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4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 =========================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14)
헤오라츠 후작은 왕실정보부를 추슬러 빌헬름 마이어의 동향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였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어쩌면 자신은 생애 단 한 번뿐인 기회를 발견한 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반나절 만에 수도를 파멸시킬 정도로 힘을 발휘했다. 아무리 빌헬름 마이어라도 무리한 시도였는지 고작 달리기만으로 숨이 차오르며 지친 기색이 역력하더군.”
절대지경에 접어든 절대고수가 고작 하찮은 야생동물이나 몬스터를 상대로 쫓기며 이렇게까지 지치는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특히나 빌헬름 마이어는 여타의 절대자들과는 다르다. 암흑조직 흑산회와 미궁도시 브람이라는 음지와 양지의 세력을 모두 지니고 있다.
수도에서 브람 시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지금. 그를 지킬 수 있는 건 몇 안 되는 정예병이 전부이다. 심지어 카이사르와 멸혼객도 곁에 두지 않았다.
“북부에서 교전에 돌입한 3개 방면 군은 멸혼객에 의해 반파되었지. 허나 그들의 희생 덕분에 멸혼객 또한 전력을 비축하고자 브람 시로 퇴각했다.”
절대자인 멸혼객이 후퇴했으니 종적을 감춘 카이사르도 함께 퇴각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브람 시에서 군대가 우르르 몰려나올 걱정도 없다.
“브람 시에서 병력이 집결하는 움직임이 포착되었다고는 하나 그들은 수비에 전념하고 있다. 수도방위군을 이용해 브람 시를 압박하면 대군의 합류는 저지할 수 있다.”
왕국정보부 정보요원들이 긴장어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지금이 더할 나위 없는 호기인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게 최선입니까? 이동루트 상의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요새화하는 작업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습니다.”
“적은 기껏해야 빌헬름 마이어를 따르는 부하 이십여 명에 불과하다. 확인된 간부 급 인원도 성문을 녹이는 연금술사와 꼬맹이 암살자, 친위대장 리델라프가 전부다.”
“빌헬름 마이어의 적들도 언제나 그들의 저조한 전력을 얕보다가 호된 꼴을 당했습니다.”
헤오라츠 후작은 싸늘한 조소를 지었다.
“안전한 곳에서 명령을 내리기만 할 뿐인 멍청이들이라면 그랬겠지. 나는 다르다. 이곳 최종방어선에서 사방에서 끌어 모은 병력들을 통솔하며 총사령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남부 대수림을 평정한 헤오라츠 후작님이 지휘를 맡아주신다면 어떻게든 될지도... 아니, 틀림없이 흑산회 보스를 제거할 수 있겠지.”
“그렇다. 내가 전선에 함께 머무르는 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귀계를 펼치더라도 빌헬름 마이어는 오늘 이곳에서 죽는다. 포위망은 이미 펼쳤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사방에서 몰아닥치는 병사들의 습격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다. 헤오라츠 후작은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큰일입니다! 예상치 못한 돌발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빌헬름 마이어의 정예병들이 조금 전에 제 1 방어선을 돌파했다는 보고입니다!”
“뭐라고! 이쪽의 계획을 눈치 챘단 말인가!”
정보요원들의 동요에도 헤오라츠 후작은 아랑곳 않았다.
“추태를 보이지 마라. 그 또한 상정범위 이내의 행동이다. 포위망이 좁혀지기 전에 전면돌파를 감행하는 게 최선의 책략임은 빌헬름 마이어도 간파할 수 있겠지.”
“그럼 큰일이지 않습니까!”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반드시 전력손실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함정들을 설계해두었다. 방어선이 돌파되는 즉시 트랩 마법진이 발동해서 폭발을 일으킨다.”
제 아무리 고강한 고수일지라도 체내에 보유한 내기와 마나가 모두 소진된다면 초인적인 전투력이나 기적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내기와 마나가 모두 소진된 뒤에 폭발이 일어난다면 그때부터의 충격은 전부 순수한 육체의 내구력만으로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틀림없이 죽는다. 빌헬름 마이어도 여기까지이다.
‘가공스러운 저력을 지닌 흑산회 보스를 제거한 뒤에는 구심점을 잃은 브람 시의 유력집단 간에 분열을 유도하고, 오합지졸이 된 적성세력들을 하나씩 굴복시킨다.’
이 모든 걸 자신의 이름으로 진행한다면 그 공적은 능히 브람 시를 집어삼키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해진다.
수도가 파멸해버린 지금, 이 나라의 새로운 구심점은 미궁도시 브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곳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격변하는 알폰스 왕국 정치계에 새로운 구심점이 되어 자신을 위주로 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왕의 지위조차도 노려볼 수 있다!’
빌헬름 마이어를 제거하면 그만한 미래가 보장된다.
실패할 수 없다.
실패할 리도 없고, 실패해서도 안 된다.
“제 2 방어선이 돌파 당했습니다!”
“제 3 방어선에서 지원을 요청합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헤오라츠 후작님. 정말로 계획대로 되고 있는 게 맞습니까!?”
솔직히 예상보다는 돌파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 그래도 피해는 쌍방에 동시에 누적된다. 방어선을 돌파할 때마다 폭발이 일어나니 어쩔 수 없다.
지금쯤이면 빌헬름 마이어는 모든 내기와 마나가 고갈되었을 터. 이 앞으로는 부하들의 내기와 마나 또한 급격히 소모되어 그의 정예병들도 전력 외가 될 차례이다.
“제 3 방어선 돌파!”
“제 4 방어선 교전 돌입합니다! 최종방어선에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무시해라. 버림패들의 사정에 신경 써서는 안 된다. 주 전력은 전부 최종방어선에서 일제섬멸공격을 퍼부어야만 한다. 최종방어선의 전력은 온존시켜라.”
지령을 내리는 와중에도 헤오라츠 후작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긴장감이 가시지를 않는다.
모략가로서의 본능이 그에게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놈들이 어떻게 방어선을 돌파하고 있지?”
“예?”
“무슨 수를 써서 돌파하고 있는지를 말하라는 거다.”
정보요원은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뭐? 그럼 지금까지 감시는 어떻게 한 거냐.”
“멀리서 망원경으로 보고 있었는데 암기가 날아와서 망원경을 부쉈습니다.”
“…….”
왕실의 힘을 약화하기 위해 왕실 정보부에 등신들만 대거 발탁하고 무능하게 만든 건 중앙귀족들이다. 이들의 무능함을 탓해봤자 제 얼굴에 침 뱉기다.
다루기 좋은 수족이자 내부사찰에 유용한 패라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그것만이 전부가 되었다.
지난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전장에서 왕실정보부는 정확한 정보의 습득에 실패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발을 빼기에도 너무 늦었다.
‘여기까지 저지른 이상 후퇴는 없다.’
무조건 오늘 이 자리에서 흑산회 보스를 제거한다.
다음은 없다.
빌헬름 마이어는 자신의 정적을 살려두지 않는다.
수도 못지않은 복마전인 미궁도시 브람에서 불과 한 달 만에 최고권력자로 급부상한 실력자다.
그의 실력과 야망은 감히 자신이 견줄 수 없는 진짜배기임을 직감하였다. 다른 기회, 다른 장소라면 패배하는 건 틀림없이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 지금이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궁수대, 공병대, 마법대! 순차사격 준비!”
300명의 궁수와 20명의 투석병, 5명의 마법사가 융단폭격에 가까운 공세를 퍼붓는다.
모든 마나와 내기가 소진된 인간이 순수한 육체적 능력만으로 이만한 공세를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계획은 완벽했다.
“제 4 방어선 돌파!”
“목표가 접근! 자, 잠깐만! 저게 뭐야!?”
“너무 커. 이 거리에서 저 정도 크기라면 5m도 넘는다고!”
상대가 정말로 <인간>이었다면 말이다.
“오우거다! 오우거가 나타났다아아아!”
“오우거가 왜 여기서 나와!?”
“8m다! 8m급 챔피언 오우거가 나타났다아아아!!”
헤오라츠 후작의 손에 들린 지휘봉이 지면에 떨어졌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
다중교차사격?
투창부대와 방패병, 창병들로 이루어진 포위진?
사방에서 조여드는 회(回)자 형태의 포위?
전부 무의미하다.
오우거는 강력한 항마력과 내구력을 동시에 갖췄다.
8m급이면 지금껏 입은 피해도 경미할 거다.
그가 필사적으로 준비한 모든 수가 거짓말처럼 8m급 오우거라는 변수 하나에 모조리 무너져 내렸다.
“빌헬름 마이어. 설마 이 모든 게...”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수집해왔던 정보들과 자신이 내린 결단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왕실정보부가 빌헬름 마이어 일행을 쫓는 몬스터 무리와 이에 급격히 지쳐가는 빌헬름 마이어의 정보를 물어오고, 망원경은 암살자의 장거리 역습에 의해 파괴되었다.
의도된 함정이었다. 그는 자신을 이 자리에 나서도록 만들고자 의도적으로 약점을 보이고 후속정보의 제공을 차단했다. 그리고 단숨에 최강의 몬스터를 아군으로 만들었다.
“이 모든 게... 네놈의 계략이었단 말이냐! 이 헤오라츠 후작을 제거하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빗발치는 화살과 투석구, 마법들을 온몸으로 튕겨내며 오우거가 맹렬히 돌진했다. 쓰레기를 치우듯이 팔로 지면을 쓸어버리자 근거리 부대가 전멸했다.
거대한 발이 지면을 쾅 내려밟자 국소적인 지진이 발생하며 원거리 부대가 무력화되었다.
성난 오우거가 손바닥으로 다시금 지면을 쓸어버리자 원거리 부대는 그대로 궤멸해버리고 말았다. 마치 장난감을 치우는 것처럼 간단히 주력부대가 전멸해버렸다.
원군? 그딴 게 올 리가 없다.
오우거가 미쳐 날뛰고 있음을 확인하는 즉시 전 부대가 사방팔방으로 도주할 거다.
끝났다. 목숨을 건 도박은 처절한 패배로 끝났다.
오우거의 오른 손 위에서 나른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빌헬름 마이어를 보는 순간, 헤오라츠 후작은 모략가로서의 마지막 자부심마저 산산조각 나버렸음을 깨달았다.
지치지 않았다.
빌헬름 마이어의 전력은 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직접 나서지 않았다. 자신 따위는 그럴 필요조차도 없는 하찮은 잔챙이에 불과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중앙정계 서열 2위로도 네놈의 아성에는 미치지 못한단 말이더냐. 정녕, 정녕 이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 차이가 존재했단 말이더냐!! 쿨럭, 크헉, 끄으으으으...!”
격심한 좌절감이 헤오라츠 후작의 신체를 붕괴시켰다.
숨을 쉴 수 없다.
저 자를 보면 한 호흡의 숨결조차도 들이쉴 수 없다.
격이 다른 괴물을 상대한다는 두려움만이 전부였다.
도저히 살고 싶은 마음조차도 들지 않았다.
퍽
극심하게 솟구친 혈압이 전신 혈관을 터트렸다.
내부에서 일어난 출혈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며 구멍이란 구멍에서 검은 피를 쏟아내었다.
그로서도 모자라 피부의 틈에서마저 핏방울이 맺히며 피투성이 혈인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중앙정계의 서열 2위라고는 믿을 수 없는 처절하다 못해 참혹하기까지 한 최후였다.
“으아아아악! 암경이다! 빌헬름 마이어가 헤오라츠 후작을 격살했다!!”
“도망쳐─! 상대는 괴물이다!”
“이길 수 없어. 오우거와 빌헬름 마이어, 어느 쪽도!”
왕실정보부와 살아남은 방어병력은 전의를 상실한 채 사방팔방으로 달아났다.
* * *
[당신은 헤오라츠 후작이 고안해낸 필살진법 회류격멸진(回流擊滅陣)에 조금의 피해조차도 입지 않고 이를 완벽하게 파훼하였습니다.]
[중앙정계의 서열 2위이자 숨은 흑막으로서 많은 귀족들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해왔던 헤오라츠 후작 또한 당신의 급습을 막아내지 못하고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 경이로운 활약이 대륙 전역에 널리 알려질 시, 대륙의 모든 모략가들이 당신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당신을 적대하는 모략가는 극심한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칭호 ‘모략 분쇄자’를 습득합니다.]
[보유 중인 다수의 칭호가 복합적인 연계상승효과를 일으키며 높은 수준의 고유칭호로 통합될 자격을 습득하였습니다. 언제라도 고유칭호 생성이 가능합니다.]
[고유칭호는 별도의 승격이 극도로 어려우며 한 번 생성될 시, 다른 칭호로의 변경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최대한 신중하게 고민한 뒤 생성해주시기 바랍니다.]
[빌헬름 마이어의 악명이 100000 상승합니다.]
[지능이 2 상승합니다.]
[통찰이 1 상승합니다.]
[행운이 3 상승합니다.]
[상한수치를 돌파한 활약으로 인해 여분의 정산포인트가 50000CP로 지급됩니다.]
악명수치에 쫀 오우거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을 뿐인데 어째서인지 병사들이 마구 죽더니 귀족 하나가 덤으로 지 멋대로 죽어버렸다.
“뭐야 이거.”
왜 지 멋대로 뒤져서 악명 올리는 건데.
“저 새끼가 왜 여기서 뒤져.”
“살려야 됩니까?”
브루투스가 물었다.
“뭘 원하면 언제든지 살릴 수 있는 것처럼 말하냐.”
“사망 후 1분 내에는 살릴 수 있습니다. 혹시 몰라서 비약을 하나 챙겨왔습니다.”
“그럼 살려.”
저 새끼 살리면 악명 좀 내려가겠지.
건방지게 어딜 감히 허락도 안 받고 지 멋대로 돌연사를 당해?
네가 올린 악명수치 다 깎기 전까지는 못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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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척 다하면서 사실은 제일 나쁜 새끼인 주인공.t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