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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33화 (133/224)

00133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8)

카이사르의 싸이코같은 면모에 새삼 놀란 것과는 별개로 내 빈약한 신체상태도 만만찮게 고민이 되었다. 사실 cp가 차고도 넘치게 많으니 까짓것 좀 투자하면 개선은 가능하다.

문제는 내 신체능력이 낮을수록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전투력이 더욱 높아지는 기이한 현상에 있었다.

내 능력은 나보다 강한 적에게, 나와의 격차가 더욱 강한 적에게 공포심을 심어줄수록 더욱 강력하게 발휘된다. 즉, 평균치인 10보다 낮은 지금이 가장 강력한 순간이라는 거다.

‘물론 불편하지. 이제는 검도 못 들 정도이니까.’

그렇지만 어차피 내가 검을 들고 막을 수 있는 적의 수준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류는 실력으로 이길 수 있고, 일류는 요행과 운이 따라주어야 하며 절정고수부터는 한 합을 견뎌내기조차 빠듯하다. 당연히 그 이상의 적에게는 검을 맞대면 수수깡처럼 날아간다.

반면에 공포와 카리스마를 발휘한다면 절대자급 적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으며, 적에게는 광역 군중제어기를 선사하고 아군에게는 광역버프를 줄 수도 있다.

‘내 역할은 분명히 정해졌다.’

새삼 검을 쓰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고 날 만만하게 여기며 덤벼들만한 놈들은 없다.

저주에 걸려서 점점 약해진다는 핑계와는 별개로 공포와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데에는 아무 지장도 없으니, 대부분의 놈들은 감히 내게 덤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할 테니까.

‘괜히 어설프게 검을 들고 조악한 실력을 보이는 것보다 팔짱 끼고 폼만 재고 있는 게 낫지.’

그런 관계로 있지도 않은 저주를 해소하겠다며 주문을 걸고 능력치를 올리는 영약을 들이대는 치유의 교단은 민폐와 방해만 될 뿐이다.

나는 직설적으로 영약이 필요 없음을 밝혔다.

“내 저주는 능력치가 오르는 정도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간신히 맞춰놓은 균형이 무너지면 오히려 내게는 해가 될 뿐이니 영약은 거두어가라.”

“그런... 저희는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겁니까?”

“정 도움이 되고 싶거든 미궁의 심층지대에도 함께 진입할 사제를 구해주었으면 한다. 이왕이면 가장 강한 사제장인 뮤온, 당신이 도와주었으면 하는데.”

사제장 뮤온은 완전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엑. 그건 좀. 별로 내키지 않는데요.”

“뭐든지 도와주겠다는 거 아니었나?”

“아무리 그래도 심층지대는 좀... 그건 신한테 선택받은 사도나 성녀 같은 사람들이 아니면 아무도 안 갈 겁니다. 심층지대에서 죽으면 영혼조차도 미궁에 사로잡히지 않습니까.”

“귀공은 사도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가?”

“전혀 없습니다. 마이어 국왕폐하의 사정이 딱하다고는 생각하고 상부상조하는 관계를 맺기는 했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죽으면 전부 무가치한 공업이 되지 않습니까.”

뭐, 너한테는 기대도 안하고 있었다.

그리 긴장타지 마라.

“그럼 알라인 사제에게 내 파티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봐주겠는가. 그라면 분명 응할 것이다.”

“아. 그거라면 이미 자원을 하셨습니다. 서로의 마음이 맞아서 다행이군요. 지금은 상급 사제가 되었고 교단의 많은 기술도 아낌없이 전수하고 있으니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비전기술도?”

“음... 아무래도 거기까지는 좀...”

“뮤온 사제장. 심층지대로 간다는 건 사실상 목숨을 걸고 떠난다는 말과 같지. 나로서도 돌아올 수 없는 여정을 떠난다는 생각을 다소는 품고 있다.”

까놓고 말해서 수틀리면 확 뒤엎는다는 거다.

뒤가 없으니까.

뒷감당 같은 걸 생각할 필요도 없단 말이지.

“사제장. 나는 지금 기분이 안 좋아지고 있다. 귀공은 내가 기분이 안 좋아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뮤온 사제장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치유의 교단을 국교로 선정하지 않고, 신전을 향한 모든 지원을 중단하고, 흑산회를 동원해서 수입활동을 방해하고, 모험가 길드에 견습사제를 파견하는 실습과정에도 훼방을 놓고...”

“잘 알고 있군.”

“생계가 막막해진 사제들은 중노동을 시작하고, 여사제들은 밤거리에 나가 웃음과 몸을 팔고, 신의 진노를 받아 파문당하기까지 하며 비참한 뒷골목 신세로 생을 마감하게 되고...”

아니, 그렇게까지는 안 해.

너무 쓰레기잖아.

날 도대체 얼마나 나쁜 놈으로 생각하는 거냐.

“진정해라. 그렇게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헉...!”

뮤온 사제장이 화들짝 놀란 나머지 뒤로 자빠졌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몸으로...? 설마 헤오라츠 후작과 마찬가지로 언데드가 되어서 억겁토록 몸과 마음을 착취당하고, 부정한 군세의 일원이 되어 인류침략의 선봉에...!?”

어이가 없네 진짜.

이 새끼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확실하게 알겠다.

세상에 둘도 없는 개쓰레기라고 생각하고 있나보다.

“나는 그런 수고스러움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그럼 아까 말한 대로..”

“물론입니다! 전부 해드리겠습니다!”

“드디어 말귀를 알아듣는군.”

“치유의 교단의 모든 사제를 이끌고 참전해드리겠습니다!”

“!?”

아니, 그렇게까지 잔뜩은 필요 없는데.

소수정예로 갈 거였고.

“그만 둬라. 어린 것들은 무슨 죄가 있다고 다 끌고 가냐.”

“죄, 죄송합니다! 제가 경황이 없어서 그만..”

“실력자가 아닌 놈들은 데려갈 생각이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뮤온은 나라를 잃은 것처럼 넋을 놓았다.

“그럼 전 무조건 참가해야만 하는 겁니까?”

“뭐 그렇지.”

원래는 데려갈 생각이 없었는데, 세게 압박해서 데려갈 수 있다면 안 데려갈 이유도 없다.

쓸 만한 사제는 몇 명이 있어도 부족한 법 아니겠어?

“잠깐! 거래, 거래를 합시다!”

“거래?”

“다른 교단의 고위급 인사들을 대거 끌어들이겠습니다.”

말문이 막혔다.

이 양반 생존본능 하나는 엄청나네.

“고위사제쯤 되면 밑에 내려가기 싫은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무슨 수로 그들을 구슬릴 계획이지?”

“정치판에 끌어들이면 됩니다. 국왕폐하께서는 미궁정복을 숙원으로 삼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

“미궁을 정복하지 못할 시에 발생하는 위험을 부각시키고 합법적으로 각 교단에서 일정 수 이상의 고위인사들을 차출하도록 법령을 발표 하는 겁니다.”

“그런 짓을 했다간 이 나라에 상주한 신전들이 대거 이탈할 거라고 본다만.”

“저희 왕국에만 한정될 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가 같은 결론을 내리면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미궁공략의 선두국가로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겁니다.”

뮤온 사제장의 의견은 제법 솔깃했다.

“그건 마음에 드는군.”

“휴우.”

“허나 실현하기는 극히 어렵다.”

“어째서입니까?”

“세계회의에서 열국 대표 중 일곱을 죽였지. 그런 내가 의사를 표명한다고 다른 국가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다.”

뮤온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분명 미친 싸이코 새끼, 같은 소리를 지껄이면서 내 욕이라도 하고 있겠지.

마치 내가 카이사르라도 된 기분이 들어서 괜히 찜찜해졌다.

졸라 미안하기는 한데 뭐 어쩔 수 없잖아.

이미 벌어진 사고이기도 하고.

솔직히 그렇게 많은 고위인사들은 데려가고 싶지도 않다.

그냥 뮤온 사제장 정도로 퉁치고 싶은 게 내 속마음이다.

‘사제가 암만 쓸모가 있어도 짐이 되면 얘기가 다르지.’

끼니마다 비프스테이크를 내놓아라, 잘 말린 붉은 적염초로 탄 차를 마시지 않으면 힐을 걸지 않겠다, 악취를 맡기 싫으니 향을 피우면서 걸으라는 등등.

고위인사들은 미궁 속에서 유독 현실감각이 없는 충격적인 주문을 하는 경우가 잦다.

그나마 뮤온 사제장은 직접 만나본 적도 많고, 그런 또라이 같은 부류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더욱 탐을 내고 있다. 교단의 고위인사이면서 정상인인 사람은 그 정도로 드물다.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음.”

그렇다고 아무 기회도 주지 않고 강압적으로 데려가면?

분명 사기와 의욕은 최하로 떨어지겠지.

정신이 먼저 꺾인 NPC는 결코 가혹한 미궁 속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

“좋다. 대신 기한은 한 달 이상 줄 수 없다.”

“감사합니다. 제게 허락해주신 시간을 결코 헛되이 쓰지 않겠습니다.”

“저주에 대해서는 치료법이 없지만 일단 상태가 진정되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부하들에게도 말해주고.”

이걸로 근심거리는 대부분 사라졌다.

보스가 죽을지도 모른다며 엉엉 울던 리나도 치유의 교단 소속 사제장인 뮤온의 말이라면 진정해주겠지.

뮤온도 언젠가는 나를 따르게 될 테니 일석이조다.

다사다난했던 외출을 마치고 집무실에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내정창이 나타나며 경과보고를 했다.

시스템 보조에 의해 자동적으로 진행된 업무내역의 알림이다.

개중에는 미궁공략의 진척상황 보고도 있었다.

‘음. 이건 꽤 편리하군.’

모험가길드가 지닌 모험가에 대한 정보가 가감 없이 그대로 전달되어 보고를 받고 있으니, 사실상 브람 시 미궁의 공략현황은 내 손바닥 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탐사정보를 토대로 모험가 길드에서 내리는 지령, 일선 모험가를 향한 정보제공 및 지원현황에 개입해서 은밀하게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 수도 있다.

모험가들도 일단은 사람인지라 되도록 자신 있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고 싶은 마음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솔직히 누가 돈도 안 되고 험난한데다가 시간만 왕창 잡아먹히는 곳으로 다니고 싶겠어?’

미궁공략은 의외로 시간제한이라는 게 존재한다.

바로 식량과 식수의 양에 따른 지하에서의 활동제한시간이다.

아무리 천하장사의 힘을 지니더라도 굶으면 결국 죽는다.

미궁은 밑으로 내려갈수록 길도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최전선은 지름길도 없으니 직접 길을 개척해야 한다.

당연히 며칠 탐사하고 돌아가기를 반복하게 된다.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은 심리가 있단 말이지. 나는 그걸 이용하는 거다.

탐사일지나 모험가길드에 해당 모험가가 보고한 내용을 토대로 뭘 지원하면 이 모험가가 어디서 뭘 하겠구나, 하는 걸 대략 유추할 수 있다.

‘서브퀘스트나 왕창 깨라.’

나는 모험가들이 아래층으로 진출하는 대신, 각 층의 숨겨진 요소나 던전공략에 전념할 수 있도록 관련물품과 정보의 유통을 보다 원활하게 풀어주었다.

이 과정에서 모험가들은 쏠쏠한 재미를 보고, 이들이 본 재미는 브람 시 전역의 경제를 활성화시킨다.

여유가 생긴 유력자들은 내게 순순히 협조하게 되고 그 혜택은 자연스레 모험가들의 공략활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 순환이 반복된다.

‘까짓 상층부에 있는 요소, 아낌없이 다 퍼다주마.’

대신 중층부는 흑산회를 위해 아껴둔다. 최초공략으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혜택을 빼앗길 순 없다.

미궁도시 브람의 공략파티는 흑산회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괜히 아깝게 다른 놈들과 나누어 가지면서 손해를 감수할 이유가 없다. 서브퀘스트는 전부 그런 녀석들에게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면서 주는 콩고물이다.

그 중에 간혹 묻혀있는 대박은?

그냥 줘야지.

있는 줄도 몰랐던 걸 찾아서 갖겠다는 걸 뺏을 수는 없잖아.

아무리 나라도 그런 양아치 짓은 못한다.

만일 저지르면 브람 시에 있던 게이머는 죄다 탈출할 거다.

차라리 다른 도시에서 안정적으로 공략을 하려고 하겠지.

-브람 시 대박! 미궁공략속도 역대 최고!

-알폰스 왕국 진짜 잘 고른 듯. 왕조 바뀔 때까지는 반란에 휘말려서 죽는 거 아닌가 싶어서 쫄렸는데 큰 문제도 없었고, 바뀐 뒤로 미궁공략도 너무 편해짐!

-당연히 제국에서 시작하는 게 꿀이라던 녀석들 입에 꿀 발랐는지 입 꽉 다물고 있네ㅋㅋ

게이머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그럼 이제 내가 할 일은 얼추 정해졌군.

“카이사르. 리나. 레이브. 도로시. 쿠로. 모자이크.”

“무엇이든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오늘부터는 너희에게 미궁상식을 가르치겠다.”

교육스킬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상식을 키워줄 차례다.

나는 열성적으로 지식전달에 힘썼다.

3시간이 지난 뒤, 나는 모두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해가 안 되거나 질문 있는 사람?”

“보스.”

“카이사르인가. 말해라.”

카이사르는 당당하게 내게 말했다.

“뭐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보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이 새끼의 지능에는 학습능력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 그 어떤 지식도 이놈의 머리에 안착될 수 없었다.

‘이런 빡대가리 같으니.’

몇 번을 설명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놈은 괜찮아도 카이사르만은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

싸이코 짓을 위한 지능이 아니라 학습을 위한 지능을 별도로 올릴 필요가 있었다.

============================ 작품 후기 ============================

멍청한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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