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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34화 (134/224)

00134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9)

지능을 올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공부가 아니다.

지능의 교단에 데려가는 거다.

모든 교단이 그렇듯 기부금만 내면 혜택 받기야 간단하다.

그런데 막상 교단을 찾아가니 반응이 어째 떨떠름하다.

신자들뿐만 아니라 사제들도 흠칫흠칫 놀란다.

“뭘 그렇게 놀라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카이사르가 사제를 빤히 쳐다보다가 대뜸 칼을 뽑았다.

“보스. 이 녀석이 방금 거짓말을 했습니다.”

사제와 나는 동시에 식겁하며 놀랐다.

사제는 거짓말이 들켜서, 나는 이 새끼가 이제 남의 거짓말을 간파하며 한층 더 교활한 싸이코패스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겁해서 놀란 거였다.

동기화비율 1%의 철판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표정수습에 성공한 나는 애써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다시피 내 부하의 촉은 날카롭게 살아있다. 미심쩍은 언행을 보이지 말고 네놈의 심중에 숨긴 모든 비밀을 털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20kg쯤 원치 않은 방식의 다이어트를 할 거다.”

사제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바들바들 떨더니 이내 비밀을 털어놓았다.

“지능의 교단 사제는 아내를 두어서는 안 되지만, 저는 한 때의 불장난으로 아이를 임신시킨 여자가 있어 남 몰래 결혼을 하였습니다.”

“...!?”

“생계를 꾸리기 위해 유통해서는 안 되는 정보도 아낌없이 팔아치웠습니다. 정보상인들의 주된 고급 정보수입원 중 하나가 지능의 교단입니다.”

아니, 뭔가 예상하던 거하고 전혀 다른 비밀들인데.

뭐야 이 생계형 비리는.

뜬금없이 묵직한 비밀이 쏟아졌잖아.

“덤으로 외부의 청탁도 아낌없이 받아서 악의 조직들의 음모에 대한 자문행위 또한 겸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탈론 공작측의 세계회의를 이용한 계획의 자문도 했습니다.”

이제야 알겠군.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굴던 이유를.

“그게 발각될까봐 두려워서 그리 겁을 먹고 있었나?”

“예. 부분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최근 들어서는 보스의 환심을 살 수 있는 계략을 받고 싶다며 청탁을 하는 조직들이 많아져서 여러 계략을 내고 있습니다. 알만한 주요인사들은 태반이 연락을 취했습니다.”

“흥미롭군. 그 주요인사들의 이름을 밝혀라.”

“저... 그건 내부 기밀인데...”

“카이사르. 이놈이 내부 기밀이라고 하는데, 어찌 생각하지?”

카이사르는 사악한 흉소를 지으며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이놈의 내장도 배가 갈리기 전까지는 소중한 기밀로 뱃속에 남아있을 겁니다. 물론 배가 갈린 뒤에는 적나라하게 까발려지겠지요.”

“그렇다는 군. 기밀을 실토할 텐가? 아니면 실토당할 텐가?”

“으으으. 한 번 죽고 마는 거면 차라리 입을 다물 수라도 있었을 텐데, 저 사람은 대체 왜 따라와서...”

지능의 사제는 나와 카이사르의 뒤에 있는 사람을 보고 울상을 지었다.

치유의 교단 소속 사제 알라인이었다.

사제장 뮤온이 우호의 증표라며 일단 먹고 떨어져달라는 식으로 떠넘겼을 뿐이지만, 당장 협박받는 입장에서는 죽이고 살리기를 반복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겠지.

예전 같았으면 ‘헉! 난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닌데!’하면서 놀라는 척이라도 하고 있었겠지만, 솔직히 요즘은 밀당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협박하고 다닌다.

악명이 높지 않았으면 지능의 사제가 이렇게 제 입으로 기밀정보를 실토할 리도 없고, 난 이런 비밀이 있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살았겠지.

이런 걸 생각하면 악명이 높은 것도 마냥 나쁘지는 않다. 이제와서 내릴 수 있는 악명도 아니니까 이왕이면 요긴하게 써먹는 게 영리하게 사는 지름길이다.

“변경백 셋과 영주들 태반, 브람에 남은 브람십이강 중 아홉이 의뢰를 했습니다.”

“역으로 이용하지 않은 쪽을 추리는 게 빠르겠군.”

“이종족길드 길드장과 마법협회 회장, 멸혼객님만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한 마디가 뭔가 마음에 걸렸다.

“멸혼객은 흑산회의 일원이다.”

“예. 그것도 숨김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흑산회에서도 이용자가 여럿 있었습니다.”

“뭣이 어째?”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좀 꺼림칙하다.

안 그래도 흑산회 일원들에게는 기분 나쁠 정도로 강한 우산이 대거 지급되었다.

근데 그거 들고 내 뒤통수라도 후려치려고 들었다가는 내 몸이 벌집이 되거나 잿더미가 되어도 이상할 게 없다. 확실한 건 내 뒤통수가 원형이 남지 않을 정도로 박살난다는 거다.

“이용자를 밝혀라.”

“사이토, 그레이, 모자이크녀, 도로시 이지스, 리나입니다.”

나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보스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라도 물어보았나?”

“예?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보스를 간접적으로 암살하는 방법인가?”

“그런 흉흉한 게 아닙니다.”

“흉흉한 게 아니야?”

지능의 사제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였다.

나는 카이사르를 돌아보았다.

카이사르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은 아니다.

그렇다면 좀 더 압박해서 진실을 실토하게 해보자.

“그 다섯 명이 무엇을 알고 싶어 했고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 빠짐없이 이야기해라.”

사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낙심하였다.

인생 종친 내부고발자 같은 표정을 하며 순순히 대답했다.

“사이토 고객님께서는 먼저 원형탈모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했습니다.”

“...탈모?”

“예. 저희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치유의 교단에 가서 상급재생의 주문을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모발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품는 겁니다.”

“그래서 전부인가?”

“물론 아닙니다. 사이토 고객님께서는 상급재생의 주문을 받기에는 재생이 될 모발이 남지 않았고, 멍청한 놈들 사이에서 개고생을 한다며 스트레스도 여전할 거라 말했습니다.”

“…….”

그러네.

사이토는 흑산회의 몇 안 되는 모략가다.

그놈도 내가 느끼는 발암의 10%쯤은 느끼고 다니겠군.

“사이토 고객님께서는 문의사항을 다시 제시했습니다. 이미 죽어버린 모발을 부활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으음. 답변은?”

“모발이 없는 건 질병도 아니고, 저주도 아니기에 치유의 교단으로서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죽은 뒤에 부활권능으로 부활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

“그래서 억만금을 번 뒤에 서방의 고대산악지대 어딘가에 감춰진 옛 신의 자취를 쫓아 먼 여정을 떠난 뒤, 고대의 사원에서 회귀의 권능을 하사받으면 회귀를 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모발을 되찾으려면 회귀까지 해야 되는 건가!?

그보다 이거 게임이잖아.

걔가 회귀하면 게임이 롤백(Roll-back, 되돌리기)하는 거냐!?

“설마 사이토가 그걸 찾으러 간 건 아니겠지?”

“물론 아닙니다.”

“휴.”

“대신 모험가들에게 의뢰를 했습니다.”

“!!!!”

시발. 그거 회귀 플래그잖아.

그것도 멍청하게 지가 의뢰한 대상한테 돈 주고 장비 대주고 해줄 거 다 해준 다음에 호구처럼 회귀도 뺏기는 플래그.

내 부하가 빌어먹을 머리카락 때문에 내가 쌓아올린 모든 업적을 무위로 돌리는 것도 빡치지만, 그렇게까지 저지르고도 일개 모험가들에게 통수를 맞는 건 더 빡치는 일이다.

“카이사르.”

“예.”

“지금 당장 정보부에 연락을 취해서 그 모험가들을 찾아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해라.”

“사이토는 어떻게 합니까?”

“놈은 직접 만나서 결정을 지을 생각이다. 손 끝 하나 다치지 않은 상태로 휴게실에서 대기하게 해라.”

카이사르는 친위대원에게 명령을 내렸고, 곧 그의 명령을 들은 부하들이 어디론가 달려나갔다.

나는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사제를 노려보았다.

“다음.”

“히익... 다음 고객님은 그, 그레이 님입니다. 그분이 하신 의뢰는 건빵을 맛있게 먹는 법이었습니다.”

“…….”

나 지금 개빡쳐있는 상태였잖아. 거기다 대고 내 부하가, 그것도 마족이라는 새끼가 건빵을 맛있게 처먹는 법을 물었다고 말하면 뭐 어쩌라는 거냐.

열 받았던 내가 멍청하게 여겨질 정도로 한심한 문의였다. 헌데 어째서인지 사제는 아까보다 더 조심스러운 기색이었다.

“그게... 저, 정말로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데?”

“실은 이 고객님이 너무 호구처럼 보였던 나머지 사기를 쳤습니다.”

“허?”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던 건 아닙니다. 건빵을 맛있게 먹으려면 우유에 말아먹으면 된다고 알려줬는데도 그딴 허접한 방법이 정말로 맞느냐고 불신하는 기색이 보였던 탓에 욱해서 그만...”

자업자득이라는 거다.

국가기밀을 논해도 시원찮을 판에 흑산회 조직원, 그것도 마족이라는 새끼가 병신 머저리같이 건빵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나 묻고 다니고, 거기다 대고 태클이나 걸고 다니다니.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사기를 당해도 싸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사제의 겁에 질린 모습을 보니 사기를 친 수준이 꽤나 심각했던 것 같았다.

“건빵을 맛있게 먹으려면 지능의 과실과 세계수의 수액, 드래곤의 눈물, 천사의 심장, 악마의 뿔을 갈아서 30일 간 마기가 충만한 곳에서 숙성시킨 뒤에 복용하라고 말했습니다.”

“...지능의 과실을 비싸게 팔아치우려고 벌인 수작질이군.”

“정말로 죄송합니다! 솔직히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 이렇게나 힘든 제조법이라면 틀림없이 건빵도 맛있어지겠지, 라고 하는 말을 들어버려서... 사기를 하나 더 쳤습니다!”

이쯤 되면 지능의 사제들의 경이로운 수완에 감탄이 나온다.

이놈들 잘도 흑산회 소속 마족을 털어먹을 생각을 했네.

“무슨 사기냐.”

“지능의 과실을 먹고 효과가 없어도 입만 잘 털면 될 것 같아서 그냥 맛있는 무화가를 팔았습니다!”

“...”

아니, 그건 좀 불쌍하잖아.

그레이한테 무슨 원수라도 졌나 싶을 정도로 딱하다고.

“보스. 그레이는 어떻게 합니까?”

“놔둬라. 그 새끼는 좀... 불쌍하잖아.”

“알겠습니다.”

다음은 모자이크녀의 차례였다.

“모자이크 괴물은 어떻게 하면 주인님을 매료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 문의하셨습니다.”

“!!”

카이사르가 흠칫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이미 매료된 것 같은데.

격을 이루기 전에 이루어진 문의여서 엇갈렸던 건가.

“평범한 인간이라면 매력을 올리는 방법을 알려주었겠지만, 이번만큼은 상대가 무려 괴물이었기에... 저희도 신중히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떤 결론을 내렸지?”

“일단 인간이 되는 것부터 시작하기 위해서 변신마법을 배우거나, 남부 대수림의 늪지대에 숨은 마녀를 찾아가 무언가를 희생하는 대가로 인간이 되는 저주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무언가를 희생하라니, 대체 뭐를!?

벌써부터 불길해진다.

“설마 내 애완동물이 벌써 대수림에 갔다 온 건 아니겠지?”

“에... 예... 그런 건 아닙니다...”

“뭐냐, 그 떨떠름한 반응은. 뭘 감추고 있는 거냐!”

“히이익! 죄송합니다! 마녀가 주술도구가 필요해서 수도에 상경했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그만 괴물과 마녀의 만남을 주선하였습니다.”

“!!”

이런 미친.

지능의 교단 이놈들은 왜 이리 유능해서 사고를 잘 쳐?

장난 아니게 위험하잖아 이거.

모자이크녀가 뭔가를 희생하기로 했다면?

카이사르가 미쳐버릴 거다.

원래도 미친놈이었지만 이젠 브레이크가 사라진 폭주기관차가 된다고.

알아서 적당히 수위를 조절해서 말해라.

나는 사제를 노려보며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사제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하였다.

“숨김없이 전부 말하겠습니다! 괴물은 마녀에게 세 가지 대가를 지불한 뒤에 무언가를 제공받았습니다!”

방금 전의 사인은 대체 뭐라고 생각한 거냐!

왜 구명줄을 던져줘도 제 손으로 뿌리치고 자살하는 건데!?

카이사르는 이제 누가 봐도 터지기 일보 직전의 시한폭탄처럼 격노한 상태가 됐잖아!

============================ 작품 후기 ============================

빌헬름 마이어가 보내는 무언의 신호 : 님 좀 사리셈;;;;

다른 사람들이 해석하는 무언의 신호 : 사실대로 실토하지 않으면 널 죽여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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