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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26화 (126/224)

00126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1)

세계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뒤, 사람들은 그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몹시 궁금해하였다.

“말해줘도 됩니까?”

“된다.”

나는 반쯤 체념하듯이 말했다.

다른 이들도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서는 입을 꾹 닫았다.

오직 카이사르만이 의기양양하게 자랑했다.

“보스께서 건방진 애송이들의 몸뚱이를 형체조차도 남기지 않고 분쇄하셨다.”

부정할 수가 없다.

부정하고 싶은데 충격적이게도 진실 100%다.

“예? 아니, 세계회의에 참석해서... 예?”

“분쇄요? 누구를.. 참석자들이 열국의 대표들인데.. 분쇄를?”

“잠깐 환청이 들린 건가? 아니면 피로가 좀 쌓였나?”

세계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흑산회 간부들과 브람 시 유력자들은 애써 현실을 부정하였다.

그렇지만 리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현실을 알렸다.

“살인광의 말이 맞아. 보스가 세계회의에 참석한 대표들 중 절반 이상을 분쇄시켰어. 역시 보스는 대단.. 후우. 이건 아무리 귀여운 리나라도 커버하기 무리일지도.”

“하인즈 대마법사님. 저 두 미친 년놈들의 말이 사실입니까?”

리나가 ‘잠깐 정지! 그 미친년이 설마 귀여운 리나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라면서 불만을 피력했지만 하인즈 대마법사는 그녀의 입에 막대사탕을 하나 물려주고는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진실이라네. 그건... 재앙이었지.”

“대체 무슨 일이 일었는지 좀 들을 수 있을까요?”

“그래.. 그대들도 상황은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겠군.”

하인즈는 멍하니 사탕을 쭙쭙 빨아먹는 리나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영감님처럼 점잖게 세계회의에서 일어난 참사를 알려주었다.

* * *

세 가지 의제가 말끔하게 해결된 이후, 세계회의에서는 열국의 대표들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 본국에 미궁탐사단을 급파하라며 긴급연락을 취했다.

그 뒤에는 하나같이 내게 매달리듯이 어떻게 해야 계층보스를 최소한의 피해로 저지할 수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나는 쿨하게 대답했다.

“맨 입으로?”

“천만 골드를 드리겠습니다!”

“내 개인 자산이 일억 골드를 넘는다.”

“공작의 작위를 드리겠습니다!”

“알폰스 왕국은 이제 내 것이 되었다. 지금 일국의 국왕에게 타국의 공작 따위나 되라고 하는 건가?”

돈도 권력도 나를 설득할 수는 없다.

“그럼 미인은 어떻습니까?”

“방금 말한 놈. 어디의 뭐하는 놈이냐.”

“케센 왕국 대표 케밥입니다. 이국의 미녀는 어떠십니까?”

“내 아내는 일국을 파멸시킨 실력파 마녀다.”

“아내가 부담되신다면 첩은 어떻습니까?”

말귀가 어둡네.

“그 이국의 미녀는 소드마스터냐?”

“예? 아니요.”

“6써클 마도사라도 되나?”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미궁공략에 아무 쓸모도 없는 그냥 예쁘기만 한 여자를 들이밀고 내가 만족할 거라 생각하다니.

나라는 놈도 어지간히 얕보였나보다.

카이사르도 그들의 뻔뻔한 태도에 분노했는지 시뻘겋게 물든 얼굴로 격노를 금치 못했다.

“이런 건방진 피라미들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딴 하찮은 제안을 해대는 거냐! 보스는 네놈들이 제공할 돈과 권력, 여자보다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권력, 더 좋은 아내가 있다!”

“그럼 소드마스터인 미녀를 첩으로 바치면 저희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또 주제도 모르고 하찮은 소리를 지껄이는군!”

카이사르는 케밥의 멱살을 붙잡고 위아래로 붕붕 흔들며 윽박질렀다.

“고작 한 명 따위로 입을 씻으려는 얄팍한 상술을 보이다니, 죽고 싶은가! 목숨이 아깝거든 일 년 내로 네놈의 왕국에서 소드마스터 내지는 6써클 마도사급 미녀 열 명을 첩으로 바쳐라!”

인재를 원한 건 맞는데 그건 아니야.

첩 필요 없다고.

느닷없이 뭔 하렘을 만들어주려고 하는 건데.

“카이사르. 그딴 건 필요 없다.”

“죄송합니다.”

“알면 됐다.”

“보스의 취향은 절벽꼬맹이 같은 작고 평평한 계집인 걸 잊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다르다!”

괜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버럭 소리를 지르자 이번에는 리나가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울먹거렸다.

“보스는 리나가 취향인 게 아니었어?”

윽.

우는 건 비겁하잖아.

“소시지를 먹을 수 있는 나이나 되고 말해라.”

“우우우! 앞으로 1년 반밖에 안 남았다고!”

“그럼 1년 반 뒤에 다시 말해라.”

케밥이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카이사르에게 물었다.

“알폰스 왕국은 16살에는 소시지를 먹지 못하는 문화적 풍습이 있는 겁니까?”

“다르다. 왕국은 16살부터 가능하지만 보스는 엄격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기에 18살부터로 못을 박아두었다.”

“으음. 뭔가 알기 어렵군요. 흑산회 보스의 취향은.”

“참고로 나는 작은 소시지도 먹을 수 있다.”

“예? 아니, 소시지 정도는 보통으로 먹지요, 다들. 어린 아이라도 별 문제 없이 먹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어린 아이라도? 이런 쓰레기 같은 녀석이!”

카이사르는 대뜸 케밥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퍽! 우당탕탕!

바닥을 구른 케밥이 졸라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대체 왜 이러십니까! 제가 뭘 잘못했다고!”

“어린 아이에게 소시지를 먹였다고 하지 않았냐! 나라를 쓰레기처럼 운영하면서 잘도 뻔뻔하게 지껄이는군. 네놈같은 쓰레기는 내 강철 소시지로 숨통을 끊는 수밖에 없겠어.”

“히이익! 소시지가 검이었습니까!? 오해입니다! 저는 정말로 소시지를 말했던 겁니다.”

“그게 나쁘다!”

“아, 알겠습니다! 소시지를 유해식품으로 지정할 테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이건 뭐 웃음조차도 나오지 않는 불쌍한 만담이었다.

너네 같은 소재로 대화하고 있는 거 아니잖아.

어째서인지 둘 다 전혀 다른 소시지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소시지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금 중요한 건 네놈들이 미궁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는 대가로 무엇을 지불할지다.”

“뭐든지 원하는 걸 말씀해주십시오. 최대한 바라시는 바에 맞추어 협조하겠습니다.”

“예시를 원하는가... 알겠다.”

이왕 받을 거면 거금과 특급인력을 투입해서 마법진 따위를 설치해야 하는 왕궁 정도는 받아야겠지. 대규모 고급건축인력과 특급인재들의 마법진 설치를 위한 파견이 이루어지면?

좋든 싫든 저쪽에서는 일시적인 인재누출이 이루어지고, 알폰스 왕국은 순탄하게 전란의 피해를 회복하며 간편하게 건축물을 올려댈 수 있다.

정 뭐하면 몇 명은 브람 시를 새로운 수도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막대한 예산을 충당하게 하지 뭐.

왕궁 한 번 보여주고 남의 나라 돈으로 내 나라를 꾸린다.

아주 좋은 결과가 아닌가.

딱 그 정도의 생각만 하면서 별 생각없이 손목을 털었다.

손목 아래에 숨겨둔 탐욕의 주머니에서 왕궁을 꺼냈다.

그리고 천지가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대폭발이 일어났다.

꾸궁.. 콰과과과과!!

콰아아아앙!!

회의장 전체가 지진이라도 맞은 것처럼 극심하게 뒤흔들리더니 이내 천장이 폭삭 무너지며 충격적인 광경이 나타났다.

공간과 공간의 틈새가 무너졌다.

우주의 냉혹하고도 무자비한 암흑이 펼쳐지며 인접지대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끄아아아아!!”

“아아아아악!!”

“빌헬름 마이어어어! 우릴 속였겠다아아아!!”

처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공간의 틈새에 빨려 들어가던 절대자 한 명이 필살절초를 쏘아 보냈다.

그러나 공간의 틈새에서 발생하는 막강한 흡입력에 의해 위력은 대폭 약화되었고, 그의 공격은 쿠로와 카이사르와 리나가 볼링핀처럼 튕겨나가는 걸로 막아낼 수 있었다.

“…….”

졸라 쌔잖아.

분명 겁나 약화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근데 강자 축에 속하는 부하들이 막 튕겨졌어.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나도 모르게 무심코 초대형 사고를 쳐버렸다.

‘좌표 겹침 현상!’

공간이동하는 물체가 기존에 있는 물체와 동일한 공간에 나타나면 좌표가 겹치며 물체가 충돌하고,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돌발적인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이를 방지하고자 주요시설에는 좌표겹침 현상을 방지할 마법이 설치되어져 있다.

회의장과 왕궁 모두 그런 마법이 설치되어져 있었겠지.

그게 문제였다.

서로가 서로를 튕겨내려고 마법을 마구 발휘한다.

근데 왕궁 졸라 크고 튼튼하잖아.

제국의 마법으로도 왕궁을 튕겨내지는 못했겠지.

그렇다고 왕궁의 마법으로도 회의장을 튕겨내지는 못했겠고.

그런 백중지세의 힘에 의해 같은 좌표에 건물이 겹쳤다.

그 결과 연쇄폭발과 대지진을 동반한 공간붕괴가 발생했다. 덤으로 직격으로 휘말린 몇몇 국가의 대표단을 우주의 무자비한 심연 속으로 집어삼키고 말이다.

“…….”

각국의 절대자급 고수들과 대표들이 시공의 틈에 휘말려 비참하게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우리를 비롯한 극소수만이 간발의 차이로 살아남았다.

훤히 뚫린 건물 너머로 간신히 살아남은 놈들이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나를 바라보았다.

“이것이 보스의 뜻이다!”

카이사르의 외침에 나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다 틀렸다.

비록 원했던 결과는 아니라고 하나 이런 일이 발생한 이상, 나는 모두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사고라고?

그딴 말로 얼버무릴 수 있는 사태가 아니다.

얕보이면 바로 죽는다.

각국의 대표들은 모두 절대자급 전력을 하나씩은 데려왔다.

살아남은 국가는 우리를 포함하여 넷. 제국도 그 중 하나에 속한다.

여기서 저들이 정신을 차리면?

죽는다.

지금 내 부하들의 전력으로는 멸혼객과 동급의 전력 셋을 당해내지 못한다.

“그렇다. 이것이 나의 뜻이다.”

“대체 어째서!? 우리는 당신을 따르기로 했잖소!!”

“예시를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이그리드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혼돈스러운 생물체를 보는 두려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바다.”

나는 비정하면서도 잔혹한 썩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능하거나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쓰레기들 주제에 욕심만 비대하여 나와 권력을 나누어가지려 하다니, 분수도 모르는 어리석은 것들 같으니. 아직도 모르겠는가?”

희대의 암흑조직 흑산회 보스로서.

한 번 내게 칼을 돌린 자들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 세상은 나의 것. 흑산회의 어둠에 물들어야 마땅한 것.”

십국의 굴복도, 제국의 굴복도 필요 없다.

“오랜 평화 끝에 암흑천하가 열린다. 마침내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네놈들은 역사의 산증인이 되어 두 눈으로 보고 겪은 모든 참상을 세계에 알릴 전령이 되어라! 크하하하하!!”

혼돈과 파괴의 향연 속에서 세 국가의 대표단은 사력을 다해 생존을 위한 탈주를 감행하였다.

* * *

“...뭐, 그런 느낌의 일이 있었소.”

충격과 공포의 악당데뷔를 들은 간부들과 유력자 일동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니까.. 보스께서 휘두른 암경에 공간이 찢어져 십국 중 칠국의 대표단을 모조리 공간의 틈새로 집어삼키고, 살아남은 제국과 두 국가의 대표단이 도망쳐 이를 알렸다는 겁니까?”

“그렇소.”

“억...!”

극심한 혈압상승을 감당하지 못한 유력자 한 명이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부하들은 졸라 망연자실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안면에 철판을 깔고 최대한 뻔뻔하게 평정을 유지하며 대꾸했다.

“뭐하고 있지? 얼른 가서 탈론 공작령을 점령하지 않고.”

화기애애하게 끝날 것 같던 세계회의를 공간파괴술이라는 나도 모르는 비기로 박살낸 희대의 마인이 되었다. 하다못해 왕국 정도라도 점령하지 않으면 버틸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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