나오려다가 키가 안 닿아서 그냥 술통을 부수고 시크하게 튀어나왔다. 이걸 귀여워해야 할지 무서워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천장에서 내려온 놈들은 그냥 귀여웠다.

덜덜

밑을 보며 다리를 내밀어 착지하려던 놈들이 겁에 질렸다.

보다 못한 친위대원들이 밑에서 손을 벌려 뛰어내리는 견습암살자들을 받아주었다.

암살자들은 무표정한 얼굴을 조금씩 붉히며 저마다 아끼던 연막탄이나 암기 따위를 건네주었다.

친위대원들은 머쓱하니 웃으며 마음만 받아주었다.

‘아. 뭔가 치유된다.’

싸이코들 사이에서 온갖 고생만 하던 지난 세월을 이렇게 보답 받는 것 같다.

인간은 귀여운 걸 보며 치유받기 위해 태어난 거야.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훈훈하고 만족스러운 광경이었다. 물론 선원들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였다.

“술통이 박살났잖아!?”

“천장은 왜 저러지!?”

존나 무심하게 생까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문득 견습암살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술통이나 천장을 부수면서 목재 부스러기가 옷 여기저기에 묻어있었다.

나는 견습암살자들의 옷에 묻은 목재 부스러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어쩔 거냐.”

“아.”

“배에서 내리기 전에 싹 다 털어라.”

견습암살자들은 자그마한 손으로 옷에 묻은 부스러기를 하나씩 떼어내었다. 정확하기는 한데 작업속도가 너무 느려서 지켜보기가 답답했다.

보다 못한 친위대원 한 명이 견습암살자를 들어올렸다.

“움직이지 마라. 한 번에 싹 털어줄 테니까.”

부웅 부우웅

친위대원은 한 손으로 견습암살자를 들어올려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탈탈 털어버렸다.

후둑 후두둑

암기와 암살도구가 옷 안에서 잔뜩 쏟아졌다.

“앗!”

“내려주세요.”

“미안.”

암살자는 떨어진 암기와 암살도구를 옷 안 여기저기에 끼워두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재밌었어요.”

“우하핫. 그렇지? 조카 돌보는 재주는 좀 있거든.”

“저도 해주세요.”

친위대원들은 견습암살자들을 탈탈 털었다.

암살자 부대장 소녀는 슬그머니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모르게 견습암살자들을 부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왜. 너도 털리고 싶냐?”

부대장 소녀는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필요 없습니다.”

짜식, 체면 차리기는.

귀여운 마음에 턱을 붙잡아 들어올렸다.

놀란 소녀가 눈을 깜빡거렸다.

슥슥

턱 아래를 살살 긁어주자 소녀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리나 대장님이 말씀하셨던 ‘포상’입니까?”

“그렇다. 이번에는 기특함에 대한 포상이라고 해두지.”

“…….”

부대장 소녀는 좋다고도 싫다고도 할 수 없는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이걸로 선박에서 내릴 준비는 마쳤다.

견습암살자들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탈탈 털어낸 보람이 있었는지 선박 및 술통 파괴행위를 저지른 범인으로 찍히지는 않았다.

“어쩜 좋아, 어쩜 좋아! 저 사람, 흑산회 보스잖아!”

“슈, 슈퍼빌런이다아아아!!”

“도망쳐! 이러다 전부 살해당할지도 몰라!!”

대신 내 얼굴을 알아본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팔방 달아났지.

신원을 검증해야 할 선원이나 선착장 주둔병력, 수도경비대들마저 도망치는 시민들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그간의 고생이 전부 개고생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견습암살자들이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수도의 주민들이 이리 환대할 줄은 몰랐군.”

이럴 줄 알았으면 리나에게 복면이라도 하나 받아둘 걸.

뒤늦게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안면에 철판이나 깔면서 나는 앞장서서 걸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친위대원들과 견습암살자들도 전방과 후열, 주변에 포진하며 경계망을 펼쳤다.

마치 도시에 침입한 역병무리가 된 것처럼 사람들은 우리가 눈에 보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달리고, 실내로 달아나고, 문과 창을 닫으며 단단히 틀어박혔다.

간혹 넘어져서 다리를 접질린 사람들은 두 팔로 엉금엉금 기면서 필사적으로 기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우릴 버리고 가지 마!”

“이 문 열어, 개새끼들아! 너희만 살면 된다는 거냐!!”

“엄마아아아! 으아아아아앙!”

“빨리 엎드려. 죽은 척 해. 주목 받지 말게 입 다물어.”

날 무슨 곰 취급이라도 하는 것처럼 한 남자가 내뱉은 말에 길거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입을 꾹 다물고 바닥에 쓰러지며 죽은 척을 했다.

“…….”

필사적으로 죽은 척 연기하는 모양새가 보기 안쓰럽다.

차마 앞에 가서 말을 걸기도 뭐했다.

놀라서 심장마비라도 걸려서 죽으면 또 내 잘못이 되잖아.

“음. 이건 좀 곤란하군.”

“확인사살이 필요합니까?”

“약한 것들을 괴롭히지 마라. 그냥 몇 마디 물어볼 시민이 필요할 뿐이다.”

친위대원들은 서로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뚜벅뚜벅 잡화점까지 걸어가더니 강철부츠로 나무문을 쾅 걷어찼다. 안에서 비명과 절규, 오열, 애원이 마구 터져나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윽고 잡화점 밖으로 나온 친위대원들은 다섯 명의 시민들의 목에 칼을 하나씩 겨눈 채 내 앞까지 끌고 나왔다.

“시장님이 질문을 원한다고 하셨다. 무엇이든 시장님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하도록.”

“거짓을 말하거나 수상쩍은 기색이 느껴지면 바로 목을 찌른다. 망설이지 말고 진실만을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마지막까지 필요한 입은 어차피 하나뿐이다. 거짓을 말하면 그대로 죽일 테니까 괜히 머리 굴리다 덜컥 죽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친위대원들의 살벌한 경고에 시민들은 눈물콧물 다 쏟아내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

이 녀석들 일 처리 방식이 왜 이래.

그냥 행인한테 말 몇 마디 건네고 싶었을 뿐이라고.

이러면 내가 완전 쓰레기처럼 보이게 되잖아.

“진정해라. 그리 어려운 질문은 하지 않을 거다.”

“흐으어으엉.”

“이 도시에서 제일 맛 좋은 음식점이 어디냐.”

배가 좀 고프거든.

어차피 동기화 비율 1%는 미각 따위 없는 수준이지만.

부하들은 맛있는 거 먹여줘야 좋아할 거 아냐.

“모으게어요.. 어어엉”

여자는 엄청 서럽게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저마로 모으게어요.. 어어엉.. 사여주에요.. 흐어엉”

“그럼 그냥 유명한 음식점이라도 말해봐라.”

“제가 압니다! 피쉬 앤 스테이크 하우스입니다!!”

갑자기 옆자리의 남자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

“말했으니까 전 살려주세요!”

“저 젊은이는 거짓을 말했네! 피쉬 앤 스테이크 하우스는 결코 수도 제일의 음식점이라고 할 수 없네! 단맛밖에 모르는 어린 것들의 착각일 뿐이라네!”

“뭐라고!? 이 영감탱이가 지금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사기 치려는 거냐!?”

어째서인지 청년과 할아버지가 싸우기 시작했다.

“그만들 하세요! 혼자만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추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냥 유명한 음식점만 말해도 된다잖아요. 저 아가씨가 말하게 해주세요.”

“댁은 빠져! 여자는 불쌍하니까 살아도 좋고 남자는 안 불쌍하니까 죽어도 된다 이거야? 나도 약자야! 약자라고!”

“흥! 남자답지도 못한 멸치 새끼가 지껄여대기는! 수치스러운 줄이나 알아!”

“아녀자 따위가 뭐가 어째!? 아무리 형편없어도 남자는 남자야! 어딜 감히 끼어들어?”

“니만 나이 먹은 줄 알아? 나도 나이 먹었어! 이 고오얀 놈이! 너 몇 살이야? 몇 살이냐고!”

어째서인지 청년과 할아버지가 한 편이 되고 아가씨를 지키기 위해 할머니가 2 대 1로 싸우기 시작했다.

“앗. 저길 보세요!”

줄곧 잠자코 눈치만 보던 다섯 번째 시민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빵집에서 빵봉투를 들고 나온 남자가 있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우리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빵봉투를 떨어뜨리며 가슴을 움켜잡고 쓰러졌다.

“…….”

팔이 움찔거린다.

눈치껏 죽은 척을 한 것 같았다.

“다 죽일까요?”

“그만둬라. 수도 한 복판에서 유혈사태를 일으킬 셈이냐.”

“죄송합니다. 뒷골목에 끌고 가서 처분하겠습니다.”

너희들 리틀 카이사르냐.

사고방식이 뭐 이리 무자비하고 끔찍하냐.

“시민들은 풀어줘라. 피쉬 앤 스테이크 하우스로 간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애송이들. 시장님께서 베푸신 자비에 평생을 감사하는 게 좋을 거다.”

“감사선물은 잊지 않고 보내는 게 좋을 거다. 우리들과 다수 마주치고 싶지 않다면. 선물은 물론 현금으로 받는 걸 가장 선호한다.”

누가 부패한 브람 시 공무원 아니랄까봐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대는군.

그보다 이놈들 그냥 흑산회 조직원으로 데려가도 되겠어.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를 않는다.

“주문은 어떻, 읍.”

긴장한 종업원이 혀를 깨물고 파르르 떨었다. 눈물을 찔끔 흘리는 모습이 하도 딱해보여서 간결하게 주문해줬다.

“메뉴판에 있는 거 전부 다 1인분.”

“알겠습니다.”

“만들어지는 대로 하나씩 테이블에 올려라.”

견습암살자나 친위대원 모두 내 주문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보아하니 언젠가 사석에서 나처럼 주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많이 들 텐데 벌써부터 불쌍해지네. 나야 골드가 억 단위로 있으니 상관없지만 쟤들은 돈도 별로 없을 거 아냐.

“이후의 일정은 무엇입니까?”

“특별히 없다. 식사나 느긋하게 하면서 일시 대기다.”

왕성 보물창고에 진입한 삼인조가 순탄히 채집임무를 마친다면 그대로 합류 후 탈출하면 끝이고, 일이 꼬여서 붙잡히기라도 했다간 어떤 식으로든 구출해야 한다.

어느 쪽이건 지금은 체력을 온존해서 이후의 움직임에 차질이 없도록 잔뜩 먹고 푹 쉬는 게 일이다.

나는 느긋하게 식사를 만끽하기 시작하였다.

* * *

같은 시각.

“당해낼 수가 없다!”

세 군단장의 보고를 들은 중앙정계의 대귀족들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빌헬름 마이어는 존재감만으로 세 개 군단의 발을 묶었다. 심지어 마지막 영지에 이르러서는 카이사르와 멸혼객에 의해 군대가 엄청난 타격을 입어버렸다.”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끝에 병력들이 후퇴하는 와중에 빌헬름 마이어의 행적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대체 어디에 있지?”

“헤오라츠 후작! 부디 지혜를 빌려주게. 이대로는 빌헬름 마이어의 간계에 의해 더욱 큰 타격을 입고 마네!”

헤오라츠 후작은 미간을 찌푸렸다. 앞선 네 개 영지를 통해서 이동할 수 있는 범위 내에는 다섯 번째 영지 외에는 전략적 요충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카이사르와 멸혼객을 전선에 내보낸 지금, 빌헬름 마이어가 대규모 병력의 눈을 속여 숨죽인 채 어디선가 은신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지도를 내려다보던 그의 눈동자에 경악이 가득 찼다.

“당했다!”

헤오라츠 후작이 지도를 쾅 내리쳤다.

“수로다! 당장 선착장을 확인해라!”

“급보입니다! 방금 막 수도 선착장에 빌헬름 마이어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정예병 또한 모습이 확인되었습니다.”

“한 발 늦었는가!”

대귀족들은 패닉을 일으켰다.

“맙소사! 설마 이 모든 게 수로를 통해 수도에 기습상륙을 하기 위한 양동이었단 말인가!?”

“안 돼! 수도방위군은 이미 멸혼객을 잡기 위해 파견되었단 말이다! 지금 수도에 그를 막을 수 있는 병력은 없어!”

“으아아아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당장 영지로 도망쳐야 해!”

헤오라츠 후작은 전율에 휩싸였다.

도망쳐야 한다.

빌헬름 마이어가 왕성으로 쳐들어오면 그대로 끝장이다.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어.”

수도의 방위수준은 미궁도시 브람 못지않게 뛰어나다. 이는 어디까지나 수도방위군이 온전할 때의 이야기.

병력의 대다수가 멸혼객과 카이사르를 제거하고자 이동한 지금 수도는 무주공산의 공백지대가 되었다. 누구도 수도가 급습당하리라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중앙정계의 대귀족들이 일제히 수도이탈을 감행하자 휘하 병력들 또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는 상류층들의 탈주로 이어지며 나아가 전 수도시민의 대 탈주로 직결되었다.

============================ 작품 후기 ============================

도망쳐어어어! 여긴 이미 틀렸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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