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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24화 (124/224)

00124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 =========================

#5 - 내 조직이 무지막대하게 커진다(24)

연합기관 의원장 및 마법협회 회장 하인즈 대마법사.

그가 제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아왔다.

알폰스 왕국의 명운을 결정지을 세계회의의 개최 알림이었다.

“빌헬름 보스. 귀공에게는 두 가지 초대장이 제공되었소.”

“두 가지?”

“브람 시 시장 빌헬름 마이어로서 참석하거나. 혹은 흑산회 보스 빌헬름 마이어로서 참석하거나.”

상대가 제국이 되니까 초대장부터 확실히 다르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대응전략을 달리하겠다는 속셈이 엿보인다.

브람 시 시장으로 참석한다면 나는 양지의 권력을 중요시하며 정치적 협상에 의해 충분히 야합을 이룰 수 있는 정치적인 인물로 계산될 것이다.

반면 흑산회 보스로서 참석한다면 나는 음지의 권력을 중요시하며 내 영역에 침범하거나 개입하려 드는 모든 대상을 적으로 간주하는 폐쇄적인 인물로 계산될 것이다.

정치를 우선시하는가.

무력을 우선시하는가.

중대한 선택의 기로를 앞두고 고민하던 와중이었다.

찍! 찌익!

대뜸 카이사르가 초대장을 갈가리 찢었다.

미친.

이 새끼가 무섭게 왜 이래.

“보스께서는 갈림길이 나오면 벽을 부수고 직선으로 질주하는 분이시다. 이깟 하찮은 초대장으로 미혹하려는 시도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내가 그런 인간인지는 나도 몰랐다.

누가 비빔밥이랑 피자를 주고 하나만 골라 먹으라고 하면 테이블을 걷어차는 개민폐 꼴마초가 되어버렸군.

제국사람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당연히 ‘어멋! 이 상남자 넘나 멋져!’가 아니라 ‘어휴 시발 뭐지 저 병신은’라는 반응이 나오겠지.

“으음.. 제국의 심기를 거스르면서까지 의지를 관철하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싶네만. 카이사르 경. 그대는 이것이 정말 빌헬름 보스의 뜻이라고 확신하는가?”

“그렇다.”

“빌헬름 보스. 그의 말이 옳소?”

당연히 내 성향은 전투성향의 카이사르보다는 중립성향의 하인즈에 가깝다.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은 그릇에 담을 수 없는 법.

나는 마지못해 카이사르의 의견을 그럴싸하게 부풀리며 정성껏 포장하였다.

“초대장이란 결국 내가 지닌 두 개의 권력 중 하나를 포기하고 사고를 편협하게 만드는 수작에 불과하다. 카이사르가 예리한 지적을 해주었군.”

“들었는가, 노친네. 보스의 뜻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리는 건 바로 나, 카이사르다. 건방지게 네놈 멋대로 보스의 뜻을 재단하려고 들지 마라.”

“으음. 미안하게 되었구려.”

너야말로 네놈 멋대로 내 뜻을 재단하려고 들지 마라.

거의 99% 다 틀리잖아.

지난번엔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서 스파게티집을 가리켰더니 검으로 간판을 부수기도 했다.

그러고는 보스의 뜻대로 졸라 의기양양하게 미관을 더럽히는 낡아빠진 간판을 부쉈습니다, 라고 말하더라.

그냥 지가 보기에 눈에 거슬리니까 부순 거잖아. 아니면 너 따위는 스파게티를 먹을 자격이 없으니 닥치고 가던 길이나 마저 가라는 의미였을까.

“…….”

어느 쪽이든 무섭다.

솔직히 말하자면 후자의 가능성이 제로가 아닌 한, 진실을 알고 싶다는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근데 보스. 초대장 찢으면 공간이동 마법진 발동하지 않아?”

“맞다.”

“방금 살인광 녀석이 두 장 찢었잖아.”

아. 그러네.

저거 곧 이동되겠네.

“카이사르를 붙잡아!!”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던지다시피 하며 카이사르의 팔에 손을 뻗었다.

근처에 있던 하인즈 대마법사와 리나만이 여유롭게 카이사르의 신체에 접촉했고, 멀리 떨어져있던 다른 주요간부들은 죽을  힘을 다해서 달렸다.

이내 빛이 번뜩이며 시야가 마비되었다가 걷혔다.

[공간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도착지점 - 세계회의장]

나는 빠르게 넘어온 인선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였다.

우선 눈에 띄는 건 카이사르의 양 팔을 붙든 리나와 하인즈 대마법사였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건 카이사르의 망토자락을 붙잡은 쿠로였고, 마지막으로 눈에 띄는 건 길게 뻗은 검집으로 카이사르의 복부에 아슬아슬하게 닿은 청일과 그를 붙잡은 모자이크녀였다.

‘고작 여섯 명!’

그것도 카이사르와 리나, 쿠로, 청일은 전투계열이다.

그나마 머리를 쓰는 건 하인즈 대마법사와 모자이크녀였다.

이를 깨닫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망했다’였다.

만전의 태세를 갖추고 엄선된 인원만을 데려와도 부족할 판국에 순발력이 좋은 놈들만 잔뜩 데려오게 되다니.

제대로 엿 먹은 셈이다.

근데 이것도 리나가 공간이동에 대한 언급을 안 했으면 카이사르 혼자 슝 하고 넘어갈 뻔했잖아?

“…….”

그 경우의 미래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상상조차도 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선에 대해서는 말끔히 잊어버리자.

“이렇게 된 이상 우리들만으로 세계회의에 참석하는 수밖에 없겠군. 갑작스러운 돌발사태이니 당황할 것은 이해하나 모두들 냉정을 되찾고 신중하게 회의에 임할 수 있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걱정 마! 리나는 귀여우니까 어떻게든 될 거야!”

어떻게도 되지 않는다.

네가 귀엽다고 뭐가 어떻게 될 거라고 기대하는 건데.

다른 의미로 어떻게 될까봐 그게 더 무섭다.

“참석자들을 모시러 왔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참석인원은?”

“10명 내라면 전용실에 들어가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회의는 꽤나 영리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모양이다.

블랙마켓에서도 겪어본 영상화면을 쓴다.

내심 신기하기도 하다 싶어서 말을 건네 보았다.

“제국에서도 회의에 영상마법을 쓸 줄은 몰랐군. 브람 시에서는 암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마법이었지.”

“빌헬름 마이어님께서 암흑가 정상회의에서 6강의 일원을 살해한 건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공개살인을 당할 것을 우려한 다른 참석자들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회의진행 방식입니다.”

“…….”

내 잘못 아니다.

카이사르 저 새끼가 지 혼자 날뛴 거라고.

“보스. 지금 이 건방진 놈의 혀를 뽑으라고 절 보신 겁니까?”

“아니다.”

“그럼 목을 베어야 성이 풀리십니까?”

“...카이사르. 타지에 가면 뭘 해야 한다고 했었지?”

“타지의 미개한 풍습과 야만문명을 존중하고 그들의 어리석음을 멸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달라.

존중 빼고 그냥 다 달라.

“방 안의 시계가 정각에 도달하면 회의가 시작됩니다.”

“어이, 네놈. 보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몸 성히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

카이사르는 기어이 관료의 발치에 단검을 툭 내밀었다.

관료는 죽을상을 지었다.

“이걸로 뭘 하기를 원하십니까?”

“카이사르.”

나는 진중한 어조로 힘을 주어 말했다.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 마라.”

카이사르는 불만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입은 순순히 닫아주는군.

저놈이 여기서 죽었으면 제국 측에 우리들의 이미지는 최악으로 여겨졌겠지.

원래도 썩 좋지는 않을 것 같지만 거기서 더 떨어지면 제국이 이번 회의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간단하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대륙 유일의 제국이 자신들의 국토에서 일어난 만행을 무심하게 넘길 리가 없지. 무조건 탈론 공작의 편을 들어서 알폰스 왕국 통일을 방해하고 도로시 이지스의 신변양도를 요구할 거다.

‘이번 회의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

내 세력과 탈론 공작의 세력 중 어느 쪽이 제국에게 보다 도움이 되는 파트너로 여겨지며 제국의 선택을 받을 것인가.

저주의 마녀로 악명을 떨친 도로시 이지스의 신변을 사수할 수 있는가 없는가.

나, 빌헬름 마이어의 존재가 제국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는가, 그렇지 않은가.

탈론공작과의 경쟁, 도로시 이지스의 사수, 나 자신의 생존.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쟁쟁한 쟁점들만이 남아있다.

하나라도 패배해서는 안 된다.

하나를 양보하고 다른 걸 손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

하나를 잃으면 나머지도 전부 무너지게 된다.

타협은 없다.

무조건 내 의지로 모든 쟁점에서 전승을 거두어야만 한다.

‘그것도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이 모두 알폰스 왕국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제국을 상대로인가.’

세계회의는 각 의제를 두고 일정 시간의 논의를 거친 끝에 의결권을 행사한다. 각 왕국의 대표참석자는 찬반유무를 거수하며 왕국들은 1점을, 제국은 3점을 지닌다.

거기에 더해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제국만이 예외적으로 한 회의에서 오직 한 가지 의제에 한하여 3점이 아닌 5점짜리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제국 외에 세계회의에 참석하는 왕국의 수는 도합 열. 문제는 이 중에 친 제국파가 적잖이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하인즈 대마법사. 친 제국파로 분류할 수 있는 확실한 왕국은 몇이나 있지?”

“셋이오.”

“사실상 제국의 의지가 곧 회의의 결과나 다름없군.”

열국 중에 세 국가가 무조건 제국과 뜻을 함께 한다.

제국 측은 기본 6점을 깔고 시작한다.

남은 7국이 모두 반대편에 서야 간신히 7점을 달성한다.

강대한 제국이 나라 하나 추가로 회유하지 못할 리가 없다.

약간의 보상만 제기해도 7인 동맹은 금방 깨진다.

무조건 제국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회의에서 승리할 수 있다.

나와 탈론 공작의 진검승부나 다름없다.

한 치의 물러섬도 허락되지 않는 설전의 시작이다.

삐이이이익!

[세계회의가 개최됩니다.]

전용실의 좌우전방의 벽면에서 영상마법이 전개되었다. 좌측에는 각국 대표들의 영상이, 중앙에는 중점이 되는 의제가, 우측에는 정리사항이 기록되는 모양이었다.

“본 회의는 제국대표 하이그리드 재상의 주도 하에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이는 본인을 가리키는 이름임을 모르지는 않겠지. 그럼 이쯤에서 신속하게 상황을 짚고 넘어가겠다.”

제국대표 하이그리드 재상은 격식 있는 문사복을 입은 전형적인 문인이었다. 그러나 영상에 비친 재상의 두 눈에는 냉혹하다 못해 비정하다 싶을 정도의 기세가 어려 있었다.

그는 아무런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고 일국을 파멸시키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유형의 인간이다. 수십억 명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일억 명쯤은 버릴 수 있는 결단력의 소유자라는 거다.

철저한 논리와 치밀한 이해득실만이 하이그리드 재상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금일 세계회의가 개최된 이유는 알폰스 왕국에서 일어난 내란에 있다. 흑산회는 불과 창립 한 달 만에 미궁도시 브람을 집어삼키고 다시 한 달 만에 알폰스 왕국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그는 냉혹한 눈으로 영상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과정에서 흑산회는 도로시 이지스라는 강력한 저주를 지닌 마녀를 동원하였고, 알폰스 왕국은 이제 탈론 공작령을 제외한 모든 영토를 흑산회에 점거 당했다.”

열국의 참가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흑산회의 저력이 그들의 예상 이상으로 뛰어났던 모양이다.

“탈론 공작은 제국에 구원을 요청했고, 흑산회가 대륙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의 조직이라 주장하며 본 회의에서 의제를 제기할 것을 요구하였다.”

의제는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흑산회는 정말로 배제되어야 마땅한 악의조직인가. 알폰스 왕국을 흑산회와 탈론 공작 중 누구에게 주어야 하는가. 절망의 마녀 도로시 이지스의 신변을 제국이 구속해야 하는가.”

그렇지만 단 한 가지만큼은 내 예상을 벗어났다.

제국의 시장이라는 저 녀석.

저 얼굴을 나는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미친. 저거 설마, 내가 아는 그 하이그리드인가?’

로드리어스 엘드리고 캐릭터로 미궁에 진입하던 당시. 2군 예비대로 써먹기에는 기준치 미달의 실력을 지닌 3군 인재들은 전부 지상에 두고 떠났다.

하이그리드.

저 새끼는 그 3군에 속한 NPC 부하 중 한 명이었다. 놈은 오래도록 넘어서지 못했던 벽을 넘어서며 백 년의 세월이 지나도 살아나을 수 있을 정도의 수명을 얻은 것이다.

지금은 재상이지만 예전에는 3군 인재였던 하이그리드.

머나먼 과거에 그의 역할은…….

“로드리어스의 창고셔틀?”

“!?”

꽉 찬 인벤토리 대신 넘쳐나는 물건을 드는 창고셔틀이었다.

============================ 작품 후기 ============================

전직 짐꾼 출신 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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