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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22화 (122/224)

00122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 =========================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22)

퍽퍽한 건빵을 먹던 날도 끝났다.

이제는 퍽퍽한 스테이크를 먹는 날의 시작이다.

“꺄아아아악! 보스, 뭐하는 거야!”

“뭐가 말이냐.”

“왜 그런 벽돌 씹는 표정으로 스테이크를 먹는 건데!”

동기화 비율이 1%라 그래.

맛이 1%만 나봐라.

아무 맛도 안 나는 거랑 비슷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벽돌보다는 밀가루 덩어리를 씹어먹는 느낌이 드는군.”

“그만둬어어어! 귀한 스테이크한테 사과해!”

이런 긴장감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느긋한 식사를 만끽하던 와중이었다.

“보스. 제가 아무래도 똑똑해진 것 같습니다.”

“…….”

“…….”

나와 리나는 불신어린 눈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저 새끼가 드디어 미친 걸까?’

‘보스. 살인광은 원래 미친놈이잖아.’

‘그러네.’

나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 뒤에 물었다.

“사람은 갑자기 똑똑해지지 않는다.”

“저는 하찮은 우민이 아닙니다. 길거리의 벌레처럼 약해빠진 수컷 놈들과는 다릅니다. 엘리트입니다.”

“…….”

아무래도 카이사르의 광증이 심해진 것 같다.

“5895 더하기 31065는?”

“한손으로 꽉 잡아서 우그러뜨리면 0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브람 시 대형석궁 사용허가에 관한 법률 중 감독관련 수칙이 언급된 장은?”

“그런 하찮은 법 따위는 저를 구속할 수 없으니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장법을 상대하는 핵심은?”

“정면승부입니다. 당당하게 손모가지를 들이대며 장법을 구사하면 기운은 찢어발기고 손모가지는 짓뭉개면 됩니다.”

미묘해.

뭔가 똑똑해진 것 같긴 한데 그냥 평소의 카이사르야.

카이사르 식으로 똑똑해졌잖아.

‘하. 진짜 깝깝하네. 이 새끼 지능 올랐나보다.’

하긴 그럴만한 계기야 충분히 있었다.

당장 보스인 내 능력치만 보더라도 통찰, 지능, 매력, 카리스마, 행운이 주를 이룬다.

겉으로 가장 자주 보이는 건 지능이랑 카리스마이니 카이사르도 은연중에 내 영향을 받아서 머리를 쓰는 데에 익숙해졌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자.

카리사르는 내가 한 활동에 영향을 받았을 게 틀림없다.

그러면 내가 머리 쓴 게 뭐가 있었지?

1. 본의 아니게 조짐당한 적과 적대세력을 내가 조진 척하기

2. 타의로 적과 적대세력을 조지기

3. 본의로 적과 적대세력을 조지기

“…….”

이건 틀렸어.

싸이코력 강화 이벤트잖아.

지능적으로 적을 조지겠다고 설치고 다닐 거라고.

“보스. 제 지략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그럼 가벼운 전술게임을 진행해보지.”

미궁세계 잡화점에서 파는 보드게임 중에 <전술게임>이라는 게 있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

왕과 귀족, 병사, 평민, 노예 말을 전략적으로 배치해서 상대와 전쟁을 치르고 먼저 상대의 왕을 제거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세부규칙이 졸라게 복잡하기는 한데 의외로 미궁세계 캐릭터 시트지 만드는 거랑 비슷한 면모도 있다.

각 플레이어는 10000점의 강화포인트로 능력치를 올리거나 장비를 갖추고, 혹은 요새를 강화하는 등의 다양한 투자를 통해 전략적으로 자신의 군세를 꾸릴 수 있다.

딱히 내가 이 새끼를 전술게임으로 조져서 똑똑하다는 헛소리를 못하게 만들겠다는 목적은 없다.

그냥 순수하게 실력이 궁금해서 하는 거니까 최대한 균형 있게 점수를 분배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거참 빠르기도 해라.

“1턴이야, 보스!”

이 게임은 심판의 역할이 중요하기에 리나에게 심판 역할을 맡겼다.

칸막이를 두고 각각 똑같은 맵 위에 여러 말을 배치하고 움직이고 있으니, 서로 간에 부대이동으로 인한 충돌이나 정찰에 의해 확보된 적의 내역 따위를 심판이 알려줘야만 한다.

겁나 번거롭고 귀찮고 피곤한 일인데 리나는 귀찮은 기색도 없이 흥미진진해하며 진행을 도와주었다.

“10턴이야, 보스!”

“이렇게 전진하겠다.”

“보스, 적을 발견했어!”

나는 별 생각없이 물었다.

“목격정보는?”

“적은 한 명! 엄청나게 좋아 보이는 장비를 지닌 거인이야!”

“갑옷 채로 구워서 장비만 습득하면 좋겠군.”

칸막이 위로 빠르게 글자가 떠올랐다.

아군의 공격방침 : 근거리 포위방어 및 원거리 화공

적군의 공격방침 : 수라역천검법 전개

-아군 궁수대가 화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적이 수라역천검법을 전개했다!

-아군 보병대의 방어! 데미지 7329!

-악! 이것은 매우 아프다!

-아군 보병대가 전멸했다!

시발. 이게 뭐야.

전략게임에 왜 먼치킨을 만드는 건데.

-아군 궁수대가 화공을 개시했다!

-명중! 데미지 1!

-적이 수라역천파검 초식에 의한 반격을 개시했다!

-반격을 피하지 못했다! 데미지 38929!

-아군 궁수대가 전멸했다!

“…….”

이런 느낌의 전투를 몇 번 치르니 군대고 성문이고 뭐고 마주치는 족족 죄다 찢겨져 나갔다.

더러운 플레이에 당하기만 하니까 뭔가 빡친다.

나도 더럽게 모든 군대와 평민, 노예들을 죄다 동원해서 카이사르의 수도를 공격하러 갔다.

“까짓것 왕만 죽이면 그만이지.”

근데 수도를 부서도 게임이 안 끝난다.

설마 싶어서 비축된 자원으로 마법사의 관찰마법 등급을 올려서 먼치킨 놈을 관찰했다.

-이 학살자 새끼가 왕이 맞다.

-절망적인 사실에 마법사의 사기가 30 줄어들었다!

“…….”

나는 전 병력을 동원해서 카이사르의 왕의 체력과 기력을 있는 대로 깎아먹은 뒤에 총공격을 가했다.

-학살왕이 수라역천대살법을 전개했다!

-주력군단이 전멸했다!

-절망이 다가온다! 아군 군대가 상태이상 패닉(Lv Max)에 빠졌다!

-당신의 왕을 지킬 모든 병력이 달아났다!

-학살왕이 당신의 왕에게 돌을 던졌다!

-명중! 투석 데미지 519!

-당신의 왕은 사망했다. Game Over....

나는 떨떠름한 기분을 애써 가라앉히며 말했다.

“전략게임에서 전술적 역량에 모든 능력을 투자하다니. 실로 대담한 작전이군.”

전략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큰 그림이다.

전술은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작은 그림이다.

나는 무난하게 큰 그림을 그리려고 했는데 이 새끼는 디○블로에나 나올 법한 초 고대 에인션트 전설 신화 무기를 든 만렙 광전사 왕으로 겁나 단단한 작은 그림을 그렸다.

왕이 죽거나 수도가 무너지면 패배하는 조건이었다면 내 승리였겠지만, 왕의 죽음만을 유일한 패배조건으로 설정했기에 카이사르의 작전도 꽤나 유효했다.

혹시나 이게 의도한 거라면 카이사르는 정말로 긍정적인 의미로 똑똑해진 걸지도 모른다.

“나약한 잡것들에게 힘을 나눠주기 싫었습니다.”

“…….”

응 아니야.

그냥 평소대로의 사이코 학살자야.

“이제 제가 똑똑하다는 걸 인정하겠습니까?”

“그래. 너 똑똑하다.”

“그럼 저도 전략을 입안해도 됩니까?”

전략 입안이라니.

돌도끼 든 원시인처럼 적이 보이면 일단 머리통부터 깨고 생각하는 카이사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어휘다.

“그런 말은 누구에게 배웠지?”

“애완동물에게 배웠습니다.”

“…….”

잠깐동안 이 새끼가 날 놀리는 건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모자이크를 말하는 거군.”

“그렇습니다.”

모자이크 녀에게도 원래 닉네임은 있는 모양인데, 딱히 기억나지도 않고 인상적이지도 않아서 그냥 모자이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부하들도 모자이크 녀의 몸을 이루는 입자를 모자이크라고 부른다는 걸 들은 이후로 뭔가 유식한 말을 써서 기분이 좋다며 그녀를 모자이크라고 부르고 있다.

요즘은 당사자도 체념하고 스스로를 모자이크라고 자칭하고 다닌다.

아무튼 그 모자이크 녀가 카이사르에게 지식전수를 했나보다.

그녀야 뭐 참모 역할을 맡을 정도로 똑똑하기도 하지.

거기까지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좋다. 입안해봐라.”

“보스의 아내를 이용해서 탈론 공작을 제외한 모든 영지를 저희 걸로 뺏어버립니다.”

“도로시 이지스를 이용해?”

개 뜬금없는 작전에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그녀는 별로 쓰고 싶지 않은데.”

뭔가 결혼생활이 불행해진다며.

괜히 붙어있으면 디버프 걸릴까봐 말도 안 걸고 있잖아.

그런 불길한 여자를 왜 써먹으려고 하는 건데.

“형수님이 저주에 걸렸다는 사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녀를 괴롭히는 건 그만 둬라.”

“형수님에게는 이미 동의를 구했습니다. 여기 동의서입니다.”

카이사르가 종이 한 장을 제출했다.

[작전 동의서]

[저 도로시 이지스는 카이사르의 작전에 찬성하며 전선에 나설 각오를 마쳤음을 알립니다. 낭군께서는 부디 제 출정을 허가해주십시오.]

나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너. 혹시 내 아내의 멱살을 잡고 여기에 지장 안 찍으면 죽인다고 협박이라도 한 거냐?”

“저를 대체 뭘로 보시는 겁니까.”

“그럼 아무런 전투력도 없는 무능한 여자가 무슨 배짱으로 전선에 나설 각오를 다졌지? 그보다 애초에 전선에 나서서 뭘 하겠다는 거지?”

카이사르는 내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십시오.”

도로시 이지스.

결혼식을 치른 이후로는 첫날밤도 없이 남처럼 지내다가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지만 혹독할 정도의 무관심 속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연약했던 과거와 달리 체형부터 더 아름답고 건강하게 바뀌었다.

“낭군님. 저는 저 자신의 의지로 작전에 나서기로 결심했습니다. 결코 카이사르님의 협박을 받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은 저를 단련시켜 주셨습니다.”

“단련?”

“카이사르님께 직접 백보무투술과 백보신공을 전수받았습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곧 뛰어난 무술에 힘입어 보다 강한 몸이 될 거라고 자부합니다.”

일방적으로 외면해왔던 상대가 날 위해서 단련했다는 말은 죄책감을 있는 대로 쿡쿡 쑤시기도 하고, 동시에 감동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왠지 모를 찝찝한 기분이 가장 컸다. 아직도 제일 큰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공을 배워서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격투가인 데이고르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편이 전력으로써는 훨씬 더 유익할 텐데. 정치선전을 희망한다면 무투술은 필요 없지 않은가.”

“아니요. 저는 전투력과 정치력을 동시에 갖출 수 있어요. 그것도 알폰스 왕국 한정이라면 누구보다도 강하게요.”

“호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자신감을 보이는 거지?”

도로시는 스스로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제가 지닌 저주는 기억하시나요?”

“혈통의 저주. 일족을 불행한 결혼생활에 빠뜨리는 힘.”

“이 저주는 대대손손 전해져 내려오며, 자녀를 낳지 않으면 점점 더 강한 저주에 의해 아이를 지닐 수밖에 없는 인과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그 저주의 인과를 물리적인 힘과 흑산회의 저력으로 차단할 수 있다면, 더 큰 저주가 저를 옭아매기에 저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 어떤 공격을 받아도 죽지 않게 됩니다.”

미친.

그 말이 사실이라면 도로시 이지스, 내 아내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한시적으로나마 세계최고의 탱커가 된다.

“동시에 알폰스 왕국 국민들은 제가 아이를 낳지 않을수록 점점 더 저주의 힘에 의해 이성을 상실하고 억지로 저를 취하려드는 저주침식자가 늘어날 겁니다.”

“그걸 빌미로 적의 세력구성원들을 협박하기라도 할 작정인가?”

“태양의 교단이 성하던 시기라면 저주의 힘을 손쉽게 몰아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종교전쟁의 여파로 성직자가 극도로 줄어들었습니다. 평민들은 높은 저주발병률을 보일 겁니다.”

동시에 저주발생의 근원지이자 저주 감염숙주가 된다.

가정이 있는, 일상이 있는 남자들을 직업과 신분을 막론하고 저주를 몰아낼 수 없으면 반 강제적으로 범죄자로 만든다.

근데 카이사르가 작정하고 무술과 심공까지 전수하면서 도로시 이지스의 전투력을 상승시키면, 어지간한 사람들이 저주에 당해 덤벼들어봤자 다 때려눕힐 거다.

‘대박.’

몸을 단련하면 강해지기만 하는 게 아니다.

세계최고 탱커와 저주 감염숙주 지속기한까지 연장된다.

카이사르의 등신 같은 지능이 뜻밖의 대박을 쳤다.

============================ 작품 후기 ============================

도로시 이지스(마녀, 회피탱)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저주의 힘에 의해 결코 죽지 않음

-생물학적 수컷을 저주침식자로 만들어 발광시킴

-카이사르의 특훈에 의해 무투술에 입문. 엄청난 속도로 근육이 생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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