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3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 =========================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13)
얼룩말은 무섭다.
그렇지만 큰뿔도마뱀이 열 배는 더 무섭다.
쾅 쾅 콰아앙
이쪽이 힘겹게 넘어선 바위산을 뿔로 들이받으며 박살내고 있는 광경은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산이 마구 들썩거리고 있다고.
간신히 산을 만나 따돌렸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안도했지만 막상 뒤를 보면 전혀 안도감이 들지 않는다.
“한 시간은 버틸 수 있을까?”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리나도 잔뜩 풀이 죽었다.
“보스. 리나의 조련스킬은 쓸모가 없는 걸까?”
“어.”
“너무해!”
너무하긴 뭐가 너무해.
너 같은 아이는 팩트로 좀 맞아봐야 정신 차린다.
“네가 직접 일으킨 결과다. 탑승물을 데려오라고 했지 언제 살인병기를 데려오라고 했냐. 이대로는 견습암살자나 친위대원들이 큰뿔도마뱀한테 치여 죽게 생겼다.”
“으으으.”
“방법을 모색해라. 몇 시간 뒤에도 저놈들이 계속해서 추적해오는 건 곤란하다. 기피하는 물질을 이동경로에 깔아놓는 방식으로라도 추적을 떨쳐내라.”
어차피 놈들이 바위산을 돌파하기까지는 대략 1시간 가량이 남아있다.
그 사이에 구린 냄새의 독초라든지 뭐든 이동경로에 뿌려두면 큰뿔도마뱀들도 접근하지 못할 거다.
“보스. 큰뿔도마뱀이 싫어하는 게 뭐야?”
저런 우주괴물 같은 도마뱀에게 천적이 있기나 할까.
진심으로 의문이 들었는데 있긴 있었다.
높은 지능 능력치가 상식정보를 제공해준 것이다.
[높은 지능 능력치에 의한 상식정보 습득!]
[마나 소모비용 1]
[큰뿔도마뱀의 천적은 소드마스터!!]
와나 이런.
소드마스터가 천적이 아닌 동물이 세상 어디에 있어.
검기랑 검강으로 다 찢어발기잖아.
이래서 싸구려 찌라시를 구매하면 안 된다.
살 거면 비싼 걸 사야지.
[높은 지능 능력치에 의한 상식정보 습득!]
[마나 소모비용 30]
[큰뿔도마뱀의 외장갑을 박살낼 수 없다면 광물독을 살포해야만 합니다. 큰뿔도마뱀은 광물독에 중독될 시, 체내에 품은 독의 성분이 변해 스스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큰뿔도마뱀에게 유효한 광물독에 대해서는...]
[추가결제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추가결제까지 해야 되는 거였냐!
[마나 소모비용 30]
[미니맵에 표기된 위치에 있는 연못 바위 아래에서 독성 따개비를 채집할 수 있습니다. 이 따개비를 이용해서 큰뿔도마뱀을 퇴치하십시오.]
역시 마나만 주면 안 되는 게 없군.
돌직구로 정확한 해결책을 직접 제시해준다.
나는 리나에게 연못의 위치를 알려줬다.
“거기 바위 밑에 있는 걸 채집해오면 된다.”
“알겠어!”
“되도록 많이 가져와야 하니까 견습암살자들도 데려가라.”
리나는 견습암살자들과 함께 우르르 연못으로 향했다.
작은 것들이 총총 달리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흐뭇해진다.
역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작고 귀여운 것들이 최고다.
“이번에는 믿어도 괜찮습니까? 또 이상한 걸 가져와서 사태를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건 아닐지 걱정됩니다.”
“걱정 마라. 고양이처럼 까칠하고 엉뚱한 면이 있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내게는 호의를 품은 아이다. 해가 되려는 짓을 의도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일단은 아이니까 지켜보라는 말입니까. 꼬맹이를 간부로 두어서 보스도 고생이 많으시군요.”
브루투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누구 흉을 보는 건지 원.
브람 시 인근에서 관문돌파 시작한 건 너였잖아.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네놈이라고.
난데없이 수도까지 가서 저택을 자루에 넣는 재미가 들려서 수도를 모조리 털어버리고, 용사한테 토벌당할 처지에 놓인 것도 전부 네 탓이다.
“용사가 찾아오면 넌 고기방패다.”
“예? 하하. 그거 재밌는 농담이네요. 어째서 웃지 않으시는 거죠? 어... 저기요, 보스. 농담 맞죠? 아니 정말 무섭거든요? 이 타이밍에 침묵은 진짜로 무서워진다고요!?”
시끄러.
넌 좀 엿 먹어봐야 해.
“휴. 이번에는 무사히 돌아오는군요. 서두르는 기색도 안 보입니다. 뭔가에 쫓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
“연못 밑에서 챙긴 게 꽤나 많나봅니다. 상반신이 안보일 정도로 커다란 뭔가를 안고 있네요.”
미친. 미궁세계의 따개비는 사람만한 크기냐.
스케일 봐라.
큰뿔도마뱀이 중독될 만도 하네.
“응?”
뛰어난 시력으로 리나 일행을 관찰하던 리델라프가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뭔가 예상치 못한 걸 발견했다는 반응에 나까지 저절로 불안해졌다.
“뭐냐.”
“그게... 직접 보아야 할 것 같다.”
“대체 따개비가 어떻기에...”
“따개비가 아니다.”
“뭐?”
“설명하기도 어렵다. 직접 봐라.”
리나 일행이 품에 안고 온 걸 보고 나서야 리델라프가 그토록 곤혹스러워한 이유를 알았다.
이 녀석들, 사람 몸통만한 크기의 잉어들을 안고 왔다.
[리나와 견습암살자들이 잉어킹 11마리를 습득합니다.]
[리나가 잉어킹에게 조련스킬을 사용합니다.]
[경미한 성공!]
[잉어킹들이 리나의 지시를 일정부분 따릅니다.]
[잉어킹들이 수면 위로 납치당합니다.]
[잉어킹들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기 시작합니다.]
[잉어킹들이 제압되었습니다.]
[잉어킹들의 리나를 향한 친밀도가 폭락합니다.]
[잉어킹들이 저주와 원망을 담아 힘차게 펄떡거립니다.]
[잉어킹들의 힘이 소진되어갑니다.]
“뭔 엉뚱한 걸 가져온 거냐!?”
“엑.. 그치만 보스가 말했잖아. 바위 밑에 있는 걸 채집해오라고.”
“넌 잉어킹을 채집하고 다니냐?”
“왕성 보물창고에서 드래곤하트도 채집하는데 잉어킹 채집이 뭐 어때서!”
“…….”
설득력 넘치는 반박에 할 말을 잃었다.
하기야 왕국 수도도 채집한 내가 할 말은 아니다.
리나는 활짝 웃으며 잉어킹을 내밀었다.
“게다가 봐봐. 이 잉어킹 귀엽잖아!”
잉어킹이 펄떡거렸다!
호흡곤란에 빠진 자의 몸부림이다!
“불쌍한 잉어킹은 그만 풀어줘. 숨을 못 쉬잖아.”
“아차. 그러네. 리나가 잘못했어!”
“알면 됐다.”
호수에 돌아가서 평화롭게 따개비나 뜯어먹고 살아라.
그런 훈훈한 마음을 품고 있는데 대뜸 푹찍 하는 소리가 나더니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리나의 단검이 잉어킹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
리나뿐만이 아니다.
견습암살자들까지 들고 있던 잉어킹을 죽였다.
11마리의 잉어킹이 주검이 되어 쓰러졌다.
“이걸로 잉어킹의 고통스러운 목숨을 풀어줬어! 지상에서 만난 시간은 짧지만 힘차고 귀여웠던 아이니까 분명 다음 생에는 강한 포식자가 되어 다시 태어날 거야!”
“…….”
“왜 그래, 보스? 혹시 신선한 잉어킹의 회를 먹고 싶은 거라면 참아줬으면 해! 보스의 잔인한 성격은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생충이 득실거리는 회를 먹는 건 곤란해!”
무슨 헛소리냐아아아!
방금 전까지 잉어킹을 동정하면서 평화로운 호수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그런 가엾은 놈들의 숨통을 비정하게 끊어버린 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잖아!
“...자제하겠다.”
그렇다고 생각한대로 솔직하게 말했다간 ‘생선토막이나 동정하는 약해빠진 보스는 필요 없어’라는 싸늘한 대꾸와 함께 심장을 단검으로 관통 당할지도 모르지.
내 시크한 대답에 브루투스와 리델라프, 친위대원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꽉 다물었다.
당장은 한가롭게 대화나 나누고 있어도 언제 비정하게 자신들을 내다버릴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두 눈에 훤히 보였다. 완전 나쁜 새끼라고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잉어킹을 고통스럽게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
“응? 보스, 누구한테 말하는 거야? 흐응.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변명하기는. 차가운 도시남자인 보스도 리나한테만은 상냥한 남자가 되고 싶었던 거야?”
“뭐라는 거냐 이 미친년이.”
아차.
나도 모르게 필터링 없이 생각이 그대로 흘러나갔다.
리나도 깜짝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쩌지.
빡친 리나가 포커암기술이라도 펼치면 오늘이 제삿날이다.
긴장하며 리델라프의 뒤로 몸을 피하려고 할 무렵.
리나는 불퉁하니 볼을 부풀리며 항의했다.
“보스. 카이사르한테 나쁜 말이 옮았어!”
“어?”
“질 나쁜 부하의 말버릇을 배우면 어떡해! 하마터면 리나의 섬세한 마음에 금이 갈 뻔했잖아. 일단은 리나도 여자아이니까 조금쯤은 신경 써달라구.”
엄청나게 높은 호감도 수치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다.
2차 호감도 락도 진즉에 풀렸다.
상당한 수준의 애정을 품고 있으니 사랑의 힘으로 내 험한 언동을 알아서 납득한 모양이었다.
“미안하다.”
“그럼 사과의 의미로 그거 해줘!”
“그거?”
“아이 참. 둘이 있을 때면 언제나 하는 그거 말이야.”
“…….”
오해를 부르기에 딱 좋은 표현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부하들의 시선이 묘하게 변했다.
“악마 같은 단주도 보스 앞에서는 한 사람의 온순한 여자가 되는 건가.”
“저런 꼬맹이와 그렇고 그런 일을 하다니. 잔혹한 흑산회 보스답군.”
“부럽다. 격하게 부럽다.”
한 치의 가식도 없는 솔직한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마지막 말을 내뱉은 놈에게 몰렸다.
연금술사 브루투스였다.
모두가 저 또라이 새끼라면 저런 말을 할 법도 하지, 하는 얼굴로 납득하였다.
오해하지 마라.
라고 말해봤자 오해하지 않을 녀석은 없을 거다.
그래서 그냥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슥슥
나는 리나의 턱밑을 살살 간질여주었다.
리나는 몹시 만족스러워했다.
턱을 간질여주는 행위를 애정표시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조교 완료인가.’
묘한 성취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
견습암살자들이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다.
특히 부대장 소녀가 그렇다.
이미 한 번 쓰다듬을 당해봤기에 그 때의 감각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흐흥.”
리나는 모두의 시선을 즐기며 자랑스레 턱을 치켜 올렸다.
집사에게 사랑받는 고양이 같은 얼굴이다.
꼬리가 있다면 살랑거리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래. 리나는 이런 귀여운 맛이라도 있으니 참아주지.’
카이사르가 여기에 있었어봐라.
잉어킹을 들고 와서 퍽 하고 바닥에 패대기쳤겠지.
필요 없다고 하면 즉석에서 토막 칠 거다.
뻔뻔하게 ‘뭐 불만 있냐? 새꺄.’ 하는 띠꺼운 표정을 지으면서 쏘아보는 건 당연하다.
한술 더 떠서 싱싱한 잉어킹으로 회를 떠서 들이대면서 보스에게 바치는 선물입니다. 설마 제 선물을 거절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겠습니다. 따위의 말이나 하겠지.
‘어휴.’
카이사르 따위는 영주성에 처박혀서 백보권이나 개량하도록 방치해버릴 테다. 낙마한 뒤로 별 다른 시스템 알림도 안 떴으니 사고 같은 것도 안치고 얌전히 있겠지.
리나가 휴가 갔을 때처럼 특수한 상황에서는 시스템 알림이 안 뜨는 경우도 있지만 설마 지금이 그런 경우겠어?
애초에 지금 남 걱정을 하고 있을 때고 아니다.
“빌헬름 시장. 큰뿔도마뱀들도 잉어킹의 시체를 먹느라 시간이 더 지체될지도 모른다. 이틈에 거리를 벌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왕 죽은 시체를 미끼로 이용하자는 건가. 괜찮은 책략이군.”
리델라프를 우쭈쭈해주자 녀석이 이 정도는 별 거 아니고 당연하지만 칭찬받아서 기분 좋음, 이라는 얼굴로 친위대원들을 인솔하였다.
짜식, 꼴에 남자라고 부하들 앞이라서 체면 차리기는. 기특한 말도 했으니 그냥 모르는 체 넘어가주자.
“...”
그렇게 결단을 내리고 달린지 어언 한 시간 째.
저만치 뒤에서 지축이 뒤흔들리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어째서인지 미끼가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잉어킹이 맛없어서 분노한 큰뿔도마뱀들이 몰려오는 건가.
흘끗 뒤를 돌아보던 리델라프가 대뜸 비명을 내질렀다.
“억!”
“뭐냐. 대체 뭘 본 거냐.”
“오우거입니다! 오우거가 큰뿔도마뱀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뜯어먹으면서 쫓아오고 있습니다!”
“이미 먹이가 있는데도 우리를 쫓아온다니, 믿을 수가 없군. 돌연변이인가?”
“아닙니다. 오우거는 더럽게 탐욕스러운 생물체라서 피냄새를 맡고 쫓아올 수도 있습니다.”
잉어킹의 피비린내 우리까지 먹잇감으로 인식됐나보다.
“그래도 걱정 마십시오. 인내심도 짧은 놈들이라서 적당히 거리만 벌리면 금방 떨어져나갈 겁니다.”
리델라프의 확신어린 주장과 달리 오우거는 겁나 끈질기게 추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잠깐.
잉어킹의 피비린내를 맡고 쫓아오는 거라면 저놈은 지금 육지를 달리는 물고기를 쫓는다고 생각할 거 아냐.
젠장.
나 같아도 신기해서 쫓아보고 싶겠다.
============================ 작품 후기 ============================
오우거의 시점 : 육지를 달리는 잉어킹 무리
띠요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