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5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
#6 - 흑산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10)
나는 카이사르가 폭발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건방진 녀석! 감히 내 부하가 아끼는 애완동물을 수상한 마녀와 엮다니. 모자이크가 마녀에게 바친 대가는 전부 환수한 뒤에 네놈의 것을 대가로 바칠 것이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마음이 풀리신다면 부디 그렇게 해주십시오. 억겁토록 고문을 받으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흐흑.”
“카이사르. 이걸로 조금이나마 분이 풀렸는가?”
다행히도 카이사르는 애써 진정한 기색이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스.”
일단 대화가 진척되기 위해서는 모자이크 녀가 마녀에게 바친 세 가지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거기까지는 지능의 사제도 모른다고 하기에 당사자를 직접 불렀다.
이럴 때에는 괜히 주변에서 정보를 모으겠답시고 얼쩡대다가 오해를 사느니 당사자한테 직접 묻는 게 정공법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없습니다! 모자이크님께서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뭐... 라고!?”
나도 모르게 짐작 가는 구석이 있었다.
게이머가 실종되는 이유는 정말로 뻔하다.
로그아웃 시간이다.
잠을 자려고 돌아가는 건 아닐 거다. 게임은 가수면 상태로 진행되어서 별도의 수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탑 랭킹 100위에 속할 정도의 게이머라면 최고급 캡슐을 사용할 테니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는 것도 해결된다.
폐인급 게이머가 밖에 나가는 건 그냥 큰일을 마치고 가끔은 바람이나 쐴까, 하는 여유로운 생각 외에는 딱히 아무것도 없다. 당사자는 지금쯤 별 생각 없이 바람이나 쐬고 있겠지.
아마 한 3시간쯤은 그러지 않을까.
근데 그게 문제다.
현실과 게임의 시간비는 1 대 10이다.
모자이크녀의 현실 3시간은 우리의 게임 속 30시간이다.
그것도 타이밍이 심각하게 구리다.
마녀와 만난 직후로 30시간이나 실종되는 거잖아.
“보스. 며칠간 휴가를 내고 싶습니다.”
“이유는?”
“잠시 사적인 원한을 해소하고자 마녀를 찾아 죽인 뒤, 남는 시간에 짬을 내어 지능의 교단을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만 둬.
뭘 간만에 짬 내서 여행가는 것처럼 가볍게 말하는 거야.
“그럴 필요는 없다. 모자이크녀는 네 애완동물이기만 한 게 아니다. 흑산회의 참모이기도 하지. 이 일은 흑산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해결해야 할 중대사다.”
카이사르는 고마워했고, 지능의 사제는 까무러치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지금 즉시 모든 공무기관과 연합기관 산하 전 조직, 수도에 주둔 중인 흑오문 조직에 그 마녀의 체포령을 내려라. 마녀의 행방을 알면 모자이크를 찾는 건 간단하다.”
“알겠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조금이라도 불성실하게 굴면 네 인생은 나락까지 추락할 거다. 지능의 사제.”
사제는 벌벌 떨면서 고개를 조아렸다.
“마녀가 체포되기 전까지 가만히 대기하는 것도 시간낭비다. 대화를 이어나가지. 내 아내, 도로시 이지스는 무엇이 궁금해서 네게 문의를 했지?”
“그게... 남편에게 애정을 받는 법을...”
순식간에 이 장소의 분위기가 가시방석처럼 불편해졌다.
부하들이 엄청나게 쳐다보고 있다.
카이사르의 펫을 신경 쓸 게 아니라 내 아내나 신경 쓰라는 그런 시선들이다.
“그래서. 답변은?”
“요리를 잘하거나 애교를 잘 부리고 잠자리에서의 유혹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의 내조를 잘하는 방법과 남편의 바깥일을 지지하며 사회생활을 돕는 외조를 잘하는 방법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어느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
“인간의 마음을 지니지 않은 냉혹한 보스를 내조로 보필해봤자 자신을 돌아봐줄 일은 결코 없을 거라며, 외조를 잘하는 방법에 큰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
내 안의 양심이 비명을 지른다.
나 너무 쓰레기잖아.
“외조를 잘하는 방법으로 전한 내용은 그리 유별난 게 아닙니다. 그저 남편에게 도움이 될 일을 하는 거라고만 전했습니다. 무엇을 하든 저희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발뺌을 하려고 하는군. 유감이지만 무슨 일이 생기든지 나는 전부 네놈들의 탓이라고 여길 거다.”
“그런...!”
그래도 도로시 이지스는 꽤 잠잠했었지.
딱히 걱정은 되지 않는다.
나를 위해서 미궁탐사나 더 열심히 하려고 하겠지.
그건 딱히 내게도 손해 보는 얘기는 아니다.
회피탱이 더 세지는 데 왜 손해겠어?
“그럼 마지막 문제아는 대체 무슨 문의를 했는지 들어볼 시간이군. 리나. 당사자로서 할 말은 있는가?”
쥐 죽은 듯이 숨죽인 채 은신해있던 리나가 천장에서 소리도 기척도 없이 기어 내려왔다.
“으으... 그거 꼭 들어야해?”
“꼭 들어야겠다.”
“리나의 입으로는 못 말하겠어...”
사제는 무진장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리나님께서는 남심을 사로잡고 유혹에 성공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고 문의하셨습니다.”
대상은 당연히 나겠네.
“이건 안 들어도 되겠군.”
“으으..”
“민망하게 해서 미안하다, 리나.”
“아니야, 보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걸.”
“그럼 마녀를 잡아오기만 기다리겠다.”
그리 말한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데 지능의 사제와 함께 리나도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리나. 왜 그러고 있지?”
“으으. 그게 말이지? 리나도 딱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아무튼 리나의 잘못은 아니지만 리나가 잘못한 것 같은 일이 하나 있어서 말이지?”
“엄청나게 당황하고 있군. 어지간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으니까 머뭇거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라.”
리나는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게... 지금 찾는 마녀라는 사람 있잖아. 아무래도 리나가 죽인 사람 같아서.”
“!?”
“에이잇, 다 저 사제가 나빴어! 마녀를 암살하면 보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주술이 적힌 주술서를 습득할 수 있다고 말했단 말야!”
이런 시발. 뭔 연애상담을 그 따위로 해.
기가 막혀서 돌아보자 지능의 사제가 넙죽 엎드렸다.
“잘못했습니다! 리나님께서는 어떻게든 암살자인 자신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알려달라고 하셨는데, 생각나는 게 마녀를 암살하는 것밖에 없어서 그만..”
반쯤은 장난치는 것처럼 말했는데 리나가 엄격 근엄 진지하게 정말로 마녀를 암살해버린 모양이다.
분명 마녀와 상담을 해서 도움을 받는다는 선택지는 떠올리지도 않았겠지.
사랑에 눈 먼 소녀가 이렇게나 무섭다.
“그럼 제 애완동물은 어떻게 찾습니까?”
두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카이사르에게 30시간만 기다리면 지 맘대로 나타날지도 모르고 안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말 따위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보스가 제 손에 살아남을지도 모르고 안 살아남을지도 모릅니다, 라고 대답하면 어떡해.
졸라 무섭잖아.
“마녀를 소생시켜서 정보를 얻는다. 분명 고위사제들은 사후 2일이 경과하지 않은 시체를 대상으로 부활주문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렇습니다! 저희 지능의 교단도 최선을 다해서 마녀의 소생을 돕겠습니다!”
필사적으로 비위를 맞추는 사제와 달리, 리나는 이번에도 난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뭐냐. 또 뭔 짓을 저지른 거냐.”
“그게 말이지...? 귀여운 리나는 딱히 시체를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암살한 장소가 마침 선착장 근처라서 말이지? 근처 선박의 화물 속에 슥삭 숨겨버려서...”
시체가 멀어지고 있다!!
“당장 선착장의 기록일지를 가져와! 시체를 실은 장소에서 대기하다가 출발한 선박을 추적해야 한다!”
내무부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발칵 뒤엎어졌다. 안 그래도 왕조가 바뀐 뒤로 격변하는 행정체제에 적응하기도 빠듯한 와중에 느닷없이 시체수색까지 하게 생겼다.
그것도 왕국의 실세 중 한 명으로 여겨지는 카이사르가 무시무시하게 눈을 부라리는 와중에 해야 하는 일이다.
실패하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은 누가 봐도 명확했다.
“새벽 3시 무렵에 정착한 선박을 추렸습니다.”
“상자를 적재한 선박은 셋 입니다!”
“찾았습니다! 상류 강으로 향하는 정기선입니다!”
내무부 직원들은 필사적으로 선박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마법협회의 도움을 받아 선박의 정착지점으로 공간이동을 한 뒤, 반대편에서부터 배를 타고 내려갔다.
다행히 수 시간 이내로 배를 정지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선박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아이고...! 국왕폐하, 제발 도와주십시오!”
“저희 배가 해적을 만났습니다.”
“적재된 화물을 모두 해적선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요!”
시체가 해적에게 넘어갔다!
“이런 개새끼들이!”
카이사르가 홧김에 집어던진 돌멩이가 굉음을 내며 날아가 강가의 나무 십여 그루를 박살내고 동굴 하나를 붕괴시켰다. 시체소생을 위해 동행했던 사제들은 죄다 사색이 되었다.
만일 이대로 시간이 경과해서 그들의 능력으로 시체를 부활시킬 수 없게 된다면, 저 무시무시한 괴력이 그들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들지도 모른다.
사제들은 식겁하며 마법사들을 재촉하였다.
“싸이코매트리 마법을 사용해서 해적선의 특징이라도 파악합시다.”
“예? 그건 좀 곤란합니다만... 해당 사물에 얽힌 방대한 과거의 기억을 훑는 부작용으로 한 번 사용하면 한 달 가량은 정신력 고갈현상을 겪지 않습니까.”
“일이 잘못되면 마법사들도 무사하리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저 악명 높은 악마계약자가 사정 가려가며 사람을 죽일 것 같습니까? 관련인은 다 죽일 겁니다.”
마법사들도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크윽.. 차, 찾았습니다.. 이미지를 구현해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마법사들은 힘겹게 선박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내무부 직원들은 부리나케 해군에 공문을 돌렸다.
모두가 카이사르를 화나게 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이건 중립 해협지대에서 활동하는 코르크 해적단이다. 당장 인접지대의 해군에 연락해서 코르크 해적단의 주 항행루트에 대한 분석결과를 가져오도록!”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중립지대 중앙에 위치한 해적군도입니다. 일단 그곳에서 노획에 성공한 물품을 확인한 뒤, 전부 팔아치우는 모양입니다.”
“이런 젠장! 시체가 버려지기라도 하면 끝장이야! 당장 그 군도위치를 가져오라고 해!”
모두가 열심인 와중에 나는 넌지시 카이사르에게 물었다.
“카이사르. 만약 시체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할 거냐.”
“휴가를 낼 겁니다.”
“…….”
이건 절대로 관련된 인물들을 모조리 죽이겠다는 말이다.
아군이건 적군이건 개의치 않겠지.
무능한 아군과 괘씸한 적군을 전부 찾아가 조질 게 틀림없어.
“해적군도의 위치가 확인되었습니다.”
“당장 쳐들어간다. 마법협회의 모든 마법사를 동원해서라도 실력자를 대거 투입해서 해적군도를 급습한다!”
“지금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계획에도 없었던 원정이 시작되었다.
* * *
마이어 왕국은 세계회의에서 충격적인 테러를 저지른 뒤, 내정에만 충실한 모습을 보여 왔다.
미궁의 위험성을 우려한 각국의 수뇌부는 함부로 전쟁을 일으켰다가 몬스터웨이브를 막지 못하거나 빌헬름 마이어의 협조를 얻지 못할까봐 신중하게 마이어 왕국을 주시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마침내 마이어 왕국에서 대대적인 움직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에르웰 왕국과 인접한 중립 해역지대로 브람 시 최고의 실력자들이 대거 공간이동을 하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정확한 목적지는 해적군도로 추정됩니다.”
“해적군도? 대체 어째서 이런 어중간한 시기에 그곳을 노리는 거지? 해상던전이라도 공략할 셈인가?”
“빌헬름 국왕의 충실한 심복 카이사르의 애첩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정보도 입수되었습니다. 덤으로 어떤 마녀에 대한 수배령도 공문으로 내려진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각국의 수뇌부들의 두뇌가 긴박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녀가 애첩을 납치하고 해적군도로 달아났다? 그걸 찾기 위해서 이 정도의 대군을 동원할 정도라면...”
“한 발 앞서서 그 마녀를 찾아내면 마이어 왕국과 교섭할 카드가 생긴다.”
“당장 실력자들을 급파해라. 마이어 왕국보다 먼저 그 마녀와 애첩을 찾아내야만 한다!”
각국의 실력자들이 해적군도를 향해 공간이동을 시작했다.
실력자들은 초조했다.
경쟁자들이 적지 않을 것임은 명백했으니까.
덤으로 해적들은 억울했다.
난데없이 전 세계의 실력자들이 우르르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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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군도 의문의 동네북