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0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 =========================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10)
만한정석마냥 한 상 거하게 차려놓고 식사를 만끽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공포의 클라인소드에 깃든 에고 <공포의 혈검사 클라인>이 당신을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했습니다.]
뭔지도 모를 검이 대뜸 날 인정했단다. 정말 상당한 시간이 걸린 끝에야 겨우 기억했다.
블랙마켓. 그때 경매에서 구매한 게 세 개 있다.
하나는 색마 걸 뺏어서 구매한 <성마의 왕관>. 다른 하나는 리나가 양도한 <부유하는 황금공>. 마지막이 백만 골드에 입찰했는데 아무도 입찰을 안해서 얼떨결에 산 애물단지였다.
그런데 실은 그거 말고도 따로 구한 템이 있다.
경매가 열리기 전에 쓸만하겠다 싶은 걸 미리 빼돌린 물건들이었다. 근데 이걸 왜 안 쓰고 있었지?
‘스펙도 가물가물한데.’
높은 지력 능력치로 인해 제공받는 시스템 보조기능 <메모장>을 꺼내 이리저리 뒤적거려보자 상세스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템 정보>
[공포의 클라인소드] [등급 : 마법] [분류 : 무기(장검)]
[기본]
-사용자에게 공포심을 받는 사람일수록 받는 피해가 증가하는 무기. 공포 비례 데미지를 가한다.
-‘공포의 혈검사 클라인’의 혼을 가두어 완성되었다.
<마법>
[공포보정]
-사용자의 모든 행동이 적대관계에 속한 모든 적에게 공포심을 선사하며 적대관계가 급격히 가속한다. 또한 사용자와의 의지력 대결체크를 진행한다.
-체크 성공 시, 적은 일정시간 공포둔화 상태에 걸린다. 체크 실패 시, 적은 일정시간 이성을 잃는다.
[유혈사태]
-모든 공격을 적중시킬 때마다 출혈과 고통, 공포를 일으킬 확률이 대폭 상승한다. 피격 받은 자는 의지력 체크를 진행한다.
-체크 성공 시, 상태이상이 경미한 수준에 그친다. 체크 실패 시, 상태이상이 급격히 악화된다.
<저주>
[공포탐닉]
-사용자가 타인에게 충분한 공포를 선사하지 못할 시, 의지력 체크에 돌입한다. 체크 실패 시, 클라인소드가 사용자를 공포에 빠뜨린다.
-의지력 체크에 성공 시, 클라인의 원혼과 연속해서 의지력 대결 체크를 진행한다. 직접대결에 실패 시, 클라인이 나약한 사용자의 정신을 박살낼 수도 있다.
<파훼법>
[동족우대]
-사용자가 공포를 탐닉하는 악마종족일 시, 클라인소드는 사용자를 대상으로 의지력 체크를 진행하지 않는다. 또한 클라인의 의지가 검의 사용을 돕는다.
-유혈사태 성능 상승, 기력 소모도 저하
[공포의 주인]
-클라인이 인정할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공포를 선사할 시, 클라인은 영구적으로 저주를 거둔다. 또한 해당 사용자에게는 자발적인 협력을 한다.
-공포부여 및 유혈사태 성능 대폭 상승, 기력 소모도 저하
온갖 마법장비를 섭렵했던 내가 봐도 기가 질릴 정도로 해괴망측한 검이다.
공포 비례 데미지라니, 이딴 참신한 기능은 처음 봤다.
선입견만 갖지 않고 순수한 성능만을 보자면 이처럼 나한테 어울리는 검도 없다.
‘아.’
이제야 기억났다.
전에는 저주가 무서워서 쓰기 싫어했었지.
“흠.”
호기심이 들어 검에 손을 얹는 순간이었다.
-휘둘러라! 죽이자! 다 죽이자아아아!!
시발 깜짝이야.
뭔 산적두목 같은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댄다.
-그렇다! 내가 바로 클라인이다! 피를 보자, 피를!!
-다 죽이자! 우리 둘이서 세계를 정복하는 거다!!
-피로 강을 만들고 시체로 산을 쌓아라! 혈겁을 펼치자!!
“…….”
나는 슬며시 검에서 손을 떼었다.
시끄럽게 굴던 목소리도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자아가 깃든 무기는 원래 다 이렇다.
‘생각해보니 황금공을 꺼낸 적도 없었군.’
주머니에 넣어두고 줄곧 잊었던 황금공을 꺼내보았다.
황금공은 웅웅거리며 진동하였다.
[부유하는 황금공에 깃든 에고 <황금의 마법사 테라치>가 당신을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했습니다.]
황금공은 구체안에 마나를 불어넣고 수식을 짜면 암기가 연성되고, 황금빛 광채와 함께 암기가 사출되며, 여기에 살해당한 자를 황금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
불필요한 사용욕구를 느끼다가 마나를 모두 소진하면 생명력과 기력을 소모하며, 그마저도 고갈되면 육체가 황금으로 연성당해 죽는 불길한 마도구다.
근데 주인으로 인정받아서 이제 저주에 걸릴 걱정이 없다.
-오오오! 1억 골드의 사나이가 날 봐줬어!
테라치는 예상 외로 깜찍한 소녀 목소리였다.
-사인해주세요!
대뜸 사인을 해달라고 해도 대체 어디에 해달라는 걸까.
의미 없지 않나.
-제 몸 위에 굵고 단단한 유성매직으로 주인님의 이름을 새겨주세요!
유성매직이면 되는 거냐.
이거 뭔가 물건에 낙서하는 기분이 드네.
그보다 얘 입장에서는 이거 타투인가.
일단 가지고 다니던 유성매직으로 황금공에 빌헬름 마이어라는 이름을 슥슥 써두었다.
주변에서 저게 뭐하는 짓일까, 하는 시선이 쏟아졌지만 반응하면 나만 민망해진다.
안면에 철판 깔고 시선이란 시선은 죄다 무시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혈검사 클라인에 비하면 황금마법사 테라치는 꽤 순종적인 편이다.
거부감도 안 들어서 계속 들고 다니고 싶다.
“오오. 보스. 그 공은 뭡니까?”
“폭탄입니까?”
“이 식당의 음식은 맛이 좋습니다. 쓸 만한 요리사는 이왕이면 미궁도시에 데려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나는 눈이 번뜩 뜨였다.
“좋은 생각이군.”
외부의 자원을 미궁도시로 유입한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올 놈은 알아서 오지만, 안 올 놈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
미궁도시는 거친 사나이들과 몬스터들의 소굴이며 힘 있는 자들이 많으니 그만큼 강력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다.
그런 겁쟁이들이나 수도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람들은 억지로 끌고 가는 수밖에 없다.
“마침 브람 시의 부패를 청산하며 투기 목적으로 쓰이던 부동산이나 자금이 대거 확보되기도 했지. 다소 강압적인 방식이 되겠지만 이들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닐 것이고.”
“좋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친위대원이 쓸 만한 의견을 내고 칭찬을 받자 부대장 소녀가 망토를 꾹꾹 당기며 시선을 끌었다.
“뭐냐.”
“중앙의 정적이 될 귀족들도 암살할까요.”
“그런 어필은 필요 없다.”
한 놈 죽이면 곧바로 전쟁 시작이다, 요놈아.
지금은 내실을 다질 시기다.
전쟁을 하면 좋든 싫든 돈이 깨져나간다.
아무리 지닌 돈이 많아도 전쟁 따위에 낭비하기는 싫다.
어차피 시간만 지나면 브람 시는 강성해진다.
종래에 이르러서는 압박도 불가능해질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굳이 전쟁에 눈 돌아갈 이유가 없다. 시작하면 왕국을 점령하기 전까지는 끝이 안 날 텐데 구태여 더럽게 피곤한 일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견습암살자는 견습답게 얌전히 수련이나 해라.”
부대장 소녀는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숙였다.
“네놈들. 따라와라.”
“저.. 수도에 남겨둔 재산은 들고 가도 됩니까?”
“당연히 된다.”
점원들은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가거나 가게 안에서 이런저런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준비를 끝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친김에 길거리에서 다른 시민들에게도 거절할 수 없는 권유를 하려고 했는데 사람이 안 보인다.
싹 다 사라졌다.
“……?”
견습암살자들이 발품을 팔아 정찰에 나섰다가 돌아왔다.
“싹 다 도망쳤습니다.”
“허.”
이거 실화냐.
수도 시민들이 죄다 튀어버렸다니.
“보스의 지배를 거절하는 반역도당입니다. 이참에 빈 집을 다 털어버리는 게 어떻습니까?”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어차피 내 것이 되지 못할 것이라면 이참에 싹 다 털어도 되겠지.”
어느 세월에 하나씩 털어갈지가 고민이었는데 그것도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해결되었다.
-이걸 사용해주세요. 주인님!
황금공이 대뜸 커다란 자루를 생성하였다.
[황금공이 탐욕의 자루를 선물합니다.]
[탐욕의 자루는 1000x1000칸에 달하는 수납공간을 지니고 있습니다. 비 생물체에 한해서 뭐든지 자루 안에 넣을 수 있으므로 안심하고 채집생활을 만끽해주십시오.]
대놓고 거하게 도둑질 한 번 해보라고 부추긴다.
이렇게까지 해주면 어쩔 수 없지.
일단 가볍게 창틀부터 담으려고 했는데 대뜸 집이 작아지더니 주머니에 들어갔다.
[소형 주택이 수납되었습니다.]
“…….”
혹시나 싶어서 옆집을 수납해봤다.
주머니를 들여다보자 수납내역이 펼쳐졌다.
[소형 주택 x 2]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탐욕의 자루는 일반적인 수납아이템이 아니다.
마법등급 아이템 <부유하는 황금공>에 깃든 <황금마법사 테라치>의 인정을 받은 뒤에야 얻을 수 있는 아이템으로 1억 골드는 모아야 겨우 인정받을 수 있을 거다.
평범한 게이머가 1억 골드를 모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못해도 3년은 걸리겠지.’
수십억을 주고 사는 최고급 럭셔리시트지 시리즈로 캐릭터를 만들어서 얻는 초기자금도 기껏해야 10만 골드에 불과한데 무려 천 배나 되는 1억 골드를 모아야 된다.
100위권 내에 드는 최상위 랭커가 아니고서야 아무리 실력파 게이머라도 달성 불가능한 거금이다.
상인으로서의 뛰어난 재능이 있더라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설령 대기업 사장이 오더라도 알짤 없다. 여긴 미궁세계고 힘없는 자는 도태되는 세상이다.
[소행 주택이 수납되었습니다.]
[대장간이 수납되었습니다.]
[약초점이 수납되었습니다.]
수도여서 그런지 건물 종류가 적잖이 많아서 100칸이 넘는 칸이 소모되기는 했지만 남은 수납 칸도 많다.
건물 단위로 물건을 수납하다가 문득 잘 정비된 도로에 시선이 닿았다.
혹시나 하며 손을 뻗어서 주머니에 넣으려 해봤다.
[정비된 도로가 수납되었습니다.]
“!!”
포장도로가 울퉁불퉁한 흙바닥으로 변했다.
도로정비 사업을 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아무래도 이 기능에 한계는 없는 것 같다.
[분수대가 수납되었습니다.]
[커다란 동상이 수납되었습니다.]
[가판대가 수납되었습니다.]
거침없이 집채만 한 물체들과 진짜 집들을 집어삼키던 탐욕의 주머니에 대뜸 제동이 걸렸다.
[이 소형 주택 내부에는 생명체가 존재합니다. 높은 확률로 소형 주택의 주인이 내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내부생명체(주인)을 소형 주택 밖으로 쫓아내십시오.]
[소형 주택의 주인이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유권을 포기하게 만들 시, 소형 저택을 수납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가장 간단한 방법은 소형 저택의 소유자를 죽이고 저택을 강탈하는 것입니다.]
“…….”
그제야 나는 수도의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수납할 수 있었던 비결을 깨달았다. 수도 사람들이 수도에 남겨둔 전 재산을 모두 포기하고 떠날 정도로 다급했기에 수납이 가능했다.
물론 그만한 소동은 하나밖에 생각할 수 없다.
악명이 50만을 돌파한 미친 존재감을 지닌 슈퍼빌런이자 흑산회 보스, 빌헬름 마이어의 등장이었다.
‘뭔가 이거 개쩌는데?’
몸만 가면 알아서 사람들이 도망치고 거기에 있는 주거지나 재산들은 전부 내 거가 된다. 실로 터프하면서도 실용적인 재산습득 방식이었다.
재산을 잃은 사람들이 울고불고 탄식할 모습은 뻔했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나마 대처할 수도 있다. 아니꼬우면 미궁도시 브람으로 이주하라고 배짱부리는 거다.
집도 주고 일자리도 마련해주고 세금도 우대해준다는데 지들이 안 오고 베기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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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집(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