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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21화 (121/224)

00121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 =========================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21)

흑오문의 루커스 패밀리, 공무기관의 황금기사단, 연합기관의 범죄길드. 각자 변경백 령의 성을 차지한 세 지배자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자발적으로 종교전쟁에 참전하여 변경백 령을 하나씩 차지했다는 점이다.

“벗어났다. 드디어 놈의 영향력으로부터.”

세 사람이 종교전쟁에 나서기를 희망한 것은 그저 공을 세우기 싶기 때문인 건 아니었다. 그들은 같은 비밀과 적을 둔 일종의 정치적인 동지였다.

그렇다. 이들은 빌헬름 마이어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다. 사실상 미궁도시에 남은 빌헬름 마이어의 마지막 적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브람 시에서 벗어나 빌헬름 마이어의 카리스마가 닿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의 힘을 키우고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희망했다.

“정보는 틀림없겠지.”

“물론이다. 시장을 죽인 역적은 멸혼객도 하이칼 경비총장도 아니다. 빌헬름 마이어가 품은 ‘암살길드’임이 확실하다. 범죄길드 길드장의 위에 걸고 맹세하지.”

“그런가. 시장과 뜻을 함께 하여 중앙을 치기로 약조한 것도, 시장의 죽음을 이용해 브람 시의 모든 병력을 집결시킨 것도 전부 빌헬름 마이어의 수작에 불과했단 말인가…….”

알큐러스 기사단장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브람베르크.’

전임시장은 그리 특출난 인재는 아니었다.

중앙의 치열한 이해관계를 뚫고 브람 시를 장악한 유력자이기는 해도 중앙의 압박에서 온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는 그저 남들보다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타고난 정치적인 감각이 있었을 뿐, 무력이나 지력은 아무리 노력해도 일정수준 이상을 성취할 수 없는 범용한 자에 불과했다.

가신들을 다루는 방식 또한 지극히 평범한 축에 속했다.

조금은 권위적이고, 조금은 속물스러운.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귀족이라고 할만 했다.

그의 죽음에는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다.

알큐러스 기사단장 본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몰락한 권력자에게 가치 따위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만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아니 되었다.

그는 브람베르크를 받드는 기사단의 기사단장이니까!

‘브람베르크. 그 또한 악덕에 찌든 귀족일지라도 나의 귀족이었다. 아무리 형편없는 시장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시장이었다. 언젠가 그를 죽일 자가 있다면 그건 나여야만 했다.’

결코 갑작스레 나타난 빌헬름 마이어 따위여서는 안 됐다.

“유리아 길드장. 당신은 나와 동시에 루커스를 끌어들였다. 각기 다른 성향의 우리 셋이 빌헬름 마이어에게 맞설 수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가.”

“안될 이유는 어디에 있지? 범죄길드는 그에게 지부장을 잃었고, 루커스 패밀리는 블랙마켓에서 치명적인 모욕을 당했다. 당신은 주군을 잃은 불명예스러운 기사가 되고 말았지.”

범죄길드. 전국 도처에 널린 범죄자들의 은신처이자 수많은 실력파 도적들을 배양해낸 길드로, 길드의 중진들은 하나같이 거물 범죄자이다.

많은 사람들이 쟁쟁한 범죄자들의 정점에 올라선 범죄길드 길드장의 정체를 궁금해 하였으나, 지금껏 길드장이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정체를 온전히 드러낸 적은 없었다.

지난 브람 시 공성전에서도 범죄길드 길드장은 두터운 로브와 가면 아래에 자신의 정체를 꽁꽁 숨겨두었다.

“잠깐의 불명예와 지부장 한 명 정도의 손실은 충분히 정치적인 협상을 통해 만회할 수 있을 텐데. 너희에게는 나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내릴 동기가 부족하다.”

알큐러스 기사단장은 싸늘한 시선으로 길드장을 노려보았다. 누구보다도 찬란한 태양처럼 빛나던 그의 눈동자는 절망과 회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아마도 두 번 다시 그의 두 눈에 여름이 찾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브람베르크와 함께 그의 여름은 끝났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겨울만이 시리도록 냉철한 복수심이 되어 도래하였다.

“진정한 목적을 밝혀라. 복수에 눈 먼 몸이라고 할지라도 나를 믿고 따라준 기사들을 무책임하게 사지로 집어던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

“후우. 그렇게까지 나온다면 어쩔 수 없군.”

길드장은 가면을 벗었다.

“너는...!”

알큐러스 기사단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패트리 정보총장!?”

“정확히는 쌍둥이 형, 패트릭이라고 한다.”

“쌍둥이!”

패트릭 길드장은 알큐러스 기사단장 못지않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응시하였다.

“목적을 알고 싶다고 했나? 좋다. 알려주지. 나와 동생은 이 도시의 양지와 음지에서 각각 거물이 되어 브람베르크에게 아버지를 잃은 복수를 하고자 했다.”

“!!”

“허나 원수는 빼앗기고, 패트리는 나와의 연을 끊은 채 빌헬름 마이어에게 굴복하였다. 번잡한 혼란기에 공을 세워 지위를 보전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겠지.”

그는 조금의 웃음기조차도 없는 냉혹한 어조로 단정지었다.

“그 욕망이 내 동생의 목을 조르고 있다. 패트리의 정보부가 그가 없이도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되는 순간, 빌헬름 마이어는 그를 제거할 것이 틀림없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션이라는 걸물이 빌헬름 마이어에 의해 정보부에 배속되었지. 놈의 수준은 범상치 않다. 수집, 분석, 가공, 예측, 위조, 공작. 모든 분야에서 상당한 실력을 발휘하는 실력자다.”

“패트리 자작도 그리 녹록치는 않을 텐데?”

“내 동생이 강세를 보이는 건 어디까지나 정보를 가공하고 위조하는 영역에 불과하다. 실제로도 부족한 능력에 의해 멸혼객과 빌헬름 마이어에 의해 전임시장은 무방비하게 당했지.”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진 싸움이나 다름없다.

“기껏해야 석 달이 한계다. 그 이후에는 내 어리석은 동생은 반드시 버림받는다. 그리고 제거당하겠지. 빌헬름 마이어는 위험요소를 뿌리부터 모조리 제거해버리는 유능한 보스니까.”

“너라면 그를 설득할 수도 있을 텐데.”

“불가능하다. 6강의 일원, 쉔조차도 하루아침에 사망했다. 브람베르크마저도 아무런 전조도 없이 모든 기반과 목숨을 동시에 잃었다. 범죄길드 따위로는 브람 시에서 그를 당해낼 수 없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만 한다.

“그는 유능하다. 아마도 이 나라에서 가장 지략이 뛰어난 자라고 여겨질 정도로. 그리고 지금, 그가 내 동생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 맞설 기회가 있는 건 오직 지금뿐이다.”

알큐러스는 납득하였다.

동생의 죽음을 원치 않는 쌍둥이형의 모략이라면 그의 기사도로서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돌아보아야 할 연결고리는 하나뿐이다.

“루커스. 너는 어떤가.”

루커스는 깊게 눌러쓴 중절모 아래로 시가를 물었다. 주홍빛으로 타들어가던 불씨가 단숨에 시가의 끝에서 필터까지 들이닥쳤다.

자욱하게 내뱉은 연기를 기세만으로 짓누른 채, 루커스가 흉흉한 눈을 번뜩거렸다.

“놈은 나와 같은 유형이다. 권력은 나의 것이고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지.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게 바로 보스로서의 권위다.”

루커스 패밀리는 오래도록 미궁도시 브람의 질서를 담당했다.

누구도 그의 앞에서 오만한 태도로 지껄일 수는 없었다.

멸혼객조차도 그의 의지만큼은 존중하며 대해주었다.

6강 중 3강.

그런 건 전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브람 시의 어둠을 지배하는 실질적인 무력집단은 루커스 패밀리였다.

그 역할 하루아침에 흑산회가 가로챘다.

루커스 패밀리는 두렵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흑산회가 두렵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며 루커스 패밀리에 거역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계기는 간단했다.

블랙마켓에서 루커스는 빌헬름 마이어에게 카리스마로 압도당했다. 브람 시 공성전에서는 그 때의 계약에 발목이 잡혀 원치않는 배신까지 저질러야만 했다.

패배했다. 다른 것도 아닌 보스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여겨지는 [카리스마]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했다.

루커스는 주먹을 우두둑 움켜쥐며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놈은 나를 짓뭉갰다. 루커스 패밀리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흑산회를 치는 수밖에 없다, 이 루커스의 마피아보스로서의 권위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흑산회 보스를 치는 수밖에 없다.”

암흑조직의 보스로서 자웅을 가릴 때가 되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영원히 기회는 오지 않는다.

세 사람은 이 사실에 분명히 동의하였다.

그들이 본 기회는 무엇인가.

그건 변경백 령의 지배와 사병양설 따위가 아니었다.

“흑산회만 제거하면 탈론 공작의 군세는 자연스럽게 미궁도시 브람에 침략할 수 있다. 흑산회가 지배하는 브람 시만 아니라면 된다. 무너뜨리는 건 오직 흑산회 뿐이다.”

루커스는 조직보스로서의 통찰력을 발휘하여 문제의 핵심을 관통하였다.

“흑산회는 빌헬름 마이어라는 그릇에 담긴 독충들의 모임. 달리 말하자면 빌헬름 마이어만 사라지면 언제라도 뿔뿔이 흩어질 벌레무리에 지나지 않는다.”

“핵심을 잘 꿰뚫어보았군. 역시 그걸 생각했는가.”

“루커스 패밀리와 범죄길드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니 다행이군. 나 또한 같다. 흑산회를 무너뜨리고 브람 시를 둘러싼 지배체제를 무너뜨려 복수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하나.”

루커스와 패트릭, 알큐러스는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빌헬름 마이어를 암살한다.”””

그들이 빌헬름 마이어에게 불신 받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오직 지금만이 쓸 수 있는 책략이다.

빌헬름 마이어와 만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있다.

-협상은 끝났다. 계약내용은 다음과 같다.

탈론 공작은 비밀리에 나눈 회담내용을 그대로 전달했다.

1. 탈론 공작과 흑산회는 서로의 점령지역에 3년간의 상호불가침을 유지한다.

2. 흑산회는 변경백 령을 향한 모든 종류의 지원을 금지한다.

3. 미궁도시 브람 인근의 다섯 도시는 2년 뒤부터 독립세력으로 간주한다.

핵심은 이상의 셋이다. 이 조건이 유지되는 한, 탈론 공작은 흑산회의 대두를 국제적인 문제로 끌고 가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맹점이 존재한다.

“이 나라에 존재하는 막대한 중립세력은 모두 선점하는 쪽이 가져가게 된다. 우리들의 영토 또한 마찬가지이지.”

그렇기에 빌헬름 마이어는 이곳 변경백 령에 자리한 세 개 조직을 흑산회 산하에 넣으려 할 것이다. 이만한 일이라면 빌헬름 마이어가 직접 올 수밖에 없다.

오지 않더라도 그가 없으면 확답을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아두면 된다.

그들이 정성껏 암살준비를 마친 암살 장소를 향해서 말이다.

“빌헬름 마이어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는 첩보도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난관은 빌헬름 마이어를 지키는 친위대장과 직속호위다.”

루커스와 패트릭은 각자 떼어낼 상대를 지목했다.

“카이사르와 리델라프는 내가 맡도록 하지.”

“암살자 간부는 범죄길드에서 맡겠다.”

“멸혼객이 올 경우는?”

“탈론 공작의 군세를 널리 움직이면 멸혼객을 그 방면으로 유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남는 건 빌헬름 마이어 본인인가.”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해도 빌헬름 마이어는 당대 최강의 절대자로 손꼽히는 굴강의 초고수.

어지간한 암살시도로는 턱도 먹히지 않을 게 틀림없다.

“암살방법이라면 이미 갖추어졌다.”

패트릭 길드장이 품에서 신분패를 꺼냈다.

“태양의 교단! 그것도 주교의 것이 아닌가!”

“태양교단 알폰스 왕국지부 주교가 자신의 모든 신성력을 걸고 역천의 저주를 내린다. 이미 강력한 저주에 시달리는 빌헬름 마이어라면 저주가 악화되면 틀림없이 죽는다.”

“탈론 공작도 작정했군. 이곳을 그의 무덤으로 삼으려고 엄청난 출혈을 감수했어.”

계획은 무르익었다.

한없이 제로에 가깝던 암살 성공가능성마저 빠르게 상승했다.

이제 빌헬름 마이어가 변경백 령에 오기만 하면 된다.

“오지 않겠다고? 무슨 소리냐 그게! 설마 암살을 노리고 있다는 게 들킨 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납득할 수가 없다! 방문 한 번이면 계약의 허를 찌르고 변경백 령을 모두 흑산회의 영역으로 지킬 수 있을 텐데 어째서 방문을 하지 않는다는 거냐!”

알큐러스 기사단장이 건틀렛으로 벽을 쾅쾅 후려치며 초조함을 드러내었다. 루커스 또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기다렸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패트릭은 떨떠름하니 대답했다.

“우리가 안 가도 영역이 늘고 있다.”

“뭐?”

“그게 무슨 말이냐. 설명해라.”

패트릭은 지도를 펼치고는 검은 말을 들어서 사방에 놓았다.

“도시 표식인가?”

“그렇다. 흑산회 산하라는 전제를 붙여야겠지만.”

“..탈론 공작의 영역 외 전부가 붙었는데?”

“그게 문제다.”

“맙소사.”

영역을 미끼로 삼아 부르려고 했는데, 딱히 여기가 없어도 사방에서 온갖 도시들이 흑산회에 가세하고 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소동이냐.”

“종교전쟁과 영지전쟁의 연장선상이다. 대형영지들이 탈론 공작에게 붙어 중소영지들을 압박하자, 수탈을 견디다 못한 중소영지들이 흑산회에 들어가며 불가침을 받게 되었다.”

“그 대형영지들도 흑산회 표식이 붙은 이유는?”

“영지민들이 자산을 들고 대거 이주를 시도했다. 이주가 성공한 영지는 그대로 폭삭 주저앉았고, 실패한 영지는 영지민이 반 수 이상 학살당해 탈론 공작도 떠안기 부담스럽게 됐지.”

빌헬름 마이어의 암살작전에 사활을 건 세 사람과 탈론 공작, 태양의 교단은 모조리 엿을 먹은 셈이다.

“이번에도. 이번에도 그의 책략에 당했단 말인가!”

“아니다.”

“그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의 짓인가!!”

“카이사르다.”

“뭐?”

“흑산회 친위대 대장 카이사르. 그의 소행이다.”

카이사르가 얼마나 또라이 같은 녀석인지 기억하는 루커스와 알큐러스 기사단장은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또라이짓을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패트릭은 모든 걸 포기한 표정으로 덤덤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카이사르의 책략!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절단면이 날카롭지만 연재분 배치에 실패해서 연참으로 곧장 공개되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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